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1일 금요일

未知生(미지생) 焉知死(언지사),사는 것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죽고 나서 좋은 곳에 가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모든 인간이 바라는 소망입니다.
그러나 죽고 나서 아무리 좋은 곳에 간다 한들, 살아생전 조그만 행복 하나 
느끼고 사는 것만 못합니다.

죽고 나서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제사를 받든다 한들, 살아생전 술 한 잔 올리는 
것만 못하다는 옛 선현(先賢)들의 말씀은, 행복은 결국 저 세계가 아닌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있다는 말입니다
.

사는 것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이 말은 참 깊습니다. 죽음을 이해하려 하기 전에, 먼저 살아 있는 오늘을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황혼의 나이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일이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죽음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마지막 일이지만, 삶은 매일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합니다.
언제 죽을지, 어디에서 죽을지, 죽으면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합니다.
그러나 정작 더 가까이 있는 삶에 대해서는 제대로 묻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도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고,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잊고,
먹을 것이 있고 잠잘 곳이 있다는 평범한 안정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젊을 때는 더 많이 가지려고 했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했고,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황혼에 이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많이 갖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멀리 가는 것보다 두 다리로 오늘 걸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며,
많은 사람을 아는 것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몇 사람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별개의 사건이 아닙니다.
어쩌면 오늘을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까지 만들어 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죽음을 너무 일찍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밥 한 끼를 감사히 먹고,
아픈 곳을 돌보고,
배우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고,
자녀에게 지나친 기대를 내려놓고,
쓸데없는 다툼 하나를 피하고,
저녁에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죽음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마지막입니다.
하지만 삶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오늘입니다.

그래서 황혼의 지혜는
죽음을 잘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날을 함부로 보내지 않는 데 있습니다.

사는 것도 제대로 모르면서 죽음을 알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을 제대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마지막 날이 왔을 때,
적어도 “나는 내 삶을 허투루 살지는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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