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8일 목요일

뼈있는 인생의 조언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옮긴 글)



제가 평생토록 들었던 인생의 조언 중에 과연 최고라고 손꼽을 수 있는 현인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없는 세 가지와 우리가 알고 있는 세 가지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인생의 후반전을 살아가고 계신 분들이라면 오늘 영상 끝까지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분명히 특별하고도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주위에 좋은 분들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가 구애받지 않는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배를 타고 바다에 가면서 "바람도 불지말고, 파도도 치지 마라" 이렇게 바라는 것이 아니고 "바람이 불려면 불어라 파도야 치려면 쳐라"

"나는 이미 좋은 배를 마련해 놓았고 좋은 항해술을 습득했기에 그 정도는 문제없다." 이런 마음 가짐이 해탈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남편이 그렇게 착해 보였는데 살아보면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있고 내 뱃속에 열달을 품어 낳아서 내 마음대로 키운 아이도 클수록 내 말을 잘 안듯습니다.

이렇듯 어떻게 세상 일이 나의 생각대로만 되겠습니까.

파도가 일면 파도를 타고 가면 되고 파도가 치지 않으면 조용히 즐기면 됩니다.

세상 일이 내 생각대로 안 된다고 전혀 구애받을 일이 없습니다.

저도 나이가 드니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사람들 한테서 소식이 옵니다.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살아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있는 것이지요.

지난 달에도 지인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느라 화장장에 갔습니다.

화장장 정문에서 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밀려있더군요.

관이 전기 화로에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밑에 '소각 중' 이라는 문자 등이 켜지고 사십분 쯤 지나니까 '냉각 중'이라는 글자가 켜집니다.

십년 쯤 전에는 소각에서 냉각까지 100분 정도 걸렸는데 이제는 50분으로 줄었습니다.

기술이 크게 진보했고 의전을 관리하는 절차도 세련되어 졌습니다.

'냉각 완료'가 뜨면 흰 뼛가루가 줄줄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서 나오는데 성인 한 사람 분이 한 되 반 정도 됩니다.

그리고 직원이 뼛가루를 담아서 유족들에게 나눠줍니다.

유족들은 미리 준비한 옹기에 뼛가루를 담아서 돌아갑니다.

원통하게 비명횡사한 경우가 아니면 요즘에는 유족들도 별로 울지 않습니다.

부모를 따라서 화장장에 온 아이들은 대기실에 모여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놀고 있었습니다

제 입으로 "우리는 호상입니다" 라며 문상객을 맞는 상주도 있었지요.

그리고 그 날 세 살 난 아기도 소각되었습니다.

작은 관이 내려갈 때 젊은 엄마는 돌아서서 울었습니다.

아기의 뼛가루는 서 서 홉쯤 되었을 것입니다.

뼛가루를 보면 흰 분말에 흐린 기운이 스민 안개 색깔입니다.

입자가 고와서 먼지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한 세상 살다가 가는 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죽으면서 그렇게 세상과 작별합니다.

금방 있던 사람이 금방 없어졌는데 뼛가루는 남은 사람들의 슬픔이나 애도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고 수명이 다하고 업이 다한 것을 말 해 줄뿐입니다.

죽으면서 말 길이 끊어져서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죽음의 내용을 전할 수 없고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지할 수 없습니다.

인간도 그저 죽을 뿐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죽음이 저토록 가벼우므로 우리는 남은 삶의 무거움을 버티어낼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더한 욕심을 부릴 것도 없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갈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 현상입니다.

나이가 들면 죽음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일상생활을 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하며 미리 정해놓을 일만 생각하세요.

돈 들이지 말고 죽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말고 가자.

질척거리지 말고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온 것이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이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입던 옷을 깨끗이 빨아 입고 가자.

이렇게 말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집에 있는 서랍과 수납장을 들여다보면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간다는 생각에 서글퍼진다는 순간이 옵니다.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 꼴이지요.

지금까지 내가 지니고 있었던 것이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는 것을 죽음을 앞두고서야 깨닫습니다.

정작 내가 하고싶었던 일들은 아직 아무것도 하지도 못했는데 왜 그렇게 두 손에 꽉 쥐고 놓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라지만 욕심을 내서 살았던 지난 날을 떠올리면 그 마음이 너무 공허합니다.

나의 삶의 허무하게만 느껴집니다.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의미있는 것으로 내 인생을 채워보시길 바랍니다.

제 지인의 아버지는 섬진강 상류의 산골 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고 합니다.

지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지인을 불러놓고 유언을 하셨는데 "네 어머니가 방마다 아궁이에 불때느라고 고생을 많이했다."

"부디 연탄보일러를 놓아드려라." 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이 유언이 건실하고 씩씩하고 속이 꽉 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참으로 죽음을 별것 아닌 것으로 아침마다 소를 몰고 밭으로 나가듯이 가볍게 받아들이셨습니다.

이 정도 유언이 나오려면 깊은 내공과 오랜 세월이 필요한 것이지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습니다.

죽음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의술의 목표라면 의술은 백전백패합니다.

깨어진 육체를 맞추고 꿰매서 살려내는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충분히 다 살고 죽으려는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품위있게 인도해주는 의사도 있어야 합니다.

죽음은 쓰다듬어서 맞아들여야지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 살았기에, 가야하는 사람의 마지막 시간을 파이프에 꽂아서 붙잡아 놓고 못가게하는 의술은 무의미합니다.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도 미련없이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 이토록 단순한 장례 절차에서도 정중한 애도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의술도 모두 가벼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뼛가루를 들여다보면 인생의 의미를 다 알 수 있습니다.

이 가벼움으로 삶의 무거움을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천하를 통일했던 중국의 진시황제나 애플을 창시하여 억만장자가 된 스티브잡스, 영원히 북한을 통치할 것 같았던 김일성, 그들은 모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그룹의 이건희 회장도 병상에 누워있다 결국 고인이 됐습니다.

이렇게 화려하게 살다가 떠나간 사람 중 누가 부럽나요?

세상에는 없는 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정답이 없습니다.

둘째는 비밀이 없습니다.

셋째는 공짜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것 세 가지는

첫째는 사람은 분명히 죽는다는 것.

둘째는 혼자서 죽는다는 것.

셋째는 아무것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것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과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어떻게 죽을 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태어나는 방법은 거의 비슷하지만 죽는 방법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평가는 태어나는 것 보다 죽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내가 세상에 올 때 나는 울었고 내 주위의 모든 이들은 웃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땐 모든 사람들이 아쉬워 우는 가운데 나는 웃으며 훌훌 떠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을 최고로 잘 산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살아 가세요.

걸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친구들과 대화할 수 있고 이렇게 살아있는 지금이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삶은 소풍입니다.

가는 길에 쉬었다가 오는 길에도 쉬고 또 중간에 틈나는 대로 쉬어야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너무 바쁘게 살지 마세요.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을 그 자체로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지, 하루하루를 마치 무슨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소모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깨우친 형제들은 우리에게 인생에 잇어서 '일'을 전하지 않았고 '소풍' 을 권했습니다.

우리는 일하러 세상에 온 것도 아니고 성공하려고 온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다 부차적이고 수단적인 것이지요. 우리 모두가 전생에 무엇을 잘하고 못했는지 모르지만 한 세상 누릴 수 있는 삶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아직 삶을 선물로 받지 못한 억조창생의 대기조들이 우주의 커다란 다락방에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삶을 수단시하지 말고 삶 자체가 목적임을 깨두치세요.

이 삶이라는 여행은 무슨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여행 자체를 즐기시길 바랍니다.

멀리 소풍가서 노는 이야기에 번뇌와 고통만 가득하다면 그것을 참된 인생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기막힌 사연과 세상속에서도 행복과 기쁨이 있는 삶을 살아가세요.

곱게 늙어가는 이를 만나면 세상이 참 고와 보입니다.

늙음 속에 낡음이 있지 않고 도리어 새로움이 있습니다.

곱게 늙어가는 이들은 늙지만 낡지지는 않습니다.

늙음과 낡음은 글자로는 불과 한 획의 차이 밖에 없지만 그 품은 뜻은 서로 정반대의 길을 달릴 수 있습니다.

늙음과 낡음이 함께 만나면 허무나 절망 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늙음이 곧 낡음이라면 삶은 곧 '죽어감'일 뿐입니다.

늙어도 낡지 않는다면 삶은 나날이 새롭습니다.

몸은 늙어도 마음과 인격은 더욱 새로워집니다.

더 원숙한 삶이 펼쳐지고 더 농익은 깨우침이 다가옵니다.

늙은 나이에도 젊은 마음이 있습니다.

늙었으나 새로운 인격이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도 낡은 마음이 있습니다.

젊었으나 쇠잔한 인격입니다.

겉은 늙어가도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름답게 늙는 것입니다.

겉이 늙어갈 수록 속이 더욱 낡아지는 것이 추하게 늙는 것입니다.

늙음과 낡음은 삶이 아름다움과 추함을 갈라놓습니다.

누구나 태어나면 나이들가게 됩니다.

하지만 몸은 비록 늙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새로움으로 살아간다면 평생을 살아도 늙지 않습니다.

곱게 늙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멋모르고 날뛰는 청년의 추함 보다는 고운 자태로 거듭 태어나는 노년의 삶이 더욱 더 아름답습니다.

행여 늙는 것이 두렵고 서럽습니까?

마음이 늙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새롭게 새로움으로 바꿔보세요

늙어가는 나이테는 인생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그만큰 원숙해진다는 것이겠지요.

천천히 걸어도 빨리 달려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한 세상 입니다.

더러는 조금 살다가 더러는 오래 살다가 우리는 결국 가야할 곳으로 떠나갑니다.

소중한 시간에 사랑하고 이해하며 사세요.

우리에게 주어진 둘도 없는 삶, 지난 날 돌이키며 후회하기 보다는 나에게 남은 하루하루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희망을 거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마침내 바람에게도 보이지 않는 마음에게도 고마움을 느끼며 정다운 사람들과 오붓하게 웃음을 나누면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됩니다.

가져갈 수 없는 무거운 짐에 미련을 두지 마세요.

빈 몸으로 와서 빈 몸으로 떠나가는 인생입니다.

힘들었던 과거, 상처받은 마음, 쓸데없는 걱정까지 모두 훌훌 털어버리세요.

아까울 것 하나 없습니다.

힘겹게 이고, 지고, 안고 있으면 인생이 금방 지치고 힘이 들게 됩니다.

간 밤에 꾼 호화로운 꿈도 깨고 나면 모든 것이 허무하고 무상하지요.

어제 꽃피는 봄날도 오늘의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데 지금 두 손에 붙든 미련을 놓아버리고 가벼워지세요.

어차피 떠나가야할 그 길이라면 그 무거운 짐일랑 다 벗어 던지고 처음 왔던 그 모습으로 편히 떠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혹여나 지나간 일에 대한 자책감으로 힘들어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이 두려운 분들이 있다면, 일어나지도 않은 어떤 일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과거에 대한 자책과 미래에 대한 걱정 모두가 현재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현재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후회가 없도록 현재를 즐기셔야 합니다.

이 좋지 않은 감정들은 모두 털어버리고 지금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행복한 삶을 만드는데 유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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