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주식시장 붕괴와 이어진 대공황이 미국 경제에 얼마나 끔찍했는지 잘 알려져 있지만, 1920년대에 있었던 경기 침체, 즉 1920~1921년의 "잊혀진 경기 침체"에 대해 아는 사람은 훨씬 적다. 엄밀히 말하면, 1920년의 경기 둔화는 확실히 침체처럼 느껴졌지만, 당시에는 그 이상이었다.
먼저, 1920~1921년의 경기 침체와 2022년의 현재와 비교해 보자. 오늘날에는 세계대전을 치르지 않았지만, 1920년대의 대규모 사건 진행과 상당히 비슷하다.
분명, 두 시대 사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차이가 있지만, 주요 사건 중 일부가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따라서 우리는 경기 침체 이후 번영의 1920년대를 누렸던 것처럼, 지금의 경기 침체도 번영의 2020년대로 이어지길 바랄 수밖에 없다. 이제, 1920~1921년의 경기 침체로 돌아가자.
1920~1921년 경기 침체
1920~1921년의 잊혀진 경기 침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8개월 동안 지속된 짧지만 심각한 경제 위기였다. 종전 이후 경제는 짧은 호황으로 이어졌고 기업 활동의 엄청난 증가가 있었다. 하지만 이후 경기 침체가 뒤따랐다. 아래 차트는 그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아래의 경기 침체에 대한 통계도 마찬가지였다.경기 침체의 원인
당시 경기 침체의 원인은 여러 가지였지만, 통화 정책과 전시 수요의 증발이 주범이었다.
면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면직물 같은 전시 상품 수요를 충족하고 밀 같은 유럽 생산 작물을 대체하기 위해 농작물의 수요와 생산이 호황을 누렸다. 농민들은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출을 받아 농장을 확대했지만, 가격이 떨어지자 이자를 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공급망의 다른 부분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농민들에게 해준 대출을 통해 상품 가격에 많이 노출된 남부 은행들도 영향을 받았다.
면화 가격의 하락은 특히 남부 지역에 잔인했다. 1910년, 미국은 세계 면화 공급량의 54%를 생산했고, 남부의 단 5개 주에만 세계 면화의 25%를 생산했다.
아래 차트가 보여주듯이, 면화 가격은 전시 최저치인 0.07달러에서 1920년 사상 최고치인 0.42달러로 상승했다. 하지만 1921년 전시 수요가 증발되고, 과잉 생산이 현실로 나타나자, 가격은 0.12달러까지 71%나 급락했다.
면화 가격 폭락은 남부 지역의 경제를 황폐화시켰다. 면화 자금 조달은 많은 여러 기관과 참여자들이 상호 연결된 과정이었다.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있는 많은 대출은 면화 자체 또는 면화 생산 관련 자산에 의해 담보되었다. 따라서 면화 가격이 급락하고 상환 불능의 면화 관련 대출이 증가해 은행들의 손실이 쌓여감에 따라 지역 금융 시스템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연준의 정책과 인플레이션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경제가 직면한 주요 문제였다. 소비자 물가 지수는 1913년에서 1920년 사이에 109% 상승했다. 당시 애틀랜타 연준 총재인 막시밀리안 웰본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종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 중 많은 사치를 거부했던 대중들이 돌아섰다. 이윽고 "경솔하고 특이한 사치"의 시기를 가져왔다. 돈은 쉽게 만들어졌고, 따라서 쉽게 쓰였다. 전쟁 계약으로 번성했던 사람들은 아무런 구속도 느끼지 않았고, 최대한 썼고, 자연스럽게 물가는 전례 없는 수치까지 올랐다.
연준 자체도 실수가 있었다. 이례적으로 저금리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금리를 인상하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상당량의 자유 전시 공채를 보유하고 있던 시중 은행에 심각한 피해를 줄 것이라는 우려에서 나온 결정이었지만, 그 결과 인플레이션 상승을 가져왔다.
하지만 결국 인플레이션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연준의 대응
1920년 1월, 연준은 금리를 6%로 올렸다가 다시 7%로 빠르게 올렸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기업 활동 둔화와 면화 가격의 붕괴와 부딪혔다.
1920년 1월에 경기 사이클이 막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이 조치는 너무 과도했고, 프리드먼과 슈워츠는 "1월의 금리 인상은 너무 늦었을 뿐만 아니라 너무 급격했다."라고 말하면서 가벼운 경기 침체를 심각한 경기 침체로 바꿔 놓았다.
이어서 인플레이션 상승 문제가 급격한 디플레이션의 문제로 바뀌었다. 1913년~1920년 사이 109% 오른 물가는 1920년~1922년 사이 22% 하락했다. 은행들의 영업 정지가 급증했다
1920년 여름 경제가 높은 금리로 고통을 겪으면서, 연준에게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연준은 입장을 고수했다. 벤저민 스트롱 뉴욕 연준 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기간에는 상당한 수준의 실업률이 수반되겠지만 그리 길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1년 또는 2년 동안의 불편함, 당혹감, 손실, 실업으로 인한 장애 등을 이겨내면, 물가는 다른 국가들보다 더 경쟁력 있는 수준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연준은 금리를 인상한 수준으로 유지하면 어떤 결과가 있을지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경제/금융 시스템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러한 대응의 대가는 18개월 동안의 심각한 경기 침체였지만, 경제는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고, 번영의 1920년대에 자리를 내주었다. 앞으로 거의 10년 동안 경제는 번영의 길을 걸었다.
맺음말
현재 겪고 있는 경기 침체가 전례 없는 번영의 2020년에 자리를 내줄지는 오로지 시간만이 말해주겠지만, 타임 라인이 1920년대와 계속 비슷하기를 바란다.
자료 출처: Investor Amnesia, "Pandemic, Recession, Roaring Twenties… Repeat?" (번역 by Pius)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