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4일 화요일

미국은 향후 경쟁의 무대를 첨단기술로 설정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을 상징하는 일러스트레이션. [Nikkei]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중반에 걸쳐 미국 시장을 장악한 일본을 누르기 위해 미국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외교적 압박을 통해 자동차/반도체 자율규제를 통해 일본의 수출물량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했고, 유명한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고를 유도해 일본 제조업 약화와 금융시스템에 버블과 봉괴를 이끌어내었다(고 쓰면 지나친 미국만능론이 될까?). 그 이전에 볼커가 만들어놓은 킹달러는 중미와 남미 국가들을 초토화시키면서 누가 이 동네의 대장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우리도 같은 운명이 될뻔했으나 일본에서 대규모 차관을 안보비용이라는 명목으로 뜯어내는데 성공하면서 위기를 돌파한다...)

90년대 초반에는 걸프전에 위력을 떨친 패트리어트, 토마호크 미사일 등에 핵심부품 대부분이 일제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안보위협을 강조했다. 지금도 군사용으로 요긴하게 사용되는 갈륨비소 반도체는 원래 CD생산을 위해 만들었다...스마트폭탄의 눈 역할을 해주는 CCD(지금 디카와 스마트폰 카메라의 핵심..)도 일본만이 대량생산했고, 탄소섬유도 일본이 60%이상을 독점 생산했다. CNC도 일본의 독점영역이었다.

이런 압박을 통해 일본의 발목을 잡고 일본의 역할을 일정부분 대체할 수 있는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면서 미국은 시간을 벌었고, 이 시간을 활용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조하는데 성공했고, 기존의 아날로그 세상을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꿨다. 아날로그 세상의 최강자였던 일본은 변화하는 게임의 법칙에 적응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의도는 100% 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철옹성 같던 일본의 틈을 공략하게 되었고 경쟁력을 축적해갔으며 중국이라는 새로운 부의 원천에 알뜰하게 빨대를 꽂고 새로운 단계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니 이번에는 일본이 아닌 중국이 일본과 같은 역할을 더 무섭게 하는 상황을 직면하게 되었다.

외교적 압박을 통한 자율규제 같은 카드가 먹혀들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한 미국은 일단 방어벽을 치고 시간을 버는 전략을 채택했다. 관세인상을 통한 시장진입 축소를 시도했지만 사실 미국의 방어벽은 중국이 미국의 기술에 쉽게 접근하고 입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각종 제도적 장치들이었다.

2018년부터 기술보호와 통제를 위한 각종 법률 개정안이 쏟아져나왔고 관련 기구들이 활동을 개시하였다. 적법하게 이루어진 M&A에 대해서도 단칼에 무력화시키는 무지막지한 조치들을 통해 중국에 대한 벽을 높였다.

이런 조치들을 통해 중국의 추격속도를 늦추고 시간을 벌게 된 미국은 향후 경쟁의 무대를 첨단기술로 설정했고, 그 대상은 반도체, 이차전지, 인공지능, 차세대통신망, 양자컴퓨터, 바이오의약품 등으로 구체화하였다. 인공지능이나 양자컴퓨터는 미국이 원래 잘하던 분야였으니 더 많은 투자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분야는 그렇지 않았다.

세계의 공장으로 30년동안 쌓아올린 중국의 네트워크와 경쟁력은 거대했고 이것은 대부분의 국가와 사람들에게 디폴트 값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디폴트 값을 변경시키면 중국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30년동안 미국기업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GVC를 변화시키겠다는 미국만이 할 수 있는, 무모하지만 치명적인 판단에 점차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동의하게 된다.

2021년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공급망과 관련한 이슈에 집중하였고, 2022년 조 맨친 상원의원을 어떻게든 구워삶으면서 Inflation Reduction Act라는 법률을 제정하면서 시장과 공급망을 연계시키는 무지막지한 프레임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들었던 기존의 자유무역과 국가간섭 최소화라는 프레임을 파기하고 적극적 산업정책과 직접보조금 지급이라는 큰 칼을 꺼내어 휘두르기 시작한다.

여기에 더해 지속적인 금리인상화 킹달러를 이용해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데 아마도 정신을 차려보면 자연스럽게 미국이 만들어놓은 새로운 프레임의 세상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 같다. 미국의 프레임을 완성시키는데 있어 가장 매력적이고 핵심적인 역량을 갖춘 존재들은 대한민국의 글로벌 기업들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될놈될이라고 운도 따르면서 유라시아 대륙세력의 한축을 형성하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전략적 실수를 하게되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를 활용해 코너로 몰아넣으면서 지정학적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20년동안 1조 달러를 쏟아부어도 실패했던 세계질서 재편을 500억 달러도 안되는 비용으로, 그것도 미군의 피는 단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달성하고 있다. 유럽은 LNG로 미국과 다시 끈끈하게 묶이게 되었고, 매칸더가 이야기하던 세계섬 하트랜드의 입구인 우크라이나는 미국 영향권으로 굴러들어오게 되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의도적으로) 삭막하고 먹을것 없던 아프가니스탄을 과감히 버리고 대신 우크라이나를 취하고자 했다면 역사상 최고의 도박이었을 것이다.

패권국은 단순한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것을 요즘 실감한다. 기존 질서를 폐기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본 경험이 있는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의 역량차이는 어마무시하다는 것을 느낀다.

옳던 그르던 관계없이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고, 우리는 다시 한번 적응하고 올라타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국난극복이 취미생활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겪어왔지만 다시 한번 구르고 뛰고 눈치보면서 달려가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는것 같다. 이제 대한민국은 현역은 당연히 아니고 예비군도 끝난 상황에서 민방위 모자 하나 달랑 쓰고 다시 전장으로 나서는 심정이지만 어찌하겠는가..우리의 팔자가 그런것을...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