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8일 월요일

황혼의 나이

 이 시기는 젊음의 연장도 아니고, 노년의 완결도 아니다. 

그 사이의 어둑한 시간,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의 잔광처럼 조용하지만 단단한 현실이 깔려 있다


황혼의 나이

황혼의 나이. 젊음의 연장도 아니고 노년의 완결도 아닌, 빛이 다 사라지기 전의 잔광 같은 시간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이 먼저 말을 건다. 무릎은 계단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고, 허리는 천천히 펴 달라고 청한다. 예전에는 몸이 나를 따랐는데, 이제는 내가 몸의 걸음에 맞춘다. 오래 쓴 몸이니 그럴 만하다. 잘 써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루는 소박하다. 약을 챙기고, 걷고, 끼니를 거르지 않고, 일찍 불을 끈다. 젊어서는 시시해 보였을 일과가 이제는 고맙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간 하루가 얼마나 큰 복인지 이제는 안다.

떠나는 사람이 늘었다. 부고를 받는 일이 안부를 받는 일보다 잦아졌다. 처음에는 놀랐고, 그다음에는 슬펐고, 지금은 조용히 받아들인다. 남은 사람은 떠난 이들의 기억을 맡아 두는 사람이기도 하다.

시간은 이제 앞에 놓인 들판이 아니라 뒤에 쌓인 숲이다. 그래서 하루가 아깝다. 그렇다고 큰일을 하지는 않는다. 커피를 천천히 마시고, 창밖 나무의 색이 바뀌는 것을 보고, 오래 미룬 안부 전화를 건다. 그런 작은 일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채운다.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래도 기대고 싶은 마음이 나란히 걷는다. 낱말 하나가 혀끝에서 사라질 때는 잠깐 서늘하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큰 각오보다 작은 품위다. 도움을 청할 줄 알고, 받을 줄 알고, 할 수 있는 일은 끝까지 내 손으로 하는 것이다.

이 나이가 되니 이룬 것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누구와 함께 웃었는가가 오래 남는다. 이룬 것은 세월에 바래도 함께한 시간의 온기는 바래지 않는다.

한낮의 빛은 사물의 모양을 보여주고, 잔광은 사물의 뜻을 보여준다. 나는 이제 빨리 달리지 못하지만, 멈추어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이 이 나이가 준 선물이다.

빛이 다 지기 전에, 오늘도 가만히 감사한다. 아직 걸을 수 있음에, 아직 기억할 수 있음에, 아직 사랑할 사람이 있음에.

어머니, 기다림과 그리움의 의미

 


기다림이 그리움이 되어

기일이 가까워 오면 가을바람 속에서 어머니 생각이 부쩍 깊어진다.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는데도, 어머니를 떠올리면 마음은 어느새 어머니 앞에 선 어린아이가 된다.

어머니는 평생 기다리는 분이셨다. 자식이 밖에 나가면 돌아올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셨고, 자식이 멀리 떠나면 소식이 오기까지 하루하루를 조용히 견디셨다. 그때는 그 기다림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지 못했다. 나는 내 삶을 꾸려 가느라 바빴고, 이 땅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가느라 앞만 보며 달려왔다.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시리라는 사실은 늘 알았지만, 그 기다림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자식들의 안부 전화를 기다리고, 손주들이 다녀가는 날을 기다린다. 전화벨이 울리면 반갑고, 소식이 뜸하면 마음이 쓰인다. 그러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기다리셨던 것은 자식의 귀가만이 아니라 자식과 이어져 있다는 확신이었다는 것을. 기다림은 사랑이 몸을 낮추고 문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요즘은 세상이 참 빠르다.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에도 금세 닿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정작 부모의 마음 앞에서는 여전히 늦는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손을 잡아 드리고 "고맙습니다" 한마디 건넸어야 했는데, 그 말은 늘 다음으로 미뤄졌다. 어머니가 떠나신 뒤에야 그 다음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도 어머니는 떠나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머물러 계신다. 기일이 되면 상 앞에 서서 어머니를 부르는 것은 슬픔에 잠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내가 어머니를 기다리는 차례이기 때문이다.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 마음 한켠에 기다릴 분이 계시다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남은 큰 행복이다.

사랑은 그리움이고 기다림이다. 어머니가 내게 남기신 가장 큰 유산은 바로 그것이다. 나도 언젠가 어머니 곁으로 가는 날, 어머니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리라 믿는다. 그날까지 나는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대로, 자식들을 기다리고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법을 이어 가려 한다.

어머니!

 

모든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고향같은 존재이다.

모든 것을 다 품어 주시고 모든 것을 다 주고도 기억하지 않는 어머니! 

그건 영원한 향수이며, 불러도 불러도 자꾸만 그리운 
마음의 고향과 같은 이름이다.

이 세상에서 나 보다 나를 더 사랑했던 그 분이 바로 

그리도 그리운 우리의 어머니셨습니다.

여운이 있는 사람

 

살다 보면 참 많은 사람을 만난다.
가족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만난다.

그렇게 수많은 만남 속에서 우리는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보이지 않는 교제의 거미줄을 하나씩 엮으며 살아간다.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보이지 않는 거미줄

살아오는 동안 나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오래 곁에 머문 사람도 있고, 한 번 스쳐 지나간 사람도 있다. 돌이켜 보면 그 만남들은 저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줄이 되어 나를 세상과 이어 주었다. 어떤 줄은 굵고 질겨서 세월이 흘러도 끄떡없고, 어떤 줄은 가늘어서 어느 사이 끊어져 버렸다. 그 줄의 굵기를 정한 것은 그 사람의 재산이나 지위가 아니라 사람됨이었다.

이제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저들의 줄을 헤아려 왔듯이, 저들도 나를 헤아려 왔을 것이다. 나는 그들 눈에 어떤 사람으로 비쳤을까.

사람은 자기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이기 쉽다. 진짜 모습은 상대의 표정에 남는다. 내가 말을 마쳤을 때 상대가 편안해 보였는지, 헤어질 때 발걸음이 가벼웠는지가 나에 대한 답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결국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마주 앉았던 사람들이 마음에 담아 가는 것이다.

현실은 냉정해서, 사람들은 내가 한 훌륭한 말보다 사소한 행동을 오래 기억한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았던 일,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일, 어려울 때 말없이 내민 손 같은 것들이다. 반대로 무심코 던진 한마디, 못 들은 척 넘긴 부탁도 오래 남는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일보다 나쁜 여운을 남기지 않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그렇다고 나를 지나치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나도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서운함을 남겼을 것이다. 다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직 고칠 시간이 있다. 마음에 걸리는 이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늦었더라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고마웠던 분에게 고맙다고 전하는 일은 오늘도 할 수 있다. 이 나이에 가장 값진 일은 새로운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어진 줄을 정성껏 돌보는 것이다.

여운이 있는 사람은 화려한 사람이 아니다. 함께 있을 때 편안했고, 헤어진 뒤에도 문득 생각나며, 그 이름을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되는 길은 특별하지 않다.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작은 약속을 지키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내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 "그분은 참 따뜻한 분이었지" 한마디만 남아도 나는 잘 살아온 것이라 믿는다. 그 한마디가 내가 남기는 가장 큰 유산이고, 내가 짠 거미줄이 끝내 끊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서른의 나이에 건넌 바다




지금으로부터 오십오 년 전, 저는 서른 살의 나이로 이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삼남삼녀의 장남이 고국을 떠난다는 것은 가볍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가슴 한쪽에는 기대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말도 낯설고, 길도 낯설고, 사람들의 표정마저 낯설었습니다. 그때는 오늘처럼 영상으로 고향의 얼굴을 볼 수도, 전화 한 통을 마음 편히 걸 수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처음 몇 해는 이 땅에 자리를 잡는 일만으로도 벅찼습니다. 실력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고, 말이 서툴러 하고 싶은 말을 삼켜야 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약을 다루는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약은 숫자 하나, 글자 하나가 틀려도 안 되는 일이라, 말이 서툰 사람도 정확함으로는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하는 대신 일로 보여 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 땅에서 신뢰를 쌓은 방식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의 저는 늘 최악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일자리를 잃으면 어떻게 할까,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할까, 가족이 어려워지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많아서가 아니라 기댈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끼고, 모으고, 여유를 남겨 두는 습관이 몸에 뱄습니다. 지금 제가 지키는 일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그때 배운 것입니다. 뿌리 없는 사람에게는 잃지 않는 것이 곧 사는 것이었으니까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민의 세월은 계획한 대로 이룬 길이 아니라, 하루하루 버텨 낸 끝에 닿은 자리였습니다. 그날그날을 견디다 보니 직장이 생기고, 가정이 자리 잡고, 자식들이 자라 제 삶을 꾸렸습니다. 이제 손주들까지 이 땅에서 대학을 마치고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서른의 제가 두려움 속에서 건넌 바다 저편에서, 이렇게 큰 가족의 나무가 자랄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시절의 저에게 한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잘 견뎠다. 네가 지킨 정직과 성실이 헛되지 않았다." 그리고 저와 함께 낯선 땅에서 세월을 버텨 준 아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나란히 골프장을 걷는 지금의 평화로운 시간은, 그 고단한 날들이 있었기에 얻은 선물입니다.

오십오 년이 지난 지금, 이 땅은 이제 타향이라기보다 제 삶의 터전입니다. 고향은 마음속에 그대로 있고, 이곳은 제 손으로 일군 또 하나의 고향입니다. 두 개의 고향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감사할 것도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2026년 9월 27일 일요일

가을날의 작은 행복들 ..



"작은 것에서 다시 배우는 행복"

 가을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추석이 지나고 나면 계절도 조금씩 깊어집니다.

바쁘게 살아온 날들을 잠시 내려 놓고 내가 가진 것들을 가만히 돌아 봅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계절을 돌아봅니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에서는, 그 잠깐의 멈춤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SNS 속 다른 이의 화려한 일상과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우리는 정작 내 곁에 있는 것들의 가치를 잊고 지내는 건 아닐까요.

많이 가진 것보다 함께 웃을 사람이 있다는 것. 멀리 있는 큰 행복보다, 오늘 안부를 물어주는 목소리 하나. 돌아보면 우리의 행복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그 반대를 가르칩니다 — 더 많이, 더 크게, 더 눈에 띄게. 그렇게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다는 걸, 조금 더 살아본 사람들은 압니다. 정작 사람을 채우는 건 값비싼 것이 아니라 온기였다는 것을요.

따뜻한 밥 한 끼. 창문으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 보고 싶은 사람의 전화 한 통. 이 작은 것들이 쌓여 하루를 이루고, 그 하루들이 쌓여 삶이 됩니다. 화려한 성취나 소유가 아니라, 이런 사소한 순간들을 알아차리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가짐 —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인지도 모릅니다.

지나간 날은 감사로 보내고, 다가올 날은 희망으로 맞이하며, 오늘 하루만큼은 온전히 나답게 살아보시길. 계절은 깊어가지만, 그 안에서 우리 마음은 오히려 더 따뜻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평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아내가 병에 걸리자, 이 의사는 희귀 암 진단에 대처하기 위해 AI 챗봇을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에 투자했습니다.

 

Dr. Munjal Shroff는 아내가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과정을 돕기 위해 AI를 활용했다고 말했습니다.

문잘 슈로프(Munjal Shroff) 박사는 아내가 원인 불명의 병을 앓게 되자 AI 헬스케어 앱을 활용했습니다.슈로프 박사는 'Healz AI'가 아내를 위한 치료 과정을 주도하고 적절한 치료 방향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초기 단계 스타트업은 'Recursive Superintelligence'의 공동 창립자인 알렉세이 도소비츠키(Alexey Dosovitskiy)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애틀랜타에서 활동하는 정신과 의사 문잘 슈로프(Munjal Shroff)의 아내는 2025년 가을부터 발진, 가려움증, 피로감, 림프절 부종 등 원인 불명의 증상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의사와 상담하고 정밀 검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진단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슈로프는 아내의 상태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할 도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의료 특화 AI 서비스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의료 AI 비서인 '힐즈 AI(Healz AI)'를 발견하고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앱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앱의 권유로 다른 의료진의 소견을 구한 끝에 마침내 '희귀 T세포 림프종'이라는 진단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치료 과정 내내 이 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그 효과를 확신하게 된 슈로프는 결국 해당 서비스의 투자자로까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없었다면 진단과 치료가 지연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작년에 베타 버전으로 출시된 이 앱은 암 환자가 진단, 치료 및 회복 과정을 원활하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계된 챗봇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가 단독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초기 단계 스타트업은 '리커시브 슈퍼인텔리전스(Recursive Superintelligence)'의 공동 창립자인 알렉세이 도소비츠키(Alexey Dosovitskiy)의 지원을 받고 있다.

도소비츠키(Dosovitskiy)는 2020년 컴퓨터 비전 분야에서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한 전직 구글 연구원입니다. 올해 초 연구원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자가 학습형 AI 스타트업 '리커시브(Recursive)'는 46억 5천만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6억 5천만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도소비츠키는 헬스케어가 AI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고 생명을 구함으로써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분야라고 판단해 '힐즈(Healz)'에 투자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보낸 이메일에서 "지금이 바로 이 일을 추진해야 할 때입니다. 기반 기술은 이미 상당 부분 갖춰져 있으며, 이제는 이를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제품으로 구현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AI는 그에게 다른 의료진의 소견을 들어볼 것을 권했습니다.

슈로프(Shroff)는 기존의 범용 AI 도구를 사용해 본 적은 있었지만, 의료 분야에 특화된 도구를 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힐즈(Healz)'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당시, 아내의 담당 의료진은 루푸스와 같은 자가면역 질환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면서도 암일 가능성 또한 배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힐즈 역시 이러한 판단에 동의하며, 즉각적으로 암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힐즈는 텍사스 대학교 MD 앤더슨 암 센터(University of Texas MD Anderson Cancer Center)의 소견을 받아볼 것을 권장했습니다. 바로 이 결정 덕분에 마침내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힐즈는 치료를 위해 MD 앤더슨의 특정 전문의를 찾아가도록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슈로프는 아내의 지역 담당 의료진도 큰 도움이 되었으며, AI가 없었더라도 결국에는 다른 의료진의 소견을 구하고 올바른 진단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힐즈 덕분에 더 신속하게 추가적인 진료를 추진할 수 있었고, 불필요한 지연이나 불확실한 상황을 피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MD 앤더슨에서 다른 의료진의 소견을 구하기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에는 그런 과정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Healz AI의 창립자이자 공동 CEO인 이고르 데미셰프(Igor Demishev)와 알렉스 플랫(Alex Plat)은 암에 특화된 의료 AI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Healz의 창립자이자 공동 CEO인 이고르 데미셰프와 알렉스 플랫은 자신들의 앱이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Healz는 환자들이 진단을 이해하고, 종양 전문의를 찾고, 검사 결과를 해석하고, 치료 및 회복 과정을 안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데미셰프와 플랫은 암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복잡한 사례가 많기 때문에 암 분야에 집중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데미셰프의 가족 중 여러 명이 암 투병을 한 개인적인 경험도 동기가 되었다고 덧붙였습니다. 플랫은 "정말 힘든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보다 전문적인 AI 도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Healz는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을 보유하는 대신, 기존 모델에 독자적인 메모리 시스템과 워크플로, 기타 기술을 결합하여 사용합니다. 창업자들은 이 AI의 메모리 시스템이 방대한 양의 문서와 의료 기록을 처리하고 저장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설명하며, 실제로 한 사용자가 1,500개의 문서를 업로드한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Healz는 사용자의 의견에 무조건 동조하는 등 AI 챗봇이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을 피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히 '근본 원인 파악 모드(root-cause mode)'를 통해, 결론을 내리거나 제안을 하기 전에 사용자의 증상에 대해 최대 20개의 추가 질문을 던지도록 모델을 유도합니다

그는 여전히 Healz를 이용하고 있으며, 해당 기업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창업자들에 따르면, 초기 제한적 출시 이후 6월부터 8월까지 매달 반복 매출이 두 배씩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9월 초 기준 연간 반복 매출(구독을 통해 1년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수익)은 1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현재 Healz 사용자의 97%는 암 환자입니다. 창업자들에 따르면, 나머지 사용자 중 일부는 이 서비스를 참고 자료로 활용하는 의사들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용자가 매일 또는 매주 앱을 이용하며, 월간 사용자 유지율은 70%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진단을 받은 후에도 슈로프(Shroff)와 그의 아내는 Healz를 계속 사용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항암 치료 옵션을 검토하기 위해 AI와 상담했는데, AI는 담당 의사에게 문의해 볼 만한 치료법을 제안했습니다. 담당 의사 역시 그 제안이 적절한 치료 방향이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슈로프는 의사가 어차피 같은 치료법을 권했을 수도 있겠지만, Healz 덕분에 진료를 받으러 갈 때 더 철저히 준비할 수 있었고 내린 결정에 대해서도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슈로프는 의사의 권고와 AI의 제안이 일치했던 상황들에 대해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수개월간 해당 플랫폼을 활발히 이용해 온 슈로프(Shroff)는 투자자로도 참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데미셰프(Demishev)와 플랫(Plat)은 힐즈(Healz)가 향후 몇 달 내에 추가 자금 조달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슈로프는 해당 AI에 한계가 있으며, 치료 및 모니터링과 관련된 세부 사항에서 간혹 부정확한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파악할 수 있는 의료진과 AI를 병행하여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슈로프의 아내는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으며, 그는 계속해서 힐즈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의학적 지식이 없는 환자나 그 가족들에게 이 AI가 더욱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환자로서 투병 생활을 하다 보면 자칫 길을 잃고 혼란스러워지기 쉬운데, 이 플랫폼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가 되어주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72세인데 실버타운으로 옮겨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훗날 저를 돌봐줄 사람이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마당에 작은 집을 지었습니다.

 

Jerry and Kathie Schwartz.

이 글은 캘리포니아 자택 뒷마당에 '타이니 홈(소형 주택)'을 지은 캐시 슈워츠(72세) 씨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대화 내용은 분량 조절과 명확한 전달을 위해 일부 편집되었습니다.

저는 노후 계획을 미리 세우고 싶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70대이고 건강 상태도 아주 좋지만, 주변 친구들을 떠나보내며 고인을 기리는 추모 모임에 참석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우리 나이대에는 꽤 흔한 일이죠.

어느 추모 모임을 다녀온 뒤, 남편이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절대 나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그 말이 계기가 되어 우리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현재의 집이 우리에게 여전히 적합한지,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알맞은 장소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겪으셨던 과정을 지켜봤고, 친구들이 겪는 모습도 봐왔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는 캘리포니아주 트러키(Truckee)의 타호 호수(Lake Tahoe) 인근에 있는 3,600제곱피트(약 100평) 규모의 3층 주택에 살고 있었습니다. 겨울이면 마당에 눈이 22피트(약 6.7미터)나 쌓이곤 했죠. 어떤 해에는 석 달 동안이나 현관문을 보지 못하고 지내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그런 환경에서 눈을 감당하며 살 수 있는 데도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많은 친구가 그 지역을 떠나고 있었기에, 우리는 집 규모를 줄여 이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는 은퇴자 전용 단지(retirement community)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은퇴자 전용 단지에서의 생활을 고려해 보기도 했습니다. 네바다나 캘리포니아 중부 등, 낮은 세금과 리조트 같은 생활 환경을 찾아 은퇴자들이 많이 모이는 여러 지역을 직접 둘러봤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곳들은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추고는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애리조나에 있는 아주 멋진 단지를 방문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황량한 허허벌판 한가운데에 있는 곳이었죠. 아무것도 없는 길을 한참 달리다 보면 갑자기 정문이 열리고, 그 안에는 폭포와 야자수, 대규모 피클볼 경기장, 마작실, 골프장 같은 시설들이 펼쳐졌습니다.


단지 내 한 구역에는 아름다운 모델 하우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어요. 가구부터 집을 지을 부지까지 모든 것을 직접 선택하면, 그들이 알아서 집을 뚝딱 지어주는 방식이었죠.


우리는 그곳에서 2~3일 정도 머물러 보았습니다. 떠날 때 정문을 나서니 그 너머로는 그저 황량한 사막뿐이더군요. 남편이 정문 앞에 차를 세우고 저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난 절대 여기서 못 살아." 저도 대답했죠. "내 말이 그 말이에요." 그렇게 그곳은 후보지 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우선, 우리는 훨씬 작은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캘리포니아주 페탈루마(Petaluma)에 소유하고 있던 집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집은 1924년에 지어진 단층 주택으로, 면적은 1,100제곱피트(약 31평) 정도였습니다. 35년 전에 구입한 후 줄곧 임대용으로만 사용해 오던 집이었죠.


3,600제곱피트(약 101평) 규모의 트러키(Truckee) 집에서 1,100제곱피트 크기의 집으로 옮기는 것은 꽤 큰 변화이자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집의 가치는 100만 달러가 훌쩍 넘습니다. 만약 침실이나 손님방이 더 있는 집을 원했다면, 예전 집과 비슷한 수준의 집을 구하는 데 거의 200만 달러가 들었을 것입니다.


집에 뒷마당이 있긴 했지만, 딱히 내세울 만한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한동안 저는 '저곳에 무엇을 놓을까?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했습니다.


마침 그때, 어머니와 함께 사는 제 친구가 넓은 부지를 구입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는 여전히 독립적인 생활을 원하셨기에, 친구는 뒷마당에 어머니를 위한 '타이니 홈(tiny home, 소형 주택)'을 지어드렸습니다.


친구가 건축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동안 우리는 그 일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도 우리 집 마당에 타이니 홈을 지어보고 싶다는 영감을 얻었지만, 남편을 설득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후 우리는 뒷마당에 작은 집(타이니 홈)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콜로라도에 본사를 둔 '스튜디오 홈(Studio Home)'에 시공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약 1년 동안 저는 그곳 웹사이트에서 제가 구상하던 집을 직접 설계해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조경 건축가를 고용했고, 해당 부지에 지을 수 있는 최대 크기인 480제곱피트(약 13.5평) 규모의 주택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착공에 들어가기 전, 인허가를 받는 데만 약 1년이 걸렸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결정해야 할 사항도 정말 많았습니다. 창문 종류부터 마감재 선택에 이르기까지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죠.


하지만 막상 공사가 시작되자 진행 속도는 꽤 빨랐습니다. 기초 공사와 더불어 하수도 및 전기 배선을 위한 터파기 작업에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우리는 2022년에 건축을 완료했습니다. 이 집에는 주방과 욕실이 갖춰져 있으며, 별도의 침실을 만드는 대신 벽에 접어 넣을 수 있는 머피 베드(Murphy bed)를 설치했습니다. 전체 프로젝트 비용은 약 28만 달러가 들었습니다.


우리 부지에 이 작은 집을 추가한 것은 제가 내린 최고의 부동산 관련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덕분에 부동산 가치가 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공간 활용 면에서도 큰 유연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계속 살며 노후를 보낼 계획입니다.

이 '타이니 홈(소형 주택)'은 여러 용도로 쓰입니다. 우선, 본채가 손님을 편하게 모시기엔 너무 좁아서 방문객이 올 때면 이곳을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합니다. 페탈루마(Petaluma) 지역은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더 큰 집을 구하는 대신 타이니 홈을 짓는 것이 훨씬 실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둘째로, 저는 마작을 가르치고 있어서 이곳에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셋째, 장기적인 목표도 있습니다. 자녀가 없는 우리 부부에게 훗날 돌봄이 필요해져서 누군가를 고용하게 된다면, 그분이 이 타이니 홈에 거주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비용이 많이 드는 은퇴자 공동체(실버타운)로 이사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우리의 목표는 언제나 가능한 한 오랫동안 지금 사는 집에서 지내는 것입니다. 타이니 홈을 지은 덕분에 건강 상태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어졌고, 덕분에 큰 자유를 얻었습니다.


친구들과도 이런 이야기를 자주 나눕니다. 부모님 세대가 걸었던 길을 꼭 따라갈 필요는 없잖아요? 우리는 다른 세대니까요. 굳이 노후를 요양원 같은 곳에서 보낼 필요는 없죠.


우리는 힘을 합쳐 미래를 계획하기로 했습니다. 더 넓은 땅을 구입해 그곳에 타이니 홈을 여러 채 짓고, 하나의 공동체로서 함께 어울려 사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죠.


나이가 들면 편안한 곳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지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가족이라 여겨지는 사람들이 꼭 혈연관계인 가족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이 곧 나의 공동체이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