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일 목요일

너의 입이 바로 너의 그릇이고 인격(人格)이다

 너의 입이 바로 너의 그릇이고 인격(人格)이다

마음속에 담긴 생각과 사람의 깊이가 결국 가장 먼저 흘러나오는 곳이 바로 '입(말)'이기 때문이겠지요.

내가 쓰는 언어의 높낮이가 내 인격의 높낮이가 되고,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의 넓이가 곧 타인을 담아낼 수 있는 내 마음의 그릇 크기가 된다는 것을 새삼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인생의 수많은 계절을 지나며 깨닫게 되는 것은, 화려하고 많은 말을 더하는 것보다 말을 아끼고, 비우고, 꼭 필요한 온기만을 담아 전하는 것이 얼마나 더 큰 울림을 주는지 모릅니다. 결국 비워진 그릇에 맑은 물이 담기듯, 정제된 말 속에서 그 사람의 진짜 품격이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오늘 하루도 누군가에게 따뜻하고 깊은 그릇이 되는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보지 않았거든 보았다 하지 말고
듣지 않았거든 들었다 하지 마라

그릇된 선입견(先入見)이
 너의 눈을 멀게 하고
요망한 세치 혀가 너의 입을 갉는다.

겉이 화려(華麗) 하다고
그 사람 생활까지 요란(搖亂) 한게 아니며
차림새가 남루(襤褸) 하다고
그 사람 지갑까지
빈곤(貧困) 한것은 아니다.

너의 입이 바로 너의 그릇이고 인격이다
그 사람과 말 한 마디 섞어보지 않았다면
너의 작은 눈으로,
너의 작은 그릇으로
그의 점수(點數)를 평하지 마라
너 또한, 나 또한
완벽(完璧) 하지못한 인간이다.

사람들은 입 때문에 망하는 사람이 많다
칭찬(稱讚)에 발이 달려 있다면,
험담(險談)에는 날개가 달려있다
나의 말은 반드시 전달(傳達) 된다.

그 사람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단면(單面)에서 추측(推測) 하고
 단정(斷定)을 지으며
말을 지어내고 또
 소문(所聞)을 내고 남의 애기
함부로 하지 말라.

남의 험담(險談)을 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 질투(嫉妬) 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혀를 다스리는 것은 나지만,
내뱉은 말이 결국 나를 다스린다

귀로 남의 그릇됨을 듣지 말고,
눈으로 남의 잘못을 보지 말며
입으로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으니,
이것이 사람 된 도리(道理)입니다.

내가 귀(貴) 하다 해서, 
 남을 천(賤) 하게 여기지 말고
내가 크다고 해서,
 작은 것을 업신여기지 말며
나의 용맹(勇猛)을 믿고서, 

 상대(相對)를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함은
너의 입이 바로 너의 그릇이고

인격(人格)이기 때문이다.

꽃잎이 모여 꽃이 되고,
나무가 모여 숲이 되고,
냇물이 모여 강(江)이 되고,

미소가 모여 웃음 되듯이
기쁨이 모여 행복(幸福)이 됩니다



- 모셔온 글 -

    CDC: 웨스트나일( West Nile )바이러스 감염 사례, 연중 이 시기 기준 최근 20년래 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다가오는 연휴 주말을 앞둔 수요일, 올해 이 시기 기준으로 역대 최다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감염 사례가 보고되었다고 경고했습니다.


    통상 6월 말까지 평균 10건 정도 보고되던 것과 달리, 올해는 현재까지 최소 48건의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감염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연방 보건 당국에 따르면, 이는 2004년 이후 해당 시점에 보고된 감염 사례 중 가장 많은 수치입니다.


    또한 CDC 데이터에 따르면 최소 23개 주에서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활동이 보고되고 있는데, 이는 지난 10년 사이 가장 많은 주에서 바이러스가 확인된 사례입니다.


    텍사스주, 올해 첫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인체 감염 사례 보고


    이 질병은 미국 내 모기 매개 질환 중 가장 흔한 것으로, 매년 평균 수천 건의 감염과 100건 이상의 사망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맞아 수백만 명의 인파가 야외로 모여드는 가운데,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미국인들에게 예방 조치를 취하고 모기에 물릴 위험을 줄일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Soumyabrata Roy/NurPhoto via Getty Images) - PHOTO: A Culex mosquito, primary vectors for several viral and parasitic diseases inside a house in Tehatta, West Bengal, India, March 3, 2026.

    1999년 이후 이 질병으로 사망한 미국인은 3,300명이 넘습니다. 감염 사례는 통상 8월에 정점에 달하며, 주로 6월에서 10월 사이에 보고됩니다.


    감염자 중 상당수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약 5명 중 1명꼴로 증상이 발현됩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주요 증상으로는 발열, 두통, 전신 통증, 구토, 설사, 발진 등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증상은 곧 사라지지만, 쇠약감이나 피로감은 수 주 또는 수개월간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CDC는 감염자의 1% 미만에서 뇌염(뇌의 염증)이나 뇌수막염(뇌와 척수를 감싸는 막의 염증) 등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증 질환이 발생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보건 당국, 웨스트나일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 3명 보고 및 모기 매개 질환 주의 당부

    고령, 암·고혈압·신장병 등의 특정 기저질환, 그리고 면역력 저하는 중증 질환, 입원 및 사망 위험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현재 웨스트나일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나 특정 치료제는 없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감염 치료를 위해 휴식과 수분 섭취, 그리고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 의약품 복용을 권장합니다. 중증 환자의 경우 입원하여 정맥 수액 공급과 같은 추가적인 보조 치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중심을 잡는다는 것


    '중심을 잡는다'는 말은 참 묵직하면서도 늘 마음에 머무는 화두입니다.

    세상이 요란하게 흔들릴 때나, 내 안의 생각들이 걷잡을 수 없이 사방으로 뻗어 나갈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중심'을 찾게 됩니다. 나이가 들고 삶의 궤적이 길어질수록, 이 중심을 잡는다는 의미는 무언가를 꽉 쥐고 버티는 것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곤 합니다.

    현실적인 의미에서 중심을 잡는다는 건, 멋진 도인이 되는 게 아니라 호시탐탐 내 일상을 침범하려는 잔잔한 스트레스와 피로 속에서 '나만의 방어선'을 구축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1. '감정의 시차'를 인정하는 일

    누군가의 툭 던진 한마디에 마음이 쿵 내려앉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습니다. 현실적인 중심 잡기는 그 순간 화를 안 내는 성인군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감정과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 행동 사이에 딱 3초의 시차를 벌어두는 것, 그것이 현실적인 중심입니다. "아, 내가 지금 짜증이 났구나" 하고 내 상태를 한 발짝 떨어져서 인지하는 그 짧은 여백이,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을 막아주는 첫 번째 방어선이 됩니다.

    2.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만 돈과 에너지를 쓰는 것

    우리를 흔드는 대부분의 불안은 내가 손댈 수 없는 영역에서 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선택,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타인의 마음, 그리고 내일 당장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세상의 흐름 같은 것들입니다.

    여기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하면 중심은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냉정하고 현실적인 중심 잡기는 선을 긋는 일입니다.

    • 내가 바꿀 수 없는 것: 날씨, 타인의 기분, 거시적인 시장 상황 $\rightarrow$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 두기

    • 내가 바꿀 수 있는 것: 오늘 내가 먹는 음식,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오늘 내 방의 깔끔한 정리 정돈  여기에만 집중하기

    3. 무너지더라도 '루틴(Routine)'으로 돌아오는 것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몸이 아프거나 기력이 떨어지면 중심은 맥없이 무너집니다. 정신력이 체력을 이기는 게 아니라, 체력이 정신력을 지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짜 현실적인 중심은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매일 반복하는 사소한 습관의 힘에서 나옵니다. 마음이 아무리 복잡해도 정해진 시간에 밖으로 나가 몇 천 걸음이라도 묵묵히 걷고 온다거나, 늘 하던 대로 일정한 시간에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것. 이 사소하고 지루한 루틴들이 삶의 궤도가 바깥으로 튕겨 나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강력한 중력 역할을 합니다.

    현실에서의 중심 잡기는 어쩌면 진흙탕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걷는 일과 같습니다. 발에 진흙이 좀 묻기도 하고, 잠시 비틀거리기도 하는 게 당연합니다.

    중요한 건 완전히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조금 기울었을 때 슬그머니 반대편으로 몸을 틀 줄 아는 그 유연한 현실 감각입니다.


    노년의 건강은 운이 아니다. 전략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건강은 운이 좌우한다고 말한다. 같은 음식을 먹고도 누구는 오래 살고, 누구는 병을 얻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년의 건강은 운보다 '어떻게 살아왔는가'의 영향을 훨씬 많이 받는다.

    젊을 때는 몸이 버텨준다. 며칠 잠을 못 자도, 운동을 하지 않아도, 무리한 생활을 해도 어느 정도 회복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몸은 더 이상 무리한 삶을 대신 감당해 주지 않는다. 오랫동안 쌓인 생활습관이 그대로 결과가 되어 나타난다.

    현실을 살아내는 법: 버티는 자의 단단함에 대하여

    세상은 자꾸만 '더 강해져라', '이겨내라'며 호기롭게 등을 떠밀지만, 살아낼수록 깨닫는 준엄한 진실이 있다. 인생의 후반전은 화려한 공격수가 아니라, 영리하고 단단한 수비수의 게임이라는 것을. 한때의 강함은 흐르는 시간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지만, 잘 버텨내는 방어력은 세월을 이긴다.

    노년의 건강과 삶이 그렇다. 흔히 건강을 타고난 ‘운’의 영역이라 말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그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전략'과 '지루한 루틴'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젊은 날에는 무리해서 100을 채우고도 이튿날이면 거뜬히 회복하는 '강함'이 무기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전략은 다르다. 내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선을 알고, 무리한 욕심을 조용히 걷어내는 '비움의 기술'이 진짜 실력이다. 100을 가질 수 있어도 70만 취하고, 남은 서른의 여백으로 예상치 못한 흔들림을 받아내는 유연함. 그것이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의 비밀이다.

    이 전략에는 대단한 비결이 없다. 그저 매일 같은 시간에 신발 끈을 매고 문을 나서는 일, 내 몸에 이로운 것을 골라 먹는 절제, 그리고 나와 맞지 않는 불편한 관계들을 묵묵히 덜어내는 과단성이다. 남들이 보기엔 지루하고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이 반복이, 사실은 삶의 밑바닥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막아주는 가장 강력한 방파제가 된다.

    인생이라는 긴 코스에서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가장 멀리 공을 보낸 사람이 아니다. 예기치 못한 벙커와 해저드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제 타수를 묵묵히 지켜내며 끝까지 라운드를 마치는 사람이다.

    강한 사람이 남는 것이 아니다. 매일의 전략으로 자신을 지키며, 끝내 무너지지 않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걷는다. 그 지루하지만 위대한 승리를 위해, 오늘도 우리는 담담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메타가 어떻게 했길래... 삼전·하이닉스 폭락

     


    메타 "클라우드 사업 진출"... AI 공급과잉 우려 촉발

    마이크론 등 반도체주는 추락... 반도체 고점 논란 일어공급 과잉

    1일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의 모회사 메타가 AI(인공지능) 클라우드 인프라 사업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세계 증시를 뒤집어놨다. 메타에겐 새 수익 사업 발굴이란 호재로 해석돼 주가가 9% 급등했지만, AI 과잉 투자 의구심을 촉발해 반도체주들이 폭락했다. 이 충격은 2일 한국 증시로 번져 삼성전자는 9.06%, SK하이닉스는 14.57% 폭락했다.

    ◇메타 “남는 컴퓨팅 파워를 팔겠다”

    블룸버그는 1일 메타가 자체 데이터센터의 유휴(遊休) 컴퓨팅 자원을 외부 고객에게 판매하는 클라우드 사업, 이른바 ‘메타 컴퓨트(Meta Compute)’를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동안 AI 데이터센터 확장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이어오던 메타가 이제는 AI 데이터센터의 남는 자원을 되파는 공급자로 돌아서겠다는 것이다. 메타가 클라우드 사업에 진출한다면 아마존(AWS),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과 직접 경쟁하게 된다.

    ◇메타는 날고, 반도체는 추락

    엇갈린 두 방향의 해석이 메타 주가는 급등하고 반도체 주식들은 급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메타 주가는 이날 약 9% 급등했다. 반면 반도체 등 AI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집중 투매를 맞았다. 마이크론이 10%대 급락했고, 샌디스크(-10.6%), 인텔(-9.03%), AMD(-6.89%) 등이 줄줄이 무너졌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6.27% 내린 1만3353.28로 마감했다. 이른바 ‘네오클라우드’ 업체들도 하락세를 보였다. 이 업체들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빌려주는 것이 본업인데, 코어위브와 네비우스가 10%대 넘게 폭락했다.

    이건희 회장의 말이 생각난다. 저녁에 누우면 등에 위기의식에 식은땀이 삐직삐직 난다고. 정치하는 인간들은 이런 회사 등쳐먹고 표좀 얻어 보겠다고 호남타령하면서 흔들어대니. 주식은 나락으로 가지. 뻔한 결과다.

    시장은 피를 튀기는데, 정치하는 인간들은 표몰이 한다고 반도체 산업을 가지고 호남을 몰아주겠다는 꿍꿍이를 하고 있으니 나라는 늘 정치하는 인간들이 꺼꾸로 잡아당기는 통에 될일도 안된다.


    돈에는 양심이 없다



    살아갈수록 깨닫게 된다. 세상은 생각보다 돈 앞에서 냉정하다는 것을.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생활비가 부족하면 불안해지고, 아무리 큰 꿈을 가진 사람이라도 현실의 벽 앞에서는 한숨을 쉰다. 병원비를 걱정하고, 월세를 계산하며, 부모님의 노후와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돈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삶의 무게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렇다고 돈이 행복 그 자체는 아니다. 돈이 많다고 모두가 평온한 것도 아니고, 적다고 모두가 불행한 것도 아니다. 다만 돈은 선택의 폭을 넓혀 주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을 조금 늦춰 주기도 하는 현실적인 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원한다. 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문제는 돈을 갖는 것이 아니라 돈에 끌려가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돈을 위해 양심을 접고, 사람을 이용하고, 신뢰를 저버린다면 통장 잔고는 늘어날지 몰라도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간다.

    돈 자체에는 양심이 없다. 누군가의 손에서는 굶주린 아이의 한 끼 식사가 되고, 누군가의 손에서는 욕심을 채우는 도구가 된다. 같은 돈이지만 누구의 마음을 거쳐 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어쩌면 돈은 사람의 본모습을 비추는 거울인지도 모른다. 어려울 때보다 여유가 생겼을 때, 그 사람이 누구를 기억하고 무엇을 위해 돈을 쓰는지에서 그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자신만을 위해 움켜쥘 수도 있고, 누군가의 손을 잡아 줄 수도 있다. 돈은 말이 없지만, 그 돈의 사용처는 사람의 인격을 대신 말해 준다.

    우리 모두는 돈이 필요한 현실을 살아간다. 그래서 돈을 버는 일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직하게 땀 흘려 번 돈은 삶을 지탱하는 가장 아름다운 자부심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그 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왔고 어디를 향해 흘러가는가이다.

    돈은 사람을 따뜻하게도, 차갑게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돈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몫이다.

    돈에는 양심이 없다. 돈에 양심을 불어넣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이다. 오늘도 우리가 번 돈이 누군가의 웃음이 되고, 가족의 안심이 되고, 스스로를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흔적이 된다면 그 돈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삶의 온기가 될 것이다.

    돈에 양심을 입히는 시간

     "돈 자체에는 양심이 없다. 돈에 양심을 불어넣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젊은 날, 이국땅에서 두 아들을 품에 안고 버텨내던 시간 동안 돈은 내게 가장 날카로운 무기이자 가장 눈물겨운 방패였다. 숫자는 냉정했고, 세상은 지루하리만치 엄격했다. 행동하고 싶은 충동을 꾹꾹 눌러 담으며 철저한 숫자의 성벽을 쌓아 올렸던 것은, 오직 내게 허락된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때의 돈은 아무런 감정도, 온기도 없는 그저 차가운 데이터에 불과했다.

    그러나 계절이 흐르고 삶의 저녁노을이 짙어가는 지금, 비로소 깨닫는다. 인생의 전반전이 숫자를 채워 넣는 '더함의 삶'이었다면, 후반전은 채워진 것들을 조용히 비워내는 '덜어냄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 내게 남은 마지막 소임은 평생을 바쳐 모아온 그 무채색의 숫자에 어떤 숨결을 불어넣고 떠날 것인가 하는 일이다.


    돈은 스스로 울지 못하지만, 쓰는 사람의 마음을 따라 기쁨의 눈물이 되기도 하고 위로의 시가 되기도 한다. 움켜쥐고만 있으면 결국 차갑게 굳어버리는 얼음 같지만, 조심스레 녹여 흘려보내면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봄비가 된다.

    내가 세상에 남길 작은 흔적들이 아내의 깊은 눈망울 속 편안한 미소로 피어날 때, 자식들의 삶에 보이지 않는 든든한 주춧돌이 되어줄 때, 그리고 내 손길이 필요한 곳에 소리 없이 스며들 때, 비로소 나의 돈에도 따스한 양심이 깃들 것이다.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할 아름다운 문장을 고르듯, 나는 오늘도 내 손에 머무는 것들에 고운 온기를 입혀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눈물겨운 연습을 하고 있다.

    2026년 7월 1일 수요일

    아내와 나 사이"... 李生珍 詩人의 독후감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들어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



    🌇 황혼의 나이에 피어나는 기억의 그림자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몸이 늙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몸의 주인이라고 믿어왔던 기억이 하나둘씩 나를 빠져나가는 과정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어느 날은 문득,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깊은 곳을 서늘하게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 서늘함은 바람처럼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오래 머물며 삶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깊은 울림입니다.

    🌫️ 기억이 빠져나가는 순간의 막막함

    창문을 열려고 걸음을 옮겼다가 그새 왜 그곳으로 갔는지 잊어버리고 창문 앞에 멍하니 서 있는 나.

    아내는 무엇을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자신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 기억나지 않아 작게 한숨을 내쉬는 모습.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앞이 막막해지고 가슴이 울컥해집니다.

    젊은 날에는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기억은 늘 나의 편이었고, 나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기둥이었습니다. 하지만 황혼의 나이에는 그 기둥이 서서히 부서지는 소리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옵니다.

    🌫️ 시인은 이 참담함을 차분하게 정리한다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의 삶이란 결국,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이 얼마나 담담하면서도 얼마나 가슴을 저미는 말인지요.

    젊은 날에는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애쓰며 살았고, 중년에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애쓰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황혼의 나이에는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아갑니다.

    아내가 나를 잊을까 두렵고, 내가 아내를 잊을까 두렵습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어느 날 낯설게 들릴까 봐 가슴이 조용히 떨립니다.

    🌫️ 진리는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시인은 또 우리를 나무라듯 말합니다.

    “진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이 말은 황혼의 마음에 유난히 깊게 박힙니다.

    우리는 너무 먼 곳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성공, 명예, 인정, 남들의 시선, 끝없이 높아지는 기준들.

    그 모든 허상들을 붙잡느라 정작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사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세월을 흘려보냈습니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진리는 멀리 있지 않았다는 것을. 내 곁에서 숨 쉬고 있던 사람, 내 곁에서 웃고 울던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진리였다는 것을.

    🌤️ ‘아내와 나 사이’라는 거리

    이제는 압니다. ‘아내와 나 사이’라는 거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 것을.

    젊은 날에는 그 거리가 멀어지는 줄도 모르고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바빴습니다.

    중년에는 그 거리를 좁히려고 애쓰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황혼의 나이에는 그 거리가 조금이라도 멀어질까 두려워 서로의 기억을 붙잡아주며 살아갑니다.

    아내가 냉장고 앞에서 멈춰 서 있을 때, 나는 조용히 다가가 “당신, 물 꺼내려 했지요.” 하고 말해줄 것이고,

    내가 창문 앞에서 멍하니 서 있을 때, 아내는 내 손을 잡고 “여보, 바람 쐬려고 했잖아요.” 하고 말해줄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의 기억을 붙잡아주며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속에서도 끝까지 서로를 잊지 않으려 애쓰는 것.

    그것이 황혼의 사랑이고, 황혼의 삶이며, 황혼의 품위입니다.

    🌇 황혼의 노을 아래에서

    황혼의 노을은 젊은 날의 노을과 다르게 보입니다. 그 빛은 더 느리고, 더 깊고, 더 따뜻합니다.

    노을 아래에서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다시 부르고, 서로의 손을 다시 잡습니다.

    기억이 흐려지는 세월 속에서도 손의 온기만큼은 잊지 않으려 애쓰며 오늘 하루를 살아냅니다.

    그리고 조용히 깨닫습니다.

    삶은 결국 서로 알아가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여정일지라도,

    그 여정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아주던 순간만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