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2일 금요일

‘사후 확신 편향(hindsight bias)’

 시간이 지나 과거를 돌아보면,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불안과 불확실성을 쉽게 잊어버린다.

그리고 경제나 금융시장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마치 처음부터 뻔히 예상 가능했던 것처럼 느낀다.
이런 심리를 ‘사후 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런 착각이 현재의 투자 판단에서도 “이번에도 결과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공격적인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핵심 메시지:

  • 사람은 결과를 알고 나면 “원래 그럴 줄 알았다”고 느낀다.
  • 그래서 미래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 이 과신이 무리한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 금융위기 후 → “그때 버블이었던 게 너무 obvious했지.”
  • 주가 급등 후 → “당연히 AI 기업이 오를 줄 알았어.”
  • 하지만 실제 당시에는 불확실성과 반대 의견이 매우 많았다는 점을 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볼 때 종종 모든 것이 분명했다고 생각한다. 경제 위기나 주식시장의 폭락, 혹은 특정 산업의 급격한 성장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 순간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미래는 결코 명확하지 않았다. 수많은 가능성과 불안, 서로 충돌하는 전망 속에서 누구도 결과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결과를 알고 난 뒤 과거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사후 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부른다.

사후 확신 편향은 인간의 기억과 판단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보여 준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는 그 결과가 처음부터 예측 가능했던 것처럼 느낀다. 금융시장에서 이러한 심리는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경제 위기가 발생한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버블이 터질 것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라고 말한다. 반대로 특정 기업의 주가가 크게 상승하면 “그 기업이 성공할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라고 회상한다. 하지만 실제 당시에는 전문가들조차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고, 시장 역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미래는 본래 불확실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결과를 안 이후 그 불확실성을 쉽게 잊어버린다.

문제는 이러한 심리가 현재의 투자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과거를 지나치게 단순하고 명확하게 해석할수록 사람들은 미래 또한 쉽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결국 “이번에도 분명히 맞을 것이다”라는 과도한 자신감이 생겨나고, 이는 무리한 투자와 위험한 재정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는 자신이 미래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시장은 언제나 예상 밖의 변수와 인간의 감정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를 돌아볼 때 결과만이 아니라 당시의 불확실성과 혼란까지 함께 기억하려 노력해야 한다. 경제와 금융의 역사는 단순한 정답의 기록이 아니라,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겸손하게 바라보는 태도는 투자뿐 아니라 삶 전체에서도 중요한 지혜가 된다. 인간은 언제나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하지만, 결국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지나친 확신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부자 떠나면 잘 가라?”…시애틀-스타벅스 갈등 확산

 

미국 북서부 최대 도시 시애틀에서 좌파 성향 정책을 내세운 여성 정치 신인 케이티 윌슨(43)이 시장으로 당선됐다. 지역의 주거비 급등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기존 행정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민심이 민주당으로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타벅스 脫시애틀 부른 '서부 맘다니'의 가벼운 입

자칭 민주사회주의자 윌슨 시장
부유층 유출 지적에 "잘 가세요"
스타벅스 "테네시주에 거점 신설"
시장, 뒤늦게 "시애틀에 남아달라"

“그리고 떠나는 사람들은, 뭐, 잘 가세요(And the ones that leave, like, bye).”

케이티 윌슨 미국 시애틀 시장이 지난달 시애틀대 포럼에서 부유층 유출을 우려하는 지적에 대해 손을 흔들며 내뱉은 발언의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이 발언이 알려진 직후 시애틀에 본사를 둔 스타벅스는 5년간 1억달러(약 1500억원)를 투자해 테네시주에 2000명 규모의 업무 거점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고, 지난주에는 구조조정 차원에서 300명을 추가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윌슨 시장은 17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득보다 실이 많은 발언이었다”며 “스타벅스가 (시애틀에) 남길 바란다”고 했다.

스타벅스는 1971년 시애틀의 작은 원두 판매점으로 시작해 세계 최대 커피 프랜차이즈로 성장한 기업이다. 본사도 시애틀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그런 스타벅스의 테네시 진출은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결별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칭 ‘민주사회주의자’인 윌슨의 발언은 시애틀이 속한 워싱턴주의 부유세와 반기업 정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싱턴주는 지난 2월 연 소득 100만달러(약 15억원)를 초과하는 부유층에게 9.9%의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세입자 보호, 최저임금 인상, 대중교통 개선을 내걸고 당선된 윌슨은 이 증세 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해 왔다.

스타벅스가 택한 테네시주는 대조적으로 주(州) 소득세가 없고 생활비도 저렴하다. 근로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조합비를 내지 않아도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일할 권리(right to work)’ 법률도 시행 중이다.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 슐츠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시장의 사회주의적 수사가 고용주를 악마화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플로리다주로 거처를 옮겼다.

윌슨은 취임 초부터 기업과 갈등을 빚었다.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 스타벅스 바리스타 파업 현장을 찾은 그는 “나는 스타벅스 커피를 사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도 사지 말라”며 불매운동을 독려했다. 자동차 없이 16평짜리 임대 아파트에 사는 서민적 면모와는 별개로 대도시를 이끄는 행정가로서 정무 감각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따랐다. 현재 시애틀 중심가의 상업용 건물 공실률은 35%를 넘었다.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 시애틀 도심과 외곽에 본사를 둔 IT 기업들도 지역 고용을 줄이고 있다.

윌슨은 지난해 같은 시기 당선된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과 급진적인 정치 노선이 거의 같아 ‘서부의 맘다니’로 불린다. 동부(뉴욕)와 서부(시애틀)의 대표적 해안 도시에서 좌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경영 환경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어제는 이 대통령 "5·18 왜곡, 가용한 모든 수단으로 응징" ..오늘은 혐중 부추기는 가짜뉴스 비판 !!

 험중 부추기는 가짜뉴스에도 징역과 벌금 물리세요..그러면 찍 소리 못합니다

중국대사 "李대통령, 혐중 부추기는 가짜뉴스 비판... 높이 평가"


다이빙 주한중국대사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제4회 한중 청년 미래 우호증진단 발대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뉴스1

다이빙 주한 중국 대사는 22일 “이재명 대통령께서 어제 SNS에 글을 올려 일부 한국 언론이 가짜뉴스를 만들고 중국 혐오 정서를 부추기는 것을 비판하신 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다이 대사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한국 각계 인사들이 시비를 잘 가리고, 가짜뉴스와 차별, 선동적 여론몰이 등을 자발적으로 배격해 중한 양국 국민 간의 우호 감정을 증진시키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다이 대사는 또 다른 게시글에선 “지난 한동안 한국 소수 언론은 이목을 끌고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혹은 말 못할 정치적 목적에서 중국에 관한 가짜뉴스를 날조하고 유포해 왔다”며 “일부 언론은 압력을 받아 공개 사과했지만, 여전히 중국 관련 허위 보도와 논평에 열을 올리는 언론도 있다”고 했다.


2026년 5월 21일 목요일

믿음은 수시로 들여마시는 산소와 같고, 신용은 언제나 지켜야하는 약속과 같다.

 


숨처럼 당연하고, 바위처럼 단단하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우리는 가장 먼저 숨을 들이마신다. 너무나 당연해서 평소에는 그 고마움을 잊고 살지만, 단 몇 분만 없어도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존재, 바로 산소다. 우리 삶을 지탱하는 내면의 '믿음'은 바로 이 산소를 닮았다.

반면, 세상 속에서 타인과 발을 맞추며 걸어갈 때 우리 뒤에 남는 발자국이 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지켜내는 주춧돌, 바로 '신용'이다. 그것은 세월이 흘러도 결코 흐려져서는 안 되는, 세상과 나 사이에 맺은 준엄한 약속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은 이 두 가지 기둥 위에서 비로소 온전해진다.

믿음은 수시로 들이마시는 산소와 같아서,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영혼을 살게 한다. 나 자신을 향한 담담한 신뢰, 평생을 함께 걸어온 소중한 동반자와의 묵묵한 교감, 그리고 삶이 결국은 평온한 평정 찾기로 귀결될 것이라는 내적인 확신. 이 믿음이라는 숨결이 없다면 우리의 마음은 금세 메마르고 숨이 가빠질 것이다. 거창한 선언이 없어도 매 순간 자연스럽게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을 지속하게 하는 믿음의 힘이다.

그러나 마음속의 믿음이 삶이라는 대지 위에서 찬란하게 꽃을 피우려면, 반드시 '신용'이라는 단단한 줄기가 필요하다. 신용은 보이지 않는 믿음을 눈에 보이는 가치로 증명해내는 실천이다. 살다 보면 수많은 유혹과 흔들림이 찾아오지만, "언제나 지켜야 하는 약속"을 묵묵히 이행해 나갈 때 인간의 품격이 완성된다. 세월이 흐를수록 주변의 관계는 점차 단순해지고 투명해지기 마련이다. 그 복잡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가장 아름다운 자산은, 서로의 신용이 주는 안늑함과 편안함이다.

인생의 황혼 무렵에 이르러 주변을 돌아보면,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방 안의 불필요한 물건들을 비워내듯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나면, 마지막까지 손에 쥐어야 할 본질만이 명확해진다.

매 순간 감사히 들이마시는 산소처럼 내 영혼을 촉촉이 적시는 믿음, 그리고 거친 세상 풍파 속에서도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주었던 주춧돌 같은 신용. 이 두 가지를 품고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언제나 고요하고 깊은 평화 속에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조용히 숨을 고르며, 내 안의 산소 같은 믿음을 확인하고, 내가 세상에 남긴 약속의 무게를 가만히 음미해 본다.

3년 전 Meta에서 해고당한 뒤 저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었습니다

 3년 전 Meta에서 해고당한 뒤 저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왜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때 누군가가 제게 꼭 해주었으면 했던 말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mily Pitcher says a conversation with a Meta employee changed how she felt about her layoff

Emily Pitcher was born in Los Angeles on August 13, 1999. Pitcher was a valedictorian in her high school, where she eventually graduated the University of Los Angeles in 2021 with a Bachelor's degree in English and a Honours degree in English.

Emily Pitcher는 2023년, Meta에서 맡고 있던 콘텐츠 디자인 직무에서 정리해고되었습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던 그녀는 진로를 전환하여 인디 게임 개발과 콘텐츠 제작 분야로 뛰어들었습니다.

Pitcher는 작업물이 완성되기 전이라도 과감히 공개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려 노력했던 점이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수기 형식의 글은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26세의 게임 개발자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Emily Pitcher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분량 조절 및 내용의 명확성을 위해 일부 편집이 이루어졌습니다.

2023년, Meta의 콘텐츠 디자이너로서 일하던 직장에서 정리해고되었을 때, 제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오직 재취업뿐이었습니다. 그 직업은 곧 저의 정체성이었기에, 일자리를 잃자 삶의 목적 또한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전화위복(blessing in disguise)'이 되었습니다.

취업 시장에서 거듭된 거절을 겪으며, 저는indie 게임 개발자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전업으로 창업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한 퍼블리셔와 협력하여, 연말쯤 제 게임인 'Lily's World XD'를 출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제가 진정으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으며, 저와 자리를 바꾸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처음 해고 통보를 받았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거의 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입니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기회가 저절로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 마세요.

해고당하기 전에도 소셜 미디어에 어느 정도 팔로워가 있었지만, 브랜드 협찬(브랜드 딜)을 진행해 본 경험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해고된 후, 저는 언젠가 꼭 함께 일해보고 싶었던 모든 브랜드를 정리한 스프레드시트를 작성했고, 그 목록을 하나씩 훑어가며 파트너십을 제안하는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몇 건의 브랜드 협찬 계약을 따낼 수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협찬료 협상법, 청구서 발송법, 브랜드와의 소통 방식 등 소셜 미디어 업계의 생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 소셜 미디어 브랜드 협찬은 제가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 수단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굳이 남들이 다 가는 뻔한 길을 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해고를 당한 후, 저는 오랫동안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침이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겨웠습니다. 저는 기쁨이 아닌, 오직 두려움에 이끌려 행동했습니다.

IT 업계의 추가 해고 소식이 끊이지 않고 쏟아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고통스러웠기에, 새로운 '빅 테크(Big Tech)' 기업에 재취업한다는 것은 도무지 가망 없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제 이력서에도 빅 테크 기업의 이름이 한 줄 적혀 있긴 했습니다만, 그곳에서 해고당한 다른 모든 사람의 이력서에도 똑같이 적혀 있는 이름일 뿐이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제게 이렇게 말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눈앞에 마땅한 기회가 보이지 않는다면,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라고 말이죠.

하지만 제게는 갚아야 할 주택 담보 대출도 없고, 부양해야 할 가족도 없습니다. 제가 처한 이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만, 단지 제 경우가 운 좋게 잘 풀렸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분들에게도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섣불리 말씀드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제가 처음 정리해고를 당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거의 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잘될 거야"라고 말이죠.

제 경험을 공유했더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틱톡(TikTok)에 제가 해고당했던 일에 관한 영상을 올렸는데, 정말 놀랍게도 지금까지도 길거리에서 저를 알아보는 많은 분이 그 영상이 바로 자신이 처음으로 본 제 영상이었다고 말씀해 주시곤 합니다.

제 처지에 대해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털어놓은 덕분에 저는 일종의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고, 저와 제 커뮤니티가 한층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몇 달 뒤, 저는 해고된 후에도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습니다. 친구도 없고, 삶의 목적도 잃은 채,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제 심정을 이야기했죠.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자신 또한 저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분들이 보내온 DM이 무려 100여 개나 쌓여 있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실제로 저와 친구가 되었고, 제가 성우 일에 입문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가 평생 발을 들일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분야였지만, 이제는 저에게 또 하나의 수입원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미뤄왔던 기술을 배워보세요.

제가 "Lily's World XD" 제작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저는 평생 코딩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 머리는 그런 식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늘 되뇌곤 했죠.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 힘으로 직접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다면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친구에게 기초를 배운 뒤, 나머지는 유튜브와 온라인 포럼을 통해 독학으로 익혔습니다.

만약 제가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그 과감한 도전을 하지 않았더라면, 제 게임은 결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완성되기 전에 작업 중인 내용을 공유하세요.

Meta에서 정리해고된 후 많은 분이 창업이나 자신이 열정을 쏟을 수 있는 프로젝트로 진로를 전환하겠다는 꿈을 꾸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지켜본 대부분은 결국 다시 기업 조직으로 복귀했습니다.

제가 성공적으로 진로를 전환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다른 게임 개발자로부터 들은 조언 덕분이었습니다. 바로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할 때라도, 일단 프로젝트를 공유하라"는 조언이었죠. 제가 게임 아이디어를 처음 구상했을 때 가진 것이라곤 몇 장의 목업 이미지와 Figma 파일이 전부였습니다.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여정조차 아직 시작하지 않은 상태였죠. 저는 당시 제가 가진 결과물을 보여주는 영상을 올렸고, 그 영상은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제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는 사실은 제게 큰 확신을 주었고, 작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기에, 프로젝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의구심을 품고 망설이기 전에, 일단 시작하세요.

제 자리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Meta에서의 업무에 제 정체성의 상당 부분을 쏟아부었습니다. 대외적인 자리에 나가 제가 포춘 500대 기업에 다닌다고 말하기만 해도, 사람들은 제가 별다른 증명을 해 보이지 않아도 저를 더 진지하게 대하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지레짐작하곤 했습니다. 이는 제게 엄청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타인에게 저를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준다고 여겼던 것을 잃고, 곁에서 저를 지지해 줄 친구들마저 별로 없었기에 저는 정말 깊은 어둠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여전히 Meta에 재직 중인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제가 지금은 비디오 게임을 만들고 있다고 말하자 그는 자신도 그저 거대한 기계 속의 부품처럼 느껴지는 대신, 자신이 진정으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제 자신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저는 지금, 무언가 위대한 일의 주춧돌을 놓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대통령 "5·18 왜곡, 가용한 모든 수단으로 응징"

 


그 놈의 5.18이 뭔지.빨리 매듭지어 입을 열지 못하게 하십시요 !

왜곡 법을 더욱 강화하세요 , 징역을 10년으로, 벌금을 1억으로, 공직의 문도 막으세요 !

국경일로 정하세요, 더불어 민주당만이 할수 있습니다 !!

수석보좌관회의 주재
"국가폭력범죄 공소시효·손배 소멸시효 배제 입법 조속히"
"민·형사 소멸시효 원천 배제 및 가담자 서훈 취소 속도"

이재명 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거나 국가 폭력을 미화하는 행위를 ‘사회적 독버섯’으로 규정하며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하게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가 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및 민사상 소멸시효를 원천 배제하는 입법 조치를 조속히 매듭지을 것을 주문했다.

◇“국가 폭력은 반인륜적 중대 범죄”

이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국가 폭력은 국민의 안전과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주권자가 위임한 권한으로 도리어 국민의 인권과 생명을 짓밟는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중대 범죄”라며 “우리 공동체에 미치는 해악과 지속성을 고려해 볼 때 다른 범죄와 동일 선상에 취급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했다.

이어 “모두 알다시피 나치 전쟁 범죄는 지금까지도 그 책임을 묻고 피해를 배상한다”며 “국가 폭력 범죄에 대해선 공소시효,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멸시효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입법 조치를 조속하게 매듭지어야 하겠다”고 했다.

특히 과거 관련 법안의 좌절을 상기시키며 “전에도 이미 한 번 통과된 바가 있는데, 전 정권에서 거부권 행사로 무산된 일이 있는 건 다 기억하실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피해 회복에 필요한 국가 차원의 배·보상 체계 역시 빠르게 정비하고, 국가 폭력에 가담해서 받은 서훈 취소도 서둘러야 하겠다”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 차라리 5.18 비하 처벌 법을 더 강화하세요

10년 징역에 1억 벌금형에 처하십시요, 그러면 폄훼 하거나나  왜곡이 없어지고 5.18 민주화 운동이 뿌리를 내리고 국경일로 정하고 더하여 4.3 제주 민주화, 여수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도 5.18희생자들과 같은 처우를 해 주어 진정한 민주화의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람니다

과거 박지원이가 발의한 5.18 비하 벌금 및 징역 지금 상항은 어떤가??

박지원 전 의원이 과거 대표 발의했던 5.18 민주화운동 폄훼 처벌 법안은 2021년 1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으로 국회를 통과해 현재까지 시행 중입니다. 해당 법에 따라 5.18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는 최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관련된 주요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처벌 기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악의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유가족을 모욕할 경우 강력한 형사 처벌 대상이 됩니다.
  • 법적용 사례: 법 시행 이후, 인터넷이나 유튜브 등에서 5.18을 '북한군 개입설'이나 '폭동'으로 폄훼한 유포자들이 해당 법의 적용을 받아 검찰에 송치되는 등 실제 고발 및 처벌 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 사회적 현황: 강력한 제재 수단이 마련되었으나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논란이 공존하며, 허위사실 유포를 근절하기 위한 실효적인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 시행 중인 법의 자세한 내용은 국가법령정보센터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5월 21일은 둘이 하나가 된다는 ‘부부의 날’이다.(다같이 한번 고민해 봅시다)


소란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

“부부가 늙어간다는 것은, 인생의 모든 소란이 지나간 뒤 둘만 남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노년의 부부에게 ‘잘 산다’는 말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문장을 가만히 읊조리다 보면, 삶의 시계추가 잠시 멈춰 서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그리고 마음속에 묵직한 화두 하나가 떠오른다. 과연 인생의 석양 앞에 선 부부에게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젊은 날의 부부는 언제나 소란의 중심에 있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그 아이들이 세상 속으로 당당히 걸어 나갈 수 있도록 둥지를 치열하게 일구는 일. 일터에서 자리를 잡고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날들. 주변과의 수많은 관계망을 유지하며 세상의 속도에 발맞추느라, 정작 서로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볼 시간조차 부족했던 날들이었다. 그 시절의 ‘잘 산다’는 기준은 대개 집의 크기나 통장의 잔고, 자식의 성공 같은 외적인 조건들로 채워지곤 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세상의 소음은 하나둘씩 잦아든다. 그토록 애지중지 키웠던 자식들은 저마다의 삶을 찾아 둥지를 떠나고, 화려했던 사회적 명함도 빛을 바랜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를 가득 채웠던 조연들과 관객들이 모두 퇴장하고 난 뒤, 마침내 막이 내리기 직전의 무대 위에는 처음 출발했던 ‘두 사람’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바로 그 순간부터 노년의 부부에게 ‘잘 산다’는 의미의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다.

이때의 잘 산다는 것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의 미학에 가깝다. 그동안 서로에게 걸었던 불필요한 기대와 요구를 내려놓고, 젊은 날의 서운함이나 앙금을 마음 밖으로 비워내는 일이다. 관계를 단순하게 만들고 본질만 남기는 비움의 과정이다. 이제는 거창한 대화나 대단한 이벤트가 없어도 상관없다. 거실의 적막함이 어색함이 아닌 깊은 평온함으로 다가오고, 각자의 사색과 시간을 존중하면서도 곁에 있는 존재 자체만으로 안도감을 느끼는 사이. 그것이 노년의 부부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서정(抒情)일 것이다.

결국 노년에 잘 산다는 것은, 내 인생의 모든 사계절을 온전히 목격하고 증언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과의 깊은 동행이다. 내 주름의 깊이를 알고, 내 걸음걸이의 무게를 이해하며, 내가 아픈 곳을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알아채는 사람. 세상이 나를 잊어가도 마지막까지 내 곁에서 손을 잡아줄 그 한 사람과 함께 매일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것 자체가 삶의 가장 위대한 성취가 아닐까.

모든 소란이 지나간 자리는 결코 쓸쓸하지 않다. 오히려 그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단단한 두 사람만의 숲이 우거져 있다. 오늘 부부의 날을 맞아, 거친 파도를 함께 넘고 마침내 고요한 바다에 이른 이 땅의 모든 노년 부부들에게 마음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들이 보여주는 늙어감은 서글픈 쇠퇴가 아니라,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본질만 남기는 거룩한 성숙이다.

황혼기 부부의 삶은 생각보다 현실적이다.

젊을 때 꿈꾸던 낭만이나 드라마 같은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무릎이 아프고, 잠은 자주 깨고, 병원 예약 날짜를 달력에 적어두는 일이 일상의 중심이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말을 반복하고, TV 소리는 점점 커진다.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하던 일들도 이제는 하나씩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노년의 부부는 사랑보다 생활로 더 많이 연결된다.

아침에 먼저 일어난 사람이 커피 물을 올리고,
상대방이 약 먹었는지 챙기고,
외출할 때는 “천천히 걸어” 한마디를 꼭 남긴다.
특별한 이벤트는 없어도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하루가 굴러간다.

젊을 때는 서로를 이해하려 애썼다면,
늙어서는 이해보다 익숙함으로 살아간다.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이미 다 안다.
같은 잔소리를 하고, 같은 걱정을 반복하고,
사소한 일로 서운해하는 모습까지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오래 부딪히며 살아놓고도 결국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서로라는 점이다.

몸이 아프면 배우자 이름부터 부르게 되고,
좋은 일이 생겨도 가장 먼저 옆 사람에게 말하게 된다.
자식들은 각자의 삶이 있고, 친구들도 하나둘 멀어진다.
결국 인생 끝자락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사람은 배우자다.

그래서 황혼기 이후의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사랑이 아니다.
서로를 견디는 힘, 그리고 끝까지 곁을 지키려는 마음이다.

이 나이의 부부는 서로에게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기억도 흐려지고 성격도 더 고집스러워진다.
하지만 천천히 걷는 상대를 기다려주고,
같은 말을 처음 듣는 것처럼 다시 대답해주고,
새벽에 기침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 물 한 잔 건네주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노년의 부부란 결국,
사랑해서 함께 사는 관계라기보다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더 깊이 사랑하게 된 관계에 가깝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에는
“얼마나 성공했는가”보다
“누구와 끝까지 함께 있었는가”가 사람을 더 따뜻하게 만든다.

그래서 황혼기 부부는
이렇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 서로를 바꾸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 건강 이야기를 귀찮아하지 않고 함께 챙기기
  • 하루에 몇 번이라도 다정한 말을 건네기
  • 지나간 서운함보다 남은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기
  • 혼자서는 어려운 일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의지하기
  •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늦지 않게 자주 하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서로의 짐이 되어줄 수 있는 관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계절에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황혼의 부부는
손을 꼭 잡고 멀리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느리게 걸어도 끝까지 서로의 속도를 맞춰주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