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2일 목요일

뿌린 만큼 거두되, 거두는 때는 하늘이 정한다

 


장사도 인생도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을 저는 지금도 믿습니다. 다만 지금까 살아 보니, 이 말을 곱씹을수록, 젊을 때는 보이지 않던 깊은 뜻이 보입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저는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영어는 서툴렀고, 약사 자격에 모자란 학점은 주말 수업으로 채워야 했습니다. 강의를 녹음기에 담아 두고 출퇴근길에 돌려 듣고 또 들었습니다. 뉴욕에 살면서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한 번 올라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때 뿌린 것은 거창한 씨앗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성실이었습니다. 그것이 면허가 되고, 병원 일자리가 되고, 정년까지 이어진 직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면, 거둔 것이 뿌린 것과 꼭 같지는 않았습니다. 시험에 붙은 것은 제 노력 덕이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 기회를 얻은 것은 운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받은 것이 제 몫보다 크다고 느낍니다. 반대로, 열심히 뿌렸는데 거두지 못한 사람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니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은 "뿌리면 반드시 그만큼 돌려받는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뿌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다는 경고로 읽어야 맞습니다. 씨를 뿌리는 것은 내 몫이고, 비와 햇볕은 내 몫이 아닙니다.

여기서 현실에 맞는 지혜가 몇 가지 나옵니다.

첫째, 무엇을 뿌리는지가 중요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부자의 집과 차는 부러워하면서, 그 뒤의 오랜 고생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거두는 모습만 보지 말고 뿌린 노력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는 왜 실패했는지, 성공했을 때는 왜 성공했는지를 스스로 따져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얻은 경험이라야 다음 해의 씨앗이 됩니다.

둘째, 사람에게 뿌린 것은 가장 늦게 돌아옵니다. 돈과 달리 정성은 장부에 적히지 않고, 돌려받으려고 뿌리면 오히려 서운함만 남습니다. 그래도 신용과 염치, 작은 친절은 시간이 지나면 이름으로 남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수록 많은 사람을 남기는 삶보다 좋은 사람을 남기는 삶, 그리고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노년에는 거두는 일보다 지키는 일이 먼저입니다. 젊어서는 더 뿌리고 더 거두는 것이 맞지만, 인생의 황혼에는 이미 거둔 것을 잘 지키는 것이 지혜입니다. 건강, 배움, 취미, 친구, 마음의 평안이 그렇습니다. 이것들도 하루하루 뿌려 온 결과입니다. 오늘 걷고, 오늘 배우고, 오늘 안부를 묻는 사람이 내일도 그것을 누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뿌린 사람이 반드시 거두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뿌린 것을 자식과 손주가, 이웃이 대신 거두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내가 얼마나 거두었나"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오늘 무엇을 뿌렸나"만 생각합니다. 오늘이야말로 어제 세상을 떠난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날이니까요.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 장사이고 인생이라는 말은 결국 같은 뜻입니다. 오늘 뿌리는 일을 멈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

 



나이가 들수록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으려 애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다. 오랜 이민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부딪치며 살아왔지만, 세상에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젊었을 때는 억울한 말을 들으면 해명하고 싶었고, 나를 오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 풀어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모든 오해를 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없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지나가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살다 보면 사소한 일을 크게 만들고, 남의 약점을 들추며, 근거 없이 비난하는 사람도 만난다. 그런 사람의 말 한마디를 붙잡고 밤잠을 설치거나 며칠씩 마음을 쓰다 보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나 자신이다.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린 일을 나 혼자 오래 끌어안고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고 무조건 참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차분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모욕이나 괴롭힘이 반복된다면 거리를 두거나 주변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모든 싸움에 뛰어들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존엄까지 포기할 필요도 없다.

이럴 때 힘이 되는 것은 내 사정을 이해하고 믿어 주는 사람들이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사람,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 내가 어려울 때 조용히 손을 내미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이 한결 든든해진다.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도 달라진다. 예전처럼 많은 사람을 만나고 넓은 인맥을 유지하는 것보다 마음 편하게 안부를 나눌 수 있는 몇 사람이 더 소중해진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고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거나 만남이 뜸해지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람의 박수보다 서로의 형편을 헤아려 주는 따뜻한 마음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남에게 이해받기를 바라기 전에 다른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며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내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이 귀하다면 나도 누군가의 편이 되어 주어야 한다. 남의 잘못을 쉽게 이야기하기보다 사정을 한 번 더 살피고, 누군가 부당한 비난을 받을 때는 모른 척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 남은 인생에서 굳이 모든 사람과 잘 지내려고 애쓰지는 않으려 한다. 나를 소모시키는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존중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며 살고 싶다. 그것이 노년의 마음을 지키는 현실적인 지혜라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인생을 든든하게 해 주는 것은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남은 세월만큼은 누구에게 인정받으려 애쓰기보다 서로의 편이 되어 주는 사람들과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


가장 깊은 색은 가장 늦게 온다

 


계절은 달력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곁의 나무와 하늘, 바람 속에서 조용히 다음 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10월 하순, 길가의 나무들은 한 해 중 가장 깊은 빛깔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노란 잎의 빛깔은 가을에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봄과 여름 내내 초록 잎 속에 함께 있었는데, 초록이 짙어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가을이 되어 초록이 서서히 물러나면 그제야 오래 간직해온 노란빛이 드러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사람의 삶도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에는 초록의 기세에 가려 보지 못하던 것들이 있습니다. 오래 쌓아온 경험, 몸에 밴 따뜻함, 지나온 시간이 남긴 단단한 마음 같은 것들입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천천히 걷게 되었을 때에야 그것들이 제 빛깔을 드러냅니다.

잎이 떨어지는 것도 끝만은 아닙니다. 나무는 겨울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잎을 내려놓습니다. 놓아야 할 것을 알맞은 때에 놓을 줄 아는 것, 그것이 다음 계절을 맞는 나무의 지혜일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길을 걸으시다가 발길을 잠시 멈춰보시기 바랍니다. 매일 지나던 거리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작은 아름다움 하나가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 한 장, 낮게 비스듬히 드는 오후의 햇살,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 같은 것들입니다.

오늘 하루가 그런 아름다움 하나를 만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안함만으로는 낙원이 아니다




얼마 전 걱정도 스트레스도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호화로운 은퇴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오히려 건강을 잃어 갔고, 결국 활기 넘치던 옛 동네로 돌아갔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사례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사실이라기보다 삶을 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우화로 받아들인다.

다만 그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사람은 먹고사는 걱정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일은 나이가 들어서도 삶의 활력을 지켜 준다.

돌아보면 나의 지난 55년 미국 생활도 그랬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해 시카고와 뉴저지, 뉴욕을 거쳐 펜실베이니아에 이르기까지, 정착하는 곳마다 낯선 환경과 새로운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도 한 장에 의지해 길을 찾고, 주말마다 강의를 녹음해 반복해서 들으며 공부하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고단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만큼 삶에 대한 의욕이 강했던 시절도 없었다.

세월이 흘러 은퇴한 지금은 그때보다 생활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나 편안함이 곧 삶의 만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할 일이 없어 하루가 길어지고, 만날 사람이 줄어들고,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마저 사라진다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늙어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은퇴 후에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를 배웠고, 지금도 서툴지만 공부를 이어 간다. 타자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두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글을 쓴다. 생각은 앞서가는데 손가락이 따라오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다. 그래도 그 과정이 싫지만은 않다. 아직 모르는 것이 있고, 조금씩이라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내 하루에 작은 목표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골프장을 걷고, 가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일도 소중하다. 대단한 성취는 아니지만, 몸을 움직이고 사람과 관계를 이어 가는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이가 들면 무조건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젊을 때처럼 모든 일을 해내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이제는 몸의 한계를 인정하고, 쉴 때는 쉬어야 한다. 다만 쉬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걷고, 읽고, 배우고, 사람을 만나는 작은 수고는 여전히 필요하다.

황의 문턱에 서서 생각해 보니, 내가 바라는 노후는 모든 걱정이 사라진 삶이 아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만큼 움직일 수 있고, 아직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며, 안부를 나눌 사람이 곁에 있는 삶이다. 가진 것이 조금 부족해도 하루를 스스로 꾸려 갈 힘이 남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낙원은 아무 걱정 없이 가만히 누워 있는 곳이 아닐지 모른다.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 움직이고, 무언가를 배우고, 누군가와 정을 나누며 오늘 하루를 살아 내는 곳, 어쩌면 그곳이 우리가 찾아야 할 낙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낙원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삶 속에서 낙원을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내 곁의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며,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6년 10월 21일 수요일

황혼의 문턱에서 — 돈을 모으는 노후에서, 삶을 지키는 노후로

 


나이가 들수록 돈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젊어서는 집을 마련하고, 자식을 키우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돈을 모으는 데 마음을 쏟았다. 열심히 일하고 아껴 쓰면 언젠가는 여유로운 노후를 맞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황혼의 문턱에 서고 보니 노후의 현실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 이제는 물가와 생활비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면 비용이 얼마나 들지, 혼자 생활하기 어려워져 요양원에 들어가면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 오랜 간병이 필요해지면 모아 둔 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오며 느끼는 것은 노후의 불안이 단순히 돈이 부족해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데, 그 비용을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큰 걱정이다.

젊을 때는 돈을 더 벌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건강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한 번 줄어든 재산을 다시 채울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평생 모은 돈이 병원비와 간병비로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돈을 어떻게 더 불릴 것인가보다 어떻게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쓰는 돈, 체면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고 내어주는 돈, 큰 수익을 기대하며 무리하게 투자하는 돈은 이제 신중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자식이 어렵다고 무조건 내 노후 자금까지 내어놓을 수도 없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내 남은 삶을 지켜야 하는 책임은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돈을 쓰지 않고 무조건 움켜쥐고 살자는 뜻은 아니다. 건강을 지키고, 필요한 치료를 받고, 불편한 생활을 개선하고, 배우자와 함께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데는 돈을 써야 한다. 아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작 필요한 순간에 쓰지 못한다면 평생 모은 돈의 의미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돈의 쓰임새를 구분하는 일이다. 당장 필요한 생활비와 의료비를 마련하고, 예상치 못한 입원이나 간병에 대비할 여유를 남겨 두며, 앞으로의 생활 형편에 맞게 지출을 조절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건강보험이 있어도 입원과 치료, 장기 간병에 드는 비용을 모두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므로 자신이 가입한 보험의 보장 범위와 장기요양 지원 가능성도 미리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노후의 모든 위험을 돈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건강이 나빠졌을 때 누가 의사와 상의해 줄 것인지, 혼자 생활하기 어려워지면 어디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것인지, 배우자 중 한 사람이 먼저 아프거나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막상 닥친 뒤에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결정하기 어렵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노후 준비란 단순히 얼마의 재산을 모았느냐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돈과 건강, 주거, 가족의 도움, 필요한 돌봄을 함께 생각해야 비로소 준비가 된다.

나는 더 이상 남보다 많은 재산을 남기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돈 걱정을 가볍게 여기고 싶지도 않다. 남은 생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가능한 한 남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고, 내 형편 안에서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나이가 되어 깨닫는 것은 분명하다. 노후에는 돈이 많아도 건강을 잃을 수 있고, 건강하더라도 경제적인 준비가 부족하면 마음 놓고 살기 어렵다. 결국 필요한 것은 끝없이 재산을 늘리는 욕심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감당할 수 있도록 오늘의 삶을 현실적으로 준비하는 지혜다.

젊은 날에는 돈을 모으는 것이 미래를 위한 준비였다. 이제는 모아 둔 돈으로 남은 삶을 지키는 것이 준비가 되었다.

노후의 진정한 여유란 돈을 마음껏 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병원비와 간병비를 걱정하면서도 삶 전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준비하고, 남은 날들을 불안보다 평안에 더 가까이 두는 데 있다.

고마움은 오래, 원망은 가볍게

 


살다 보면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남이 내게 섭섭하게 한 일은 몇 해가 지나도 어제 일처럼 또렷한데, 남이 내게 베풀어 준 고마운 일은 어느새 흐릿해져 있습니다. 반대로 제가 남에게 해 준 일은 오래 기억하면서, 제가 남에게 입힌 상처는 쉽게 잊곤 합니다. 기억이 공평하지 않고, 늘 제 편에 서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 기억의 습관이 삶의 무게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섭섭했던 일을 마음에 쌓아 두면 그 짐은 상대가 아니라 제가 집니다. 상대는 잊고 지내는데 저 혼자 그 일을 몇 번이고 꺼내 보며 마음을 상하게 하는 셈입니다. 원망은 품고 있을수록 나를 묶는 끈이 됩니다. 그 끈을 놓아야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반대로 고마움은 놓치기 쉬운 재산입니다. 돌아보면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수많은 도움이 있었습니다. 어려울 때 말없이 손을 내밀어 준 사람, 낯선 곳에서 길을 알려 준 이웃, 별 뜻 없이 건넨 따뜻한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당연하게 여기고 지나쳤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것들이 저를 지탱해 준 힘이었습니다. 고마운 일은 기억할수록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 따뜻함이 다시 누군가에게 베푸는 힘이 됩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원망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제가 남에게 준 상처까지 잊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남의 잘못은 가볍게 흘려보내고, 나의 잘못은 한 번 더 돌아보는 것이 마음의 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다짐합니다. 섭섭함은 오래 담아 두지 않고, 고마움은 잊기 전에 표현하자고요.

고마움은 마음에만 두면 시간이 지나 사라집니다. 오늘 전화 한 통, 짧은 인사 한마디로 전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때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 한마디를 미루다가 전할 길이 없어지는 일이 우리 나이에는 드물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원망하며 보내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고마운 일을 더 많이 기억하고, 그 마음을 더 자주 전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삶이 훨씬 자유롭고 따뜻해질 것입니다.

최근 K-뷰티 열풍의 주역은 다름 아닌 미국인 사망자의 피부로 만들어진 제품들이다. 이제 이 제품들은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엘라비에 Re2O(Elravie Re2O)'와 같은 주요 브랜드가 주도하는 '스킨 부스터(skin booster)'는 최근 K-뷰티 분야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트렌드입니다. 이 제품들은 미국 내 사망자가 기증한 피부 조직을 원료로 만든 주사제입니다. 한국의 바이오 기업들은 미국 조직 은행(tissue bank)으로부터 인체 조직을 공급받고 있으며, 주요 제조사들은 이러한 사체 유래 제품을 미국 시장에 출시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한 상태입니다.


트렌드의 작동 방식


• 원료: 미국인들이 사후에 기증한 피부 및 인체 조직(주로 운전면허 발급 시 기증 의사 표시나 유가족의 동의를 통해 이루어짐)이 미국 조직 은행을 거쳐 해외 바이오 기업들에 판매됩니다.

• 제조 과정: 한국 기업들은 이 조직을 가공하여 액상 형태의 '스킨 부스터'로 만듭니다. 이는 주로 메디컬 스파(미용 시술 전문 시설)에서 얼굴에 주입되어 노화 징후를 개선하는 데 사용됩니다.

• 시장 영향: 이 시술은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수천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주요 제조사들은 미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미국 내 현황 및 규제


• 승인 현황: 인체 조직을 원료로 한 이러한 주사제는 현재 미국 연방 규제 당국으로부터 미용 목적의 사용에 대해 공식적인 승인이나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입니다.

• 업계 확장: 최근 미국 내 '울타(Ulta)'나 '세포라(Sephora)'와 같은 주요 유통 채널에서 한국 화장품 및 미용 시술 관련 제품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을 타고 관련 기업들이 새로운 임상적 미용 시술 제품을 미국 시장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새로운 미용 시술이 이제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 시술의 독특한 원료는 바로 사망한 미국인의 피부입니다.


매년 수만 명의 미국인이 사후에 신체 조직을 기증합니다. 이는 주로 차량국(DMV)에서 관련 항목에 체크하거나 유가족의 동의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지난 몇 년간, 미국 내 조직 은행에서 기증받은 수천만 달러 상당의 피부 조직이 '뷰티 산업의 중심지'인 한국의 바이오 기업들로 전달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피부 조직을 활용해 주사형 미용 제품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한국 시장을 선도하는 한 브랜드의 제조사는 지난주, 내년에 미국 시장에 해당 피부 유래 주사제를 출시하기 위한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 제품이 미국 연방 규제 당국의 승인 없이 미국에서 판매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는 조직 공급망을 추적하여, 예를 들어 샌안토니오에서 기증된 조직이 어떻게 서울의 한 클리닉에서 판매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수익이 창출되는지 조사했습니다.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교수이자 미국 생명윤리·인문학회(American Society for Bioethics and Humanities) 회장을 역임한 아나 일티스(Ana Iltis)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조직을 기증하는 사람들은 "이 모든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오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며, "조직 기증에는 상당한 금전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법에 따르면, 장기나 조직을 기증한 사람이나 그 유가족은 기증에 대한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K-뷰티 트렌드

수십 년간 미국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피부 이식이나 재건 수술에 인체 조직으로 만든 제품을 사용해 왔습니다. 여기에는 코 성형을 위한 연골이나 가슴 성형을 위한 피부 등 미용 목적의 사용도 포함되지만, 많은 의사는 이러한 시술 시 환자 본인의 조직을 사용하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이제는 인체 조직으로 만든 피부 관리용 제품을 수백 달러에 구매하여, 메디 스파(미용 전문 클리닉)나 피부과에서 한 시간 이내에 시술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첨단 미용 시술의 메카인 한국에서는 최소 10개의 바이오 기업이 이러한 피부 유래 주사제를 생산하고 있거나 출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제품들은 미용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스킨 부스터(skin booster)'라고 불리는 시술의 최신 세대입니다.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을 잘 설정해 두었다면, 곧 이 제품들의 효과를 강조하는 '전후 비교(before-and-after)' 사진들로 피드가 가득 차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진 속에는 주로 여성(때로는 젊은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칙칙했던 피부가 촉촉하고 생기 있게 변하거나, 잔주름이 있던 피부가 매끄럽게 개선된 모습들이 담겨 있습니다.

유안타증권 분석가들에 따르면, 올해 한국에서 인체 조직 유래 주사제(스킨 부스터) 시장은 7,500만 달러 규모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브랜드는 'Re2O'입니다. 인스타그램의 한 피부과 전문의는 이를 두고 "세포를 위한 '사랑의 묘약 9번(Love Potion No. 9)'"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제조사인 L&C바이오(L&C Bio)에 따르면, Re2O는 해당 제품군 전체 매출의 60~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L&C바이오는 올해 상반기에 Re2O로 1,7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전년 동기 약 32만 6천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약 1,1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또한, 더 섬세한 피부 관리를 위한 'Re2O 파인(Re2O Fine)'을 출시하며 제품군을 확장했고, 내년에는 인체 지방 유래 필러를 선보일 계획입니다.


L&C바이오는 9월 기준으로 Re2O 누적 판매량이 70만 유닛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싱가포르와 중국에서 판매 중이며, 아랍에미리트, 페루, 태국에서도 승인을 획득했습니다.


지난주, L&C바이오는 향후 5년간 미국 시장에 최소 6,000만 달러 규모의 Re2O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동사는 미국 유통 파트너와 함께 미국 내 조직 은행(tissue bank) 인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L&C바이오의 'Re2O' 미국 시장 진출 계획은 규제 관련 논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L&C바이오는 Re2O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이 필요 없는 피부 이식재 등의 제품 범주에 속한다고 설명해 왔다.


FDA는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에, 제조사들이 해당 범주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제품들이 실제로는 관련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FDA는 현재 조사 중인 특정 제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FDA는 "기증받은 피부에서 세포를 제거하고 건조한 뒤 분말 형태로 만들어 미용 목적의 '스킨 부스터'로 주입하는 제품들은 상당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으며", 더 복잡한 규제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L&C바이오는 규제 당국과의 논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