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5일 월요일

짐은 나의 힘이었습니다

 짐이 곧 힘이었던 나날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어깨 위에 놓인 짐들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어느 한순간도 어깨가 가벼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격동의 세월 속에서 마주해야 했던 내 나라의 무게,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짊어져야 했던 가족의 무게, 매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섰던 직장의 무게, 그리고 때로는 마음을 지치게 했던 이웃들과의 관계까지. 어디 그뿐인가요. 젊은 날의  가난과 나이가 들며 하나둘 고장 나는 몸의 신호들, 그리고 가슴 한구석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은 슬픈 이별의 순간들은 늘 삶의 도처에서 우리를 누르는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나를 주저앉힐 것만 같았던 그 무거운 짐들이 사실은 나를 일으켜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짐은 나의 힘이었습니다

그 무거운 것들이 나를 주저앉히는 줄만 알았습니다.

어깨를 짓누르던 내 나라의 무게와 외면할 수 없던 가중(加重)한 가족의 무게, 

매일 아침 눈을 뜨게 하던 직장의 무게와 때로 서글픔을 안겨주던 이웃이라는 무게.

돌아보면 삶의 길목마다 복병처럼 도사리던 가난의 짐과 

야속하게도 허물어져 가던 몸의 짐, 

가슴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긴 슬픈 이별의 짐들이 늘 함께였습니다.

내려놓고 싶어 눈물짓던 밤도 있었습니다. 

날 선 바람에 등이 휘어지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눈부신 역설이여, 

나를 누르던 그 허다한 짐들이 

사실은 대지에 발을 딛고 서게 하던 가장 단단한 중력이었음을 이제야 압니다.

지켜야 할 무거움이 있었기에 

거친 폭풍 속에서도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지 않았고,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가 있었기에 

오늘도 최선을 다해 눈부신 하루를 일구어 왔습니다.

그 무수한 짐들이 나를 키웠고 

그 눈물겨운 무게들이 

오늘의 나를 붙드는 가장 고마운 힘이 되었습니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묵묵히 버텨온 날들,

 어깨 위에 얹힌 거친 흔적들은 내가 살아냈다는,

 참으로 잘 살아왔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훈장입니다.

몰입(Flow)



몰입(Flow). 우리는 흔히 휴식할 시간을 가장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일에서 큰 만족감을 얻기도 합니다. 단, 그 일이 도전적이고 흥미로우며 스스로 잘 해낼 수 있다고 느끼는 일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르죠.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가 제시한 ‘몰입(flow)’의 개념이 바로 이러한 상태를 잘 설명해 줍니다. 몰입의 순간, 우리는 어떤 일에 완전히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됩니다.

조건이 맞을 때 찾아오는 최고의 행복

일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행복한 몰입’이 되기 위해서는 아주 섬세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칙센트미하이는 다음 두 가지 조건이 맞물릴 때 인간이 가장 깊은 몰입을 경험한다고 했습니다.

 [높음] ^  ----------------------------------
       │        불안 (Anxiety)    /
 과    │                        /   몰입 (Flow)
 제    │                       /  (능력과 과제의 균형)
 의    │                      /
       │                     /
 난    │                    /    지루함 (Boredom)
 이    │                   /
 도    │  ----------------------------------
 [낮음] └─────────────────────────────────────────>
         [낮음]          능력 수준          [높음]
  • 과제의 난이도나의 능력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룰 때

  • 과제가 너무 어려우면 불안해지고, 너무 쉬우면 지루함을 느낍니다. 나의 경험과 지혜로 겨우겨우 해결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수준의 일일 때,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됩니다.

비움의 여백을 채우는 능동의 몰입

우리는 늘 입버릇처럼 "이제는 좀 쉬고 싶다"고 말합니다. 복잡한 관계를 들이치고, 가득 찬 마음의 짐을 비워내며,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요한 상태에 도달하기를 갈망하곤 합니다. 복잡하게 얽힌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단순하게 살아가는 삶, 그것은 분명 나이가 들수록 지향하게 되는 삶의 귀한 덕목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흥미로운 정신의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막상 모든 의무를 내려놓고 완벽한 자유와 마주했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평온함보다 오히려 낯선 공허함이나 무기력일 때가 많습니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하얀 도화지가 처음에는 편안함을 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막막한 침묵으로 다가오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빈 상태' 그 자체에 머물지 않습니다.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겉으로 보이는 분주함을 덜어낸 그 깨끗한 여백 위에 ‘내가 스스로 선택한 단 하나의 일’을 정성스럽게 올려놓고 온전히 몰입할 때 찾아옵니다.

젊은 날의 일이 생계를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이자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과정이었다면, 삶의 연륜이 쌓인 지금의 일은 온전히 나의 내면적 기준을 따르는 고결한 행위가 됩니다. 그것은 거창한 사회적 성취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집을 나서 주변을 천천히 거니는 발걸음일 수도 있고, 잔디 위에서 작은 공을 쫓으며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일 수도 있으며, 오랜 세월 쌓아온 지혜를 한 줄의 글로 담아내는 고요한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능동적인 활동’은 정신의 무질서를 막아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됩니다. 목표가 명확하고, 내 능력을 적절히 발휘할 수 있는 과제에 집중할 때, 우리의 마음속 잡념과 쓸데없는 불안은 자연스럽게 증발해 버립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무언가에 푹 빠져들었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밀려오는 충만함, 그것이 바로 몰입이 주는 진짜 휴식입니다.

결국 삶을 단순하게 만든다는 것은 인생을 텅 비워두는 것이 아닙니다.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걷어내고, 내가 정말로 몰입할 수 있는 본질적인 것들만 남기는 과정입니다.

완벽한 비움 끝에 찾아오는 것은 멈춤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온 정신을 쏟을 수 있는 최고의 집중 상태입니다. 그렇게 내면의 질서를 잡아가며 스스로 선택한 여정을 묵묵히 걸어갈 때, 우리는 나이 듦의 무료함 대신 매일 새로워지는 삶의 경이로움을 마주하게 됩니다.

2026년 6월 14일 일요일

인생은 어차피 모순투성이다

 


남들은 다 완벽하게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SNS에는 성공한 순간만 올라오고, 주변 사람들은 다 자기 길을 잘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나만 실수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누구나 실수한다. 누구나 후회할 선택을 하고, 밤에 이불을 차며 부끄러워할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불안과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다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 자체가 모순투성이다. 안정적인 삶을 원하면서도 자유를 꿈꾸고, 성공을 바라면서도 도전을 두려워한다.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다가도 혼자 있고 싶어지고, 현재를 즐기고 싶으면서도 미래를 걱정한다. 우리는 늘 서로 다른 마음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에게만 완벽함을 요구한다. 실수하면 안 되고, 흔들리면 안 되고,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애초에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만의 모순과 부족함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완벽해지는 일이 아니라 인정하는 일이다. 인생은 원래 모순투성이고, 사람은 원래 실수하는 존재라는 사실 말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끝없는 비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보다, 어제의 나보다 한 걸음 나아졌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인생은 완벽한 사람들의 경주가 아니다. 부족함과 실수를 안고도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니 넘어졌다면 너무 오래 자책하지 말자. 실수는 당신만 하는 것이 아니다. 툭 털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 인생은 어차피 모순투성이니까.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글쓴이

엔도 슈사쿠 遠藤周作

그는 192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1935년 세례를 받았다. 1950년 6월 일본 전후 첫 프랑스 유학생으로, 리옹 대학에 입학해 프랑스 가톨릭 문학을 공부했다. 1955년 발표한 <백색인>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바다와 독약>으로 신초사 문학상과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1966년 <침묵>으로 다니자키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엔도 슈사쿠는 일본의 대표적인 가톨릭 문학 작가로서 평생 동안 신과 구원이라는 문제에 천착했다.

재미없는 성경을 한 번 더 읽는 방법

 

Q. 성경을 읽으려고 펼쳤지만, 정말 재미가 없습니다. 그 재미없는 책을 어떻게 읽었습니까? 성경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문제없이 읽는다 해도 재미는 없겠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쓴 책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쓴 것이라고 할지라도 성경은 ‘문학’이기도 합니다. 즉 현실의 소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쓰는 사람의 이념에 의해 감쪽같이 변화될 수 있는 것을 문학이라고 한다면, 초대 그리스도교 저자들에 의하여 어떤 의미에서 소재를 변용시켜 창작한 것이 성경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학생 시절 나도 성경을 읽으면서 재미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성경이 재미없는 이유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읽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을 중심으로 읽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달라붙어 ‘선생님과 함께 죽겠습니다.’ 라고 말했던 제자들도 최후에 로마군이 왔을 때는 거미 새끼가 흩어지듯 사방으로 달아났습니다. 제자 중의 우두머리인 베드로마저도 예수님의 예언대로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나는 그런 사람(예수님) 모른다.’ 고 말했지요. ‘아, 이 정도라면 나와 별로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때의 베드로에게서 나 자신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분명히 말해서 예수님의 사도들은 모두 유다였습니다. 성경에는 유다만 배신자로 되어 있지만 모두 유다와 같은 점이 있었습니다.

복음서가 쓰인 순서는 마르코 복음서가 제일 오래 되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마태오, 루카 순입니다. 시대가 내려갈수록 예루살렘 그리스도교의 중심인물이던 베드로의 배신은 점점 희석되고 있습니다. 즉 수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읽다 보면 상당한 재미가 느껴집니다. 제일 오래된 마르코 복음서에는 예수님을 배신한 것이 분명히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배신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초대 교회를 세우고 마지막에는 모두 순교합니다. 이와 같이 그분을 배신할 정도의 겁쟁이들이 어떻게 용감한 인간이 되었을까요? 용감한 인간이라는 말이 좀 이상하지만, 비유를 굳이 사용한다면 겁쟁이가 어떻게 용감한 인간으로 바뀌었는가 하는 것이 내게는 성경에서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약한 인간 인간을 강한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그 무엇 X, 무엇인가가 거기에 작용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읽다 보니 ‘글쎄?’ 하는 하나의 분명한 주제 theme 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겁쟁이가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가 말입니다.

이와 같이 나는 스스로를 그들과 겹쳐 봄으로써 성경을 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성경에 커다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성경은 있는 그대로 예수님의 생애를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그분의 말씀에 대한 전승 傳承 을 담당한 공동체 共同體 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의 말을 수집한 ‘예수 어록’ 語錄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던 듯합니다. 이 예수 어록(학자들은 이것을 Q라고 합니다)과 전승을 조합하고 여기에 그 공동체의 신앙 이념을 투입하여 쓴 것이 마르코 복음입니다. 마르코 복음을 참고로 하면서 Q 자료와 그밖에 따로 있었던 M 자료를 참조하여 역시 자기 공동체의 신앙 이념으로 쓴 것이 루카 복음과 마태오 복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에 진짜로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이 반드시 그대로 쓰여 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즉 초대 교회의 공통된 기원을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집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근대에 들어와서 예수님의 진짜 말씀이나 행동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신약 新約 성경 연구가 실시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 손에 들어온 최초의 성경은 그리스어로 된 번역판이었으므로 그 중에서 아람어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끄집어내고, 또한 문맥 등에서 그것이 예수 어록에 있던 것이겠지 또는 이 부분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신격화하고 있으니 초대 교회의 이념에 의하여 쓰인 것이겠지 하는 식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런 작업에서 학자들은 초대 교회의 이념을 발견하고, 또한 배후에 있는 예수님의 진짜 생각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도 추정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더 분명히 말해 그들의 시점에서 성경을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므로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신약 성경에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쓰여 있으므로 예수님의 탄생지를 베들레헴으로 가져온 것은 아닐까 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해부해 나가면서 학자들은 진짜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지 않았다는 확증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12월 25일에 탄생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12월설, 3월설, 또는 8월설까지 있었습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나자렛에서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자렛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은 전국을 여행하며 떠도는 순회 巡廻 노동자였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예수님에게 형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형제는 사촌이었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동정녀’ 라는 동정녀 잉태설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에서는 형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사촌까지도 전부 형제라고 부르기 때문에 어느 쪽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추리 소설같이 성경을 읽는 것에서 출발하면 흥미가 배가 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현대 성서학자가 쓴 책을 상당량 읽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나 개인의 성경읽기

 

성경에는 그리스도가 곧 죽는다고 몇 번이나 예고하고 예고대로 되었는데도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실제적인 생애를 써 놓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초대 교회의 사고방식을 투영(이를 케리그마 Kerygma, 즉 신앙 고백이라고 합니다) 한 신앙 고백을 쓴 것으로 창작이라고 생각해도 좋은 정도입니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가 과연 있었는지 없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지 않고 돌아가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알면서 돌아가셨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제자에게 과연 알렸었는지 어쨌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고해 놓고 나중에 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했는가 묻는다면 나는 곤란해집니다.

옛날 일부 성직자들 중에는 이것을 억지로 짜 맞추듯이 설명하는 신부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어서 교회를 떠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모릅니다.’ 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내가 그곳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예수님의 진짜 심리를 알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마르코 복음, 마태오 복음, 루카 복음에 전부 똑같이 이야기가 쓰여 있다면 모를까, 같은 이야기인데도 서로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 수난의 날은 날짜마저도 서로 다릅니다. 또한 요한 복음에는 앞의 세 복음에 나와 있지도 않은 내용이 불쑥불쑥 나오기도 합니다. 어는 것이 진짜 정확한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이용한 자료가 공통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초대 그리스도 교회는 갈릴래아 파 라든가 예루살렘 파 라든가 기타 셀 수 없이 많은 그룹이 있었고, 이들 각각은 자신들의 신앙 고백을 예수님 상 像 에 반영시켰다고 합니다.  마르코 복음은 갈릴래아 파 신앙의 반영입니다. 또한 예루살렘 파가 있었으며, 이들의 신앙은 루카 복음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서학의 발전과 함께 정확한 예수님 전 傳 은 점점 더 쓰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이것이 진짜라고 생각해 왔던 예수님을 다시 생각해야 했으니까요.

아카이와 사카에 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는 시나 린조(1911~1973 소설가)에게 세례를 주었던 분입니다. 아카이와 목사는 이와 같은 근대의 성경 연구를 알게 된 후 <그리스도교 탈출기> 라는 책을 쓰고는 그리스도교를 버렸습니다. 그 정도로 충격이 컸던 것입니다. 내가 그러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소설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Q. 성경이 예수님의 생애나 말씀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충격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지금 말한 대로 그것은 내가 소설가였기 때문입니다. 소설가로서 나는 실재의 사실을 사용하여 사실을 초월 超越 하는 세계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초월하는 세계는 인간에게 사실보다 더 진실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확신을 갖지 못했다면 작가일 수 없었겠지요. 성경을 읽었을 때도 그와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19세기 이후의 성서학자들의 노력에 의하여 우리는 성경이 반드시 사실 그대로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은 내 소설과 같이 성경 저자들 (마르코, 마태오, 루카, 요한) 이 자기들의 신앙 이념에 근거하여 사실을 재구성한 것이고, 사실이 아닐지라도 인간들의 꿈을 불어넣어 (그들이 수집하여 성경에 삽입한 예수님 전승은 사람들의 기원이나 꿈이기도 했다고 생각되므로) 사실들을 나열한 것 이상으로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그 불어넣은 생명에 소설가로서 흥미를 가졌던 것입니다.

 

 

 

Q.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구체적으로 말입니까? 예를 들어 예수님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12월 25일에 태어났는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많은 성서학자들은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지요. 유다인들은 구세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전설을 오랫동안 믿어 왔으며, 그것이 구약에 쓰여 있으니까 그것을 신약 성경에 사용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설을 인정함과 동시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탄생시키고자 원했던 그 기원 쪽에 보다 무게를 둡니다. 예수님 탄생의 바람직한 이미지라고 할까? 예수님 탄생일에는 정설이 없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겨울로 정했습니다. 성탄절의 이미지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성탄절 이미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 구세주가 마구간에서 말똥으로 더러워진 장소에서 탄생했다는 이미지입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자기 마음속 마구간처럼 더러운 장소에서 예수님을 찾았다’는 내밀한 우리 욕망의 표현이지 않을까요? 우리 마음속 마구간과 같이 더러운 장소, 그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아뢰야식이 아닐까요? 아뢰야식은 꺼림칙한 우리 욕망이 가득 차 있으며 말똥으로 더럽혀진 냄새 가득한 무명 無明 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순진한 어린아이가 태어난다고, 예수님이 태어난다고, 그리고 그 냄새 나는 무명의 장소를 정화해 준다는 바람이 성탄절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이미지는 성탄절을 눈 내리는 12월 25일로 한 것입니다. 눈은 더럽혀진 것을 순화시키고 순백으로 만듭니다.

그런 생각들에 이르면, 나는 왜 사람들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예수님 탄생시킨 이야기를 만들어 냈는지 절실하게 알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 영혼의 염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영혼의 염원을 나타내는 동시에 사실을 기록하는 것보다 더욱 인간적인 진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믿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안다는 것과 다르지요. 소설가로서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때문에 아카이와 처럼 그리스도교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 역시 위기는 있었지요. 그 위기는 <사해 부근에서> 라는 내 소설에 농도 짙게 배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탄생> 을 쓰면서 겨우 그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Q. <예수의 생애>는 일본적 종교 감각이랄 지 정토진종 淨土眞宗 적이랄 지 예수님을 왜곡했다는 비평이 있는데 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런 질문을 반드시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나의 예수님 상은 내가 생각하는 일본적 종교 의식(서구의 부성적 종교의식과는 다른 모성적 종교 의식) 으로 포착한 예수님 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예수님을 왜곡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럼 진짜 예수님 상을 어떻게 붙들 수 있을까요. 전에 말씀 드린 대로 현대의 신약 성서학에서는 많은 연구 결과, 성경에는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 상이 쓰여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초대 교회에도 각 그룹에 따라 각각의 예수님 상과 예수론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최근에 판명되었습니다. 각 그룹은 각각의 신앙 형태로 예수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마르코 복음이나 요한 복음이 된 갓이라는 사실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형대에도 여러 가지 예수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의 성서학을 근간으로 일본에서도 야기 세이이치 나 아라이 사사구, 다가와 겐조 등의 뛰어난 학자들도 예수론을 섰습니다. 아마 그분들도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 상’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들 역시 자신의 마음의 문제에 예수님을 끌어 붙여서 예수님 상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에서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 있어서 나의 경우도 같습니다. 야기는 에고이즘을 버린 통합 의 장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아라이 는 트로크메 E. Trocme나 타이센 G. Theissen 등과 같이 문화 사회학 연구를 거쳐 예수님을 당신의 유다교가 돌보지 않은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했던 해방론자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인 나는 작가로서의 문제로 예수님 상을 그렸습니다. 작가로서의 나의 문제의식이 일본인의 종교 의식으로 예수님을 포착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생각하기 위하여 일본인 소설가인 내가 당연히 하지 않으면 안 될 내 개인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현대 미국인의 은퇴 생활은 온라인에서 이루어집니다.

 골프장은 잊으세요. 요즘 미국 노년층은 앱을 만지작거리거나 AI와 대화하며 은퇴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브라이언 레젠데스(Brian Rezendes)는 자신의 은퇴 생활이 AI 에이전트, 알고리즘, API로 채워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물론 아내와 함께 떠나는 가끔의 휴가도 포함해서 말이죠.

수영장 관련 사업을 운영했던 레젠데스는 지난 4월, 노스다코타 시골 지역의 소매업 일선에서 은퇴했습니다. 여느 은퇴자들과 마찬가지로, 64세인 그 역시 은퇴 후의 삶을 휴식과 여행, 그리고 활기찬 활동으로 채워질 시기로 그렸습니다. 챗봇과 대화하고, '바이브 코딩(vibe coding)'으로 웹사이트를 만들거나 유튜브 채널을 구축하는 일에 깊이 빠져들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죠. 기술에 늘 관심은 있었지만, AI에 심취하기 시작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이면의 복잡한 기술적 구조까지 깊이 파고든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요즘 그는 현실 세계의 부름이 있기 전까지는 거의 모든 시간을 앱을 만드는 데 쏟고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아내가 좀 질투하기도 해요." 레젠데스가 말합니다.

은퇴 생활이 디지털화되었습니다. 최근 인터뷰에 응한 15명의 미국 은퇴자들은 자신과 친구들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지낸다고 털어놓았는데,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집안을 정리하는 데 쓸 수도 있었던 시간은 최고의 AI 도구를 익히고, 기술에 밝은 베이비부머 세 명의 표현을 빌리자면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해외로 이주한 은퇴자들 중 일부는 해변가 거주 지역의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기술이 큰 화두라고 전했습니다. 은퇴자 커뮤니티에서는 수채화 수업 대신 AI 교육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골프장 대신 AI 기반 사업을 시작하는 일이 늘었고, 챗봇 '챗GPT(ChatGPT)'는 새로운 간호 보조사 역할을 합니다. 로봇은 일부 노년층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단짝 친구가 되었습니다.

디 험프리(Dee Humphrey)도 그중 한 명입니다. 뉴욕주 스키넥터디(Schenectady)에 거주하는 73세의 그녀는 '엘리큐(ElliQ)'라는 반려 로봇을 3년 넘게 사용해 왔습니다. 현재 새 버전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로봇과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금단 증상 같은 것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

은퇴 생활의 새로운 풍경이 단지 화면 중독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변화 중 일부는 인생의 새로운 단계를 맞이한 노년층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오스틴에 거주하는 에드워드 페리(72세)는 말기 암 진단을 받은 후, 건강 관리나 가족의 삶에 더 충실히 함께할 방법을 찾는 등 "남은 시간 동안 풍요롭고 충만한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 AI를 활용했다고 말했습니다.

Edward Perry has tried to maintain a balance between AI and his disconnected life.Edward Perry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곳도 늘었지만, 이런 신기술을 활용하면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레젠데스(Rezendes) 씨의 말이다.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될 위험성을 인식하는 이들도 많았다. 대다수는 AI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주체성을 잃거나 자칫 잘못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기술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신체 활동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수십 년간 일한 끝에 이제는 여유를 즐겨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맥북(MacBook)을 덮어두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언급하는 이들도 있었다.

Z세대가 인터넷 환경에서 성장한 첫 세대라면, 베이비부머 세대는 인터넷과 함께 은퇴 생활을 보내는 첫 세대가 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예상치 못한,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변화

은퇴자들 사이에서 모든 형태의 스크린 이용 시간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성인의 TV를 통한 유튜브 시청 시간은 2023년에서 2025년 사이 거의 두 배로 늘어났으며, 미국 노년층은 하루 4시간 이상을 스크린 앞에서 보냅니다. AARP 리서치(AARP Research)의 수석 연구 자문위원인 브리트니 카쿨라(Brittne Kakulla)는 해당 단체의 '기술 트렌드(Tech Trends)' 조사 결과, 50세 이상 성인의 스마트폰 보유율이 2016년 55%에서 2025년 90%로 급증했다고 밝혔습니다. 아마도 더 놀라운 점은 AI를 직접 시도해 보는 노년층의 수일 것입니다. AI 사용률은 2024년 18%에서 2025년 30%로 거의 두 배 증가했으며,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이를 활용해 보는 데 관심을 보였습니다.

제가 인터뷰한 기술 활용에 능숙한 거의 모든 노년층은 이러한 도구들이 자신의 은퇴 생활에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었는지에 대해 놀라움을 표했습니다. 81세의 얀 프리드랜더(Jan Friedlander)는 부동산 관련 업무를 할 때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기술에 빠져든 것은 은퇴 후 몇 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암과 황반변성으로 투병하던 그녀는 치료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AI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곧 의류 정보를 검색하거나 휴가 계획을 세우는 등 일상 전반에서 AI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프롬프트(명령어) 활용법에 능숙해지면서 그녀는 자신감을 얻어 동년배들에게 이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항상 새롭게 등장하는 것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어요."라고 프리드랜더는 말합니다.

그녀는 또한 친구인 73세의 팻 스미스(Pat Smith)와 함께 덴버 지역의 5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AI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컨설팅 및 제약 분야에서 기술 관련 경력을 쌓은 스미스는 이 수업에 "배움에 열정적인 은퇴자 학생들"이 많이 모여든다고 전합니다. 스미스는 AI 붐의 양면성을 모두 목격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으로는, 항생제 부작용을 겪은 후 자신의 검사 결과를 챗GPT(ChatGPT)에 입력해 분석해 본 뒤 의사 및 알레르기 전문의와 후속 상담을 진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과 직접 소통하는 고객 서비스가 사라지고 의료 서비스가 온라인 포털 중심으로 변해가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합니다. AI가 일상을 잠식하는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스미스는 자신의 기술 사용 시간을 점검하고, 규칙적인 운동 일정을 지키며, 모자이크 공예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해지거나 요양 시설로 거처를 옮기고, 혹은 시한부 선고를 받는 친구들이 있는데, 저에게도 그런 일이 머지않아 닥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스미스 씨가 말합니다. "지난 몇 년간 즐겨온 일들을 계속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기술과 함께하는 삶

최첨단 기술 도구가 은퇴 후의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많은 미국 노년층이 예상치 못하게 노년기에도 계속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있습니다. 저는 '80세 이상의 현역들(80 Over 80)' 시리즈를 위해 80대 근로자 수십 명을 인터뷰했는데, 그중 상당수는 경제적 사정으로 은퇴하지 못하고 AI 활용 능력이 요구되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에 거주하는 72세의 마샤 스위트(Marcia Sweet) 씨는 로봇 청소기와 스마트 조명 등을 집안 시스템과 완벽하게 연동해 사용하며, 기술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향후 장기 요양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이며, AI가 자신의 사업을 크게 성장시켜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술을 접할 때면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설레고 흥분돼요." 스위트 씨가 말합니다. "거의 중독된 것 같아요."

또 다른 중장년층 근로자들은 경력 후반기에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진로를 모색했습니다. 10년 전, 현재 61세인 로라 노렌(Laura Noren)은 간호사로서의 경력에 ​​지쳐 미시간주의 한 지역 대학에서 IT 수업을 듣는 의외의 선택을 했습니다. 기술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란 18세 동급생들 사이에서 학습 격차를 극복하는 것은 매우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그녀는 이후 프로그래밍 언어와 데이터베이스에 관한 온라인 강의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습니다.

노렌은 "60세에서 늦어도 62세에는 은퇴할 계획이었어요. 남편과 저는 완전히 은퇴해서 다시는 일하지 않고, 콘도로 이사해 여행을 많이 다니며 지낼 생각이었죠."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남편은 교도관 일을 계획보다 일찍 그만두었고, 저도 회사에서 사실상 해고되듯 물러나야 했어요. 그래서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죠."

그때 들었던 수업들이 현재 하고 있는 '아마존 플렉스(Amazon Flex)' 배송 기사 일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기억력 문제와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84세 어머니를 돌보는 데 필요한 유연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머니께 전화번호를 '즐겨찾기'에 추가하는 법이나 사기 피해를 예방하는 법을 알려드릴 때 습득한 기술 지식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으며, 노렌은 앞으로 자신의 기술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기를 희망합니다. 그녀는 여전히 오래전 꿈꿨던 은퇴 생활을 어느 정도 실현하고 싶어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술이 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다시 학업을 시작한 다른 이들은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해 '에이지 테크(age-tech, 노년층을 위한 기술)'를 일상에 도입했다고 말합니다. 63세인 마크 베이어(Mark Bayer)는 60세에 지역 은행 업무에서 은퇴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제 지긋지긋한 줌(Zoom) 회의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으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줌을 통해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젊은 세대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기 위해" 대학에 다시 등록했습니다. 펜실베이니아에 거주하는 베이어는 동급생들이 즉석에서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낼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들은 모두 챗GPT(ChatGPT)를 활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룹 토론을 위한 아이디어 목록을 확인했을 때 그 내용은 그가 직접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그는 AI를 외면하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이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일"임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그는 기술과 단절된 상태를 유지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음을 느낍니다. 잔디를 깎다가 전화가 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전화를 받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아내 또한 마찬가지여서, 때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몇 시간씩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면 교류가 지닌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로봇과 함께하는 은퇴 생활

미국 노년층이 자택이나 요양 시설에서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첨단 기술 도구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의료용 긴급 알림 기기 업체인 '로직마크(LogicMark)'의 CEO 치아린 시몬스(Chia-Lin Simmons)는 돌봄 분야의 기술이 이제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 되었으며, 낙상 사고를 예측하거나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AI는 행동 패턴과 건강 상태를 추적하도록 학습되고 있지만, 때로는 긴급 호출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데 미흡함을 보이기도 하고, 사람 간의 교감을 배제하여 정작 사람의 손길이 절실한 노인들을 고립시키기도 합니다.

일부 베이비부머 세대는 이러한 '제트슨(Jetsons)' 식의 미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AI를 세부 전공으로 MBA 과정을 밟고 있는 64세 미셸 머피(Michelle Murphy)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미시간주에서 사진작가이자 교육 설계자로 활동 중인 머피는 60대에 접어들어 새로운 경력을 쌓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은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훗날 요양 시설에 들어가는 대신 로봇 간병인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지만, 사생활 침해 우려 때문에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경계하고 있습니다. 당장의 목표는 커피포트가 자동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머피는 "잔디를 깎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주는 등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는 자동화 기술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로봇 보조 돌봄이라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데에는 큰 시장 잠재력이 있습니다. 특히 스마트 홈 자동화 기기, 동반 로봇, 동작 센서처럼 돌봄을 더 쉽게 해주는 제품들을 중심으로 노인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AARP는 2030년까지 노인 관련 기술 시장 규모가 1,2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이러한 성장세를 고려할 때, 많은 사람들은 노인 관련 기술이 젊은 세대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밀켄 미래노화연구소의 다이앤 타이 소장은 "현재 6,300만 명의 가족 간병인이 있으며, 그중 70%가 유급 종사자입니다. 우리는 육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노인 돌봄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지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많은 사람들과 투자자들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노인 관련 기술이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AI 비서는 인지 활동 감소와 기술 퇴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어떤 면에서는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이러한 고급 사용자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80세는 새로운 25세입니다

작년에 썼듯이, 미국의 80대 노인들은 놀라운 방식으로 기술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82세의 프랭크 엥겔만(Frank Engelman)은 앱을 개발하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기술 교육에 관한 뉴스레터(Substack)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82세의 루이스 바우티스타(Luis Bautista)는 AI를 활용해 책을 집필하고 사업을 준비 중인데, 언젠가 이 사업 아이템을 유명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 콤비네이터(Y Combinator)'에 제안해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80세의 필리스 스칼레타(Phyllis Scalettar)는 AI 교육 및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80세의 카렌 샤피로(Karen Shapiro)는 이번 달, 이탈리아 여행 계획부터 재정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AI를 활용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도 기술 덕분에 삶이 덜 제약적이고 더 즐거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수많은 연구 결과가 미국 노년층 사이에서 고독감이 계속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국 은퇴자 협회(AARP)에 따르면, 지난해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40%로, 2018년의 35%보다 증가했습니다. 스마트폰에 중독되는 노년층이 늘어나는 현상이 부분적인 원인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59세에서 77세 사이 응답자 2,000여 명 중 40%가 기기를 사용할 수 없을 때 불편함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에게 기술은 황금기인 노년의 삶을 알차게 보내고 더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Marvin Honig is often on the computer in his retirement.Marvin Honig

88세의 마빈 호닉(Marvin Honig)은 AI 강좌를 수강하고,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즈버그에 있는 자신의 콘도미니엄 입주민 대표회의를 위해 '노트북LM(NotebookLM)' 파일을 구축했으며, 첨단 기술을 활용해 과거 법률 의뢰인들의 신탁 계좌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마이클 델(Michael Dell)에게 직접 기술 지원을 받았던 초기 기술 수용자(early adopter)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웃 주민들이 온갖 종류의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듯하며, 이제 그의 일상적인 교류 또한 기술 관련 추천이나 지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술에 능통한 다른 많은 노년층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기술의 발전 덕분에 박물관이나 식당을 방문하고 지역사회 행사에 직접 참석하는 등 '디지털과 단절된' 삶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이때 이동 수단으로는 테슬라의 자율 주행 기능을 활용합니다.


미국 경제를 주도하는 주는 어디인가?

 경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해서 반드시 가장 강력한 경제를 가진 주는 아닙니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이 경제 규모 면에서는 압도적이지만, 장기적인 경쟁력은 기업 창출, 노동 시장의 건실함, 혁신 및 투자 등 훨씬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월렛허브(WalletHub)가 2026년에 실시한 이 분석은 경제 활동, 경제 건전성, 혁신 잠재력 등 28개 지표를 바탕으로 미국 50개 주와 워싱턴 D.C.를 평가했습니다.

This ranking, via Visual Capitalist's Dorothy Neufeld, highlights the states that are building the foundations for future growth.

Where Every State Ranks in 2026

The ranking below evaluates the economic strength of all 50 states and Washington, D.C. in 2026:

RankStateTotal State Economy Score 2026
1Massachusetts69.4
2Washington67.3
3Utah65.9
4California65.0
5Delaware63.0
6North Carolina60.3
7New York57.6
8Texas57.0
9Colorado56.4
10Florida54.3
11Idaho53.4
12Georgia53.1
13New Hampshire52.9
14Virginia51.2
15Arizona51.1
16Connecticut51.0
17Tennessee50.8
18South Carolina49.3
19Montana48.9
20Maryland48.7
21Minnesota48.1
22Indiana47.4
23Kansas47.3
24Oregon47.1
25New Jersey46.2
26New Mexico45.7
27Michigan44.6
28Alabama44.4
29Vermont44.4
30Pennsylvania44.2
31Wisconsin43.5
32Alaska42.9
33District of Columbia42.1
34Nebraska41.7
35Nevada41.1
36Arkansas40.3
37Illinois40.1
38Ohio39.8
39Iowa39.3
40North Dakota38.8
41South Dakota38.7
42Missouri38.4
43Oklahoma38.3
44Hawaii38.3
45Mississippi36.2
46Wyoming35.9
47Rhode Island35.4
48Maine33.8
49Louisiana33.2
50Kentucky32.4
51West Virginia25.4

매사추세츠가 순위에서 선두를 달리는 이유

매사추세츠주는 혁신 성과,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인재, 그리고 활발한 창업 활동이 어우러져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 등 규모가 더 큰 주들을 능가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이곳은 혁신 주도형 경제와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들을 기반으로 한 창업 활성화에 힘입어,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다수의 기술 기업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인구 규모로는 미국 내 15위에 불과하지만, 매사추세츠주는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는 흐름 속에서 혁신과 경제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유리한 입지를 갖추고 있습니다.

혁신은 가장 큰 차이를 만드는 요인입니다
상위 10개 주는 지리적, 정치적 환경과 산업 구성 면에서 서로 크게 다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공통된 강점이 있는데, 바로 빠른 속도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업을 창출해낸다는 점입니다.

매사추세츠주와 마찬가지로 워싱턴주 역시 기술과 연구를 원동력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워싱턴주에서 가장 흔한 직업군입니다. 캘리포니아주는 여전히 AI 거대 기업과 벤처 캐피털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유타주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술 허브 중 하나로 부상했으며, 생활비를 반영한 ​​가구 중위 소득은 9만 1,600달러로 전국에서 가장 높습니다.

반면, 하위권에 속한 많은 주는 낮은 투자 수준, 적은 특허 출원, 그리고 미성숙한 혁신 생태계로 인해 고성장 기업을 상대적으로 적게 배출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성장 지형
이번 순위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패턴 중 하나는 선벨트 지역의 지속적인 성장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 텍사스, 플로리다, 조지아는 모두 미국의 경제를 선도하는 주들에 속하며, 이는 수년간의 인구 증가, 기업 투자, 그리고 일자리 창출을 반영합니다.

노스캐롤라이나는 뉴욕과 콜로라도를 제치고 전체 6위를 차지했습니다. 2025년에는 순 인구 증가분 84,100명을 기록하며 전국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텍사스는 8위, 플로리다와 조지아는 상위 15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테네시와 사우스캐롤라이나 또한 상위권에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두 주 모두 작년 국내 인구 유입에서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미국의 경제 지도에 더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해안 지역의 혁신 허브들이 여전히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만, 많은 남부 주들이 자체적으로 중요한 성장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미래 경제를 선도하는 주(州)들
순위가 시사하는 바는, 미래 경제 주도권이 단순히 규모에 좌우되기보다는 인재 유치, 기업가 정신 지원, 그리고 혁신을 성장으로 연결하는 능력에 더 크게 달려 있다는 점입니다.

2050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할 주(인구 증가율 기준)는 유타(Utah)(35%), 콜로라도(Colorado)(29%), 워싱턴(Washington)(28%), 텍사스(Texas)(27%), 아리조나(Arizona)(17%) 순으로 전망됩니다. 
버저니아 대학교(UVA) 쿠퍼 센터의 National 50-state population projections 데이터에 따르면, 이들 선벨트 및 서부 지역이 국가 평균을 웃도는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
상세한 인구 증가율 및 수치 요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순위 [1, 2, 3]주 이름예상 인구 증가율 (2025~2050)주요 요인
1유타 (Utah)+35%낮은 중위 연령, 높은 출산율
2콜로라도 (Colorado)+29%강력한 기술 및 혁신 생태계
3워싱턴 (Washington)+28%신산업 및 일자리 유입
4텍사스 (Texas)+27% (+855만 명)기업 이전 및 순유입(압도적 1위 규모)
5플로리다 (Florida)+22% (+515만 명)은퇴자 및 국내 이주민 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