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뿐만이 아니다. 중국 경제 하강과 군사력 상승이라는 '피크 차이나'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에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흔히 등장하는 대책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시장이나 투자를 다변화는 전략, 혹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공급망을 강화해 중국에 맞서는 전략 등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대중국 수출 통제 전략까지 등장했다. 미국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반도체 관련 대중국 수출금지 리스트가 여기에 해당한다.
윤석열 정부도 다각화 전략이나 공급망 전략을 강조하고 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서울대 국제학연구소에서 내놓은 연구 결과는 시사점이 크다.
연구에 참여한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중 관계 30년을 평가하면서 "현재 한국이 당면한 최대 위기는 기술 경쟁력과 산업 경쟁력이 중국에 뒤지고 있는 현실"이라며 "기술 경쟁력 없이는 중국에 대접받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중국과의 '당당한 외교'를 위해서는 외교안보가 아니라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는 냉혹한 주문이다.
국가경쟁력을 종합 평가하는 IMD 국가경쟁력 순위에 따르면 1994년 한국은 32위, 중국은 34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순위는 중국이 17위, 한국은 27위로 역전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기술수준평가'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의 중점과학기술 수준은 최고 기술 보유국(미국) 대비 80.1%, 중국은 80.0%로 거의 격차가 없었다.
2010년 기술수준평가에서 51.7%를 기록했던 중국이 지난 10년 새 격차를 확 줄여놓은 것이다. 같은 기간 한국은 60.2%에서 80.1%로 올라 중국에 역전을 당할 위기다.
우리나라가 기술력에서 중국에 따라잡히고 있다는 자각은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한중 간 기술 격차가 줄었을 때 중국의 경제 보복이 뒤따랐고, 외교에도 한계가 있었다는 점은 뼈아프다. 실제 2010년 이후 기술수준평가에서 한국은 중국을 줄곧 7~10%포인트 앞서왔다. 하지만 2018년 조사 결과에서 한중 간 기술 격차는 0.9%포인트까지 확 줄어들었다. 2016년 7월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로 2017년까지 문화, 여행, 유통업계 전반이 큰 타격을 입었던 것을 감안하면 한중 간 기술 격차가 급감하던 시기에 중국은 경제 보복을 감행했고 외교만으로는 대처가 힘들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조 교수는 "한국이 기술력에서 중국에 밀리게 되면 한미 동맹 강화나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 등 단순한 외교안보 관점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고 꼬집었다. 일본도 1950년대 '요시다 독트린' 이후 미·일 동맹 강화와 이를 통한 중국 견제 정책을 추진했지만, 현재 중·일 관계에서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존중받고 있는 것은 기술력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조 교수는 "마치 독일이 중국으로부터 대접받는 것처럼 일본이 존중을 받는 것은 미국과의 안보 동맹이 굳건할 뿐만 아니라 중국이 필요로 하는 기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는 한중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향후 한중 관계에서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존중받으려면 기술 경쟁력과 산업 경쟁력에서 반드시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만 한국의 대중 지위 제고에 도움이 되지, 단순히 외교안보 로만 중국의 견제정책에 대처할 경우 한국은 중국의 무차별 보복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드 사태 때 한국이 한미 동맹을 강조했지만 중국의 보복 앞에서 무기력했던 것을 꼬집은 것이다.
조 교수는 "기술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국이 '상호존중'을 운운하는 것은 외교적 수사일 뿐, 양국 관계의 실질적 개선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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