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7일 목요일

삶과 이별

 



살 만하니 떠나는 게 인생이다

인생을 오래 살아보면 이상한 진리를 하나 깨닫게 된다.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을 때, 인생은 우리에게 떠날 준비를 하라고 한다.

젊을 때는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먹고살기 바빴고, 자녀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직장과 사업에 매달려 내일을 준비했다. 그때는 지금의 나이가 되면 모든 것이 편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여기까지 와보니 생각했던 노년은 오지 않았다.

돈 걱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건강이 마음대로 따라주는 것도 아니다. 자녀들은 자녀들의 삶을 살아가고, 친구들은 하나둘 연락이 뜸해진다. 평생 곁에 있을 것 같았던 사람도 어느 날 먼저 떠난다.

그래도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제는 좀 살 만하구나.”

아침에 눈을 뜨고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과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큰 욕심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게 된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인생은 조용히 말한다.

“이제는 내려놓을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젊을 때는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했고, 늙어서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귀한 일인지 깨닫는다. 그러나 깨달음이 깊어질수록 남은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도 함께 선명해진다.

그래서 노년의 지혜는 오래 사는 것만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남은 날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기보다 지금 가진 것을 잘 누리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기보다 몇 사람과라도 진실하게 지내며, 지나간 일을 붙잡고 후회하기보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는 것이다.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에 찾아오는 삶의 한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떠날 때까지 어떻게 살았느냐일 것이다.

살 만하니 떠난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잔인한 농담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가르침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는 알 것 같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자.
언젠가 시간이 나면 만나겠다고 미루지 말자.
좋은 음식도, 좋은 사람도, 좋은 풍경도 조금씩 나누며 살아보자.

그리고 어느 날 떠나야 할 때가 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는 내 인생을 꽤 잘 살았다.
많이 가졌지는 못해도 많이 사랑했고,
많이 이루지는 못했어도 오늘을 감사하며 살았다.”

인생은 살 만해졌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 만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즈음부터 더욱 소중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남은 날은 덤이 아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살아야 할 본날이다.

오늘도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바로 그날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살 만하니 떠난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떠나는 순간까지 매일이 살 만한 날이었다는 뜻이고, 그러니 지금 이 하루도 헛되이 보낼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늙어간다는 건 젊었을 때처럼 살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의 속도에 맞춰 작은 루틴과 작은 인연과 작은 즐거움을 꾸준히 지켜내는 일이다. 노년은 거창한 완성이 아니라 조용한 유지 보수다. 그 유지 보수만 흔들리지 않으면, 늙어가면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완성을 기다리지 않는다. 다만 오늘 걸을 수 있으면 걷고, 오늘 웃을 일이 있으면 웃고, 오늘 곁에 있는 사람에게 곱게 대한다. 그러다 어느 날 살 만하니 떠나게 된다면, 그것대로 됐다고 생각하려 한다. 그게 인생이니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