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는 친구가 저절로 생기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보니, 벗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애써 지켜야 얻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55년을 살았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해 뉴저지, 뉴욕,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도시를 거쳐 지금의 필라델피아까지, 일자리를 따라 여러 도시를 옮겨 다녔습니다. 이사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이사할 때마다 정든 사람과 멀어졌습니다. 그때는 먹고사는 일이 바빠서, 연락이 뜸해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바쁘게 살다 보면 소식이 끊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은퇴하고 시간이 생기니 비로소 그 빈자리가 보입니다. 지나온 도시마다 얼굴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한 번만 더 전화해 볼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얼마 전 벗에게 건네는 글 한 편을 읽었습니다. 틈틈이 운동하고, 틈틈이 만나 별것 없는 얘기를 실컷 하자는 내용입니다. 모자라면 받쳐주고 넘치면 나눠주자는 구절도 있었습니다. 읽다 보니 우정이라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부를 묻고, 밥 한 끼 같이 먹고, 서운한 일이 있어도 돌아서지 않는 것,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특히 "내가 부린 것도 아집이요, 네가 부린 것도 아집이니"라는 대목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살아 보니 사람 사이가 멀어지는 이유는 큰 잘못 때문이 아니라 사소한 서운함과 고집 때문일 때가 많았습니다. 누가 옳았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나지 않는데, 서먹해진 마음은 오래 남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새로 사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더 귀합니다. 그렇다고 거창한 것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몇 가지만 실천해 보려 합니다.
첫째, 먼저 연락하는 것입니다. 기다리면 상대도 기다립니다. 둘째, 만나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들어주는 것입니다. 셋째, 몸이 허락하는 동안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웃는 것입니다.
한 세상 살면서 이름 석 자 남기겠다고 애쓰는 일도 의미가 있겠지만, 결국 남는 것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 사람 참 좋은 친구였지" 하는 한마디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래 연락하지 못한 벗에게 전화를 한 통 해 보려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마음에 떠오르는 분이 계시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 보시기 바랍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좋은 것이 벗이니까요.
천천히, 천천히 늙어가면서, 그 길을 함께 걸을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잘 산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친구여 벗이여 아프지 마세나」 중에서 일부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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