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그림자가 조금씩 내 발밑으로 모여들고,
한낮의 뜨거웠던 열기가 가만히 식어가는 시간.
나는 지금, 생의 후반이라는 나지막한 언덕에 서 있습니다.
돌아보면 참 치열하게도 달렸습니다.
무엇을 그토록 움켜쥐려 했는지,
손에 쥔 것보다 놓쳐버린 모래알이 더 많았음을
이제야 바람의 촉감으로 배웁니다.
젊은 날의 나에게 성공은 거대한 성벽 같았으나,
오늘의 나에게 삶은 그저 소박한 저녁 숲길 같습니다.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는 것을,
잠시 멈추어도 세상은 제 갈 길을 간다는 것을,
늦게 피어난 꽃이 오래 향기를 머금는다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속도를 늦추고 나니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 하나에도 무게가 있고,
늘 곁에 있어 무심히 지나쳤던 사람의 미소가
삶을 지탱해 준 가장 따뜻한 힘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많은 것을 가지려 애쓰기보다
내게 남아 있는 것들을 오래 바라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한 끼의 식사,
창가에 머무는 오후의 햇살,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 주는 온기 하나가
세상 어떤 영광보다 귀하다는 것을 압니다.
화려한 무대는 언젠가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곳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남은 삶은 타인의 박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독이며 살아가는 고요한 독주회입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수록
노을은 더욱 깊고 아름다운 빛을 품습니다.
사람도 그러한 존재가 아닐까요.
세월이라는 바람을 지나며
조금씩 욕심을 내려놓고,
감사와 이해, 그리고 사랑이라는 향기를 품어 가는 존재.
오늘도 나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천천히 걷는 걸음마다
삶은 더 선명해지고,
마음은 더 깊어집니다.
생의 후반은 끝을 향해 가는 시간이 아니라,
비로소 나답게 살아가는 시간.
가장 깊은 향기는
언제나 저무는 해 질 녘에 퍼지듯,
인생도 가장 아름다운 빛은
생의 후반에서 비로소 완성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