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7일 토요일

여덞명의 자식과 한명의 애인 (눈물 실화)

 

 

[눈물실화] 여덟명의 자식과 한명의 애인

엄마가 57세에 혼자가 되버렸다.

나의 이혼소식에 쓰러진 아버진 끝내 
돌아오지 못하셨고, 
그렇게 현명하셨던 엄마는
정신이 반 나간 아줌마가 되어 
큰오빠, 작은오빠 눈치보기 바빴다.
이제 아버지 노릇을 하겠다는
큰오빠 말에 그 큰집을 팔아 큰오빠에게 다 맡겼고
나 몰라라 하는 큰 오빠대문에 작은 오빠의
모든 원망을 다 감수해야 했다.
사이 좋았던 8남매가 큰오빠 때문에 모이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엄마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고
노름하는 아들한테조차 할말을 못하는 
딱한 처지가 되버렸다.
그걸 이해하는 난, 엄마가 원하는대로 
형제들에게 돈을 풀어주었고, 그런 나에게
미안했던 엄마는 가끔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널 낳지 않았으면 난 어떡할뻔 했니?"
"괜찮아 엄마, 엄마는 우리 여덟 잘 키웠구
큰오빠가 지금 자리 잡느라고 힘들어서 그렇지,
효자 잖어~ 이젠 새끼 걱정 그만하고 
애인이나 얼른 만들어서 즐기고 살어!"
"난 애인은 안돼~ 니 아빠같은 남자가 없어"
그러던 엄마가 어느날 나에게 슬그머니 말씀하셨다.
"남자친구가 생겼어. 작년 해운대 바닷가 갔다가
만났는데, 괜찮은거 같아서 가끔 같이 등산간단다"
어쩐지... 자꾸 등산을 가더라..
"뭐하는 분인데?"
"개인병원 의사인데 사별했다나봐"
"잘됐네~ 이번 엄마 환갑때 초대하자.
내가 언니 오빠들한테 말해놓을께"
우린 엄마 생신때 호텔 연회장을 하나 빌렸고
엄마 지인들과 여고 동창들을 다 초대했다.
그리고 엄마의 남자친구도..
그 남자는 정말 멋졌다.
그리고 어울렸고 아버지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겨 더 좋았다.
"그 집 아들들이 재혼을 원한다는데 어쩌지?
혼자 계시는 아버지가 좀 그렇다네.."
모두들 찬성하는 와중에..
작은 오빠가 길길이 뛰기 시작했다.
"안돼! 엄마 그런게 어딨어. 
우리 불쌍한 아버진 어쩌라구! 
이 나이에도 남자가 필요해?
우리 자식들 보면서 살면 되잖아!
이 나이에 무슨 결혼이야 창피해 엄마.
형은 장남이 돼 가지고 엄마 모시기 싫어서 그래?
내가 모실테니 걱정마. 
아버지 제사 땐 또 어쩔건데."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놓는 작은 오빠 덕에
형제들은 다 가버렸다.
나는 그런 오빠들에게
소릴 지르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그만해라, 없었던 일로 하마."
그리고 다음 해..
어느날 술이 잔뜩 취해서
올케와 싸웠다는 작은 오빠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가지말라는 나의 부탁을 뒤로하고
작은 오빠 집으로 갔다.
그 다음날 내가 엄마를 본 건 
작은 오빠 집 계단을 오르다 굴러 떨어져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였다.  
우리는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혼수상태의 엄마를 보고서 처음엔
매일 엄마 곁에 붙어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슬슬 볼일들을 보기 시작했고,
면회시간을 꼭 지켜 기다리고 있는건
병원을 맡기고 온 원장님 뿐이었다.
우린 깨어나지 않는 엄마를 기다릴뿐이었는데
원장님은 엄마를 주무르며 계속 속삭였다.
"박여사, 일어나요. 우리 전에 시장가서 먹었던
선지국밥.. 그거 또 먹으러 가야죠..
내가 사준 원피스도 빨리 입어 봐야지!!"
원장은 우릴 불러놓고 말했다.
"이제 병원에서 해줄 것은 없습니다.
퇴원 하셔야 됩니다."
평생 '식물인간'이라는 판정과 함께
병원에선 차로 엄마를 모셔다 준다고했다.
"환자분을 어느 댁으로... 모실까요?"
큰 올케가 먼저 말했다.
자신은 환자를 집에 모시는 건 못한다고.
둘째 오빠가 말했다.
맞벌이라 안된다고.
장가도 안간 28살 막내동생은 울기만 한다.
딸들 표정은 당연히 큰오빠가 해야지
본인들 하곤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표정인듯 했다.
오빠들은 그동안 내가 모셨으니 
니가 계속 모시는게 좋겠다며 떠밀었다.
그냥 누워 계신게 아니라
산소 호흡기를 꽂고 있어야 하니 
다들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잇었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형제들
꼬락서니들을 보자니 분통이 터졌다.
그러다, 원장님이 한 마디 하셨다.
"저~제가 잠깐 한마디 해도 되나요?
제가 그때.. 박여사와 재혼을 생각했을때
박여사가 이렇게 말했어요.
아직 우리 애들한텐 엄마가 필요한가봐요.
자식들이 내가 필요없다하면 그때 갈께요..라구요.
지금도 엄마가 필요들 하신가요?
난 저렇게 누워있는 사람이라도 
숨만 쉬고 있는 박여사가 필요합니다.
나한테 맡겨 주세요. 내 병원이 박여사한텐
더 편할 겁니다."
작은 오빠가 통곡을 했다. 뒤이어
다른 형제들도 울기 시작했다.
우리 형제들은 아무도 엄마를 모시지 않았고,
결국 엄마는... 돌아가셨다.
모두 저 마다 믿는 신에게 기도했겠지만
난 엄마에게 부탁했다.
"엄마! 엄마의 이뻤던 모습만 보고 먼저간
아버지는 잊고 엄마의 병든 모습까지도 사랑한
이 원장님만 기억하고 가셔요.. 엄마!
엄마는 팔남매 키운 공은 못보고 가셨지만
여자로서 정말 멋있었어!"
67세에 우리 엄마는 
그렇게 가슴 졸이며 평생 키운 팔남매가 아닌
몇년 만난 남자의 손을 잡고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자식이 식물인간이 돼 있다면
부모는 무엇을 이유로 댈까.
우리 팔남매는 엄마를 모셔가지 못할
이유가 다 있었다.
더 끔찍한 것은 나도 그 입장이라면 
그런 핑계를 대지 않았을까?
라고 이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한테 묻고싶다.
"엄마 또다시 새인생을 누가 준다면,
8남매 또 낳을꺼야..?"

**

* 이 글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혼자보기엔 너무 아까운 감동의 글 아닌가요?
그러나, 이 글은 우리 모두가 처한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 좋은 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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