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자주 듣는 말 중에 ‘눈물 젖은 빵’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말로 표현은 이어지곤 했습니다. 정확한 의미는 몰라도 고통스럽고 서러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인생의 참 의미를 알기 어렵다는 말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축축한 빵에서 한없이 가라앉는 자신을 보았을 겁니다.
눈물 젖은 빵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먹는 빵일 겁니다. 괴테는 눈물 젖은 빵과 슬픔으로 울면서 밤을 지새운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가난함에서 오는 고통도 이야기합니다. 눈물이 가난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릅니다만, 눈물은 모든 고통을 상징합니다. 눈물 젖은 빵이라는 표현에서 가난해서 생긴 서러운 마음도 느껴집니다. 눈물은 단지 배고파서 흘리는 게 아닙니다. 서러움과 억울함은 눈물을 참지 못하게 만듭니다. 내 잘못이 아닌데 당하는 고통은 참을 수 없는 눈물로 쏟아져 내립니다. 잠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베개도 이불도 눈물에 젖습니다. 나의 고통뿐 아니라 가족의 고통도 나를 견딜 수 없게 합니다.
하지만 눈물 젖은 빵도, 서러운 마음으로 먹는 찬밥도 나를 일으키는 힘이기도 합니다. 우리 표현에 ‘찬밥 신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 식은 밥을 먹는 신세는 참으로 처량합니다. 눈물도 날 겁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고 나서 다시 일어난다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왜 인생을 모르는지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고깃덩어리, 다 식은 커피 한 잔이 모두 서러울 수 있지만, 다시 일어나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눈물없는 빵을 먹어본자가 어찌 인생을 논하리오... 충남 예산에 꽃다운 처녀가 있었습니다. 이 꽃다운 처녀가 17살에 연지곤지 찍고 시집을 갔는데 시집간지 2년만에 서방이갑자기 죽어 채 피지도 못한 19살 나이에 과부가 되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그를 볼때마다 "불쌍해서 어쩌노~ 나이가 아깝네!!" 하면서 위로해 주었지만 19살 과부는 죽은 서방이 너무도 원망스럽고 서러워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그러던 어느날 마음을 다잡아 먹고 거울 앞에 앉아 긴 댕기머리 카락을 사정없이 잘라 버렸어요. 그러면서 젊은 과부가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듣는 동정의 말들이 너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헤쳐나갈 방도를 곰곰히 생각했지요. 서방도 없고 자식도 없는 시댁에 더이상 머무를 수 도 없었지만 무언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어요. 친정으로 돌아간들 뾰족한 수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래서 무작정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지요. 낯설고 물설은 서울 생활이 그리 녹녹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이를 악물고 닥치는대로 일을 했지요. 식당에서 설거지도 하고 남의집 빨래도 하며 차츰 차츰 서울 물정에 눈을 떴을때 지인의 소개로 어느 부잣집 가정부로 들어가게 되었지요 그녀는 그 집에서 밤낮으로 죽기살기로 일을 했어요. 그러자 마음씨 좋은 주인 어르신께 인정을 받았지요. 어느날 주인 어르신께서 나이도 젊은데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말하라 해서 조심스럽게 두가지를 말씀 드렸어요. 하나는 "야간 학교에라도 가서 늦었지만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고 또 하나는 "주일날이면 꼭 교회에 갈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러자 마음씨 좋은 주인 어르신께서 정말 기특한 생각을 했다며 젊은 과부의 소박한 소원을 들어 주었지요. 그래서 숙명여학교 야간부에 입학을 했는데 주인어른의 후광도 있었지만 일하고 잠자는 시간에 틈틈이 보아온 신학문이 큰 도움이 되었지요. 또 주일 날에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갈 수 있었어요. 그녀는 주인 어른의 큰 은혜에 감흡하여 낮에는 집에서 가정부일을 두배로 더 열심히 일했고 밤에는 학교에서 죽기 살기로 공부를 했어요. 그러다보니 최우수 학생이 되었고 장학생이 되었으며 나중에는 그녀의 실력과 성품을 인정 받아 그 때는 일제 강점기 때라 학교에서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 주었지요.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가게된 젊은 과부는 너무도 기뻤고 감사했어요. 주인 어른께도 감사했고 학교에도 감사했어요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했고 노력을 해서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귀국하였고 본국으로 건너와 당시 조선총독부 장학사로 일하다가 해방과 함께 학교를 세우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숙명여자대학 초대학장이 된 ‘임숙재’ 선생님이십니다. 임숙재(1891년-1961년) 그분은 숙명여대를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불굴의 의지로 운명을 바꾸어 놓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환경을 다스리십시오." 라고 늘 가르쳤습니다. 19세 과부가 식모살이에서 대학 총장까지 된 사연은 인간이란 존재는 " 고난을 잘 이겨내야 무슨 일에서든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는 것이지요 사람들 누구에게나 잠재된 능력과 무한한 가능성이 주어져있습니다. 어떤 환경이나 위치에 처해있든 주어진 조건 어떻게 이겨내고 잘 다스려가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성공여부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지금 나 자신에게도 숨겨진 잠재력이 있는데도 스스로는 모른체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지요. 그것을 찾아내는 것도 내 몫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