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5일 월요일

결과가 좋지 않은 말은 하지 마라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말을 보태는 일보다 말을 덜어내는 일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젊은 날에는 내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혹은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쉼 없이 말을 쏟아내곤 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며 깨달은 명백한 진실이 하나 있다.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 뻔한 말은, 애초에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점이다.

말은 마음의 방을 비워내는 지혜와 닮아 있다. 집안에 쓰이지 않는 물건이 쌓이면 삶이 무거워지듯, 불필요한 말이 쌓이면 관계와 마음이 복잡해진다. 특히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오해를 부르거나, 스스로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좋지 않은 말’은 영혼을 어지럽히는 쓸데없는 짐과 같다. 그런 말을 과감히 버리고 침묵의 여백을 두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마음의 자유를 얻는 길이다.

행동이 뇌를 바꾸고 일관성이 천재성을 이긴다고 했다. 말도 마찬가지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말을 참아내고, 꼭 필요한 말만을 정제하여 내뱉는 일은 대단한 영감이나 지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매 순간 내 입을 단속하는 작은 ‘실천’과 ‘꾸준함’이면 족하다. 나쁜 말을 하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면, 생각도 맑아지고 삶의 결도 단순해진다.

돌이켜보면 삶의 수많은 후회는 대개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뱉었을 때 찾아왔다. 반대로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후회는 침묵이라는 여백 속에서 스스로 다스릴 수 있었다. 결과가 좋지 않은 말을 과감히 솎아내는 것, 그것은 타인을 향한 배려이기 전에 나 자신의 내면을 평온하게 유지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자기 관리이다.

오늘도 내 안의 여백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거칠고 무익한 말들로 그 깨끗한 공간을 더럽히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비워낼수록 온전해지는 ‘말의 비움’,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지키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습관이다.

말 한 줄이 방향을 바꾼다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말을 들으며 살아간다.

삶은 거대한 결심보다 작은 흔들림에 더 많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 흔들림의 시작은 종종 ‘말 한 줄’이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 문장, 혹은 오래 마음에 남아 있던 짧은 표현 하나가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결국 걸어가는 방향까지 바꿔 놓는다.

어떤 말은 사람을 멈추게 한다. “이건 이제 늦었어.” “그 나이에 뭘 할 수 있겠어.” 이런 말들은 사실 현실을 설명하는 듯 보이지만, 마음속에서는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린다. 반대로 어떤 말은 아주 작게 문을 열어 준다. “지금 시작해도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그 한 줄이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변화를 큰 사건에서 찾으려 한다. 직장을 바꾸거나, 도시를 옮기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들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훨씬 더 미세한 순간들이 방향을 바꾼다. 누군가가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 스스로에게 조용히 건넨 짧은 다짐, 혹은 책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문장이 그것이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시간이 지나도 문장 하나가 마음속에서 다시 떠오르고, 그 문장이 행동을 바꾸고, 그 행동이 습관이 되고, 결국 삶의 방향을 만든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들은 말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특히 흔들리는 시기에는 말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한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확신이 사라진 순간에 듣는 한 문장은 길을 잃은 사람에게 작은 방향표가 된다. 그것이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어도 괜찮다. 단지 “다시 걸어도 된다”는 감각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말은 가볍게 흘려보낼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동시에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말을 건넨다. “이 정도면 충분해.” “여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 말들이 자신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결국 삶은 말과 말 사이에서 움직인다. 누가 어떤 말을 들었는지, 또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가 그 사람의 다음 방향을 만든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건네는 말 한 줄은 생각보다 더 멀리, 오래 영향을 남긴다.

나는 나를 살리는 말을 선택합니다

말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에서는 오래 살아남는다.
어떤 말은 하루를 무겁게 만들고, 어떤 말은 같은 하루를 견딜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가에 따라 삶의 온도가 달라진다.

나를 살리는 말은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아주 평범하다.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는 말, 오늘의 나를 부정하지 않는 말, 다시 시작할 여지를 남겨두는 말. 그런 말들이 쌓이면 마음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결국 삶은 외부의 말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내가 나에게 어떤 말을 허락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선택한다. 나를 작게 만드는 말 대신, 나를 다시 일으키는 말. 나를 멈추게 하는 말 대신, 나를 살리는 말.“한 번 해보자.” “지금도 늦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해보자.” "그동안 참 잘 살아왔다", "오늘도 이만하면 충분하다",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다"

그리고 그 선택은 생각보다 조용하지만, 아주 깊은 곳에서 삶의 방향을 바꾼다.

움직임이 사람을 살린다

 


흐르는 강물처럼, 움직임이라는 생명력

어느 무기력한 오후, 방 안의 공기마저 무겁게 내려앉을 때가 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은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몸을 웅크릴수록 생각의 늪은 깊어지고, 그 늪은 이내 나를 집어삼킬 듯이 부풀어 오른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은 거창한 다짐이 아니다. 그저 낡은 운동화 끈을 묶고 문밖으로 나서는 것, 즉 '움직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문 밖을 나와 첫발을 내딛는 순간, 멈춰 있던 세상이 비로소 흐르기 시작한다. 발바닥이 딱딱한 아스팔트를 딛을 때마다 대지의 반작용이 온몸의 세포를 깨운다. 폐부 깊숙이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나가고, 가만히 멈춰 서늘했던 손끝에 따뜻한 혈액이 돌기 시작한다. 비로소 살아있음이 온몸의 감각으로 전해지는 순간이다.

흔히 우리는 생각이 행동을 지배한다고 믿는다. 무언가 의지가 생겨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삶의 수많은 순간, 진리는 그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행동이 생각을 바꾸고, 움직임이 마음을 살려낸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나는 걸을 때만 명상할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마음에 고인 먼지와 부정적인 감정들은 가만히 앉아 고민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직 정직한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서만 땀방울과 함께 몸 밖으로 배출된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머릿속을 채우던 쓸데없는 불안과 염려들이 발걸음 뒤로 흩어져 사라지는 경험을,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생명(生命)의 본질은 움직임에 있다. 흐르는 강물은 이끼가 끼지 않고 썩지 않지만, 고인 물은 이내 생명력을 잃고 탁해진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혈액이 흐르고, 숨이 치솟고, 관절이 가동하는 그 역동적인 상태야말로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아 숨 쉬는 상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보다, 몸과 마음의 움직임 반경이 점점 줄어드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매일 의도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세월에 순응하지 않고 내 안의 생명력을 가꾸겠다는 가장 적극적인 저항이다.

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무거운 마음을 안고 길을 나선다. 가볍게 동네를 산책하는 이의 발걸음에서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이의 실루엣에서도 나는 숭고한 생의 의지를 본다.

삶이 나를 주저앉히려 할 때,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울 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거창한 해결책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먼저 몸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결국 우리를 살리는 것은 대단한 깨달음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딛는 작은 움직임 그 자체다. 움직여야 흐르고, 흘러야 비로소 살 수 있다.

2025년, 거주민이 가장 많이 증가한 미국 주(State)는 어디인가?

 2025년 한 해 동안 약 1,500만 명의 미국인이 이주했으며, 그중 다수는 더 저렴한 생활비, 일자리 기회, 그리고 더 온화한 기후를 찾아 주(state) 경계를 넘어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Visual Capitalist의 가브리엘 코헨(Gabriel Cohen)이 제작한 이 지도는 2025년 기준 미국 50개 주 전체의 '주민 1만 명당 순이동 인구'를 보여주며, 인구 유입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과 인구 유출이 가장 컸던 주가 어디인지 명확히 드러내 줍니다.

이 데이터는 HireAHelper에서 제공한 자료입니다.

유입 인구 순위에서는 남부 및 마운틴 웨스트(Mountain West) 지역의 주들이 상위권을 장악한 반면, 물가가 비싼 해안가 지역의 여러 주들은 계속해서 주민 유출을 겪었습니다.

이 데이터는 미국 인구 분포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변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토의 동부에서 서부로 향하는 이동뿐만 아니라, 물가가 비싼 주들을 떠나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내륙 지역(주로 마운틴 웨스트 지역)으로 이동하는 추세를 모두 보여줍니다.

서부 해안 지역을 앞지른 마운틴 웨스트 지역

2025년, 미국 서부 지역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나타난 인구 이동 추세가 지속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워싱턴주(-10.7)나 오리건주(-9.0)와 같은 해안가 주들을 떠나, 와이오밍주(+26.0), 유타주(+7.3), 그리고 특히 아이다호주(+63.2)와 같은 내륙의 마운틴 웨스트 지역 주들로 이동했습니다.

아래 표는 2025년 기준, 인구 1만 명당 순이동 인구 증감 현황을 보여줍니다.

오랫동안 기술 및 항공 산업과 같은 주요 경제 부문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인구 밀집 해안 주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일자리가 이전되거나 원격 근무 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인구 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미 서부 해안 지역 중에서도 가장 큰 인구 감소 폭을 보인 곳은 캘리포니아로, 순이동률이 -25.1을 기록했습니다. 약 10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갈수록 감당하기 힘든 물가 부담을 피해, 주 소득세가 없는 네바다주와 같이 생활비가 더 저렴한 인근 주들로 대거 이주했기 때문입니다.

**생활비라는 변수**

생활비 부담 문제로 인해 인구가 유출되는 현상은 비단 캘리포니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순이동률 추세가 보여주듯, 뉴욕(-28.2)이나 매사추세츠(-37.9)와 같이 생활비가 비싼 다른 주들에서도 주민들의 이탈이 점차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미 북동부 지역의 대다수 주들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델라웨어, 메인, 뉴햄프셔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2025년 기준, 유입 인구보다 유출 인구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수도 워싱턴 D.C.를 둘러싼 인근 지역에서는 메릴랜드(-27.4)와 버지니아(-13.7)주 역시 마이너스 순이동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해당 연도에 걸쳐 발생한 연방 정부 인력의 대규모 감축 사태가 부분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선벨트(Sunbelt)' 지역의 부상**

만약 전반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지역이 있다면, 바로 미국 남부 지역입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79.7), 테네시(+43.6), 앨라배마(+36.6)와 같은 주들이 성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침체된 지역 중 하나로 여겨졌던 미국 남부는, 저렴한 생활비와 쾌적한 기후라는 두 가지 장점이 결합되면서 급격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텍사스나 '선샤인 스테이트(Sunshine State)'라 불리는 플로리다처럼 이미 큰 인기를 누리는 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칸소나 오클라호마 같은 남부의 '선벨트' 주들 또한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행동으로 뇌를 깨우고, 꾸준함으로 매일을 채워가는 삶

 "행동으로 뇌를 깨우고, 꾸준함으로 매일을 채워가는 삶"은 뇌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원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작은 행동을 실천하고 이를 반복할 때, 우리의 뇌는 새로운 신경 회로를 만들며 변화합니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뇌가 경험, 학습, 부상에 반응하여 스스로 신경 회로를 구조적·기능적으로 재구성하는 평생에 걸친 능력입니다. 뇌는 고정된 기계가 아니라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유연한 특성을 가집니다. 
주요 핵심 개념과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시냅스 연결의 변화: 자주 사용하는 신경 회로는 강화되고, 사용하지 않는 회로는 약화되어 소멸합니다(가지치기).
  • 나이와 학습: 과거에는 성인의 뇌는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으나, 나이와 관계없이 지속적인 훈련과 새로운 경험을 통해 뇌의 물리적 구조가 바뀔 수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 손상 복구: 뇌졸중이나 뇌 손상 후, 손상된 부위의 기능을 다른 건강한 뇌 영역이 대신 수행하도록 재조직되기도 합니다.
  • 증진 방법: 꾸준한 새로운 학습, 운동, 명상, 충분한 수면은 신경가소성을 촉진하는 핵심적인 방법들입니다. 

행동으로 뇌를 깨우고, 꾸준함으로 매일을 채워가는 삶

인생의 계절이 깊어갈수록 말은 줄어들고 생각은 맑아진다. 한때는 세상을 움직일 만한 거창한 지식이나 남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특별한 비결을 쫓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삶의 굴곡을 지나오며 뼈저리게 깨달은 진리는 참으로 단순하다. 인생을 가장 품격 있고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대단한 이념이 아니라, ‘행동으로 뇌를 깨우고, 꾸준함으로 매일을 채워가는 삶’ 바로 그것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대개 나이가 들면 몸도 마음도 생각의 틀 안에 갇히기 쉽다고 말한다. 익숙한 기억, 굳어진 습관의 중력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무엇을 바꾸겠는가' 하는 나태한 생각이 고개를 들 때, 뇌는 서서히 활력을 잃고 잠들기 시작한다. 이 고인 물 같은 정체를 깨뜨리는 유일한 열쇠는 오직 '행동'뿐이다.

생각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이 생각을 깨운다. 매일 아침 신발 끈을 묶고 문밖을 나서 발을 내딛는 그 정직한 움직임, 마음속에 머무는 좋은 생각을 지체 없이 말과 행동으로 옮기는 그 순간, 우리 뇌의 신경 회로는 비로소 새로이 깨어나 살아 숨 쉰다. 즉시 실천하는 아주 작은 행동 하나가 뇌를 자극하고, 삶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시동 장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두 번의 깨어남보다 더 위대한 것은 그것을 이어가는 ‘꾸준함’의 힘이다. 세상은 늘 새롭고 번쩍이는 것에 열광하지만, 정작 삶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매일의 지루한 반복을 견뎌내는 숭고한 성실함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컨디션이 좋으나 좋지 않으나 자신이 정한 궤도를 묵묵히 걸어가는 것. 이 평범한 하루하루가 쌓여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삶의 두께를 만든다.

매일 목표한 걸음을 걷고, 정기적으로 초록의 필드를 밟으며, 매 순간 마음과 말과 행동의 법도를 바르게 정돈하는 루틴. 이 고요한 반복 속에서 비로소 삶의 군더더기들이 떨어져 나가고, 내면에는 맑고 깊은 '여백'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그저 오늘의 한 걸음에 집중하는 꾸준함이야말로, 평범한 일상을 가장 비범한 경지로 끌어올리는 최고의 지혜다.

결국 잘 늙어간다는 것은 복잡한 세상의 소음을 지워내고 가장 본질적인 원칙만을 남겨두는 과정이다. 거창한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 오늘 아침 행동으로 내 뇌와 육체를 깨우고, 변함없는 꾸준함으로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채워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삶은 더할 나위 없이 비범하고 아름다운 기적을 완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소원(疎遠)과 인간관계

 


소원(疎遠)은 친하던 관계가 사이가 멀어지고 뜸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소원해짐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무조건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인간관계에서 소원해지는 것은 관계의 '실패'가 아니라 삶의 단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입니다. 피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진심 어린 관심을 표현해 보세요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가족, 친구, 선생님, 동료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인간관계를 소원한다. 인간관계는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넘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삶의 의미를 만들어 준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배려와 이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성격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야기를 들어 준다면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또한 작은 말과 행동 하나가 상대에게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따뜻한 인사나 진심 어린 격려는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든다.

반대로 욕심과 이기적인 태도는 관계를 멀어지게 만든다.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면 상대방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서는 자신의 감정뿐 아니라 상대의 마음도 존중해야 한다. 때로는 먼저 사과하고 양보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행동이 뇌를 바꾸고, 일관성이 천재성을 이긴다"**는 말처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 역시 거창한 노력보다는 매일 주고받는 따뜻한 말 한마디,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적당한 거리두기의 '좋은 습관'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불필요한 집착을 비워내고, 내 영혼을 편안하게 만드는 담백한 관계들로 주변을 채워가는 것. 그것이 가장 지혜롭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며 주변의 이들이 하나둘 멀어지는 것을 두고 관계가 '소원(疎遠)해졌다'며 쓸쓸해하곤 한다. 그러나 내게 그 소원함은 쓸쓸함이 아닌, 삶이 선물한 귀한 '여백(餘白)'으로 다가온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에서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빈 자리가 가장 깊은 울림을 주듯, 인간관계에도 적당한 소원함과 거리두기가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난다.

이제는 내 마음에 피로를 주는 무의미한 모임이나, 겉치레뿐인 넓은 인맥에 연연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 속에 둘러싸여 느끼는 화려한 공허함보다, 단 몇 명의 오랜 벗, 그리고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가족과 나누는 묵직한 교감이 비교할 수 없이 값지다. 서로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존재 자체로 편안함을 주는 '고품격의 소수'.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내 영혼은 비로소 완전한 평안을 누린다.

인생의 황혼녘에 품는 나의 가장 아름다운 소원은, 바로 이 소박하고 담백한 여백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것이다.


2026년 5월 24일 일요일

비움과 버팀의 미학: 인생이 내게 준 가장 단단한 선물



“인생은 뿌린 대로 거두기도 하지만,

버틴 만큼 단단해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노력보다 결과가 먼저 보인다.
열심히 한 만큼 인정받고, 애쓴 만큼 돌아오는 날에는 세상이 꽤 단순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선택한 방향과 반복한 행동 속에서 삶의 모양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오래 살아갈수록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된다. 인생은 단지 뿌린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류의 오랜 지혜는 우리에게 "뿌린 대로 거두리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땀 흘려 씨앗을 뿌리고, 정성껏 가꾼 만큼 수확하는 것이 세상의 가장 공평하고 정직한 이치라는 뜻일 겁니다. 실제로 우리는 인생의 전반기 동안 무언가를 끊임없이 심고, 키우고, 거두기 위해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능동적인 노력과 성취, 그것은 분명 삶을 지탱하는 커다란 기쁨이자 동력입니다.

그러나 세월의 고개를 하나씩 넘어갈수록, 인생에는 씨앗을 뿌리는 일보다 더 가치 있고 숭고한 영역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모진 바람을 묵묵히 버텨내는 일'입니다.

인생의 계절이 언제나 따스한 봄날이나 풍성한 가을일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고, 거센 폭풍우 앞에 속수무책으로 서 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버티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 '버팀'은 결코 무의미한 정지가 아닙니다. 겨울을 나는 나무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무거운 잎사귀들을 떨구고(beowing) 오직 본질만 남기듯, 버팀의 시간은 우리 내면의 불필요한 욕심과 집착을 깎아내는 치열한 비움의 과정입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서며 견뎌낸 시간만큼, 우리의 내면에는 쉽게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나이테가 새겨집니다.

젊은 날의 성취가 '밖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열매'라면, 세월을 버텨낸 자에게 주어지는 상은 '안으로 영그는 단단함'입니다. 이 단단함은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한 거친 딱딱함이 아닙니다. 웬만한 풍파에는 눈길 한 번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이며, 세상의 명리(名利)나 가벼운 언사들에 미혹되지 않는 깊은 안목(Anmok)입니다. 무수한 계절을 버텨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삶의 태도인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삶이 우리에게 '풍요함'을 준다면, 버텨내는 삶은 우리에게 '존엄함'을 가르칩니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정직하게 땀 흘려 거두었던 결실만큼이나, 차마 말로 다 못할 외로움과 고단함을 묵묵히 견뎌왔던 그 수많은 '버팀의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가장 나답게, 그리고 가장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