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5일 월요일

그리움


 다 비운 줄 알았던 마음 한구석에 먼지처럼 가라앉아 있던 이름 하나. "그리움"

'그리움'이란 참 묘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단순히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넘어, 내 안의 소중한 조각을 그 대상에게 맡겨두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니까요.

"어쩌면 그리움은 시간이라는 파도에 씻겨 내려가지 않은, 

마음속에 가장 단단하게 남은 보석일지도 모릅니다."

잊으려 애쓸수록 그리움은 지워지는 글씨가 아니라 더 깊게 배어드는 물감이 됩니다.

그리움은 나를 춥게 만드는 바람이 아니라 추운 세상을 견디게 하는 내 안의 작은 난로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 만질 수 없어도 곁에 있는 것들

오늘도 그 온기 하나로 나는 충분히 다정해집니다.

그리움은 나이와 함께 자란다.

나이 들수록 기억은 점점 더 많이 쌓이고 추억할 거리도 많아진다.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진 나이에 이르면 미래를 꿈꾸기보다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돌아볼 과거가 많다는 건 기억이 많다는 것이고, 이는 곧 그리움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과거의 어떤 순간에 온전히 느끼지 못한 그때의 가치를 이제와 되새기고 곱씹어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의미이다.

나이 들수록 세상 풍파에 닳고 닳아 어렸을 때처럼 일희일비하는 일은 적어져도, TV를 보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툭 하고 눈물 흘리는 알 수 없는 감정은 더 많이 느끼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눈길 한번 안 주고 지나쳤던 풍경이, 공감하기 어렵던 누군가의 인생이 나이와 비례해 내 삶에서 자주 포착된다는 건 어쩌면 우리가 경험적으로 ‘순간에 대한 그리움’을 체득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여 생긴 그리움은 지금 놓치면 안 되는 것들을 일깨워주기도 하니까.


그래서 내게 그리움은 가장 애틋하면서도,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도록 만드는 가장 본질적이면서 보편적인 감정이다. 과거를 반추하여 사소한 것들에는 감사를 느끼게 하고, 어렵고 힘든 일은 덜 고통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며 내게 주어진 삶을 조금은 성숙하게, 하지만 맘 속 깊숙이 애잔하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정서이다. 나이와 함께 농익어가는 내 삶에 대한 그리움이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지금 내가 마주하는 현재의 삶을 더 충실히 살게 만드는 힘이 되어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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