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체제건 적정한 재산 보유는 우리 각자에게 최후의 보루다. 돈을 밝힌다는 말이 근엄한 사람들에겐 자못 거북하게 들리겠지만 현실에서는 필요한 재산을 보유하지 못하면 인생이 괴롭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약간 부패한 존재이므로 돈이 없는 사람과 가까이하려 들지 않는다. 돈 없으면 친구도 없다는 말마저 있다. 하여,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적극 노력해야만 한다.
내가 젊은 시절 맥없는 동태 눈동자로 나날을 보낼 때, 누군가가 두둑한 용돈을 내 호주머니 속으로 넣어주면 갑자기 구부정한 어깨가 활짝 펴지고 턱은 자연스레 거만한 자세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필요이상으로 재물을 취하려 하는 태도를 지향하라는 게 아니다. 이 글에서는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돈은 스스로 확보하고 있어야 모종의 역할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자. 나는, 언제나 신세만 지는 사람과 관계를 계속할 수 있는가? 내 주머니 주위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기회만 있으면 돈을 빌려달라는 이에게 지속적인 호감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지인 중에 꼭 도와주어야 할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물질적 지원이 불가능하니 마음만 전한다고 혼잣말하는 초라한 자신을 위로할 자신이 있는가?
쉽게 버는 돈이나 너무 많은 재산은 행복보다는 고통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냄새를 풍기면 파리들은 순식간에 모여들기 마련이다. 이들을 물리려면 파리채로는 어림없고 법대로 하자는 말들이 어지러이 오갈 확률 또한 높다. 나는 이러한 경우를 감내할 위인이 못된다. 단지 어디 가서 노릇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만족할 것 같다. 그럼 역할을 무난하게 할 정도로 필요한 돈은 어떻게 준비하느냐이다.
나는 좋은 의미로 ‘품위유지 재테크’란 말을 꺼낸다. 금수저가 아니라면 금전 창출이 가능한 현역시절부터 열심히 모아야 한다. 능력에 따라 종잣돈을 키우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약간은 보수적으로 운영하길 권한다. 돈이 흐르는 샘 근처에서 튕겨져 나오는 순간 예측 가능한 현금흐름은 기대할 수 없다. 거기에다 비밀 창고 속에 감춰둔 쌈짓돈은 다시는 보충되지 못하고 줄줄 새어나가기만 할 것이다.
돈의 긍정적인 효용에 대해 조금 더 적어보겠다. 자신감을 고양하는 정신적인 측면은 이미 나의 용돈 사례로 얘기했다.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자. 자식들은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부모를 존경한다. 방문, 전화 등 관심표명 횟수가 늘어난다. 이건 계산된 행동이 아니라 능력 있는 부모를 베이스캠프 같은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녀 또한 마음껏 세상을 항해하다가 힘들면 언제든 돌아가 의지할 울타리가 있다고 느껴서 그렇다.
재정적으로 안정된 사람은 다양한 초청을 받는 경우가 많다. 어느 모임에선 조직의 리더가 되어주기를 기꺼이 요청한다. 인간의 품격이라 함은 여러 요소가 결합된 결정체지만 인품 다음으로는 ‘금품’이 아닐까 한다. 넉넉하면 자질구레한 하자는 저절로 치유된다. 맞는 말이되 듣기 싫은 말만 반복하는 수다쟁이보다는 말 수는 적고 시원하게 한 턱 내는 사람을 누구나 좋아한다. 상대로부터 대접을 받는다는 건 큰 기쁨이다.
자신의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되면 주위사람의 걱정을 덜어준다. 돈은 없는데 아프고 장수하면 물귀신이나 다름없다. 간병이 필요한 경우는 효자들에게 고통을 준다. 자녀들이 겉으로는 오래 살라고 할지 모르지만 속마음은 하루빨리 다음 생을 도모하기를 바랄 것이다. 재정능력이 약할수록 건강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데 실제는 반대라서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사후처리 비용까지 남기는 유언을 하는 경우를 본다. 깔끔한 사람들이다. (옮긴 글 )
그렇다면 현재가치로 얼마 정도의 여유자금을 가져야 하는데?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답은 없다. 인생관, 삶의 질 등 바라보는 시선이 인구수만큼 다양하다. 나의 기준은 이렇다. 돈 때문에 가족의 눈치를 볼일이 없을 정도다. 여행, 병원, 경조사, 모임 회비 등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안분지족”을 입에 올리면 왠지 변명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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