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요일

기축옥사(己丑獄史)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이 모반을 꾀한다는 고변서에서 촉발되어 다수의 동인이 처벌된 사건. 기축옥사는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이 모반을 꾀한다는 고변서에서 촉발되어 다수의 동인이 처벌된 사건이다.

<역사을 바로알지 못하면 나라가 망(亡)한다.> "첨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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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인(西人)들이 3년간 1,000여명의 동인(東人)을 사형시키거나 유배보낸 대참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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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서인(西人)들의 세력이 조선을 망하게 만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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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호남좌파 서인(西人)들이 5년간 적폐청산이라는 명목으로 하는 짓이 ’기축옥사’와 똑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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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9년 조선에 ‘기축옥사’라는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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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은 ‘정여립 모반 사건’ 가담자 처벌이었지만 사실은 왕위 계승의 정통성이 부족한 선조가 입지를 강화하고자 동인을 토벌한 대참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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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사형이나 유배를 당한 동인 선비가 1000여 명에 달했고 조정에는 일할 관리가 부족할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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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사화 다 합쳐도 희생자가 500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이 사건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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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축옥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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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 세력을 절멸시킨 서인들은 1623년에는 인조반정을 주도하여 광해군과 북인마저 제거하면서 바야흐로 서인 세상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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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왕비는 서인 출신으로 간택하고, 조정은 서인들로 채우면서 조선이 망할 때까지 집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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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들만의 세상이 되면서 정치 환경이 확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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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이나 논리 경쟁은 사라지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 사생결단 정치가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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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 때 서인들이 반대한 ‘북벌론’을 주장한 남인의 거두 윤휴를 성리학의 이단으로 몰다가 반역죄를 씌워 처형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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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도 성리학 이외에는 허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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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성리학 이념만이 최고 가치가 되면서 기업을 천시하고, ‘상복을 몇 년간 입어야 하는가?.’ 하는 예송 논쟁이나 벌이고 있었으니 나라가 잘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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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변방 약소국으로, 오로지 중국 속국으로 만족하며 살다가 중국이 붕괴하면서 같이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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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431년 전 기축옥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2017년 적폐 청산 이후 우리 사회와 닮은 점이 너무 많아 역사의 교훈을 찾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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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진영이 적폐 청산 명분으로 대통령, 대법원장, 국정원장, 장관, 군 장성 등 보수 진영을 초토화하고 입법, 사법, 행정, 언론 등 거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것은 과거 서인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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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환경이 편 가르기와 사생결단식으로 가는 것도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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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들을 차례로 수감하는 모습은 참 모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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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우려되는 공통점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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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법에 대해 소신을 밝힌 여당 국회의원은 미운털이 박혀 배척당했고, ‘지역 사랑 상품권이 큰 효과 없다’ 는 연구 결과를 밝힌 국책 연구원은 대선 주자에게 호되게 야단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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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은 거의 성리학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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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했다고, 수사를 한다고 감사원장이나 검찰총장을 향해 총공세를 가하는 여권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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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다양해야 건강하게 발전하는데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적폐니, 토착 왜구니, 친재벌이니’ 하며 적대시하는 행태는 매우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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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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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뜻과 달리 국가 재정을 아끼려던 경제부총리는 시달리다 못해 사의 표명까지 했고, 역시 국가부채를 걱정한 한은 총재는 여당 의원에게 “너나 잘하세요” 라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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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부는 원전 정책이 무너져도, 주 52시간제나 경제 3법 등으로 기업인들 속이 타들어 가도 묵묵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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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소통 없이 공공 의대를 강행하다가 의료계와 갈등을 빚고, 환경부는 아직도 4대강 흠집 내기에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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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안의 전문 관료들 의견은 실종되고 진영 논리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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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곳은 법무부와 검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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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의 행태는 너무나 치졸해서 대한민국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자괴감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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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 어쩌다가 ‘개’에 비유당하고, 이상한 정치인 1명 때문에 망가질 만큼 우스운 곳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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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옥사를 수사한 사람은 우리에게 문인으로 잘 알려진 송강 정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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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정철을 특검으로 임명하면서 “백관 중의 독수리, 대궐의 맹호”라고 극찬했지만 기축옥사가 끝나가던 1591년 말 “악독한 정철이 내 선한 선비들을 다 죽였다”고 분노하며 유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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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은 이후 술독에 빠져 살다가 2년 후 57세에 강화도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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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 총대를 멨던 검찰은 앞으로 어떻게 역사에 기록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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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옥사 3년 후 조선은 임진왜란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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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도망가고, 백성은 경복궁에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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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묘호란, 병자호란까지 맞으며 조선은 쑥대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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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들이 미래 대비는 안 하고, 자기들끼리 안방 정치만 한 댓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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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도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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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이 지금처럼 미래 대비를 소홀히 하고 자기들만의 세계를 꿈꾸다가는 기축옥사 이후의 못난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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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기 단국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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