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1일 일요일

남은 삶에 위안(慰安)을 얻으라.

 

너무 애쓰지마라...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간다.

물 흐르듯 때로는 그대로 맡겨두면 결국(結局)은 흘러 흘러 
제가 알아서 바다로 흘러간다.

너무 조급(躁急)해 하지 마라... 서두른다고 안될 일이 되고 
되는 일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될 일은 천천히 해도 되는 것이고 안되는 일은 
아무리 애를 써도 되지 않는다.

화내지 마라... 살다보면 나와 너무 다른 
생각 때문에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럴수록 부드럽고 유(幽)해져라... 화를 내면 낼 수록 
결국은 자신만 손해(損害)보고 될일도 안된다.

포기(抛棄)하지 마라... 
아무리 늦게 되도 되는건 되는 것이니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는 순간(瞬間)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세월(歲月)이 지나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사람이 
젤 좋은 사람임을 기억(記憶)한다.

설령, 못마땅한 부분이 있었다 해도 인간미(人間味)가 있었다.

세상(世上)에 넘쳐나는 사람 중에 진정, 
인간미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나이들면 혼자있는 시간(時間)이 많아진다.

가급적(可及的) 혼자있는 시간보다 여럿이 있는 시간을 즐겨라. 
그리고 무엇보다 산책(散策)과 사색(思索)을 즐겨라.!

건강(健康)이 제일(第一)이라지만 건강도 나이와 함께 저물어 간다.

당신의 나이에 비례(比例)하는 건강을 억지로 되돌리지 마라. 
걸어라, 낙천적(樂天的)이 되라, 평안(平安)하라.!

당신 나이 만큼에 탈없으면 건강한 것이다.

스스로 이것을 실천(實踐)하는 자는 그나마 
남은 삶의 위안을 얻으리라...!

(모셔온 글)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겨두는 지혜를 얻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집안의 불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하듯, 내 마음의 공간을 어지럽히던 수많은 인연과 쓸데없는 걱정들도 조용히 걷어냅니다.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마주 앉아 침묵해도 어색하지 않은 오랜 동반자와의 시간,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든든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소식을 멀리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가득 찹니다.

큰 욕심 없이 내 몸을 움직이고, 내 속도에 맞춰 하루를 채워가는 이 현실적인 평온함이야말로 지금 나에게 가장 알맞은 행복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 아버지도 돌보고 있습니다. 모두가 동시에 저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에요.

 

저자는 자녀와 부모님을 모두 돌봐야 하는 '샌드위치 세대'에 속해 있다.

저는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동시에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 아버지를 돌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점차 자립 능력을 잃어가시는 동안, 제 아이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가며 자립심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슬픔, 기억, 그리고 가족 관계에 대한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2018년 12월, 어머니께서 전화 통화를 하자며 가족 단체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어머니 손에는 아버지의 검사 결과가 들려 있었고,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께 그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셨던 참이었습니다.

평생 타인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오셨던 아버지께서는 정작 자식들에게 그 소식을 직접 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인지 기능 검사 점수는 30점 만점에 17점이었습니다.

2019년 11월, 마침내 진단 결과가 공식화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첫째 아이를 임신한 지 8개월 된 상태로 브루클린에 살고 있었는데, 남편과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중 그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알츠하이머에 걸리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분이 진단을 받으셨을 때 연세는 예순여섯이셨습니다.

제 아버지는 조용한 분이셨습니다. 더없이 겸손하셨죠.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 진료소를 세우고, 과테말라로 건너가 고아원을 짓고 오지 마을에 의료 봉사를 펼치셨으며, 지역 노숙인 쉼터에서도 봉사활동을 하셨던 존경받는 이비인후과 의사셨습니다. 그 모든 일을 요란하게 알리지 않고 묵묵히 해내셨습니다.

그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읽고 썼습니다. 일기와 메모, 책의 여백은 온통 그의 생각들로 채워져 있었죠. 글쓰기는 그가 세상을 마주하고 소화해 내는 자신만의 사적인 공간이었습니다. 한편 운동은 정신 건강을 지키는 탈출구였고요. 그는 모든 물건에 제자리를 정해두곤 했습니다. 물건을 쓴 뒤 항상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절대 잃어버릴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죠. 아이들과 함께 집을 정리하며 그 말을 되뇔 때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건강하셨던 아버지는 조기 은퇴 후 불과 6년 만인 66세의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을 앓게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조용히 참으로 훌륭한 일들을 많이 해오셨습니다. 그분의 책상 앞에 앉아보고서야 비로소,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얼마나 많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빠가 점점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요.

지난 추수감사절에 집을 팔기 전에 정리하려고 어릴 적 살던 집에 갔었어요. 아빠에게 책상을 같이 정리해 보자고 했더니, 서류 몇 장을 훑어보시더니 조용히 가버리셨어요. 그래서 저는 책상 옆 바닥에 앉았죠.

커다란 하얀 책상, 아빠가 늘 그랬듯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어요. 카드와 문구, 명언들로 가득 찬 코르크판. 병원 사무실에서 가져온 장식품들. 한평생의 삶이 정성스럽게 정리되어 있었어요.

나는 폴더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폴더마다 '인용구', '책 구상', '성경 공부', '삶의 목적', '환자들의 감사 편지'처럼 아주 구체적인 제목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가 적어 둔 모든 글을 읽고,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치고, 여백에 휘갈겨 쓴 메모까지 꼼꼼히 살폈다. 나는 그의 기억을 간직하는 사람이 되어, 더 이상 대화로는 알 수 없었던 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아직도 너무나 많았다.

아버지는 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으셨다. 이제 나는 셋째를 임신한 채, 자아를 찾아가는 두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고 계신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

나는 양방향으로 육아를 하고 있다.

저녁 식사 때면 3살배기 아이의 음식을 잘라주며 자리에 앉아 먹으라고 일러준 뒤, 몸을 돌려 아버지의 식사도 똑같이 챙겨드린다.

아이들의 학교 등록을 준비하는 동시에 아버지의 돌봄 서비스도 알아본다.

모두가 안전하고 끼니를 거르지 않으며 혼자 방치되지 않도록 살핀다. 한쪽의 성장과 다른 한쪽의 쇠락을 동시에 지켜본다. 마치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해야만 하는 기분이다. 때로는 정말로 생사가 그에 달려 있기도 하니까.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자연스럽게 상호작용을 시작하지 못하신다. 그래서 내가 그 만남을 주선한다. 식탁 위에 장난감을 올려두고, 책을 든 베켓을 할아버지 곁에 앉힌다. 누군가 흥미를 잃고 자리를 뜨기 전까지 이어지는 그 짧은 5분의 시간을 나는 간절히 붙잡는다.

아빠가 여섯 살짜리 딸아이와 함께 색칠놀이를 할 때면, 존경받는 외과의사였던 아빠의 모습과 선 안에 색칠하려고 애쓰는 아빠의 모습이 번갈아 떠오릅니다. 딸아이가 고개를 들어 아빠가 왜 그렇게 색칠하냐고 묻습니다. 저는 딸에게 창의적인 표현이란 원래 그런 거라고,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말해줍니다. 아빠가 창피해하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딸아이에게 아빠의 말을 이해시켜 주는 거죠.

아이들은 아빠의 특이한 행동들을 귀엽고 재밌다고 생각하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둘이 있을 때는 아이들이 더 어려운 질문을 합니다. 아빠처럼 늙을 거예요? 아빠는 왜 칼을 물에 넣어요? 저는 이제 아이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설명해 주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시작과 끝, 그 사이에 서 있다. 

지난여름,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호숫가 별장에서 부모님은 잠시 머물다 가셔야 했다. 떠나실 시간이 되어 온 가족이 진입로에 섰고, 우리는 부모님의 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 아이들이 그곳에서 막 추억을 쌓아가기 시작한 바로 그때, 아버지는 다시는 그곳에 오지 못하실 것만 같다.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동안, 아버지의 인생에서는 끊임없이 다른 장들이 닫히고 있다. 그렇게 나는 시작과 끝, 그 사이에 놓여 있다.

대개 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남몰래 슬픔을 삼킵니다. 아빠에게 늘 슬퍼하는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거든요. 아이들에게는 함께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고요. 그래서 감정을 억누르곤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부모님이 다녀가신 뒤 아이들을 재우다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바이올렛이 왜 우느냐고 묻더군요. 나는 아빠 생각에 슬퍼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엄마, 한 가지 알려줄 게 있어요. 엄마한테는 마음이 있잖아요. 할아버지는 그 마음을 들여다보실 거예요."


나는 아이를 좀 더 꼭 껴안으며 속삭였습니다. "네 말이 맞아."


아빠는 늘 관계가 전부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나 또한 아이들이 그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91세이신데도 여전히 매일 활발하게 지내십니다. 어머니가 거주하시는 곳은 생활 보조 시설(assisted living)보다 비용이 저렴합니다.

 

마거릿 버크(Margaret Burke) 씨의 91세 어머니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Myrtle Beach)의 한 콘도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대만에 거주하는 마거릿 버크 씨는 머틀비치에 계신 어머니의 돌봄 과정을 원격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버크 씨의 어머니는 식사, 다양한 활동, 공동체 행사 등을 제공하는 합리적인 가격의 콘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버크 씨는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는 방식이 잘 운영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습니다.

이 글은 대만에 거주하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에 있는 91세 어머니를 원격으로 돌보고 있는 마거릿 버크(62세) 씨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변리사로 (patent attorney)일하는 버크 씨는 이러한 생활 방식 덕분에 어머니는 콘도에서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고, 자신은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향후 자신의 장기 요양 비용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인터뷰 내용은 분량 조절과 명확한 전달을 위해 일부 편집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18년 동안 아시아에서 변리사로 일해왔습니다. 2000년대 초반 기술주 폭락 사태 당시 저는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곳을 떠나고 싶어 도쿄에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그 후 홍콩으로 이주했다가 가족 문제로 잠시 미국에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를 버지니아주의 한 실버타운(은퇴자 공동체)에 모신 뒤 다시 홍콩으로 가서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대만에 지사가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지난 수년간 가족들의 주거 문제를 돕는 일을 해왔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싱글맘으로서 딸을 키울 때 큰 도움을 주셨기에 저에게는 정말 고마운 분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최적의 거처를 찾아드리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주 저렴한 가격의 콘도로 이사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롱아일랜드의 한 마을에서 20년 넘게 법률 보조원으로 일하셨으며, 현재는 소액의 연금과 사회보장연금을 받고 계십니다. 올해 91세이신 어머니께서는 85세 때 머틀 비치(Myrtle Beach)에 있는 콘도로 거처를 옮기셨습니다. 교통 체증이 심하고 경쟁이 치열한 북부 버지니아 생활에서 벗어나 바닷가 가까이에서 지내고 싶어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소유의 일반적인 콘도이지만, 매일 식사(주로 저녁 식사)가 제공되며 슈퍼마켓행 셔틀버스나 야외 활동 같은 다양한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고급 단지는 아니며, 콘도 매매가(보통 4만~7만 달러)와 월 관리비가 모두 매우 저렴한 편입니다. 월 비용은 스튜디오(원룸형)의 경우 1,000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이고 침실 2개짜리 유닛은 약 2,500달러 정도인데, 이 비용에는 식사, 모든 공과금, 각종 활동 프로그램, 수영장 및 기타 편의 시설 이용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지 내에서는 원예 활동, 운동 수업, 성경 공부 모임, 영화 감상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됩니다.

Margaret Burke hopes to move back to the US, close to her mom.Margaret Burke

저는 약 6만 2천 달러를 들여 그녀의 콘도를 마련해 주었고 명의도 그녀 앞으로 했습니다. 그녀는 매달 관리비를 직접 납부해 왔는데, 처음 입주했을 때는 1,700달러였으나 더 넓은 평수로 옮기면서 지금은 월 2,000달러가 넘습니다. 침실이 두 개 있는 이 아파트의 면적은 약 860제곱피트(약 24평) 정도 됩니다. 그 외의 돈은 자동차 보험료 같은 생활비로 쓰는데, 최근에는 운전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검소하게 생활해 왔고,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활발하게 움직이며 쇼핑이나 산책을 즐기거나 박물관으로 당일치기 나들이를 가곤 합니다. 가끔은 친구들과 함께 코바늘 뜨개질을 하기도 하고요. 저와 그녀는 이곳 주민들의 가족들과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곳은 찾아보기 매우 드뭅니다.

 버지니아 등 전국적으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콘도 단지가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직접 알아보기 전까지는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앞으로 이런 주거 형태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이곳은 외부 관리 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이 아니라 콘도 자체적으로 관리 및 유지보수 인력을 직접 고용하기 때문에 비용을 낮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소수의 기술 인력이 시설 운영과 관리를 전담합니다.

이곳에는 100세 넘게 장수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작년에 103세로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 친구분도 그중 한 분이셨죠. 입주민들은 지역사회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며, 저마다 흥미진진한 인생을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거동이나 생활에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분들은 외부 간병인을 부르기도 하고,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 지원) 혜택을 받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시스티드 리빙(생활 보조형 요양 시설)'을 경험해 보았다가 그곳 생활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신 분들도 더러 있습니다.

저도 이곳에 집 한 채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뇌종양으로 투병하시던 형님을 위해 구입했던 곳인데, 형님은 그곳에서 1년 반 정도 지내시다 지난 12월에 돌아가셨습니다. 형님에게도 그곳에서의 생활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저 또한 형님을 돌봐드리는 동안 그곳에서 몇 달간 함께 지냈습니다. 덕분에 90대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시는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형님이 사시던 집에 새로 입주하신 93세 은퇴 목사님도 그런 분 중 한 분이시죠.

어머니가 계신 곳의 입주민을 포함해 많은 분이 비용 문제로 '어시스티드 리빙' 시설에 들어갈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건강이 악화되면 자녀들이 돕거나 때로는 간병인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지난 수년간 지켜본 바로는, 과거에는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주거 단지였던 곳들이 점차 요양 시설 형태로 통합되면서 비용이 상당히 많이 올랐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올여름이나 가을쯤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어머니께서 딱히 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지만, 제가 함께하고 싶어서 내린 결정입니다. 어머니는 성격이 정말 유쾌하신 ​​분이라 같이 있으면 즐겁거든요. 이곳 영주권이 있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이곳에 머물렀던 건 유방암 치료 때문이었는데, 대만의 의료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합니다. 정말 효율적이어서 진단부터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13일밖에 걸리지 않았죠.


덕분에 지구 반대편에 살면서도 어머니가 좋은 환경에서 보살핌을 받고 계시다는 사실에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어머니 연세가 되었을 때 이런 환경에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맨해튼에 사는 서른일곱 살 난 딸이 저를 돌보겠다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알기에, 남은 순간순간을 소중히 즐기고 싶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직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이실 수 있을 때 함께 당일치기 여행이나 드라이브를 다닐 계획입니다.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업무를 볼 수 있으니까요.


다른 분들도 지난 6년 동안 제가 누렸던 것과 같은 마음의 평화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사는 삶과 요양 시설에 의존하는 삶, 그 사이 어딘가에 대부분의 중산층 노인도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의 '제3의 길'이 존재하니까요.


고요함이 주는 자유



 우리는 종종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간다. 무엇을 가졌는지 보여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하며,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것이 삶의 중심이 될 때 마음은 오히려 더 많은 것에 얽매인다.

가진 것을 자랑하는 순간에는 비교와 경쟁이 따라오고, 아픔을 과시하는 순간에는 타인의 반응에 마음이 묶이기 쉽습니다. 반면 깊은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무엇을 견뎌왔는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알고 있기 때문에 조용할 수 있습니다.

깊은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 그들은 가진 것을 굳이 자랑하지 않는다. 자신이 쌓아온 시간과 노력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타인의 박수로 그것을 확인받으려 하지 않는다. 또한 아픔을 함부로 떠벌리지 않는다. 상처를 숨긴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소비하거나 과시하지 않는다는 의미에 가깝다.

삶의 깊이는 말의 크기보다 침묵의 밀도에서 드러난다. 많이 드러낼수록 자유로워질 것 같지만, 때로는 그 반대다. 보여주기 위해 애쓸수록 시선에 갇히고, 설명하려 할수록 평가에 흔들린다.

고요함은 비어 있음이 아니다. 스스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태도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는 더 많이 말하는 데 있지 않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있다.

세상이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라고 말하는 시대다. 그럴수록 조용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눈길이 간다. 가진 것을 자랑하지 않고, 아픈 것을 떠벌리지 않는 삶. 어쩌면 성숙이란 화려하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도 그 고요함 속에서 가장 자유롭고 평안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2026년 6월 20일 토요일

인생이라는 필드를 걷는 법: 망설임을 비우고 용기를 채우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싶을 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속도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빨라집니다. 문득 뒤돌아보면 치열하게 달려온 무수한  세월이 스쳐 지나가고, 이제는 삶의 많은 것들을 비워내며 고요하고 단순한 일상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고 미니멀한 삶을 지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변의 복잡한 인맥이나 불필요한 욕심들을 덜어내게 됩니다. 하지만 삶의 군더더기를 비워내는 것과, 하고 싶은 일 앞에서 소심하게 마음을 접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인생의 참된 지혜는 '비워야 할 것'은 과감히 비우고, '원하는 것' 앞에서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내딛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매주 두세 번, 초록빛 골프 필드 위에 서면 인생의 축소판을 보는 듯합니다. 매 홀마다 우리는 선택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공이 해저드에 빠지면 어쩌지?', '오비(OB)가 나면 부끄러운데…' 하는 소심한 걱정에 사로잡히면 몸은 잔뜩 굳어버리고 스윙은 엉망이 되기 일쑤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며 소극적으로 휘두른 채는 결코 좋은 샷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설령 공이 벙커에 빠질지언정,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믿고 과감하게 스윙을 날려야 후련함이 남습니다. 미스 샷은 그 홀이 끝나면 그만이지만, 쳐보지도 못하고 포기한 샷에 대한 미련은 라운딩이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도니까요.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와 함께 새로운 운동을 시작해 볼까 고민할 때, 혹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이 나이에 굳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경험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더 조심스러워지고 소심해지기 쉽습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혹은 체면을 지키려고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가고 싶은 길을 돌아서곤 합니다.

하지만 90세를 맞이한 오랜 지인의 삶을 바라보며, 혹은 매일 아침  걸으며 마주하는 자연을 보며 다시금 깨닫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오늘'이라는 시간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실패는 순간의 해프닝일 뿐입니다. 엉뚱한 길로 들어서면 잠시 발을 돌리면 되고, 서툰 도전으로 넘어지면 툭툭 털고 일어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삶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따라와 우리를 붙잡습니다.

그러니 소심하게 굴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도 아깝습니다. 가슴속에 품은 작은 울림이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과감하게 샷을 날려야 합니다. 내 남은 삶의 필드 위에서 가장 후회 없는 스윙을 하며 걸어갈 수 있기를, 그리하여 매 순간을 온전한 나의 걸음으로 채워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

엉킨 실타래를 풀 때 드러나는 날것의 얼굴

관계의 본질이 드러나는 순간

모든 것이 순조롭고 감정이 좋을 때는 누구나 너그럽고 다정할 수 있습니다. 그때의 호의는 그리 큰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등이 생기고, 상처를 주고받고, 감정의 밑바닥이 드러났을 때—즉, 화해해야 하는 순간에는 그 사람의 진짜 밑천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자존심을 내려놓는 용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깊은 내면의 단단함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 상대를 향한 존중: 화해의 과정에서 상대를 얼마나 배려하고 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는지를 보면, 평소의 다정함이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 감정의 군더더기를 비워내는 힘: 해묵은 앙금을 붙잡고 상대를 처벌하려 하기보다, 관계의 소중함을 위해 미움과 원망을 기꺼이 비워내는(비움) 능력이기도 합니다.

"좋을 때의 미소는 누구나 지을 수 있지만, 엉킨 실타래를 풀 때의 손길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다."

 


 엉킨 실타래를 풀 때 드러나는 날것의 얼굴

인생이 봄날 같고 매사가 뜻대로 풀릴 때, 타인에게 친절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머니가 넉넉하고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는 누구나 넓은 아량과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다. 그 시절의 호의는 사실 큰 비용이 들지 않는, 일종의 ‘포장지’와 같다. 그래서 좋은 시절에 나누는 달콤한 말과 다정한 태도만으로는 그 사람의 진짜 알맹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사람의 본색이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진흙탕 같은 순간, 바로 갈등을 겪고 난 뒤 ‘화해를 해야 할 때’다.

갈등의 정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방어 기제를 켠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혹은 손해 보지 않으려고 날카로운 가시를 세운다. 진짜 시험대는 그 뜨거웠던 감정이 한 김 식고, 흩어진 파편을 모아 관계를 복원해야 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현실에서 화해란 결코 아름다운 극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대단히 구차하고, 자존심이 상하며, 내 안의 밑바닥을 똑바로 마주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화해의 순간에 어떤 이는 끝까지 자신의 정당함만을 주장하며 상대에게 항복을 요구한다. 평소에는 그토록 온화하던 사람이, 비틀어진 관계 앞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상대의 기를 꺾으려 들기도 한다. 반면, 어떤 이는 관계의 가치를 위해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을 먼저 내려놓을 줄 안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며 미안함을 건네는 그 무겁고도 담백한 한마디는, 내면이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용기다.

나이가 들고 수많은 관계의 흥망성쇠를 겪을수록, 사람을 보는 안목은 결국 ‘그가 갈등을 어떻게 매듭짓는가’로 수렴된다.

화해를 잘한다는 것은 무조건 참고 덮어두는 유약함이 아니다. 내 안의 억울함과 원망이라는 감정의 군더더기를 기꺼이 비워내고, 엉킨 실타래를 차분히 풀어내려는 이성적 노력이다. 그 과정에서 상대의 거친 언사 속 숨은 상처를 알아채는 지혜가 발현되고, 비로소 인간 대 인간의 진짜 깊이가 증명된다.

좋을 때 잘하는 모습에 마음을 쉽게 내어주지 말아야겠다. 팽팽하게 당겨진 관계의 끈을 느슨하게 늦출 줄 아는 사람, 부서진 조각을 맞출 때 손끝이 따뜻한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오랜 세월을 곁에 두어도 좋을, 진짜 보석 같은 사람이다.

부족함으로 지어 올린 하루

 

완벽한 인생이라는 설계도를 가진 사람은 없다. 만약 그런 설계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삶이 아니라 잘 짜인 기계의 작동 지침서에 가까울 것이다. 현실의 인생은 언제나 사방이 조금씩 비어 있고, 군데군데 금이 가 있으며, 예상치 못한 바람이 들이치는 허름한 집을 닮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우리는 저마다 완벽한 하루를 꿈꿀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없고, 모든 관계가 물 흐르듯 부드러우며, 마음에는 한 점의 불안도 없는 그런 하루. 하지만 현실은 늘 비껴간다. 깜빡 잊은 약속, 뜻대로 되지 않는 몸의 컨디션, 사소한 오해와 서툰 말실수, 그리고 문득 찾아오는 지독한 쓸쓸함까지. 돌아보면 하루는 온통 부족함과 삐걱거림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진짜 삶의 신비는 바로 그 ‘부족함’ 속에서 일어난다.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완전함이 아니라, 모자란 채로 어떻게든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끈기다. 삐걱거리는 무릎을 달래가며 목표한 걸음을 채우는 시간, 서운한 마음을 내려놓고 먼저 건네는 담담한 안부, 비어 있는 통장이나 허전한 마음을 바라보면서도 숨 한 번 깊이 쉬고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 인생은 그 수많은 결핍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저 내 몫의 하루로 받아들이고 살아낸 사람들의 자취다.

다 채우지 못해 헐렁한 하루였어도, 그 안에서 나만의 속도로 숨을 쉬고 묵묵히 자리를 지켜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완벽한 도자기보다 세월의 때가 묻고 금이 간 옹기가 더 정겨운 법이다. 그 틈새로 비로소 타인의 슬픔도 보이고, 내 삶을 향한 따뜻한 시선도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몸과 마음을 이끌고 하루를 살아냈다. 그것은 대단한 승전보는 아닐지라도,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배역을 다한 이들의 가장 현실적이고도 위대한 성취다. 완벽한 인생은 없었다. 다만, 그 수많은 빈틈을 온기 있는 하루하루로 채워온 진짜 인생이 여기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