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탕(Edgar Tang)은 50세에 넷플릭스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에드거 탕(Edgar Tang)은 암을 이겨낸 경험이 50세에 겪은 해고 상황에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삶을 재건해 나갔던 지난 세월은 그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그는 이번에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탕은 자신의 실제 경험이야말로 알고리즘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자산이라고 강조합니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50세 에드거 탕은 지난 3월 넷플릭스(Netflix)에서 비디오 편집자로 일하다 해고되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다른 기업 일자리를 찾는 대신, 50세 이후의 삶을 재건하는 과정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간결하고 명확한 전달을 위해 편집된 내용입니다.
50세에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 저는 지난 20년 가까이 바로 이 순간을 준비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상황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수년 전 암 진단을 받았던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32세 때 해외에서 일하던 중 갑작스럽게 3기 호지킨 림프종(Hodgkin's lymphoma)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일은 '인생에 보장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했죠.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렸다는 충격도 컸지만, 병을 이겨내지 못한 동료들을 보며 느낀 '생존자의 죄책감' 또한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호지킨 림프종은 신체의 면역 체계인 림프계에서 시작되는 암의 일종입니다. 주요 증상으로는 림프절 부종, 발열, 체중 감소 등이 있습니다. 특히 조기에 발견할 경우 완치율이 매우 높은 암 중 하나입니다. 일반적인 징후 및 증상으로는 주로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 부위에 통증 없는 혹이나 림프절 부종이 나타나는 것, 심한 야간 발한(식은땀)과 고열, 의도하지 않은 체중 감소, 극심한 피로감이나 쇠약감, 그리고 피부 가려움증이나 음주 후 림프절 통증 등이 있습니다.)
치료를 위해 고향인 싱가포르로 돌아왔습니다. 치료 후 저는 삶의 방향을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담당 의사로부터 "3년간의 검사 결과 이제 완치된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히려 우울감을 느꼈습니다.
보통은 기뻐할 일이지만, 저는 그때까지 '언제든 암이 재발할 수 있으니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내왔거든요. 그런데 의사가 앞으로 살날이 많이 남았다고 하니, 오히려 긴 인생 여정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아 더 큰 막막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 무렵, 새로운 도시로 이주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일은 제게 큰 두려움을 안겨주었죠. 그래서 저는 두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첫째, 삶의 방향을 잃었다면 무언가를 배우자. 둘째, 무언가가 두렵다면 그 두려움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 보자.
저 또한 외로움이 두려웠지만, 뉴욕으로 이주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몰입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했으니까요. 그 경험은 LA로 이주할 수 있는 자신감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두려움의 대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갈 때마다 자신감도 조금씩 커지는 법이니까요. 나중에 저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 싱가포르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곧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내 인생 최고의 직장
경영진이 미리 구조조정 계획을 알려주었기에 해고 소식이 아주 뜻밖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막상 그날이 닥치니 감정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일자리를 잃는 상황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지만, 정말 즐겁게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까지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제 인생 최고의 직장이었습니다. 조직 문화, 동료, 그리고 제품까지 모든 면에서 저와 완벽하게 잘 맞는 곳이었죠. 이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불필요하게 타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 애쓸 필요도 없었죠. 그저 최선을 다하면 주변 사람들이 저를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해고 통보 후에도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기에, 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눈물이 마른 뒤, 저는 콘텐츠 제작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과감한 도전
콘텐츠 제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지난 수년간 친구들이 제게 아주 흥미로운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를 실현하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는 등을 떠밀어주는 계기였는데, 그것은 바로 해고라는 사건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과감한 결단(leap of faith)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의 소통은 자신을 대중 앞에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생활을 잃을 수도 있고, 처참하게 실패할 수도 있으며, 신랄한 비난을 받거나 스스로를 난처한 상황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한때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익명으로 통찰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습니다. 제 얼굴을 직접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사람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고, 제 솔직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이제 저는 제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약 한 달 뒤, 저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과정을 등록했습니다. 영상을 제작하는 것은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려는 의도도 있지만, 사실은 저 스스로도 위로와 지지를 얻기 위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기업 제품을 위한 이야기를 전했다면, 이제는 제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와 혁신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그 어떤 기업의 일자리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답은 바로 제 삶의 경험이었습니다. 이는 적어도 당분간은 그 어떤 알고리즘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요.
해고와 같은 일을 겪으면, 회사가 아무리 성과 문제가 아니라 사업 전략 변화에 따른 조치였다고 설명하더라도, 당사자는 이를 개인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내가 충분히 가치 있거나 필요한 인재였다면, 변화하는 사업적 요구에 맞춰 내 역할도 달라졌을 텐데'라고 자책하게 되는 것이죠.
자신의 목소리는 온전히 자신이 소유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저 또 다른 기업 일자리를 찾아 옮겨가는 대신, 제 목소리를 세상에 공유하며 그것이 어떻게 가치 있고 지속 가능한 활동이 될 수 있을지 확인해 보려 합니다.
암을 이겨내고, 새로운 도시로 이주하고, 누군가를 돌보는 일 등 서로 다른 경험들이 모여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해고 또한, 제가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지 말라는 세상의 메시지였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