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6일 수요일

오늘이라는 선물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날씨가 맑든 흐리든 상관없다. 그저 오늘도 눈을 떴다는 사실, 두 다리로 방바닥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하루의 절반은 감사로 채워진다.

젊었을 때는 오늘이 소중하다는 말이 그저 교훈처럼 들렸다. 어른들이 하는 좋은 말씀이려니 했다. 그런데 여든을 훌쩍 넘기고 보니, 그것이 교훈이 아니라 실제로 몸으로 체감하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제 함께 웃었던 친구가 오늘은 병상에 누워 있고, 지난달까지 골프장에서 만나던 사람이 이번 달에는 영영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그런 일들을 몇 번 겪고 나면, 오늘이라는 하루가 얼마나 조심스럽고 귀한 것인지 절로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을 비장한 각오로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현실에 맞는 오늘살이란 거창한 다짐이 아니라, 아주 작고 구체적인 것들로 이루어진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온기, 아내와 함께 나서는 골프장에서의 한 라운드, 손주의 목소리를 전화로 듣는 짧은 순간들. 이런 소소한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오늘을 사는 방법이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매일 느낀다. 예전처럼 먼 거리를 잘 걷지 못하고,온 몸이 뻐근하고 잠도 설칠 때가 많다, 하지만 이것을 서글퍼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젊은이의 체력이 아니라 노년의 체력에 맞는 하루를 살면 된다. 무리하지 않고, 그러나 게으르지도 않게. 그 균형을 찾는 것이 현실적인 지혜라고 생각한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으니 추억으로 잘 간직하면 된다. 좋았던 일은 좋았던 대로, 아쉬웠던 일은 그 나름대로 배움으로 남기면 된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미리 걱정으로 앞당겨 살 필요가 없다— 말은 쉬워도 실제로 그렇게 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다만 기대하며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남는 것은 오늘 하루뿐이다. 그리고 그 하루를 어떻게 채우느냐는 전적으로 내 선택에 달려 있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성공이나 부유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살았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넸는가, 작은 일에도 감사했는가, 누군가의 실수를 너그럽게 넘겼는가. 이런 것들이 쌓여서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오늘은 어제 세상을 떠난 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하루였다고 한다.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오늘이라는 시간이 거저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되새긴다. 그러니 오늘도, 내 삶의 가장 좋은 날로 살아가려 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정직하게, 감사하며, 사랑하며 하루를 채워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2026년 9월 15일 화요일

소유의 환상 속에서 오늘을 지키는 일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우리가 흔히 ‘평생’이라고 부르는 시간은 사실 사계절을

겨우 여든 번 반복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 짧은 소풍 같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치열하게 살고, 경쟁하고, 쥐고, 지키려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들 대부분은 실제로는 내 것이 아니다.

집은 잠시 머무는 숙소이고, 통장의 숫자는 살아 있을 때만 의미가 있는 포인트다. 배우자도, 자식도, 부모도 결국 각자의 인생을 살러 온 손님이다. 한쪽이 먼저 떠나고, 다른 쪽이 나중에 떠난다. 남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함께 웃었던 순간뿐이다.

사람들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건강을 팔아 돈을 벌고, 오늘의 웃음을 내일로 미룬다. 하지만 미래는 늘 미래로 남는다. 행복은 ‘나중’에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은 오늘이라는 좁은 시간대에서만 실체를 가진다.

결국 우리가 끝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단 두 가지뿐이다. 지금 숨 쉬고 있는 몸,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 그 외의 모든 것은 임대물이며, 동행자이며, 잠시 빌린 풍경이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은 완주가 아니다. 결승선은 모두에게 동일하다. 차이는 결승선까지 가는 동안 무엇을 보았는가, 어떤 마음으로 지나갔는가이다. 풍경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단지 시간을 통과한 것뿐이다.

오늘 저녁 따뜻한 밥 한 끼가 맛있고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면 그것이 이미 인생 만점이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고, 조금 느려도 괜찮다. 우리는 고생하러 온 것이 아니라 경험하러 온 것이다.

억지로 잘해내려고 애쓰지 않고, 내일의 걱정을 끌어당기지 않으며,

 오늘 주어진 계절의 풍경을 온전히 담아내는 하루가 되기를 함께 바랍니다.

전쟁이 안방으로 닥쳐올 때: 헌법적 경고 Authored by Andrew P. Napolitano via Ron Paul Institute,

 실패한 전쟁은 드론의 비행이 멈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위험을 초래합니다. 바로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 그리고 해외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강력한 승리를 추구하는 대통령의 존재입니다.


이란과의 전쟁은 군사력의 한계,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 초래하는 위험, 그리고 헌법상 권력 분립 원칙이 지닌 변치 않는 지혜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전쟁은 의회의 승인 없이 시작되었고, 위헌이자 불법이었으며, 전략적으로도 일관성이 결여되었을 뿐만 아니라—전쟁을 평가하는 잣대로 볼 때—지정학적 실패로 귀결되었습니다.


미국 국민은 무력 사용을 통해 명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란이 굴복할 것이며, 미국의 안보가 강화되고, 해당 지역이 더욱 안정될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막대한 자원과 귀중한 군수 물자가 소모되었고, 지역적 불안정은 심화되었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했던 정치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습니다. 바로 지난주에도 군 고위 관계자들은 대규모 작전을 지속할 경우 핵심 군사 역량이 고갈되고 다른 지역에 대응할 미국의 능력이 약화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미국은 건물과 표적을 파괴하고, 항공기·함정·미사일·드론·병력을 지구상 어디에든 배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적의 자산을 파괴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정치적 항복을 이끌어낼 수 있는 비디오 게임이 아닙니다. 전쟁은 의지와 사회, 문화, 그리고 인내심이 맞붙는 대결입니다.


그리고 첫 폭탄이 투하되기 전에 반드시 제기되었어야 할 헌법적 질문이 있습니다. 과연 누가 대통령에게 이 전쟁을 시작할 권한을 부여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헌법은 그런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헌법 제1조 제8항은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선전포고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정자들은 국왕이 개인적 판단이나 야망, 혹은 정치적 편의에 따라 국가를 분쟁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영국의 모델을 의도적으로 배격했습니다. 제임스 매디슨은 행정부가 "전쟁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진 권력 기관"이라고 경고했으며, 이에 따라 헌법은 전쟁 개시 결정을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 범위 밖으로 설정했습니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입니다. 대통령은 의회의 합법적인 결정이 내려진 후에 군을 지휘합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직함을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개인적 권한으로 바꿀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원칙은 연방 대법원에 의해 거듭 확인되어 왔습니다. '영스타운 시트 앤 튜브(Youngstown Sheet & Tube Co.) 대 소이어(Sawyer)' 사건 등에서 대법원은 단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내세운다고 해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무제한적인 권한이 부여된다는 주장을 일축했습니다. 로버트 잭슨 대법관은 유명한 보충 의견을 통해, 대통령이 헌법적 한계를 넘어 의회의 동의 없이 권한을 확장하려 할 때 발생하는 '황혼 지대(zone of twilight)'에서 행정 권력이 가장 위험해진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란 전쟁은 바로 이러한 황혼 지대, 즉 행정부의 야망과 헌법적 제약이 충돌하는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행정부는 현대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러한 주장은 지난 수십 년간 양당 대통령 모두에 의해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유연성이 곧 무제한적인 권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헌법은 평탄한 시기가 아니라 어려운 시기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헌법은 대통령이 행동해야 할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 순간에도 그들을 제약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해외에서의 군사적 실패는 국내에서 정치적 딜레마를 초래했습니다. 승리를 약속했던 대통령은 이제 승리가 결코 달성되지 않았다는 현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위험한 것은 바로 그 다음에 벌어질 일입니다.

역사는 해외에서 대중적 망신을 당한 정치 지도자들이 종종 다른 곳에서 힘을 과시하려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외교 정책의 실패는 국내에서의 과도한 권력 행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지도자들은 국내에서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입증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전쟁은 국내 문제로 변모합니다.


군사적 한계에 좌절한 대통령은 급진적인 이민 단속, 대법원이 금지한 관세 부과, 법률로 금지된 국내 군 병력 투입, 외국 소유 석유 탈취, 그리고 표현 및 결사의 자유와 충돌하는 행정권 행사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은 대통령이 실망감을 이유로 법을 무시하거나 대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수정헌법 제5조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생명, 자유, 재산이 적법한 절차 없이 박탈되지 않도록 보장합니다. 수정헌법 제6조는 정부가 생명, 자유, 재산을 박탈하려는 모든 사람(미국인 여부와 무관하게)에게 공정한 배심원단 앞에서의 공개 재판을 받을 권리와 기타 헌법적 보호를 보장합니다. 이러한 보호 조치는 피고인이 반드시 무죄이기 때문이 아니라, 제약 없는 정부 권력 행사가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증거가 곧 유죄 판결은 아닙니다. 혐의 제기가 곧 유죄를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대통령의 주장이 사법적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행정부는 고속정이나 그 밖의 장소에 있는 용의자를 단순히 지목하고 그들을 적으로 규정한 뒤 재판 없이 처벌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미국 독립혁명 당시 거부되었던 체제입니다.


미국 국내에서의 군사력 사용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됩니다. 건국 주역들은 상비군이 법 집행에 동원되는 것을 매우 경계했습니다. 그러한 경계심은 군의 민간 법 집행 개입을 금지하는 헌법적 보호 장치와 후속 법률을 탄생시켰습니다.

군은 외국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대통령의 경찰력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범죄를 정의하고 처벌을 정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의회입니다. 대통령은 새로운 적의 범주를 만들어내고 행정 명령으로 그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헌법은 항공모함을 보유한 군주제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세대는 자유를 안보와 맞바꾸려는 유혹에 직면합니다. 모든 세대는 위기가 너무 심각하고, 적이 너무 위험하고, 상황이 너무 긴급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규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건국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거부했습니다.


헌법은 정부 관리들이 때때로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비상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제정되었습니다. 권력 분립, 의회의 전시 권한, 사법 심사, 적법 절차 보호는 효율적인 정부 운영의 장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부가 설립 목적이었던 위협 자체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입니다.


궁극적인 질문은 대통령이 권력을 행사할 만큼 강력한가가 아닙니다. 질문은 대통령이 자신이 수호하겠다고 맹세한 법을 지킬 만큼 자제력이 있는가입니다.


그것이 바로 전쟁이 본국으로 확산될 때 공화국이 느끼는 두려움입니다. 작가 허먼 멜빌의 말을 빌리자면, 철권통치를 펼칠 때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 — 체면, 품위, 그리고 자기관리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남을 의식하며 자기를 가꾸는 존재다. 즉 먹고사는 것에만 급급한 게 아니라 좀 더 근사하게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런 덕분에 다양한 문화 예술을 발전시켰고, 그런 속에서 비교적 체면이나 품위에 신경 쓴다. 그런데 체면이나 품위의 기반이 되는 자기관리라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매사에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방심했다가는 낭패를 보는 건 물론 자타 모두가 피곤해질 수 있다.

'SNS 시대, 과잉 보여주기와 진짜 자기관리의 경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신을 가꾸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더 근사해지고 싶은 욕망은 예술을 만들었고, 사회적 품위와 체면을 낳았다. 그러나 오늘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대표되는 디지털 공간에서 이 '자기 가꾸기'는 전례 없는 시험대에 올랐다. 타인의 인정을 열망하는 인간의 본성이 24시간 연결된 플랫폼을 만나며, 자기관리가 품격이 아닌 '피로'가 되는 현상이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자기관리는 종종 '과유불급'의 선을 쉽게 넘어서곤 한다. SNS에 올리기 위해 무리해서 명품을 사거나, 고급 레스토랑의 인증샷을 찍으며 체면을 차리는 행위는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속은 허기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가 적절한 절제를 잃고 '과시'로 변질될 때, 자기관리는 품위를 높여주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를 지치게 만드는 굴레가 된다. 타인의 시선에만 매몰된 관리는 결국 타인의 인정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가벼운 체면에 불과하다.

진정한 체면과 품위는 겉으로 드러나는 포장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과함과 모자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중용(中庸)의 감각, 즉 internal control(내면의 절제력)에서 비롯된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꿈이 내면의 성찰과 균형을 잃는다면, 그것은 자기관리가 아니라 자기학대에 가깝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과 '내면의 중심' 사이의 건강한 거리두기다. 남을 의식하되 그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근사하게 가꾸되 과하지 않게 절제하는 것. 이 아슬아슬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야말로 복잡한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품격을 지켜내는 진짜 자기관리다.

황혼의 문턱에서 — 체면보다 품위



사람은 먹고사는 것만으로 살지 않는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의식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모습으로 자신을 가꾸며 살아간다.
그 마음이 문화를 만들고 예술을 꽃피웠고, 사람 사이에 체면과 품위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체면을 지키려 너무 애쓰면 삶이 피곤해지고,
체면을 내려놓는다고 모든 것을 함부로 해도 품위가 사라진다.

황혼의 품위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아침에 옷을 단정히 입고,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필요 없는 말은 한마디 덜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는 것.

체면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만,
품위는 내 자신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제는 남에게 잘 보이기보다
내 삶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사는 것,
그것이 내가 지키고 싶은 마지막 품위다.

2026년 9월 14일 월요일

아침의 한 문장

 





아침에 눈을 뜰 때 건네는 한 문장, 하루를 마칠 때 되새기는 한 문장—그 작은 반복이 결국 사람을 만든다.

노년의 말버릇

나이가 들수록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이 중요해진다.

몸은 예전 같지 않다.
걸음은 느려지고, 힘도 줄어든다.

그러나
“이제 다 끝났다”라고 말하는 것과
“오늘 이 나이에 할 몫을 다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하루를 만든다.

젊은 사람의 힘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지금 내 두 발로 걷고,
내 힘으로 하루를 살아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노년은 세월과 싸우는 시간이 아니다.
내 나이의 속도로 세월과 나란히 걷는 시간이다.

오늘도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
오늘의 몫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노년의 하루를 여는 문장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노년에게 필요한 것은 결심이 아니라 정확한 문장 하나다. 그 문장은 하루의 속도를 정하고, 마음의 방향을 정리한다. 노년은 큰 계획보다 작은 언어가 삶을 지탱한다.

아래 문장들은 현실에 맞게 조정된, 노년의 하루를 여는 말들이다.

🌅 노년의 아침을 여는 문장들

  •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과도한 욕심을 덜어내고, 하루의 무게를 적정선으로 낮추는 문장.

  • “지금 이 나이에 맞는 속도로 간다.” 젊은 시절의 기준을 버리고, 현재의 몸과 마음을 기준으로 삼는 선언.

  • “불필요한 걱정은 오늘의 몫이 아니다.” 노년을 갉아먹는 과도한 예측과 불안을 하루의 문 밖에 두는 방식.

  • “천천히 시작해도 괜찮다.” 속도가 아니라 지속이 노년의 품격을 만든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문장.

  • “오늘 하루는 오늘 안에서 끝낸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을 끊고, 하루의 경계를 명확히 세우는 태도.

🌄 왜 이런 문장이 필요한가

노년은 체력보다 언어가 먼저 흔들리는 시기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 불안하면 하루가 불안해지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 단정하면 하루가 단정해진다.

아침의 한 문장은 노년의 속도를 정하고, 노년의 태도를 정리하고, 노년의 남은 시간을 질서 있게 유지하는 도구가 된다.

🌤 정리하면

노년의 하루는 작은 문장 하나로 시작되고, 그 문장이 하루의 구조를 만든다.

인생은 결국 시행착오의 연속

남들은 다 완벽하게 사는 거 같나요? 천만에요. 인생은 어차피 모든 투성입니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삶도 들여다보면 다 각자의 흠과 상처를 안고 사는 거죠. SNS에 올라오는 화려한 사진 몇 장, 남 앞에서 짓는 웃는 얼굴 — 그게 그 사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오히려 그 사실을 알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으신가요? 내 부족함만 유독 크게 보이고 남의 부족함은 안 보이니 자꾸 비교하며 위축되기 쉬운데, 사실은 다들 비슷하게 흔들리고 넘어지면서 살아간다는 걸 알면 스스로에게 조금 너그러워질 수 있으니까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사람들은 흔히 남의 삶을 곁눈질하며 산다. 누군가의 넓은 집, 누군가의 화목해 보이는 가족사진, 누군가의 성공담을 보면서 나만 뒤처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완벽해 보이는 그 삶의 뒤편에도 어김없이 흠과 상처가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몇 장의 사진, 남 앞에서 짓는 웃는 얼굴이 그 사람 인생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

인생이란 본디 흠 많은 그릇이다. 아무리 정성껏 빚어도 어딘가 금이 가고, 아무리 조심스레 살아도 실수는 반복된다. 그 반복이야말로 삶이 삶다운 이유다. 무언가를 잘 해내면 만족스럽지만 자랑할 일은 아니고, 서툴게 해내면 애써야 할 일이지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삶은 끝나지 않는 배움의 과정이며,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언제나 더 나은 길이 있게 마련이고, 그 길은 조금이라도 더 애쓰는 사람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자꾸 남과 나를 견주며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드는가. 아마도 내 부족함은 크게 보이고 남의 부족함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다들 비슷하게 흔들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살아간다. 그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다. 남을 향한 관대함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실수를 덮어주고 감싸주는 것이야말로 참된 사랑이라 할 수 있으니, 완벽을 요구하지 않는 마음이 곧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길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 이치는 더욱 선명해진다. 젊을 때는 완벽을 향해 달렸다면, 황혼의 나이에 이르러서는 얻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해진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 속도에 맞추어 작은 습관과 작은 관계와 작은 기쁨을 꾸준히 지켜나가는 것—그것이 노년의 품위다. 노년은 거창한 완성이 아니라 조용한 유지 보수와 같아서, 그 유지가 흔들리지 않는 한 사람은 늙어가면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세월은 그저 흘러갈 뿐인데, 그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불안으로 몰아가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이다. 일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되어가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마음의 평안이 찾아온다. 세월에 쫓기지 말고 동행하자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완벽을 좇아 세월에 쫓기기보다, 흠 많은 나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편이 훨씬 지혜로운 선택이다.

결국 완벽한 삶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저마다의 흠을 안고도 매일 아침 작은 이유 하나를 붙잡고 일어나는 사람들뿐이다. 그 소소한 이유들이 모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들이 모여 한 사람의 생애가 된다. 남들도 다 그렇게 흠 많은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오늘 내가 짊어진 부족함도 그리 무겁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 젤렌스키에게 러시아 디젤 시설 공격 중단 촉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디젤 연료 시설을 표적으로 삼는 공격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러한 공격이 전 세계적인 공급 부족을 초래하고 있으며, 미국 내 디젤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일요일, 트럼프는 기자들로부터 이 문제와 관련해 젤렌스키와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트럼프는 '아이리시 오픈(Irish Open)' 대회 현장에서 기자들에게 젤렌스키 대통령과 이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히며, "그는 한 가지를 해야 합니다. 바로 러시아의 디젤 연료 시설을 타격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공격할 다른 표적은 많습니다. 디젤 연료 시설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전 세계에 피해를 주고 있으니까요."라고 덧붙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수개월간 장거리 공격을 통해 러시아의 석유 및 가스 산업을 겨냥해 왔으며, 이에 러시아는 연료 배급제로 대응했습니다. 지난 7월, 러시아는 디젤 수출을 금지한 바 있습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일요일 기준 미국 내 디젤 가격은 갤런당 평균 6.2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일반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평균 4.31달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정유 시설을 타격하는 우크라이나의 전술을 옹호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6월 28일, 러시아의 연료 시설을 타격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X(구 트위터)를 통해 "지난밤, 우리의 장거리 타격이 러시아 내 정유 시설 두 곳을 명중시켰습니다. 최전선에서 약 300km 떨어진 크라스노다르 지역의 슬라뱐스크 정유 공장이 타격을 입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그는 "우리는 국경에서 약 700km 떨어진 야로슬라프 지역의 정유 시설도 타격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키는 작전을 계속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장거리 타격 하나하나가 러시아의 전쟁 기계에 투입되는 자원을 줄이고, 평화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러시아의 테러 행위에 계속해서 대응해 나갈 것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기반 시설 또한 러시아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9월 12일 X(구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러시아는 식량 창고와 주유소, 제약 시설, 일반 여객 열차, 주거용 건물 및 민간 기업 시설을 불태우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6년 9월 보고서를 통해, 걸프 지역 국가들의 8월 디젤 및 가스오일 수출량이 하루 평균 39만 배럴을 기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2월 이란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 수준의 4분의 1을 약간 웃도는 수치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운항이 제한되면서 해당 지역의 수출 물량이 급감했습니다.


해당 보고서는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 시설 공격이 디젤 공급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IEA는 9월 초 미국 내 디젤 가격이 배럴당 200달러를 넘어섰으며, 이는 전쟁 전 수준보다 94% 높은 가격이라고 밝혔습니다. 디젤 및 유사 연료는 전 세계 석유 수요의 거의 30%를 차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