"엄청날 정도의 대담함"과 "어리석을 정도의 무모함" 사이의 경계는 두께가 1밀리미터에 불과할 수 있으며, 나중에야 알 수 있다.
코넬리우스 밴더빌트는 자신의 철도 제국을 확장하기 위한 일련의 사업 계약을 막 마쳤다.
그의 사업 고문 중 한 명이 이를 살펴보고 밴더빌트에게 모든 계약이 법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밴더빌트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존. 모든 철도를 뉴욕 주의 법규 만 따라서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시죠?
이 일화를 보고 "그런 태도가 밴더빌트가 성공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밴더빌트의 시대에는 철도에 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될 대로 돼라"라는 식으로 어쨌든 계속 밀고 나갔다.
밴더빌트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그의 법 위반을 현자의 지혜로 보고 싶어질 수 있다. (그의 성공에는 악명 높은 법 위반이 필수적이었다.)
그 일관성 없는 선지자는 아무것도 자신을 방해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런 분석이 얼마나 위험할까?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노골적인 범죄를 기업가의 자질로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법원 명령에 따라 초기의 사업이 무너졌다면, 무법자 밴더빌트의 이야기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법을 비웃었던 엔론을 열정적으로 비판하는 만큼 같은 행동을 했던 밴더빌트에게는 칭찬을 퍼부을 수 있다.
존 D. 록펠러도 비슷하다. 그의 빈번한 법 회피(당시 한 판사는 그의 회사를 "보통 도둑과 다름없다"라 말하기도 했다)에 대해 역사가들은 교활한 사업 수완으로 묘사하곤 한다.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언제 이야기가 “낡은 법이 혁신을 방해하도록 두지 않았다”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로 바뀌게 될까?
알기 어렵다. 우리는 과정을 결과로만 판단하곤 한다. 위험한 일이다.
기업과 투자자를 연구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그들의 성공을 촉진했던 많은 같은 자질이 쉽게 실패를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특정한 결과로부터 배울 때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꼬리만 보는 경향이 있다. 크게 승리한 이들은 무엇을 했을까? 크게 패배한 이들은 무엇을 잘못했을까?
승자와 패자는 비슷하게 위험한 전략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았고, 우연에 의해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기 때문에, 둘 중 어느 하나에서 실행 가능한 교훈을 찾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요점은 큰 성공을 거두려면 기존의 통념을 깨뜨려야 하지만, 대개 통념은 옳고 따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승자는 마땅한 것보다 더 많은 칭찬을 받고, 패자는 마땅한 것보다 더 많은 비난을 받는 결과가 남게 된다.
법을 위반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투자에 성공한 대부분은 GEICO 주식을 소유한 덕분이었다. 처음의 매수와 이후 밸류에이션이 높아졌어도 계속 보유한 것은 그레이엄 자신의 그 유명한 책에서 제시한 거의 모든 규칙을 위반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
우리는 마크 저커버그가 엄청난 금액으로 회사를 사겠다는 제안을 거절한 천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같은 제안을 거절한 그루폰과 야후!는 열정적일 만큼 비판한다.
여기서 기업가를 위한 교훈은 무엇일까?
우버는 인정사정 없이 택시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러나 형편없는 스타트업을 응원하는 것과 "#DeleteUber" 사이의 경계는 매우 얇아졌다. 경영 대학원에서는 어떤 사례 연구를 가르쳐야 할까?
셀 수 없이 많은 행운(그리고 불운)이 결과에 지렛대로 작용한다.
최고의(그리고 최악의) 관리자는 직원을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몰아간다.
"고객은 항상 옳다"와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모두 사업의 지혜로 받아들여진다.
"엄청날 정도의 대담함"과 "어리석을 정도의 무모함" 사이의 경계는 두께가 1밀리미터에 불과할 수 있으며, 나중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진 과정은 본받아야 할 것으로, 실패로 이어진 과정은 피해야 할 것으로 보기 쉽다.
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그냥 그런 것 중 하나다. 위험은 불공평하고 용서가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사례 연구보다는 광범위한 패턴에 더 집중해야 한다. 사례 연구는 극단적인 예를 연구하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으며, 극단적인 예는, 복잡성을 고려할 때, 다른 상황에 적용하기 가장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경쟁 우위가 얼마나 취약한지, 사람/기업/경제가 얼마나 빨리 진화하는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 같은 광범위한 패턴을 찾아보면 실행 가능한 것에 더 가까워진다. 이것이 바로 여러 학문 분야에 걸친 배움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전략이라도 작동하지 않는 때가 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대부분 변화해서 사라진 것에 대한 연구이며, 종종 그 사라진 것을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지침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전략이 얼마나 위험한지 과소평가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 전략이 해당 시대에만 효과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황이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과거에 사용된 특정 전략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사람들이 처음 그 전략을 발견한 방법 같은 광범위한 주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위험을 정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보다 위험을 견뎌낸 사람들에게서 배울 것이 더 많다. 성공하려면 쉽게 실패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성공과 실패 사이의 경계가 실시간으로 거의 보이지 않는다면, 실수로 그 선을 넘어 살아서 이야기를 전한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싶다.
극심한 불황에서 살아남은 기업들. 약세장에서 살아남은 투자자. 실패한 제품을 다시 설계한 후 성공한 제품.
어떤 위험한 도전이든 성공과 실패 사이의 경계는 매우 가늘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찾아낼 수 없고, 좌지우지 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실수를 완전히 피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가끔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인내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에 대한 여지와 겸손이 중요하다.
밴더빌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왜 법을 신경 써야 하지? 내가 힘이 없어서?
밴더빌트는 그런 식이었고,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고, 이야기의 마지막 대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자료 출처: Morgan Housel, "The Thin Line Between Bold and Reck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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