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황혼의 나이가 되어
가만히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우리 참 먼 길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낯선 이민의 땅에 발을 디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우리는 가진 것도 많지 않았고
앞날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서로의 손 하나만은 꼭 붙잡고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어제 병원을 오가는 길에 당신의 작아진 어깨를 보니 마음이 참 아렸소. 50년 전, 젊고 꿈 많던 우리가 이 낯선 땅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가 생각나더군. 그 고생스러운 세월 속에서도 당신은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었는데, 이제 와 당신 몸이 아프니 모든 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라오.
세월이 참 덧없고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궈온 이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닐 거요. 우리가 함께 울고 웃으며 쌓아온 50년의 단단한 뿌리가 있으니, 지금의 이 아픔도 분명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소.
내가 더 세심하게 챙기지 못해 미안하구려. 하지만 여보, 당신은 나에게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시오.
남은 길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앞만 보고 달리기보다, 내 손 꼭 잡고 천천히 같이 걸어갑시다.
내가 끝까지 당신 곁을 지키겠소. 고맙고, 또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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