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6일 금요일

황혼의 인연과 따뜻한 동행

 


노을빛이 차분하게 깔리는 인생의 황혼 길에서는, 얼마나 많은 이들과 이름을 주고받았느냐보다 서로의 남은 계절을 얼마만큼 따뜻하게 비춰주었느냐가 삶의 깊이를 결정짓는 것 같습니다.

젊은 날의 관계가 뻗어나가는 줄기였다면, 황혼의 관계는 묵직하게 깊어지는 뿌리와도 같습니다. 겉치레나 무거운 가면을 벗어던지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는 인연. 거창한 말이나 화려한 약속 없이도 침묵마저 편안한 사람과의 조용한 동행이야말로 이 시기에 누릴 수 있는 가장 정갈한 축복일 것입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관계들에 마음을 쓰기보다, 지금 곁에서 호흡을 맞추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와의 조용한 동행이야말로 황혼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아침, 고요한 창가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처럼, 곁에 있는 이와 나누는 눈빛 한 번이 그 어떤 말보다 더 깊은 온기로 마음에 스며드는 하루이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돌이키는 지혜, 회심(回心)



살다 보면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서운함을 간직하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일수록 오래 남는다.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별것 아닌 말 한마디가 마음에 걸려 오랫동안 불편한 관계로 지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상대방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미움으로 괴로워한 사람은 상대방보다 오히려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상대방은 이미 지나간 일로 생각하는데 나 혼자 그 일을 되새기며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모든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에는 끝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고, 다시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관계도 있다. 때로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에게 필요한 일이다.

다만 한 가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지나간 일 때문에 오늘의 마음까지 망가뜨릴 필요가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많이 아는 일이 아니라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먼저 사과하고, 고마운 일이 있다면 늦기 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 반대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는 더 이상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 그것도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지혜다.

회심(回心)이란 마음을 돌이키는 일이다. 남을 탓하고 원망하던 마음을 거두어 내 안을 돌아보는 일이며, 미움과 집착에서 벗어나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이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살아갈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남은 시간을 원망과 후회로 채우기보다는 감사와 평온으로 채워 가고 싶다.

미워할 사람을 억지로 좋아할 필요는 없다. 다만 미움 때문에 내 마음까지 병들게 하지는 말자.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깨닫는 한 가지 지혜가 있다.

남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내 마음을 바꾸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회심이란 남을 향해 있던 마음을 거두어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남은 삶을 조금 더 가볍고 평온하게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머니께서는 58세에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저는 20년 동안 어머니를 돌보며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카렌 피노키오의 어머니는 54세 때 알츠하이머병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피노키오와 그녀의 아버지는 주 보호자로서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아름다운 순간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들과 '그때 다르게 했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아쉬움이 남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는 매사추세츠주 마블헤드 출신의 마케팅 및 참여 전략 컨설턴트인 카렌 피노키오(56세)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분량과 명확성을 고려하여 편집되었습니다.

'룰루(Lulu)'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나의 어머니 루이즈는 빛을 발하는 분이셨다. 어머니는 배려심이 깊고 재치가 넘쳤으며, 뛰어난 능력을 갖춘 다정한 분이셨다.

2015년 9월 22일,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지 20년 만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 삶에는 커다란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87세인 아버지와 저는 매일 그녀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녀의 기일이 돌아올 때면, 그녀는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강렬하고 아름다운 색채를 띤 노을이 되어 나타나곤 합니다.

날씨가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는, 항구의 바다 위에서 어김없이 우리 앞에 나타나 주십니다.

우리는 20년 동안 어머니의 돌봄을 함께했습니다. 어머니 곁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큰 특권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함께한 시간 속에는 아름다운 순간도, 힘겨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 여정에서 때로는 실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배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제가 얻은 세 가지 핵심적인 교훈을 공유합니다.

그 징후들을 더 일찍 알아차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어머니는 54세라는 젊은 나이에 처음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이셨다.

아버지와 제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는 약 2년이 걸렸습니다.

어머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유리 천장을 깨부순 분이셨습니다. 1960년대에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연합 산업을 위해 구매 업무를 하셨는데, 당시 여성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매우 꼼꼼한 성격이셨던 어머니는 모든 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셨습니다. 하지만 사업 감각을 잃으시면서 중요한 주문을 놓치거나 대금 지급을 제대로 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피노키오의 부모님, 어머니가 진단을 받은 직후의 모습.

그런 일이 시작되었을 무렵 나는 아직 대학생이었기에, 아버지는 내게 그 상황을 어느 정도 감춰주셨다. 하지만 나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어머니는 방금 나눈 대화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한 시간 동안 다섯 번 넘게 전화를 걸어오시곤 했다.

결국 우리는 어머니를 설득해 주치의를 찾아가게 했다. 처음에는 갱년기 증상 중 하나로 치부하려 했지만, 나는 완강하게 버티며 "분명 생리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예요"라고 주장했다.

그사이 어머니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건망증은 심해졌고, 훨씬 더 불안해하셨다.

1995년 초, 58세였던 어머니는 MRI를 비롯한 여러 정밀 검사를 거친 끝에 마침내 진단을 받으셨다.

어떤 면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질병 앞에서, 진단은 적어도 우리가 상황에 주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진단이 빠를수록 치료와 향후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선택지는 더 많아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어머니가 무엇을 필요로 하시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병을 알게 된 이후, 상황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았습니다. 어머니의 상태는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또 한동안 정체되기를 반복했습니다. 때로는 급격하게 상태가 악화되기도 했고, 어떤 때는 그보다 더 가파르게 나빠지기도 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언제 멈출지, 아니 과연 멈추기는 할지 알 수 없었기에 훨씬 더 두려웠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상황을 되짚어보며, 우리는 어머니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두고 무척 고민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무언가를 잊으실 때면, 나는 곧잘 그 점을 지적하곤 했습니다. "제가 아까 어디어디 가기로 했다고 말씀드린 거 기억 안 나세요?"라고 묻는 식이었죠. 그러면 어머니는 매우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시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셨습니다.

사실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분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나는 좀 더 배려 있는 방식으로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를 다그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죠.

피노키오는 어머니 기일에 이 사진을 촬영했다. 그녀는 매년 이맘때 마주하는 일몰이 자신에게 위안을 준다고 말했다

신경과 전문의의 조언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너는 내 딸이 아니야"와 같은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의료진은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어머니 본심이 아니라 질병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또한 의료진은 끊임없이 움직이거나 서성이는 것과 같은 '초조 증상'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갑자기, 마치 화가 난 어린아이가 달려들듯 공격적인 태도로 다가오시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어머니의 눈빛이 확 바뀌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미리 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열린 마음을 가졌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머니의 병세가 시작될 무렵, 인터넷은 아직 초기 단계였다. 아버지와 나는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과 『미국 정신의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을 찾아보며, 누가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지, 그 연구진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머니가 참여할 자격이 되는지를 확인하곤 했다.

어머니는 새로운 약물 치료를 포함한 여러 임상 시험에 참여하셨다. 오늘날 우리가 알츠하이머병에 대해 이토록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은, 어머니와 같은 분들 덕분이다.

2004년, 68세였던 어머니는 터프츠 의료센터(Tufts Medical Center)의 정신과 과장이자 정신의학과장인 브렌트 포레스터(Brent Forester) 박사의 진료를 받게 되었다.

그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매우 공격적이고 난폭한 행동을 다스리기 위해, 전기경련요법(ECT)이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선구적으로 이끌었다.

피노키오는 2006년 자신의 결혼식 날 어머니가 "기쁨을 발산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처음에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인지 금방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아버지와 저에게 어머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더 많이 선물해 주었습니다.


브렌트와 그의 팀은 어머니께 다시금 생기와 미소를 되찾아 주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지만,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습니다.


2006년 10월, 제 결혼식 날 제가 버진로드를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께서 지르시던 특유의 환호성을 저는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어머니는 그 순간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셨습니다.

하프 마라톤을 완주한 후 어머니와 함께 있는 피노키오.

이를 통해 저는 왜 돌봄 팀을 신뢰하는 것이 필수적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질병을 앓고 있는 각 개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인식 개선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최근 실시된 전국 간병인 대상 설문조사를 널리 알리고, 컨퍼런스에서 연설하며, 하프 마라톤에 참가해 알츠하이머 협회(Alzheimer's Association)를 위한 기금을 모으는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이는 문자 그대로의 여정이자 비유적인 의미의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도 분명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벡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 추방 및 중간선거 사후 분석 (by Originally published via Armageddon Prose:)

 


화요일, 백악관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라는 일반적인 중간선거 구도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의 어떤 후보라도 쉽게 이겼을 법한 선거에서 수많은 부패한 정치인들이 참패했습니다.

린지 그레이엄의 얼빠진 여동생은 처참하게 패배했고, 뜻밖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향후 6년간 민주당 상원의원이 당선되었습니다.

한때 텍사스를 "인디언 공동체의 땅"이라고 선언했던 그렉 애벗 주지사도 패배했습니다. (한때 공화당의 텃밭이자 선거인단에서 공화당의 보루였던 텍사스는 이제 모든 주 정부 요직을 민주당이 차지하며 사실상 민주당 텃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불명예스럽게 몰락했고, 정치권의 부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바로 제약 사기꾼 비벡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입니다.

비벡(Vivek)의 처참한 몰락 — 공화당은 과연 교훈을 얻을까?

화요일, 비벡은 오하이오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에이미 액튼(Amy Acton)에게 패배하며 완전히 몰락했다. 이는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유리 천장’에 부딪혀 좌절했던 사례 이후, 가장 ‘당연한’ 선거 패배라고 할 수 있다.

표 차이도 꽤 컸다. 최소 10년간 공화당의 확실한 텃밭이었던 지역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결과는 민주당의 에이미 액튼이 52.31%, 비벡이 44.38%를 득표했다.

‘아마겟돈 프로즈(Armageddon Prose)’는 창간 이래 선거 정치에 대해 “정치인의 99%는 비열하고 역겨운 인간들”이라는 관점을 견지해 왔다. 이 격언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확실하게 입증되고 있다.

즉, 정치인에게 인격적 결함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전제인 셈이다.

정치에서 ‘인격’이란, 그 정치인이 유권자인 당신에게 약속한 일, 그리고 당신이 그를 선출한 목적인 ‘공약’을 실제로 이행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물론, 그들은 대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판이 더 이상 추잡해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바로 그때, 비벡은 그 ‘저점’을 한층 더 낮춰버렸다.

역대 가장 파렴치하고 저질스러운 선거 광고를 내보낸 것이다. 비벡은 자신의 하수인들을 동원해, 노숙 생활을 하며 고양이 스무 마리와 함께 차 안에서 지내던 상대 후보의 어머니(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보임)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딸을 비난하며 “거짓말쟁이”라고 매도하고, 오하이오 유권자들에게 비벡을 찍으라고 종용하는 영상을 촬영하게 했다.

비벡의 선거 캠프 핵심 참모들은 이 광고를 내보내지 말라고 강력히 만류했다. 하지만 소시오패스나 다름없는 비벡은 결국 강행했다. 그는 선거 자금 100만 달러를 쏟아부어 이 광고를 오하이오 전역에 방영했으나, 거센 역풍을 맞고 결국 광고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족 간의 분쟁을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보기에 매우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극도로 비도덕적인 일입니다. 게다가 그 이면에 숨겨진 내막까지 드러났는데, 이는 비벡(Vivek)에게 누군가 미리 경고해 줄 수도 있었을 법한 사실이었습니다. 바로 이 ‘어머니’라는 사람은, 자신의 남편이 딸(비벡의 경쟁자인 에이미 액턴)을 9세부터 12세까지 성폭행하는 동안 수년간 이를 방관했다는 점입니다. 이후 남편이 기소되자 재판을 피하기 위해 그와 함께 도주했고, 그 뒤로 다시는 딸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사망할 때까지 도망자 신세였으며, 이 어머니는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상식과 도덕관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혐오감은 차치하더라도, 제가 개인적으로 이 광고를 특히나 더 악질적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저 또한 가족 구성원들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 공개적으로 저를 비난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이자 가치관이 완전히 잘못된 행동이며, 오히려 비난하는 당사자의 저열한 인격만을 드러낼 뿐입니다.)


하지만 비벡이 자신의 표를 기대했던 유권자들의 얼굴에 침을 뱉은 사례는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 당시 제가 ‘아마겟돈 프로즈(Armageddon Prose)’에서 다루었듯, 비벡은 2024년 크리스마스에 미국의 전통 문화를 ‘평범한 것들에 대한 숭배’라고 폄하하며, 이를 자신이 속한 인도 문화(그는 이를 명백히 더 우월한 문화라고 주장했습니다)와 대비시켰습니다.

제가 2025년 1월 아르마게돈 프로즈(Armageddon Prose)에서 이미 자세히 다뤘듯이, 비벡은 정치인이 되기 훨씬 전,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수년간 정교한 주가 조작 사기를 통해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그는 누구나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구식 약인 악소반트(Axovant)를 골라, 사기적인 과학적 근거를 내세워 순진한 투자자들과 알츠하이머 환자 가족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더욱 잔인하게도, 그는 허위 사실을 이용해 투자자들의 희망을 부추긴 후, 조용히 자신의 개인 주식을 모두 팔아치우고 주가 폭락 직전에 현금을 챙겼습니다.


2015년, 그는 동료 사기꾼이자 꼭두각시인 짐 크레이머와 함께 악소반트를 강매하고 있습니다. 크레이머는 말 그대로 모든 것에 대해 항상 틀리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오늘날까지도 CNBC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소리다. 그런 작자에게서 조작과 탐욕, 그리고 타락 말고 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제 오하이오주에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전체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주지사가 남게 되었다. 그녀는 약물 남용 문제와 정신 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그런 학대를 가했던 의붓아버지와 그녀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녀의 개인적 상황을 안타깝게 여길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주 정부를 이끌 책임자로 선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오하이오 유권자들이 제3당 후보를 선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현행 선거 제도 구조상 거대 양당 중 하나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인가!


결론

정치는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변화의 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빨라질 뿐이다.


공화당(GOP) 주류 세력이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지금, 당의 정체성을 누가 차지할지는 이제 완전히 열려 있다. 가장 간절히 원하고 가장 뛰어난 전략을 가진 인물이나 세력이 결국 승리할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공화당의 경직된 지도부가 스스로 개혁할 리는 없다는 것이다. 변화는 '티파티(Tea Party)', '론 폴 혁명(Ron Paul Revolution)', 그리고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운동의 맥을 잇는 대중적·포퓰리즘적 운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단, 이번에는 특수 이익 집단이 배후에서 조종하거나(astroturfing) 운동의 본질을 왜곡하고 가로채는(co-opting) 식의 저질스러운 행태는 배제되어야 한다.


핵심은 이것이다. 만약 선거 정치에 여전히 기대를 걸 만한 가치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공화당 조직을 운영하면서 라마스와미(Ramaswamy)를 대중에게 내세웠던 자들은 권력의 자리에서 영구히 축출되어야 한다.


전부 다.


사라져야 한다.


영원히.


그들은 보험 영업이나 유랑 서커스단 공연이나 하는 게 어울린다. 그들은 정치적 정당성을 가질 자격을 영원히 상실했다.


민주당은 현재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누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인기는 공화당과 비교했을 때 지금 이 순간에만 반짝하는 것일 뿐이다. 앞서 언급한 특수 이익 집단에 장악된 '기술관료적 양당 독점 체제'의 특성상, 이번에 현상에 대한 극심한 좌절감 때문에 민주당에 투표했던 무당파 유권자들은 결국 실망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비벡(Vivek) 같은 인물들의 앞날에 관해 말하자면, 그들에게는 아무런 미래도 없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비벡의 경우, 민주당이 그를 추방할 방법을 찾아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안타깝게도 민주당은 그의 거대하고 비정상적으로 큰 머리카락 한 올조차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그가 백인 남성(그들에게는 문자 그대로 사탄과 같은 존재)이었다면 민주당이 그를 가혹하게 몰아붙였을지 몰라도, 민주당이 무엇보다 아끼는 대상은 바로 이민자와 제약 사기꾼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민자 출신의 제약 사기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허황된 꿈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정치적 경력이 완전히 망가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그가 부당하게 챙긴 이득을 모두 몰수당하고, 사기가 일상화되어 있어 그가 훨씬 더 편안하게 느낄 법한 고국 인도 땅으로 추방되기 전까지는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2026년 11월 5일 목요일

마음이 쉬어 가는 사람

 

나이가 들수록 소중해지는 인연

살다 보면 참 많은 사람을 만난다. 좋은 인연도 있고, 기대와 달리 실망을 안겨 주는 인연도 있다. 처음에는 가까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멀어지는 사람도 있고,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듯 편안한 사람도 있다.

인간관계란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때로는 오해도 생기고 서운함도 쌓인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고, 아무리 오래된 인연이라도 언제까지나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젊었을 때는 사람을 많이 알고 넓은 관계를 맺는 것이 좋은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달라진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보다 누구와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한지가 더 중요해진다.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고, 내 형편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 때로는 생각이 달라도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조용히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노년의 삶에는 생각보다 많은 걱정이 따라온다. 건강은 예전 같지 않고, 가족에 대한 염려도 늘어난다. 친구와 지인들의 소식도 예전과 같지 않다.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고, 누군가는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지내며, 또 누군가는 각자의 형편 때문에 만남이 뜸해진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화려한 만남이나 거창한 위로가 아니다. 부담 없이 전화 한 통 할 수 있고, 차 한잔 나누며 별다른 말 없이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좋은 인연을 만나기만 기다릴 수는 없다.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상대의 형편을 헤아리며, 지나친 기대와 간섭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적당한 거리와 존중이 있어야 오래갈 수 있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서운한 관계를 억지로 붙잡지 않는 것도 지혜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되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유지할 필요는 없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은 반드시 많은 것을 해준 사람이 아니다. 힘든 시기에 곁을 지켜준 사람, 내 부족함을 알고도 함부로 대하지 않은 사람,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편안했던 사람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얻는 일보다 사람을 잃지 않는 일이 중요해 보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는 일이다.

인생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깨닫는다. 좋은 인연은 내 삶을 화려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남은 인생을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

나이가 들수록 더욱 소중해지는 것은 '호기심'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재미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오래 살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는 태도는 삶에 꼭 필요합니다. 재미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이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것에도 궁금해하는 사람은 눈이 반짝입니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오늘도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면, 아직 충분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늙는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들수록 소중해지는 것이 있다. 바로 호기심이다.

젊었을 때는 앞만 보고 달렸다. 먹고살기 위해 일했고, 가족을 위해 책임을 다했으며,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세상의 변화를 살펴볼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은퇴하고 나이가 들면 시간은 많아지는 대신 몸의 움직임은 느려진다. 예전처럼 멀리 여행하기도 어렵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익숙한 생활에 머무는 것이 편해진다.

바로 이때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사라지는 일이다.

호기심은 젊은 사람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필요한 삶의 태도다.

신문을 읽다가 모르는 말이 나오면 찾아보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고, 젊은 세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귀 기울여 보는 일도 호기심이다. 평소 지나치던 나무 한 그루와 계절의 변화에 관심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시 배우려는 마음, 내 생각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가 사람을 젊게 만든다.

물론 나이가 들면 기억력도 떨어지고 새로운 것을 익히는 속도도 예전 같지 않다. 때로는 배워도 금방 잊어버린다. 그렇다고 배우기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모든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는 동안 세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뇌를 깨우고, 대화를 이어주며, 무료한 일상에 작은 기대를 만들어 준다. 무엇보다 아직 세상에 궁금한 것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살아갈 이유 하나를 더해 준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알고 싶은 것까지 줄어들 필요는 없다.

몸은 늙어도 마음까지 늙게 할 필요는 없다.

남은 인생을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지만, 오늘 무엇에 관심을 갖고 무엇을 새롭게 알아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가지려 하기보다 더 많이 궁금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호기심이 살아 있는 한, 인생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저녁노을을 걷다

 




어느새 회갑도, 고희도 지나갔다. 이제 여든과 아흔의 중간쯤에 서 있다. 세월을 일부러 흘려보낸 적도, 피해 달아난 적도 없는데 청춘은 아득히 멀어졌다. 거울 속에는 흰머리와 잔주름, 검버섯이 남았다.

이제 남은 길은 외줄기다.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즐겁게 걷고 싶다. 젊은 날에는 욕심과 고집이 힘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것들이 가장 무거운 짐이다. 하나씩 내려놓으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은퇴 후의 시간은 쉬기만 해서는 채워지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손에 익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동안 알게 되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고, 호기심이 살아 있는 한 사람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하루하루는 단순해졌다. 좋은 사람과 나란히 걷고, 책을 읽고, 생각을 글로 옮긴다. 가족이 저마다 제 자리에서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그것만으로 든든하다. 이만큼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은혜이고 복이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미리 해 두려 한다. 곁을 지켜 준 가족에게, 함께 걷는 친구들에게, 살면서 인연이 닿은 모든 분께. 너무 늦으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나이가 인생의 전성기라고 큰소리칠 생각은 없다. 다만 시들 때를 기다리는 나이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저녁노을이 하루 중 가장 고운 빛을 내듯, 오래 익은 삶에도 그 나름의 빛깔이 있다. 앞으로 몇 해가 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오늘 하루를 고운 마음으로 열심히 살면 된다.

같은 길을 걷는 벗들이여,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걸어 봅시다. 해가 지기 전에 한 번 더, 곱게 물들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