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3일 화요일

"우리의 메시지는 '모두 때려부수자'": 벨기에 학생들, 시위 목적에 대한 무지 드러낸 영상 공개

 벨기에에서 진행 중인 시위 현장의 한 흑인 남학생이 자신이 왜 시위에 참여하는지 모른다고 말하며, 자신의 메시지는 "모두 때려부수는 것"이라고 밝히는 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이 영상은 이번 시위가 실제로는 개혁이나 교육 수준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 인종 집단이 폭동을 일으키고 파괴를 자행하며 경찰을 공격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증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가 시위대를 향해 "모조리 박살 내라"고 외치자, 얼굴을 잔뜩 가린 흑인 청년들과 기타 소수 인종으로 구성된 군중은 이에 호응하며 환호와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또한 영상에는 공유 자전거와 전동 스쿠터가 불타는 모습도 담겨 있는데, 이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자동차나 트럭의 대안으로 진보 진영에서 흔히 권장하던 바로 그 이동 수단들입니다.


벨기에의 정치 활동가 드리스 반 랑엔호베(Dries Van Langenhove)는 이 영상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유럽인들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파괴합니다. 그것이 그들이 하는 일이고, 그들의 본질입니다. 정치인들은 이제 교육 예산 증액, 청소년 구금 시설 확충, 징병제 도입 등 온갖 가짜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는 모두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유일한 진짜 해결책은 단 하나, 그들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영상은 프랑스어권 벨기에, 특히 리에주와 브뤼셀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 시위 와중에 확산되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시위는 교육비 상승, 과밀 학급 문제, 그리고 왈로니아-브뤼셀 연합(Wallonia-Brussels Federation)의 개혁 조치 등으로 인해 촉발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의 학생 시위와 마찬가지로, 이번 시위 참가자들 중 상당수는 자신들의 명확한 요구 사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시위가 교사, 경찰관, 학교를 대상으로 한 공격을 포함해 대규모 폭동으로 변질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프랑스 전역에서 수십 건의 방화로 학교 시설이 부분적으로 파손되면서, 시위대의 진정한 요구와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벨기에에서도 당국은 재산 피해, 방화, 경찰과의 충돌이 발생했다고 보고했습니다. 현지 언론과 경찰은 최근 며칠 동안 리에주에서만 100명 이상이 체포됐으며, 이 중 상당수가 미성년자라고 밝혔습니다. 10월 초 이후 전체 체포자 수는 집계에 따라 200명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상점 유리창이 깨지고, 방화가 발생했으며, 경찰관들에게 물건이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한 비디오 게임 판매점은 약 3만 유로 상당의 물품이 도난당했다고 신고했습니다.


베르나르 퀸틴 내무부 장관은 안티파(Antifa-type)와 유사한 단체가 어린이들을 폭력으로 선동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폭력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어린이들을 조종하는 어른들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학생들의 이번 행동은 바르트 드 베버(Bart De Wever) 총리 주도로 추진되는 재정 적자 감축용 긴축 정책에 반대하여 벨기에 주요 노조가 조직한 금요일 전국 파업과 맞물려 진행되었습니다. 경찰은 브뤼셀에서 열린 행진에 약 3만 명이 참가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행진은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되었으나, 복면을 쓴 일부 청년 무리가 중앙역 인근에서 병, 벽돌, 돌, 폭죽 등을 던지고 방화 및 기물 파손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가스를 동원해 대응했으며, 당국은 미성년자 13명을 포함해 총 21명을 연행하거나 체포했다고 밝혔습니다.


드 베버 총리는 미래 세대에 부담을 지울 '부채의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럽더라도 예산 관련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공부 없이 투자하면 비싼 수업료를 냅니다

 

금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이삼십 년 전, 저는 세 번의 쓴맛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에뉴이티였습니다. 매달 일정 금액을 꾸준히 넣었는데, 몇 해가 지나도 불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 있었습니다.

둘째는 은행의 재정 전문가를 통해 넣은 주식과 펀드였습니다. 큰 손해는 아니었지만 기대한 만큼의 결과도 아니었습니다.

셋째는 노후 수입을 만들겠다고 산 렌탈 부동산이었고, 가장 뼈아픈 손실이 여기서 났습니다. 그때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투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돌아보면 세 번의 실패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정리합니다.

1. 공부 없이 투자하지 마세요.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에는 돈을 넣지 않아야 합니다. 저는 구조도 모른 채 "좋다"는 말만 믿고 가입했습니다.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다면 내게 맞지 않는 상품입니다.

2. 큰 은행이라고 전문가의 질까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이름 있는 은행이라 안심했지만, 전문가마다 실력과 성실함, 고객을 대하는 자세가 크게 다릅니다. 은행 간판보다 중요한 것은 담당자가 누구인가입니다. 내 사정을 충분히 묻는지, 장단점과 수수료를 솔직히 설명하는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지 살펴보십시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전문가의 의견도 들어 보세요.

3. 너무 좋은 이야기는 의심하세요.
한 번도 손해 없이 매달 꾸준히 수익을 낸다는 말은 복잡한 수학을 몰라도 이상하게 들립니다. 사실이라기엔 너무 좋은 이야기는 대개 사실이 아닙니다.

4. 부동산은 특히 더 꼼꼼히 알아보세요.
건물에 이름 있는 가게가 들어와 있으면 안심이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먼저 주인이 왜 파는지를 알아보십시오. 그 밖에도 확인할 것이 많습니다.

  • 임대 계약이 언제까지인지, 갱신될 가능성이 있는지
  • 지금까지 공실이 얼마나 있었는지
  • 세금과 보험료, 수리비를 빼고 실제로 남는 수입이 얼마인지
  • 주변 상권이 앞으로 좋아질지 나빠질지
  • 건물 상태를 직접 아는 사람이 점검했는지

팔려는 사람의 말은 그대로 믿지 말고, 내 편에서 확인해 줄 사람과 함께 보아야 합니다.

5. 한곳에 몰지 말고 나누어 투자하세요.
이런 경험을 거치며 분산투자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한 상품, 한 건물에 모든 것을 걸면 한 번의 실수가 큰 상처가 됩니다. 여러 곳에 나누어 두니 어느 한 곳이 흔들려도 전체가 무너지지 않았고, 그 덕분에 잃었던 것을 상당 부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마음을 경계하세요. 겉으로 부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 부자인 것은 아닙니다.

공부 없이 투자하면 결국 비싼 수업료를 내게 됩니다. 저는 그 수업료를 냈고, 그 덕분에 지금의 안정을 얻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돈으로 배우지 마시고, 먼저 공부하고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개인 경험담이므로, 각자의 상황에 따라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서툴러도 계속 배웁니다

 




두 손가락으로 쓰는 글

인생은 오늘부터 다시 배울 수 있습니다. 배움에는 정해진 나이가 없고, 배움은 젊은 날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다만 믿는 것과 해내는 것 사이에는 적지 않은 거리가 있다는 것도, 직접 배워 보며 알게 되었습니다.

두 손가락의 컴퓨터

컴퓨터 수업을 몇 해 동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배우고 나면 또 새로운 것이 나오고, 겨우 익히고 나면 어느새 달라져 있었습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제가 익히는 속도보다 늘 빨랐습니다.

게다가 저는 젊은 시절 타자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두 손가락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자판을 찾아 누릅니다. 남들이 열 손가락으로 쉽게 쓰는 글을 저는 느릿느릿 써 내려갑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 글도, 지금까지 쓴 많은 말들도 그 두 손가락으로 만들어 온 것입니다.

일터의 영어, 일상의 영어

은퇴한 뒤에는 커뮤니티 칼리지의 영어반에 6개월 동안 다녔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지만, 일상에서 두루 쓰는 영어에는 부족함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일에 필요한 말과 생활 속의 말은 이렇게 다른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노력은 하고 있지만 진전은 더딥니다.

느려도 배움입니다

그렇다면 헛수고였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계 하나를 익히는 것도, 오래 품어 온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도 모두 배움입니다.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알게 되었다면, 어제보다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만난 것입니다.

처음에는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배우느냐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빨리 배운 것은 빨리 잊히기도 하지만, 마음을 열고 천천히 받아들인 것은 오래 남습니다.

오늘은 남은 날들 가운데 가장 이른 날입니다. 저는 오늘도 두 손가락으로 천천히 한 글자씩 배우며 나아갑니다. 느려도, 서툴러도, 계속하는 것이 배움이라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인생은 오늘부터 다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 참 고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 자체가 고맙게 느껴집니다. 젊을 때는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고 더 가져야 한다고 믿으며 달려왔지만, 이제는 아침에 눈을 뜨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때가 많습니다.


돌아보면 인생에는 힘들고 괴로운 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굽이굽이 지나온 길 곳곳에는 기쁘고 행복했던 시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괴로움만 기억하면 눈물이 앞서지만, 기쁨을 함께 떠올리면 지나온 세월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합니다. 슬픔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사할 일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입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는 세월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일을 스치듯 만납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오래 남는 인연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말없이 앉아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 그런 인연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귀한 선물처럼 찾아옵니다. 곁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복된 삶입니다.


삶의 길에는 끝내 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희망과 행복, 그리고 사랑입니다. 그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 인생에도 분명히 있습니다. 굳은 신념과 믿음으로 그것을 지켜 가다 보면, 좋은 날은 반드시 다시 찾아옵니다.

지금이 가을이라 해도 가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가면 파릇파릇 움트는 보리밭 너머로 종달새가 지저귀는 새봄이 올 것입니다. 그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늘도 그냥 살아가는 것을 고마워하며 건강히 하루를 보내려 합니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교보생명은 가을을 맞아 최승자 시인의 시 '20년 후에, 지(芝)에게'서 가져온 문안으로 광화문글판을 새단장했다고 1일 밝혔다.

이번 문안은 삶이 고단하고 지치더라도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아름다운 결실을 보게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 응원하며 살아가자는 응원의 메시지도 전한다.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하루

우리는 내일을 약속하며 살지만, 내일이 주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침이면 당연하다는 듯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온다. 그 평범한 하루가 내일도 이어질 것이라고 믿지만, 삶은 생각보다 얇은 줄 위에 놓여 있다. 어제까지 건강하던 사람이 오늘 병원에 누울 수 있고, 아침에 웃으며 헤어진 사람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숨 쉬는 것도, 걷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당연하게 여긴다. 삶의 소중한 것들은 대부분 '당연함'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잘 걷는 하루가 축복이고, 맛있게 밥 먹는 일이 행복이며, 전화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임을.

"잘 지내지?" 하고 물을 수 있고, "밥은 먹었어?" 하고 물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소한 안부 속에 삶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젊을 때는 높은 곳에 올라가야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살아 보니 아름다움은 정상에만 있지 않았다. 넘어질 뻔하고도 다시 일어선 순간, 견디기 어려웠지만 끝내 견뎌낸 시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도 다시 밥을 먹고 길을 걷고 누군가에게 웃어 준 날들. 그런 날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삶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깨질 수 있어서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꽃은 언젠가 지기 때문에, 노을은 곧 사라지기 때문에, 사람은 영원히 머물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답다. 끝이 있다는 사실이 지금을 빛나게 한다.

수없이 많은 우연과 인연을 지나 오늘 여기까지 왔다. 그 모든 고비를 넘어 지금 내가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신비롭다. 광화문 글판의 "이상하지."라는 첫마디가 이제야 조금 이해된다. 이토록 약한 존재가 수십 년을 견뎌 왔다는 것이, 많은 이별을 겪고도 다시 사랑한다는 것이, 끝을 알면서도 오늘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한다는 것이 참 이상하고도 아름답다.

살아 있다는 것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줄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도 풍경을 바라볼 줄 아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니 이제는 남은 날의 길이보다 오늘 하루의 깊이를 생각하며 살고 싶다. 보고 싶은 사람은 만나고, 고맙다는 말은 미루지 않고, 좋은 풍경 앞에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랑한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면서.

오늘 아침에도 눈을 떴다. 창밖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나는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생각해 보니 이것만으로도 꽤 놀라운 일이다. 아니,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다. (내용이 좋아 옮긴 글)

2026년 10월 12일 월요일

"결국 부모에게 달린 문제": 학생 34명 중 단 1명만 합격하자 오열한 교사

 한 초등학교 교사가 34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반에서 단 한 명의 학생만 합격했다는 안타까운 상황을 전했습니다. 당시 대다수의 학생은 칠판에 적힌 간단한 단어조차 제대로 따라 쓰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부모가 자녀에게 기본적인 규율과 경청하는 태도를 길러주지 못한 데서 비롯된 더 광범위한 문제의 결과이며, 이로 인해 교사들이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합니다.


국가 학업 성취도 평가(Nation's Report Card) 결과에 따르면 학력 저하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2024년 평가에서 12학년의 읽기 및 수학 성적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반면, 교사들은 학생들의 행동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이러한 문제의 주된 원인으로 소셜 미디어, 자극적이고 수동적인 오락 콘텐츠,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사회의 분위기나 관행에 의해 형성된 가정환경을 꼽습니다.

한 교사는 아이들이 가장 기본적인 과제조차 반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교수법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칠판에 단어를 직접 적고 '이걸 그대로 베껴 쓰라'고 말해도 아이들은 틀리게 적습니다. 정말 겁이 날 정도죠. '도대체 왜 이러지?' 싶으면서 스스로를 의심하게 됩니다. '내 문제인가? 도대체 뭐가 문제지?' 하고요. 정말 지칩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녀는 덧붙였습니다. "정말 지쳐요. 가르치는 일이 즐거운 날도 있지만, 매일 이런 상황을 겪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마음이 아파요."

그녀는 문제의 원인이 교실 밖, 즉 학부모들에게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학부모들이 학교생활에 필요한 기술이나 기대치를 가정에서 제대로 지도하거나 강화해주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2024년 NAEP(전미 교육 성취도 평가) 결과는 이러한 전반적인 추세를 잘 보여줍니다. 12학년(고등학교 3학년)의 평균 독해 점수는 1992년 평가가 시작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졸업반 학생의 32%가 '기초 수준(basic level)' 미만의 점수를 받았는데, 이는 역대 최고 비율로, 이 학생들은 지문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세부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수준임을 의미합니다

수학의 경우 평균 점수가 200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45%가 '기초(basic)' 수준 미만의 성적을 받아 이 또한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습니다. 수학에서 '숙달(proficient)' 수준에 도달한 학생은 22%에 불과했습니다.

NCES(미국 교육통계센터)의 매튜 솔드너(Matthew Soldner) 국장 대행은 이번 조사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라고 평하며, "최하위권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크게 하락"했고 "수학 및 읽기 영역에서 NAEP(전미 교육 성취도 평가)의 '기초(Basic)' 수준 미만을 기록한 학생 비율이 역대 평가 중 가장 높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한 PISA 2025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읽기 점수는 2022년 대비 14점 하락하여 지난 25년래 최저치에 근접했습니다. 또한 미국 학생 간 읽기 성취도 격차(상위권과 하위권의 차이)는 국제적으로도 가장 큰 수준을 보였습니다.

EdWeek 연구 센터의 설문조사 데이터도 교사들의 증언과 일치합니다. 설문에 참여한 5,800명 이상의 교사 중 35%는 학생들의 행동이 전년도보다 "훨씬 나빠졌다"고 답했으며, 64%는 지난 1년간 행동 문제가 악화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58%의 교사는 학교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자녀를 지도하는 방법에 대해 학부모 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절반 이상은 학부모가 학교의 징계 조치를 막거나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을 제한하는 데 찬성했습니다.

한 중학교 교사는 "우리 중 많은 이들을 이 직업에서 떠나게 만드는 가장 큰 문제는 학부모들이 더 이상 부모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교사들은 또한 수업 시간에 보이는 행동만으로도 저녁 시간을 태블릿 사용으로 보내는 학생들을 구별해낼 수 있다고 전합니다. "교육에 대한 존중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학교가 규칙을 집행하려 할 때면 학부모들이 빈번하게 개입합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갈등으로 이어지기 일쑤입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남의 말을 경청하거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 채 학교에 오게 됩니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은 특권층이며 규칙이 자신에게는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권리가 있다고 듣고 자랍니다. 소셜 미디어와 끊임없이 쏟아지는 저관여(low-effort) 콘텐츠는 즉각적인 충동을 보상하고 절제는 선택 사항으로 치부함으로써 이러한 메시지를 더욱 강화합니다.

특정 지역사회에서는 이러한 양상이 더 어린 나이부터 나타나기도 합니다. 온라인에 퍼진 짧은 영상들을 보면, 아주 어린 아이들이 이미 갈등이 심한 거리 문화(street culture)에서나 볼 법한 몸짓과 언어—손가락 총질,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욕설, 노골적인 반항 등—를 사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게시물은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해설가 제프리 미드(Jeffery Mead)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이는 문제가 있는 문화의 아주 명백한 증거입니다. 흑인 미국인 전체에 문화적 문제가 있으며, 우리의 기준은 너무 낮습니다. 우리는 이 문화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2023년 1월 버지니아주 뉴포트뉴스에 위치한 리치넥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당시 공개된 경찰 바디캠 영상에서도 이처럼 극단적으로 절제력을 잃은 모습이 확인됩니다. 어머니의 가방에서 꺼낸 9mm 권총으로 1학년 담임 교사인 애비게일 즈워너(Abigail Zwerner)를 쏜 직후 경찰에 제압된 6세 소년은 경찰관들을 향해 "너희 둘 다 나랑 한판 붙고 싶냐, 이 개년들아?"라거나 "엿 먹어, 이 개년아"라고 소리쳤습니다. 또한 그는 "나랑 붙고 싶으면 어디 한번 덤벼봐, 이 개년아. 지원 병력을 부르든 말든 상관없어. 감옥에 가도 상관없다고, 이 개년아"라고 말했으며, "그건 우리 엄마한테서 훔친 거야"라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순회법원 판사 크리스토퍼 파필(Christopher Papile)은 아동 방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어머니에게 형을 선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부모의 궁극적이고 포괄적이며 일차적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책임은 자녀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테일러(Taylor) 씨는 이러한 책임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어도 대부분을 저버렸습니다."

한 연방 판사는 이 사건을 "부모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저버린 행위"라고 규정했습니다.

아이들이 갑자기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가정과 주변 환경에서 보고 배운 행동, 그리고 보상을 받았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부모가 기본적인 훈육을 하지 않거나 어른의 말에 따라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으면, 교사들은 통제 불가능한 교실과 도무지 다가갈 수 없는 학생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전국적인 통계 자료에는 이미 이러한 상황이 초래한 누적된 결과가 나타나 있습니다. 질서를 회복하려면 부모다운 부모,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는 학교, 그리고 능력과 자제력을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적인 가치로 여기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덜어낼수록 가벼워지는 나이

 젊은 날의 지혜는 쌓는 데 있었고, 나이 든 이의 지혜는 덜어내는 데 있습니다. 어른들이 "나이 들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시지만, 실제로는 저절로 편해지지 않습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약 먹는 시간이 하루의 일과가 되고, 오래 알고 지낸 이들의 소식이 하나둘 부음으로 바뀝니다. 그러니 마음 편히 사는 법은 좋은 말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달라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에 가깝습니다.

첫째, 몸의 한계와 화해하는 일입니다.
예전에는 하루면 끝낼 일이 이틀, 사흘이 걸립니다. 이때 "내가 왜 이럴까" 하고 자신을 나무라면 몸의 불편 위에 마음의 불편까지 얹힙니다. 느려진 것은 잘못이 아니라 세월이 한 일입니다. 걸음이 느려지면 느린 대로 주변 풍경이 더 잘 보입니다. 다만 받아들인다는 것이 포기는 아닙니다. 매일 조금씩 걷고, 때맞춰 약을 챙기고, 병원 가는 일을 미루지 않는 것은 마음 편함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몸을 돌보는 일은 남은 날들을 오래 곁에 두려는 성실함입니다.

둘째, 자식과의 거리를 존중하는 일입니다.
자식은 이미 자기 삶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걱정이 되어도 조언은 한 번이면 족하고, 그다음은 믿고 기다리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일 때가 많습니다. 전화가 뜸해도 서운함을 오래 담아두지 않으려 합니다. 먼저 "잘 지내니, 밥은 먹었니" 하고 가볍게 안부를 건네면, 그 짧은 말이 긴 훈계보다 오래 남습니다. 자식에게 바라는 마음을 한 겹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 고마움이 들어옵니다.

셋째, 이별을 피하지 않고 맞이하는 일입니다.
이 나이가 되면 먼저 떠난 부모님과 친구, 이웃을 떠올리는 날이 많아집니다. 그리움은 슬픔이면서 동시에 내가 이어받은 삶의 증거입니다. 그분들이 내게 남긴 말버릇, 음식 맛, 살아가는 태도가 지금 내 안에 살아 있습니다. 제사나 기일을 챙기는 마음도 결국 그분들과 나를 이어 주는 끈을 확인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이별을 자주 겪다 보면 오늘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도 새삼 알게 됩니다.

넷째, 지나온 삶을 스스로 인정하는 일입니다.
돌아보면 후회도 있고, 못 다한 말과 놓친 기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 이미 큰일입니다. 오랜 세월 일하고, 가족을 건사하고, 낯설고 힘든 고비를 넘겨 온 시간은 누가 대신 살아 줄 수 없었던 시간입니다. 이제는 성적표를 매기듯 자신을 평가하지 않아도 됩니다. 고치지 못한 일은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말하고 놓아주면 됩니다.

다섯째, 하루를 작게 쓰는 일입니다.
거창한 보람을 찾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침 햇살을 맞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배우자나 오랜 벗과 함께 걷고 웃는 것으로 하루는 충분히 채워집니다. 나이 들수록 큰 기쁨보다 작은 평온을 알아보는 눈이 밝아집니다. 오늘 하루 별일 없이 지나갔다면, 그것이 사실은 가장 큰 복입니다.

마음 편히 산다는 것은 아무 걱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걱정이 와도 그것과 함께 앉아 차 한 잔 나눌 수 있는 여유일 것입니다. 덜 쥐고, 덜 따지고, 더 고마워하는 것. 그렇게 살면 나이는 잃는 것이 아니라, 가벼워지는 일이 됩니다.



황혼의 문턱에서 돌아보니, 인생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은 세상을 내 뜻대로 바꾸는 능력이 아니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일에만 힘을 쓰며, 나머지는 조금씩 내려놓는 지혜였다.

돈이 많아도 걱정은 남고, 사람이 많아도 외로움은 찾아온다. 건강을 지키려고 애써도 몸은 세월을 따라 변한다. 그러니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려 하기보다 지금 가진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편이 현명하다.

이제 나는 남은 날들을 크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살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에는 한 걸음 물러서며, 곁에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어제의 후회와 내일의 걱정 때문에 오늘을 잃고 싶지는 않다.

나이가 들어 얻는 가장 큰 지혜는 세상을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는지를 알아가는 것이다.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 덜 후회하고, 더 많이 다투는 것보다 덜 미워하며, 주어진 하루를 편안한 마음으로 마무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나이에 내가 바라는 성공은 대단한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저녁에 하루를 돌아보며 큰 걱정 없이 잠자리에 들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제 내가 생각하는 잘 사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