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5일 목요일

저녁노을을 걷다

 




어느새 회갑도, 고희도 지나갔다. 이제 여든과 아흔의 중간쯤에 서 있다. 세월을 일부러 흘려보낸 적도, 피해 달아난 적도 없는데 청춘은 아득히 멀어졌다. 거울 속에는 흰머리와 잔주름, 검버섯이 남았다.

이제 남은 길은 외줄기다.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즐겁게 걷고 싶다. 젊은 날에는 욕심과 고집이 힘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것들이 가장 무거운 짐이다. 하나씩 내려놓으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은퇴 후의 시간은 쉬기만 해서는 채워지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손에 익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동안 알게 되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고, 호기심이 살아 있는 한 사람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하루하루는 단순해졌다. 좋은 사람과 나란히 걷고, 책을 읽고, 생각을 글로 옮긴다. 가족이 저마다 제 자리에서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그것만으로 든든하다. 이만큼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은혜이고 복이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미리 해 두려 한다. 곁을 지켜 준 가족에게, 함께 걷는 친구들에게, 살면서 인연이 닿은 모든 분께. 너무 늦으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나이가 인생의 전성기라고 큰소리칠 생각은 없다. 다만 시들 때를 기다리는 나이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저녁노을이 하루 중 가장 고운 빛을 내듯, 오래 익은 삶에도 그 나름의 빛깔이 있다. 앞으로 몇 해가 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오늘 하루를 고운 마음으로 열심히 살면 된다.

같은 길을 걷는 벗들이여,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걸어 봅시다. 해가 지기 전에 한 번 더, 곱게 물들어 봅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