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건너 보아야 알고, 사람은 겪어 보아야 한다 — 관계에는 나이가 들수록 ‘유지비’가 든다
젊을 때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이 능력인 줄 알았다.
친구가 많고, 연락할 사람이 많고, 모임이 많으면 삶이 풍요로운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물은 건너 보아야 알고, 사람은 겪어 보아야 한다.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다.
좋을 때 함께하는 사람은 많지만, 내가 어려울 때도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잘될 때 박수를 보내는 사람과 내가 약해졌을 때 손을 내미는 사람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다.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고, 약속보다 태도가 중요하며, 한두 번의 친절보다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는 마음이 더 귀하다는 것을.
특히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에는 **‘유지비’**가 든다.
젊을 때의 관계는 서로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유지된다.
직장도 있고, 자녀도 있고, 사회생활도 활발하다.
하지만 은퇴하고 나이가 들면 사정이 달라진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이동도 쉽지 않다.
경제적인 여유에도 차이가 생기고, 배우자와 자녀 문제도 생긴다.
누군가는 병원에 다니고, 누군가는 간병을 시작하며, 누군가는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다.
이때부터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생긴다.
전화를 한 번 더 해야 하고,
안부를 한 번 더 물어야 하고,
서운한 일이 있어도 한 번 더 이해해야 한다.
때로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고,
때로는 상대의 부족함을 모른 척 넘어가야 한다.
그것이 관계의 유지비다.
문제는 모든 관계에 그 비용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사람을 많이 가지는 것보다 좋은 관계를 남기는 일이 중요해진다.
만나고 돌아서면 마음이 편안한 사람,
내 이야기를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
내가 약해졌을 때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면서도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는 사람.
그런 관계는 유지비가 들더라도 아깝지 않다.
반대로 만날 때마다 비교하고, 자랑하고, 흠을 잡고, 감정을 소모하게 만드는 관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젊을 때는 그런 관계도 참고 견디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황혼에 이르면 시간도 체력도 마음의 여유도 한정되어 있다.
남은 시간을 굳이 불편한 사람에게 사용할 이유가 없다.
관계를 끊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관계에도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까이할 사람은 가까이하고,
조금 거리를 둘 사람은 조용히 거리를 두고,
더 이상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는 미련 없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사람을 잃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친구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자녀는 자기 삶으로 멀어지고,
오래된 이웃도 이사를 가거나 관계가 끊어진다.
그래서 노년의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마음 놓고 연락할 사람이 줄어드는 데서 오는 외로움이다.
결국 노년의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열 명의 형식적인 관계보다
한 사람의 진실한 관계가 더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나 역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상대에게만 이해받으려 하지 말고 나도 이해해야 한다.
상대가 먼저 연락하기를 기다리기보다 가끔은 내가 먼저 연락해야 한다.
내가 받은 것만 계산하지 말고 내가 준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좋은 관계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기다리고, 배려하면서 유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수록 관계의 ‘유지비’를 현명하게 써야 한다.
돈도 아무 곳에나 쓰지 않듯이
시간도, 마음도 아무 관계에나 쏟아서는 안 된다.
남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힘들 때 말없이 곁에 있어 줄 사람이 누구이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느냐일 것이다.
물은 직접 건너 보아야 깊이를 알고,
사람은 세월을 함께 겪어 보아야 진짜 모습을 안다.
그리고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을 많이 갖는 것보다,
끝까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는 관계 하나를 지키는 것이 훨씬 어렵고 소중하다는 것을.
그래서 남은 날에는 사람을 많이 만나기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관계를 지키며,
나 역시 누군가에게 부담이 아니라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나이 들어가면서 우리가 지불해야 할
가장 값진 관계의 유지비인지도 모른다.(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