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달력이 아니라 몸으로 먼저 느껴집니다. 계단을 오를 때 한 번 더 숨을 고르게 되고, 어제 일은 흐릿한데 오래전 일은 어제처럼 선명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변화가 서운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이 나이가 주는 쉼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천천히 가도 된다는 신호이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라는 초대장입니다.
이제는 무엇을 이루었느냐보다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 인생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진다.
젊었을 때는 남보다 앞서야 했고, 더 많이 벌어야 했으며,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쁘게 살았다. 가족을 위해 일했고, 생활을 위해 뛰었으며,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안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인생의 황혼에 들어서니 생각이 달라진다.
이제는 남에게 인정받는 일도, 남보다 더 많이 갖는 일도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다. 건강은 마음먹은 대로 따라주지 않고, 걸음은 느려지며,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도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난다. 살아온 세월만큼 잃어가는 것도 많아지는 것이 노년의 현실이다.
돌아보면 잘한 일보다 아쉬운 일이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그때 조금만 덜 서둘렀더라면, 가까운 사람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대했더라면 하는 생각들이다.
살면서 실수도 했고, 때로는 내 욕심 때문에 판단이 흐려진 적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순간과 후회되는 선택은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잘못을 인정하고 남은 삶에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마음일 것이다.
이제 와서 대단한 업적을 남기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남은 인생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지도 않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으며, 할 수 있는 만큼 서로 돕고 살아가는 것. 몸이 허락하는 날에는 두 발로 걷고, 식탁에 마주 앉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며, 별일 없는 하루에도 감사할 줄 아는 것.
어쩌면 노년의 행복은 그런 소박한 일상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마음처럼 되지 않는 날도 있다. 몸이 아프고, 경제적인 걱정이 생기고, 가족의 건강 문제로 마음을 졸이기도 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내 건강뿐 아니라 배우자의 건강과 남은 가족의 삶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더욱 욕심을 줄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필요하다.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돌아보았을 때 얼마나 성공했느냐보다 누구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돌아보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것은 이름도, 지위도, 재산도 아니었습니다. 사랑했던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지켜온 작은 양심이었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애쓴 하루하루가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저녁노을은 아침 해보다 더 깊고 아름다운 빛을 냅니다. 황혼은 끝이 아니라 하루 중 가장 고운 빛깔로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남은 날들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늘 하루를 감사로 열고 사랑으로 닫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다짐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감사하며, 따뜻한 사람으로 남은 길을 걷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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