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일 목요일

ChatGPT 드림 By Aki Ito


한 달 동안 AI 탐지기를 사용해 보았습니다. 동료, 데이트 상대, 그리고 제가 동경하던 영웅들에게서 확인한 결과는 저를 경악하게 했습니다.



최근 들어 저는 "이걸 AI가 쓴 걸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됩니다. 온라인에서 시간을 좀 보내는 분이라면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챗GPT(ChatGPT)가 등장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인터넷은 봇(bot)이 생성한 저급 콘텐츠로 뒤덮인 황무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전문가들은 '저급 콘텐츠의 대홍수(slopocalypse)'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그 예언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이를 그저 수수방관하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출판사들은 도서 출판 계약을 취소하고 있고, 억만장자나 교수, 정치인들이 쓴 칼럼이 AI 작성물임이 드러나 망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논란이 거세지자 기업들도 부랴부랴 대응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링크드인(LinkedIn)은 사용자들에게 의심스러운 게시물을 신고하도록 독려하고, 서브스택(Substack)은 AI가 작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글에 별도의 표식을 달고 있습니다. 구글은 사용자가 접하는 이미지나 동영상이 AI로 생성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 중이며, 앤스로픽(Anthropic)은 자사의 AI 모델인 '클로드(Claude)'가 생성한 텍스트에 워터마크를 삽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은 또 다른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AI 작성물을 식별하고 배제하려는 시도가 시대착오적이고 징벌적이며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글쓰기의 어느 정도를 AI에게 맡길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어쩌면 모든 글을 AI가 쓰게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절대 AI를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마도 여러분은 저와 비슷하게 그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있을 겁니다. AI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그런 상태 말입니다. 우리 각자는 나름의 기준선을 긋고 또 수정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타인의 기준과 충돌하고 때로는 격렬한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공통된 규범을 마련할 희망을 품으려면,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애초에 어떤 결과물이 인간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AI가 만들어냈는지가 우리에게 왜 그토록 중요한 문제일까요? 과거에는 사람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기계가 만드는 수많은 것들—직물, 가구, 혹은 가게에서 충동적으로 집어 든 초콜릿 칩 쿠키 상자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글쓰기—나아가 그림 그리기, 작곡, 영상 제작 같은 창작 활동—는 도대체 무엇이 다르다는 걸까요? 결과물만 훌륭하다면 누가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저는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마치 봇(bot)의 지문을 채취하려는 광적인 탐정처럼 마주치는 모든 의심스러운 문구를 왜 그렇게 눈을 가늘게 뜨고 뚫어지라 쳐다봤겠는가?


그래서 나는 AI 탐지 도구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기계가 작성한 글을 식별하는 데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실제로는 서툴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는 반면, 시장을 선도하는 AI 탐지 도구인 '팡그램(Pangram)'은 99.7%의 정확도를 자랑한다. 몇 주 동안 내가 접하는 모든 문장이 과연 누가, 혹은 무엇이 쓴 것인지 명확히 확인하다 보면, 왜 이 구분이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한지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링크드인(LinkedIn)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뻔뻔한 기업인들이 모여드는 이곳이야말로 AI가 작성한 글의 공세를 정면으로 마주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팡그램의 크롬 확장 프로그램을 설치하자 뉴스피드의 모든 게시물과 댓글에 라벨이 표시되었다. 'AI'라고 적힌 로봇 머리 모양의 빨간색 직사각형(AI가 80% 이상 작성), 'Human(사람)'이라고 적힌 사람 머리 모양의 녹색 직사각형(사람이 90% 이상 작성), 그리고 'Mixed(혼합)'라고 적힌 로봇 머리 모양의 노란색 직사각형이 그것이었다. 뉴스피드를 넘겨볼 때마다 나는 마치 사바나의 사자가 먹잇감을 찾듯 로봇 머리 아이콘을 찾아 눈을 번뜩였다.


내가 아는 한 창업자인 피터 팡(Peter Pang)은 지난 1년 넘게 사람이 직접 쓴 글을 단 하나도 올리지 않은 듯했다. 에이전트형 AI 플랫폼인 '크레아오 AI(Creao AI)'의 공동 창업자인 그의 게시물은 AI 특유의 말투로 가득 차 있었다(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AI는 단순히 엔지니어의 작업 속도를 높여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엔지니어링이란 과연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3천 명이 넘는 팔로워에게 글을 쏟아내기 전, 그는 과연 자신의 AI 에이전트가 초안을 작성한 내용을 한 번이라도 확인했을까?


마치 누가 보톡스 시술을 받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새로운 초능력을 얻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에게 직접 물어보니, 그는 AI 에이전트가 준비한 내용을 검토하고 수정한다고 답했다. "지금 이 답변을 포함해서 말이죠." (참고로 팡그램은 그가 내게 보낸 이메일조차 100% AI가 작성한 것으로 판별했다.) 그는 AI 에이전트에게 몇 가지 아이디어나 개요를 제공하고, 그러면 에이전트가 관련 자료를 조사해 그가 읽어볼 수 있는 초안을 작성해 줍니다. "최종적인 글에는 제 견해가 담겨 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게시' 버튼을 누르는 건 바로 저죠."


제 인맥 중에는 AI를 가끔씩만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그들의 명단을 꼽아보았습니다. 유명 경제학자, 몇몇 언론인, 그리고 수많은 마케팅 종사자들이었죠. 마치 누가 보톡스 시술을 받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새로운 초능력을 갖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들을 그렇게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요? 한편으로는, 링크드인 게시물을 작성하는 데 '클로드(Claude)'를 활용하는 것이 링크드인에 글을 올리는 행위 자체보다 훨씬 더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그곳은 견디기 힘든 '겸손을 가장한 자랑(humblebrag)'이나, 배우자의 암 투병 이야기를 통해 사이버 보안 소프트웨어를 더 잘 파는 영업사원이 되는 법을 설파하는 식의 민망한 고백들로 넘쳐났으니까요. 애초에 링크드인에서 진정성을 기대하고 들어가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어쩌면 '팡그램(Pangram)'이 분석한 링크드인의 장문 게시물 중 40% 이상에서 사람들이 개인 브랜딩을 위해 AI를 활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해당 게시물들은 작성자로 표시된 인물의 이름 및 프로필 사진과 함께 게시되고 있었습니다. 한 게시물에서 스타트업 창업자인 팡(Pang)은 자신의 이전 직장에서 막 해고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넸습니다. "해고는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우며, 인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 매우 부당한 일입니다." 게시물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만약 해고의 대상이 되셨다면, 이것이 여러분의 가치나 앞으로 이뤄낼 성취를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전 직장 동료들이 분명 고마워했을 따뜻한 위로의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팡그램(Pangram)의 분석에 따르면, 그 글을 직접 쓴 사람은 그가 아니었습니다. 팡그램은 해당 게시물을 100% AI가 작성한 것으로 분류했으니까요. 그렇다면 그 글에서 그가 진심으로 의도한 부분은 얼마나 되고, 단순히 공허한 말에 불과했던 부분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그 글의 내용에 변함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그 안에 담긴 생각은 제 것이니까요.")


다음으로 저는 제 업무용 이메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홍보 담당자들로부터 수많은 제안과 보도자료를 받는데, 며칠 동안 이 자료들을 팡그램으로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중 절반 정도가 팡그램에 의해 AI 생성 텍스트로 분류된 내용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었는데, 이는 링크드인 게시물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었습니다.

'폭동을 일으킨 이주민' 청소년들이 학교와 버스에 불을 지르며 프랑스가 혼란에 빠지다

  목요일, 프랑스 전역의 수백 개 고등학교와 수십 개 대학에서 사회적 소요 사태가 발생했으며, 이에 세바스티앙 르코르뉘(Sébastien Lecornu) 총리는 '도시 폭력'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주류 언론은 폭동 가담자들을 '프랑스 학생'이나 '고등학생'으로 묘사하는 반면, '리믹스 뉴스(Remix News)'나 '비셰그라드24(Visegrád24)'와 같은 대안 매체들은 이들이 이주민 청소년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리믹스(Remix)'는 앞선 보도에서 "학생과 교사를 위한 더 나은 환경을 요구하는 시위로 시작된 사태가 수십 곳에서 폭력 사태로 번졌으며, 특히 이민자 인구 비율이 높은 학교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양상이 집중적으로 나타났다"고 전했습니다.


'비셰그라드 24(Visegrád 24)'는 X(구 트위터)를 통해 "마르세유에서 이민자 가정 출신의 젊은 2·3세들이 소방관들을 공격하고 소방차를 탈취해 불을 질렀다"고 밝혔습니다.


"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이주민 배경의 청소년들이 버스 여러 대와 심지어 소방차에까지 불을 질렀다"고 Visegrád 24가 X(구 트위터)를 통해 전했다.


Remix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이주민 배경의 청소년들이 버스 여러 대와 심지어 소방차에까지 불을 질렀다.


마르세유 교통 당국인 RTM은 소속 버스 여러 대가 "마르세유 북부와 동부 지역의 고등학교 인근에서 공격 대상이 되었다"며, "운전기사들이 급히 차량을 버리고 대피해야 했고 그중 한 명은 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BFMTV가 인용한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Provence-Alpes-Côte d'Azur) 지역 당국에 따르면, 빅토르 위고(Victor Hugo) 고등학교에서 "교장, 교감, 사무국장, 팀장이 폭행을 당하고 휘발유를 뒤집어쓰는 등 '용납할 수 없는 선'을 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해당 지역 정부가 전했다.

🇫🇷🔴 BREAKING: Migrant student youths have set fire to multiple buses and even fire trucks in the French city of Marseille as chaos spreads. The Marseille transport authority, RTM, said several of its buses "were targeted near high schools in the north and east of Marseille," that "drivers had to leave their vehicles in a hurry and one of them was assaulted." The regional Marseille government said an "unacceptable line" had been crossed at Victor Hugo High School, where "the principal, the deputy principal, the general secretary and the team leader were assaulted and doused with gasoline," according to the Provence-Alpes-Côte d’Azur region, cited by BFMTV. France is descending into chaos as student blockades grip the country. Over 650 arrests have been made. Follow: @RMXnews


학생들의 봉쇄 시위가 전국을 휩쓸면서 프랑스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현재까지 65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수요일 하루에만 최소 600명이 체포되었습니다. 학생 단체인 'L'Union Étudiante(학생 연합)'는 오늘 640개 고등학교와 30개 대학이 봉쇄되었으며 추가 시위도 계획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소요 사태는 지난주 파리 수도권에서 교사 부족 및 교육 투자 문제를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은 학급당 인원 감축, 학교 시설 개보수, 그리고 대학 입학 배정 시스템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와 버스를 불태우는 것이 과연 교사 부족 문제에 대한 해결책일까요?


물론 다른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청년층을 도구로 활용하는 것인데, 이는 극좌 단체나 적대적 외국 세력이 비대칭전(asymmetric warfare)의 일환으로 구사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블룸버그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총리실 관계자들은 정보 당국의 분석을 인용하며, 장 뤽 멜랑숑이 이끄는 극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France Unbowed)'가 이번 시위의 배후에 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불안은 기성 정치권에 불리한 정치 환경과 재정난이 겹치는 시기에 발생했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18%까지 추락한 반면, 국경 개방 반대 입장을 내세운 우파 정당 '국민연합(National Rally)'의 마린 르펜 후보는 2027년 대선 결선 투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한편, 연료비가 급등하면서 가계의 재정적 부담도 커지고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목요일, 지출 억제와 세수 확대를 통해 내년도 재정 적자를 대폭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프랑스 국채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risk premium)도 오늘 급등했습니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Fidelity International)의 전략 채권 펀드(Strategic Bond Fund) 수석 매니저인 마이크 리델(Mike Riddell)은 "프랑스는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며, "하지만 오늘이야말로 더 넓은 금융 시장이 이를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첫날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이유 없는 친절을 경계하며

 


너무 빨리 가까워지는 사람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만나는 일이 예전 같지 않다.
젊을 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금세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사람을 믿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지나치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처음 만났는데도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말을 걸고, 필요 이상으로 칭찬하고, 쉽게 마음을 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마음이 따뜻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그렇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상 너무 빠른 친밀감에는 한 번쯤 멈춰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옛말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틀리지 않는 말인데, 요즘처럼 이 말이 마음에 와닿는 때도 드뭅니다.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할머니께 전화가 걸려 왔다고 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목소리가 "할머니, 저예요. 사고가 났는데 아빠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했답니다. 손주의 목소리 같아 놀란 마음에 말해 준 대로 돈을 보냈고, 나중에야 손주가 아무 일 없이 학교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가족을 아끼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더 쉽게 걸려드는 것이 이런 사기입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국세청이나 사회보장국, 메디케어를 들먹이며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하고 겁을 주는 전화가 있습니다. 정중하고 친절한 말투로 시작해서 어느새 계좌 정보나 사회보장번호를 알아내려 합니다. 정부 기관은 전화로 갑자기 돈을 보내라고 하지 않는데도, 다급한 목소리 앞에서는 그 생각이 잘 나지 않습니다.

투자 사기도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같은 교회나 동창 모임에서 만난 듯 반갑게 다가옵니다. "제가 아는 분이 이렇게 해서 큰 수익을 보셨어요. 어르신께만 알려 드리는 거예요." 처음 몇 번은 정말 이익금도 챙겨 줍니다. 그러다 더 큰돈을 넣게 하고, 어느 날 연락이 끊깁니다. 요즘은 메신저 단체방이나 온라인 모임에서 여러 사람이 짜고 바람을 잡기도 해서, 혼자 보면 다들 좋다고 하니 의심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마음의 빈틈을 파고드는 거짓 우정이나 거짓 연애도 같은 길을 갑니다. 몇 달씩 다정하게 안부를 묻다가 "급한 일이 생겼는데 잠깐만 도와주세요" 하는 식입니다.

이런 일들을 보며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수법은 달라도 순서는 늘 같습니다. 먼저 마음을 열게 하고, 그다음에 요구합니다. 그리고 사기꾼들이 가장 잘 아는 것이 사람은 친절 앞에서 경계를 푼다는 사실입니다. 오랜 세월 사람을 믿고 살아온 정직한 분들이 오히려 표적이 되는 것은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친절을 의심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먼저 메마를 테니까요. 세상에는 대가 없이 베푸는 따뜻한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몇 가지만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서두르라고 하면 멈추십시오. 진짜 좋은 일은 하룻밤 생각한다고 달아나지 않습니다. "오늘까지만", "지금 당장"이라는 말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말입니다.

돈 이야기가 나오면 처음부터 다시 보십시오. 송금, 보증, 투자, 개인정보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그때까지의 친절을 다시 따져 볼 때입니다. 거절했을 때 서운해하거나 화를 낸다면 처음부터 대가를 바란 친절이었을 겁니다.

꼭 가족이나 오랜 친구와 상의하십시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사기의 가장 흔한 신호입니다. 자녀나 가까운 사람에게 말씀드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더 볼 것도 없습니다. 의심이 들면 일단 전화를 끊고, 내가 아는 번호로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조금 느리게 가까워지는 사람이 오래갑니다. 오래 묵은 장맛이 깊듯이, 진실한 관계도 세월이 지나야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의심은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아니라, 소중한 마음과 재산을 지키는 지혜입니다. 문을 닫아걸자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켜 낸 마음이어야, 정말 귀한 사람이 찾아왔을 때 기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10월, 결실과 세월 사이



 미국에 건너와 산 지도 어느덧 오십오 년이다. 낯선 땅에서 약학 일로 한평생을 보내며 숱한 계절을 지나왔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시월만큼 마음을 붙잡는 달이 없다. 이제 여든다섯이 되어 맞는 가을은 젊은 날의 가을과 결이 다르다.

시월은 땀 흘린 대가를 거두는 달이라 한다. 돌아보면 내 삶도 그렇게 거둔 것이 있다. 자식들은 저마다 가정을 이루어 성실히 살아가고, 손주들은 대학을 마치고 제 몫을 해 나가고 있다. 큰 부를 쌓은 것은 아니어도, 이만하면 한 해 농사를 잘 지었다 싶어 마음이 넉넉해진다. 씨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을 나는 일에서도 삶에서도 믿어 왔다.

요즘 나의 하루는 단출하다. 아내와 일주일에 두세 번 골프장에 나간다. 같은 세월을 함께 늙어 온 사람과 선선한 가을 아침에 필드를 걷는 일은 큰 복이다. 공이 어디로 가든 크게 다툴 일이 없고,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고맙다. 아침에 커피 한 잔에 조용히 하루를 시작하는 소소한 즐거움도 내 몫의 가을이다.

그러나 시월은 내게 그리움의 달이기도 하다. 열흘이면 어머니의 기일이 돌아온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 어느새 오십일 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나는 이국땅에서 바쁘게 살았고, 어머니는 늘 가을 낙엽처럼 조용히 마음에 내려앉아 계셨다. 아버님이 가신 지도 삼십일 년이다. 살아 계실 때 살갑게 따뜻한 말 한마디 더 건네지 못한 것이 이제야 마음에 남는다. 장남이라는 자리가 무뚝뚝함을 핑계 삼게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요즘은 가까운 사람에게 감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 표현하지 않은 마음은 끝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배웠다.

낙엽 따라 가버린 세월.

돌아보면 아쉬움이 없지 않다. 그러나 나는 세월에 쫓기지 말고 동행하자고 마음먹었다. 나이 드는 일을 거스르지 않고, 몸과 마음의 속도에 맞는 작은 일과와 작은 인연과 작은 기쁨을 꾸준히 지켜 가는 것이 노년의 품위라고 생각한다. 노년은 거창한 완성이 아니라 조용한 유지다. 그 유지가 흔들리지 않는 한 사람은 쉬이 무너지지 않는다.

오늘은 어제 세상을 떠난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바로 그날이다. 어제는 추억으로 간직하고, 내일은 기대하되, 오늘을 온전히 사랑하려 한다. 훗날 많은 사람을 남기기보다 좋은 사람을 남기고, 나 자신도 좋은 사람이 되어 떠나는 것이 소원이다.

떨어진 잎이 흙으로 돌아가 이듬해의 거름이 되듯, 내가 살아온 시간도 자식과 손주들 안에서 다시 싹을 틔울 것이다. 올가을도 그렇게 익어 간다. 나도 함께 익어 간다.

2026년 9월 30일 수요일

맞장구

 젊을 때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대화를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살아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잘 들어주는 사람이 오래 곁에 남았다.

부부가 오래 살다 보면 서로 모르는 것이 별로 없다.
같은 말을 몇 번씩 하기도 하고, 생각이 달라 티격태격할 때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사소한 일이 더 중요해진다.

그럴 때 필요한 말이 있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좀 그랬어.”

꼭 내가 잘못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상대의 말을 받아주고, 더 이상 다투지 않겠다는 뜻일 때가 많다.

흔히 이것을 맞장구라고 한다.
상대의 말에 호응하고 있다는 작은 신호다.
“내 말을 듣고 있구나.”
그 느낌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진다.

이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사람 사이의 갈등은 대단한 사건에서 시작되는 것보다 작은 말 한마디에서 커지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관계를 오래 이어주는 것도 거창한 약속이 아니었다.

밥을 먹으며 “맛있네.” 하고 받아주는 말,
아픈 곳을 이야기할 때 “그랬구나.” 하고 들어주는 말,
아내가 같은 이야기를 또 해도 그냥 한 번 더 들어주는 것.

그런 작은 맞장구가 함께 살아온 세월을 지켜주기도 한다.

물론 모든 말에 무조건 동의할 필요는 없다.
맞장구는 굴복도 아니고, 내 생각을 버리는 것도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인정한 뒤 내 생각을 말하는 지혜에 가깝다.

이 나이가 되니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함께 편안하게 하루를 보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

결국 좋은 관계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마음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가까운 사람의 말에
한 번쯤 따뜻하게 맞장구를 쳐주자.

“그래, 그럴 수 있지.”

그 짧은 한마디가 때로는
오래 함께 살아온 사람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배려가 된다.



맞장구를 잘치면 사람을 얻는다

대화에서 공감이라는 기술이 필요할까? 필요하다. 공감을 잘하면 대화 분위기가 훈훈해지고, 대화 분위기가 훈훈해지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에 참 인색한 사람이 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꼭 있다. 공감에 인색한 사람은 누가 힘들다는 얘기를 하면,

“그래? 그랬어? 정말 힘들었겠다...”
라고 위로해주기보다
“그 정도로 힘들어하냐? 난 더 힘들어!”
라며 역으로 자신의 힘든 사연을 자랑한다. 도리어 자신이 더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누가 힘들다고 하면 공감해주면 덧나나? 힘내라고 위로해주면 큰일 나기라도 하나?
누가 힘들다고 말할 때 “그 정도는 힘든 것도 아니야. 나는 더 힘든 일을 겪었어”라고 반응하는 사람은 참으로 모질이다.
세상살이 모두 힘든 법이다.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다. 서로 힘든 걸 상대화할 필요가 없고, 상대화할 수도 없다. 각자 상황에서, 각자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니까. 그런 면에서 힘든 건 절대화된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이 사람은 별로 힘들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너무 힘들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니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내가 더 힘들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노년의 삶을 다시 시작하기

 



벗들에게

사랑하는 벗님들께,

요즘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어느새 가을이 우리 곁에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 바람을 맞으며 문득  여러분께 편지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세월의 한 굽이를 넘어온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는 이제 쉬어야 할 때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이 나이에 무엇을 하겠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벗님, 마음은 정직해서 그런 말에 쉽게 늙지 않더군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려 보고 싶고, 소중한 이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입니다.

새는 공기의 저항이 있어서 날 수 있고, 물고기는 물을 밀어내며 헤엄친다고 합니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아무런 부담 없는 편안함만 쫏다 보면 하루하루가 서로 닮아 버립니다. 조금은 힘들더라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걸음을 조금씩 늘리고, 서툰 글이나마 한 줄씩 적어 보는 일이 우리를 '사는 것 같이' 살게 해 줍니다. 서툰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아직 배울 것이 남았다는 반가운 증거입니다.

세월이 더 흐른 뒤에 "그때 시작할걸" 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오늘 미루어 둔 일 하나를 아주 작게라도 꺼내 보시기를 권합니다. 오늘이 우리에게 남은 날들 가운데 가장 젊은 날이니까요.

나이는 저절로 쌓이지만 지혜는 돌아보고 배우는 사람에게만 자랍니다. 우리 모두의 지혜가 나이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랍니다.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기죽지 말고, 우리 함께 힘차게 살아 봅시다. 정말 좋은 세상이니까요.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솔직하지 못한 관계는 우리를 지치게 한다



솔직함이 가져다주는 마지막 관계의 평화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보다, 편하게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 한두 사람이 훨씬 더 소중해진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이기적이다. 나 역시 그렇고 상대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기적인 마음 그 자체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자신의 이익과 속내를 숨긴 채, 겉으로만 '좋은 사람'인 척 연기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웃이나 동네 지인처럼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관계는 얕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그 적당함이 편안함을 준다. 서로의 사생활에 깊이 개입하지 않고, 길에서 만나면 환하게 웃으며 인사 나누고 헤어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우리 삶을 진짜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관계'다. 속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겉으로는 지나치게 친절하고, 필요할 때만 달콤하게 다가오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마음이 야금야금 갉아먹힌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돌아온 날은, 특별히 나쁜 일이 없었음에도 왠지 모르게 기운이 쭉 빠지고 마음이 허기진다.

젊었을 때는 그런 피로함도 참고 견뎠다. 세상 사는 일이 다 그렇고 그게 어른의 처세라 여겼다. 그러나 황혼의 언덕에 서서 돌아보니, 나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이제는 억지로 상대의 기분을 맞추며 내 소중한 에너지와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과의 관계를 단칼에 끊어내자는 뜻은 아니다.

“나는 지금 당신의 이런 도움이 필요하고, 나 역시 당신에게 기꺼이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서로의 필요를 숨김없이 인정하는 관계가 훨씬 더 오래가고 깔끔하다. 필요에 의해 시작된 인연일지라도, 솔직함이 바탕이 되면 그 위에 진정한 정이 생기고 튼튼한 신뢰가 쌓인다.

결국 나에게 좋은 관계란, 매일 붙어 있는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앞에서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어야, 비로소 타인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품어줄 수 있음을 이제야 깊이 깨닫는다.

돌아보면 내 삶의 긴 여정 동안 수많은 인연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인생의 이 계절에 서서 보니, 내 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남아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마음을 숨기거나 애써 꾸밀 필요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참된 사람 몇 명과 온기를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남은 삶을 가장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이며, 나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지막 삶의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