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의 친절·존중·관용은 남을 위한 미덕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현실적 기술이다.젊을 때는 친절이나 관용을 "베푸는" 행위로 여기기 쉽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것이 사실은 자기 방어의 기술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유가 명확합니다. 노년기에는 관계의 폭이 좁아지고, 새로 사람을 만들 기회도 줄어듭니다. 그런데 누군가와 갈등하고, 원한을 품고, 각을 세우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듭니다. 젊을 때는 그 소모를 다른 활력으로 메울 수 있지만, 노년에는 그 에너지 자체가 한정된 자원입니다. 결국 친절과 존중, 관용은 "내가 가진 얼마 남지 않은 힘을 갈등이 아니라 평온에 쓰겠다"는 계산된 선택인 셈이지요.
또한 관용을 잃으면 주변 사람이 하나둘 떨어져 나갑니다. 노년에 사람이 떠난다는 것은 곧 도움을 청할 곳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친절과 존중은 결국 "나를 돌봐줄 사람을 곁에 남겨두는" 가장 현실적인 보험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미덕에서 기술로
친절과 존중과 관용을 그저 ‘착한 사람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때로 선택사항이 된다.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는 친절할 수 있지만, 피곤하고 속이 상하면 포기해도 되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노년에는 생각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
친절과 존중과 관용은 미덕이면서 동시에 나를 지키는 생활의 기술이다.
운동을 며칠 거르면 몸이 둔해지고,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면 결국 그 대가를 내가 치른다. 인간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말 한마디를 조심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작은 일은 너그럽게 넘기는 습관이 쌓이면 관계가 부드러워진다. 반대로 사소한 일마다 따지고, 상대의 허물을 들춰내고, 감정이 상할 때마다 맞서다 보면 관계는 조금씩 닳아간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관용은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 계속 참는 것, 반복해서 이용당하면서도 웃어주는 것, 내 건강과 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의 요구를 받아주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자기 소모일 수 있다.
노년의 관용에는 거리를 둘 줄 아는 지혜도 들어 있다.
친절하되 이용당하지 않고,
존중하되 비굴하지 않고,
관용하되 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것.
이것이 노년의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균형이다.
젊을 때는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것은 누구와 얼마나 가까이 지낼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남은 시간과 체력과 마음의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에서는 조용히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하다.
결국 노년의 친절과 존중과 관용은 남을 위해 내가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마음의 평화를 지키고,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이다.
남을 배려하면 나도 편안해지고, 상대를 존중하면 쓸데없는 갈등이 줄어든다. 작은 일을 너그럽게 넘기면 내 마음에 분노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평생 남을 위해 베풀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남을 위한 미덕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처음부터 나를 위한 것이었다.
노년의 친절은 약함이 아니다.
존중은 굴복이 아니다.
관용은 무조건 참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남은 인생을 불필요한 상처와 갈등으로 낭비하지 않고, 조금 더 평온하고 품위 있게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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