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전이란 원래 딱딱한 것이다. 조항과 조항 사이에 감정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런데 여든을 넘기고 보니, 살아온 세월 자체가 하나의 법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젊어서는 세상의 법을 지키며 살았다면, 늙어서는 스스로 만든 법을 지키며 산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어기면 벌금을 무는 것도 아니지만, 지키지 않으면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는 점에서 이것도 엄연한 법전이다.
첫째, 몸에 관한 법. 젊을 때는 몸이 도구였다. 부려 쓰고, 혹사시키고, 다음 날이면 또 회복되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은 다르다. 몸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함께 늙어가는 동반자다. 적당히 걷고, 적당히 먹고, 충분히 쉬는 것—이 단순한 세 가지가 이제는 인생 전체를 좌우한다. 두 다리로 걸어서 골프장에 나가고, 아내와 나란히 페어웨이를 걷는 그 평범한 하루가, 실은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요즘 들어서야 절실히 깨닫는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걷는 것—이보다 더 중요한 법조항은 없다.
둘째, 마음에 관한 법. 모든 말에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 참 오래 걸렸다. 젊어서는 나를 무시하는 말 한마디에도 밤잠을 설쳤다. 지금은 안다. 이미 마음을 정한 사람, 나를 존중할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쏟는 정성은 성실이 아니라 낭비라는 것을. 감정이 앞서는 순간, 관계의 주도권은 이미 상대에게 넘어간다. 그래서 이제는 싸우지 않는 법을 배운다. 지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싸울 가치가 없는 싸움을 가려내는 것이다.
셋째, 돈에 관한 법. 젊어서는 얼마나 버는가가 중요했다. 지금은 얼마나 지키는가가 중요하다. 노년의 투자는 수익률의 게임이 아니라 생존의 게임이다. 화려한 수익을 좇다가 원금을 잃으면, 다시 벌어들일 시간이 없다. 그래서 충동적인 결정은 피한다. 잠시 멈추어 생각하면, 대개 답은 이미 마음속에 있다. 그 답을 못 본 척하지 않는 것—그것이 노년의 재테크다.
넷째, 사람에 관한 법. 나이가 들수록 관계에는 유지비가 더 든다. 젊어서는 그냥 만나면 친구였는데, 지금은 서로를 배려하고 맞춰가는 노력이 없으면 관계도 시들어버린다. 그래서 이제는 우정도 팽팽하게 쥐지 않고 느슨하게 쥐는 법을 배운다. 자녀들이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손주들이 저마다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그 거리를 존중하는 것도 결국 사랑의 한 형태다. 친절과 존중과 관용은 남을 위한 미덕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법이라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된다.
다섯째, 일과 몰입에 관한 법. 모든 일에 완전한 정성을 쏟는 것은 이상일 뿐, 현실이 아니다.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은 많고, 사람의 기운은 유한하다. 그래서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것—좋아하는 사람, 여전히 남은 일, 소소한 취미—에는 대충하지 않기로 한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반복해서 하는 일이 되어간다. 반쪽짜리 마음으로 살면 반쪽짜리 인생이 된다는 것, 그 단순한 진리를 이제는 안다.
여섯째, 존엄에 관한 법. 젊었을 때처럼 살려고 애쓰지 않는다. 몸과 마음의 속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것이 노년의 존엄이다. 노년은 거창한 완성이 아니라 조용한 유지 보수다. 작은 루틴을 지키고, 작은 인연을 이어가고, 작은 기쁨—커피 한 잔, 코냑 한 방울, 아내와의 골프 한 라운드—을 놓치지 않는 것. 그 유지가 흔들리지 않는 한, 사람은 늙어가면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법전은 조항으로 끝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이 여섯 조항도 결국 완성된 법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고쳐 쓰는 초안일 뿐이다. 오늘 지킨 조항을 내일은 어길 수도 있고, 오늘 몰랐던 조항을 내일은 새로 깨달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오늘을, 나는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가며 살아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모셔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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