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싸움에 들어가지 않는다
잘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든 싸움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싸움은 생각보다 많다. 말로 하는 싸움, 시선으로 하는 싸움, 마음속에서 혼자 벌이는 싸움까지. 하지만 잘 살아가는 사람은 싸움의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싸움의 필요성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모든 말에 반응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모든 관계를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이건 차가움이 아니라 현실 감각이다.
젊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누가 나를 오해하면 풀어야 했고, 누가 나를 비난하면 해명해야 했고, 누가 나를 떠나려 하면 붙잡아야 했다. 그것이 성실함이라 믿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관계도, 갈등도, 오해도 끝까지 책임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알게 된다. 모든 말에 반응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을 설득할 필요도 없다. 모든 관계를 붙잡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삶의 피로는 대부분 여기서 온다 —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 애쓰고, 이미 마음을 정한 사람에게 몇 번이고 같은 설명을 반복하고, 나를 존중하지 않는 관계를 놓지 못하고 오래 붙들고 있는 것.
이런 노력은 성실함이 아니다. 낭비일 때가 있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큰 사건이 아니라, 이런 작은 소모들이 쌓인 시간이었다. 나를 좋아하지 않기로 이미 결정한 사람의 마음을 돌리려 애쓴 시간. 답이 정해진 사람 앞에서 논리를 세우고 또 세운 시간.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를 "그래도 인연이니까"라는 이유로 붙들고 있던 시간. 그 시간들은 노력한 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나 자신을 갉아먹었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것은,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하루의 기운도, 인생의 시간도 유한하다. 그 유한한 것을 어디에 쓸지 고르는 일이야말로 지혜다. 모든 싸움에 뛰어드는 사람은 용감해 보일지 몰라도, 정작 중요한 싸움에 쓸 힘을 남겨두지 못한다. 모든 관계를 붙잡는 사람은 다정해 보일지 몰라도, 정작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쏟을 마음을 다 써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제 고른다. 반응할 말과 흘려보낼 말을. 설득할 사람과 그냥 두어도 될 사람을. 지킬 관계와 놓아줄 관계를. 이 선택은 냉정함이 아니다. 오히려 남은 시간과 힘을 진짜 소중한 것에 쓰겠다는, 가장 성실한 결심이다.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모든 싸움에 들어가지 않아도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그렇게 걸러낸 자리에 더 깊은 평온이 들어선다는 것. 지금 이 나이에 와서 그것을 알게 된 것은, 늦었다기보다 다행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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