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30일 일요일

아파치족의 결혼 축시를 읽고서

두 사람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되어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의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아파치족 인디언들의 결혼 축시--



아파치족의 결혼 축시를 다시 읽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젊은 시절엔 이 말이 낭만으로 들렸을 것이다. 여든을 넘긴 지금은 다르게 읽힌다. 지붕이라는 건 늘 완벽하게 비를 막아주는 게 아니다. 새는 곳도 있고, 손봐야 할 곳도 있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켜온 지붕, 그것이 결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미국 땅에서 산 지 오십오 년이다. 낯선 언어와 낯선 겨울 속에서 아내와 나는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주려 애썼다. 늘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다투기도 했고, 서운하게도 했고, 서로의 부족함에 실망한 날도 있었다. 시 속의 "오직 하나의 인생"이라는 구절처럼 매끄럽게 하나가 된 것은 아니다. 두 개의 몸으로 두 개의 삶을 살아내면서, 조금씩 겹치는 부분을 넓혀온 것에 가깝다.

요즘은 일주일에 두세 번 아내와 함께 골프를 친다. 젊을 때처럼 서로를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채워진 시간은 아니다. 그저 같은 페이스로 걷고, 같은 공을 바라보고, 별말 없이도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간이다. 나는 이것이 노년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요란하지 않고, 증명할 필요도 없는, 조용한 유지 보수 같은 사랑.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후회가 남는다. 살아 계실 때 좀 더 살갑게 대하지 못한 것. 아버지도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다시 짝을 만나 사셨다. 그리고 그분마저 먼저 세상을 뜨셨다. 지붕이 되어줄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버지의 삶을 통해 어렴풋이 배웠다. 그래서 지금 곁에 있는 아내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나는 늙어가는 것을 거창한 완성이 아니라 조용한 유지라고 믿는다. 작은 루틴, 작은 관계, 작은 기쁨들을 그 속도에 맞게 지켜나가는 것.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것,  향긋한 커피 한 잔에 아침을 열고, 그런 사소한 것들이 사실은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 사소한 축복들 옆에는 대개 아내가 있다.

시는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고 노래한다. 현실은 그렇게 단정적이지 않다. 행복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상태가 아니라, 매일 다시 선택하는 태도에 가깝다는 것을 살아보니 알겠다. 서로 실망시키고, 서로 용서하고, 그러면서도 같은 지붕 아래로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오십 년 넘게 해온 일이고, 앞으로 남은 날에도 계속할 일이다.

완벽한 지붕은 없다. 다만 무너지지 않으려고 함께 애쓰는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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