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한 자는
결코 자기가 상처 입은 것을
말하지 않고 개인적
불행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로는 운명조차도 그대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기를 좋아한다.
그러니 아픈 것도
기쁜 것도 드러내지 마라.
전자는 끝나도록,
후자는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입지만, 모든 사람이 그 상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신중한 사람일수록 자기 내부의 균열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강한 척하는 태도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기 위한 질서 유지다. 아픔을 말하는 순간, 그 아픔은 타인의 해석 속으로 흩어진다. 걱정, 조언, 무심함, 혹은 약점으로 읽히는 시선들 속에서 상처는 원래보다 더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조용히 봉합하고, 조용히 지나간다.
삶은 이상하게도 우리가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 굴 때가 있다. 오래된 상처를 다시 눌러보듯, 운명은 때때로 그곳을 다시 건드린다. 그럴 때 드러내지 않는다는 건 도망이 아니라 지켜냄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상처가 더 번지지 않도록, 자기 내부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기쁨도 마찬가지다. 좋은 일을 크게 말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불신해서가 아니라 기쁨을 오래 보존하려는 사람이다. 기쁨은 말하는 순간 타인의 반응 속으로 흩어진다. 질투, 농담, 무심함 같은 외부의 손길에 닳아 형태를 잃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기쁨일수록 더 조용히 품는다. 오래 가도록, 변형되지 않도록.
결국 이런 사람에게 남는 것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내면의 질서다. 아픔은 조용히 끝나도록, 기쁨은 조용히 지속되도록 하는 태도.
겉으로는 무심해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흔들리지 않는 구조가 있다. 그 구조가 그 사람을 오래 버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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