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5일 일요일

거리를 유지한다

 


상대에게 관심을 갖되 적절한 거리를 둬라

너무 가까운 관계는 집착이나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나에게 동조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멍청한 것이다

나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

나는 인간을 자립적인 인격체로 간주해왔다

인간을 탐구하고 독자성을 알려고 노력해왔지만.그들에게 동정을 얻으려 하지는 않았다

현자는 타인과의 거리를 중시한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고 할지라도
일주일 이상 그 집에 머무르면 민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연인이여도 부부라고 해도, 가족이라도
상대의 모든 것을 알려고 한다면 그 관계는 불편한 관계가 된다.

너무 가깝거나
너무 멀면

관계에 흠이 생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적당한 선이 필요하다

(옮긴 글)

제대로 거리를 둘 때 비로소 관계가 시작된다

 너무 가까워도 탈이 나고 너무 멀어도 문제인 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다. 게다가 그 아리송한 경계조차 우리가 맺는 수많은 관계마다 제각각이니, 인간관계의 거리에 정답은 없다. 그런데 경계의 이쪽저쪽에 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택한 거리가 옳다고 말한다. 거리를 좁히려는 사람은 ‘격이 없어야 관계다’를 주장하고, 거리를 유지하려는 사람은 가까울수록 ‘선을 지켜야 한다’를 주장한다. 사람들은 이 관계의 아이러니에서 상처를 주고받는다. 그럼에도 주고받은 상처에 대해서는 잘 표현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해서 말하지 않고, 너무 사소한 것이어서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계에서 생기는 일 중 사소한 것은 없다. 그 사소함(이라고 여겨지는 것)이야말로 관계를 이어 주는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든 상대에게든 불편한 마음을 주는 것이라면 언제고 멈춰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관계의 거리를 파악하고, 조정하고, 지킬 줄 아는 지혜다.

원래 사람은 제각각이다

사랑이 싹틀 때는 상대의 과묵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혹은 거침없는 표현력에 감탄하며 눈을 반짝인다. 그러나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상대의 과묵함 때문에 힘들고, 지나친 표현에 상처를 받는다. 나와 다름이 매력을 주는 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시간이 지나면 다름이 틀림으로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실망을 느끼기 시작할 때, 우리는 흔히 ‘사람이 변했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상대가 변한 것이 아니다. 내가 상대를 보는 시각이 변했을 뿐이다.

관계에서 중요한 순간은 이렇게 소위 콩깍지가 벗겨졌을 때다. 좋은 첫인상으로 시작한 관계일수록 시간이 흐르면서 갈등이 싹트기 시작한다. 상대에게 품은 처음의 기대는 내가 멋대로 만든 환상일 뿐이건만, 서로 알아 가고 가까워지면서 기대는 어긋나고 단점이 점점 더 눈에 들어온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상대는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기고 그 다름을 인정하기 위한 거리 조정의 작업이다. 상대가 뭘 하든 멋져 보이고 서로 통한다고만 느끼던 처음의 거리에 조금 여유를 주는 것만으로 관계는 안정의 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 이런 조정을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더 오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적정 거리를 드디어 찾았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감당할 수 있는 거리가 있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모이고 흩어지길 반복하다

서로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_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아무리 선배지만, 저한테 너무 함부로 하시는 거 아닙니까?”

“내가 당신한테 애정이 있기 때문에 반말하고, 장난도 하고, 쓴소리도 하는 거야.”

“저는 상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선배의 그런 행동이 불쾌합니다.”

“말했잖아, 애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만약 내가 당신을 아주 정중하게 대한다면 아무 애정도 관심도 없는 거야. 기분 상했으면 잊어버려. 내가 말은 막해도 뒤끝은 없는 거 알지?”

 

이런 선배에게 뒤끝까지 있다면 후배의 감정은 어떨까? 진짜 뒤끝은 없는 걸까?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런 사람일수록 뒤끝 작렬이다. 그것을 본인만 모른다. 이런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선배이거나 힘의 우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불평 이상의 행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쾌감을 분명하게 표현했음에도 자신의 감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폭력이다.

이런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선배 입장에서는 친근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지만, 상대에게는 심한 불쾌감을 준다. 감당할 수 있는 거리를 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라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마음이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기에 좋은 관계를 이어 가기 어렵다. 예를 들어 친구나 후배에게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 눈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또한 이 상황에서 만남 자체를 이어 가고 있다 해서 그것을 친밀도로 생각해도 곤란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싫어도 피할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즉 각자의 관계에서 겹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단절하기 어려운 것뿐이다. 이때 친구나 후배가 진상이면 적당히 피하면 되지만, 직장의 상사라면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유일한 길은 부서를 옮기거나 직장을 떠나는 방법뿐이다. 꽤 많은 사람이 이런 이유로 직장을 떠난다.

100가지 중에 99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딱 한 가지가 마음에 들어서 관계를 이어 가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99가지가 마음에 드는데 딱 한 가지가 싫어서 관계를 끊는 사람도 있다. 99가지 장점이 주는 즐거움보다 딱 한 가지 단점이 주는 스트레스와 피해가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관계의 거리를 무시하는 사람은 99가지 장점을 가졌다 한들 스스로 치명적인 단 한 가지 단점을 상대에게 들이미는 셈이다.

이런 실수 없이 상대와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매너이자 센스다. 이 감각은 사람을 매력적으로 보이게도 하지만 무엇보다 적을 만들지 않게 한다. 인간에게는 보호본능이 있어서,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에 대해 민감도가 높아진다. 위험하고 불쾌한 기억들은 뇌의 변연계邊緣系를 자극해서 기록으로 남겨진다. 미래의 또 다른 위험한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관계의 거리를 지키는 사람은 누구에게든 그런 불쾌한 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상처를 준 사람은 금방 잊어버리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분명하게 확인된 사실이다. 일부 사람들은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좋은 게 좋은 거야”, “시간이 약이야” 등 좋은 말을 다 가져다 붙이지만 설득력 있게 검증된 바가 없다. 인간의 기억 장치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오히려 상처 준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을 잊어버리거나 축소해서 기억하는 반면, 상처받은 사람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건을 확대해서 기억하게 마련이다.

흔히 쿨cool하다는 말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필요 이상의 감정 소모는 바보짓이다’와 같은 의미를 담아 자주 쓰인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쿨한 사람이 있다. 상처를 주는 입장에서 쿨한 사람과, 상처를 받는 입장에서 쿨한 사람. 안타깝게도 내 좁은 경험에서는 ‘상처받고 쿨한 사람은 없다’는 것만 확인했다. 화가 나는 상황에도, 손해를 보는 상황에도, 눈물이 나는 상황에도, 질투가 나는 상황에도 “난 괜찮아”를 외치는 사람들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진심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슬프지 않은 척, 질투나지 않는 척, 화나지 않는 척 잊으려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뇌와 감정은 그런 상처를 쉽게 잊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다.

혹시 당신은 쿨한 사람인가? 만약 그렇다면, 상대를 위해 관계의 거리를 지킬 줄 아는 매너가 당신을 더 멋지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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