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2일 월요일

관상의 심상



 - 관상(觀相)의 심상(心相) -

사람은 누구나 좋은 얼굴을 가지기를 원한다.

관상을 잘 믿지 않는 사람도 누가 "당신 관상이 좋다"고 하면 금세 입이 헤. 헤벌러. 벌어진다.

백범 김구 선생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청년 김구는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시험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당시엔 인맥과 재물이 없으면 출세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밥벌이라도 하려면 관상이라도 배워보라고 권했다.

김구는 ‘마의상서’라는 관상책을 구해 독학했다.

어느 정도 실력을 연마한 그는 거울을 갖다 놓고 자신의 관상을 보았다.

가난과 살인, 풍파, 불안, 비명횡사 할 액운이 다 끼어 있었다.

최악의 관상이었다.

"내 관상이 이 모양인데 누구의 관상을 본단 말인가!"

때마침 장탄식하던 김구의 눈에 책의 마지막 구절이 들어왔다.

'얼굴 잘생긴 관상(觀相)은 몸이 튼튼한 신상(身相)만 못하고

몸이 좋은 신상은 마음씨 좋은 심상(心相)만 못하다.'

얼굴보다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올커니!" 김구는 무릎을 쳤다.

용기를 얻은 그는 책을 덮고 어떻게 하면 좋은 심상을 만들지를 생각했다.

그는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훗날 상해임시정부를 이끄는 민족지도자가 되었다.

김구가 읽은 마의상서에는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이 책을 쓴 마의선인이 길을 걷다

나무하러 가는 머슴을 만났다.

그의 관상을 보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마의선인은 머슴에게

“얼마 안 가서 죽을 운명이니 너무 무리하게 일하지 말게”라고 일렀다.

그 말을 들은 머슴은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그때 나무껍질이 계곡물에 떠내려왔다.

머슴은 나무껍질 위에서 개미떼들이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보고는 측은한 생각에 껍질을 건져 개미들을 살려 주었다.

며칠 후 마의선인은 그 머슴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의 얼굴에 서려 있던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부귀영화를 누릴 관상으로 변해 있었다.

작은 선행이 그의 관상과 운명까지 바꾼 것이다.

머슴에게서 개미 이야기를 들은 마의선인은 크게 깨닫고는 마의상서에 글을 남겼다.

김구가 읽은 마지막 장의 심상이 그 대목이다.

사람들은 턱을 깎고 새 눈썹을 만드는 성형으로 자기 얼굴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진면목은 마음에서 나온다.

남에게 호감을 주는 얼굴을 가지려면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

심성이 착하고 남을 돕고 배려하면 얼굴이 부드럽게 변하기 때문이다.

중국 당나라에 배도라는 사람이 있었다.

길에서 유명한 관상가를 만난 그는 자기 관상을 한 번 봐달라고 청했다.

관상가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말하기 민망스럽지만 당신은 빌어먹을 상이오."

관상가의 말을 들은 배도는 타고난 운명을 어쩔 수 없다면 남에게 좋은 일이라도 하고 죽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선행을 베풀었다.

세월이 한참 지나 배도는 길에서 그 관상가를 다시 만났다.

관상가는 배도를 찬찬히 살피더니 깜짝 놀라 말했다.

"정말 놀라운 일이오. 당신의 상이 바뀌었소.

당신은 이제 정승이 될 상이오."

실제로 배도는 훗날 벼슬길에 올라 정승이 되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성대중이 쓴 '청성잡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의 관상을 보는 것보다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낫고,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사람의 행동을 살펴보는 것이 낫고,

사람의 행동을 살펴보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이 낫다.'

얼굴보다 말을, 말보다 행동, 행동보다는 마음을 보라는 당부이다.

좋은 마음이 좋은 얼굴을 만든다. 반면 좋은 얼굴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쁜 마음을 먹으면 사악한 인상으로 바뀔 것이다.

운명은 바뀔 수 있다.

( 옮겨온 글 )

관상(觀相)과 심상(心想)

예측 할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이 살아간다. 점 치는 점성가들에 따르면 오히려 알만큼 알고 인지도가 꽤 있는 높으신(?) 분들이 점집을 찾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한 쪽에서는 사주보다 관상(觀相)이 어떤가에 따라서 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노력을 하였으나 하는 일마다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유명 대기업체인 삼성에서는 오래 전부터 관상을 보고 직원을 채용 한다고 한다. 그곳의 어떠한 틀에 적합하면 뽑히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관상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오래 전에 어느 프로그램에서 길거리의 거지한테 깨끗이 목욕을 시키고 좋은 옷을 입혀서 관상가한테 데려갔더니 옷은 잘 입었지만 관상을 보고는 거지 팔자라 말했다.

이런 것으로 봐서 얼굴 관상이 어느 정도는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첫 인상을 볼 때 사납게 생겼으면 역시 언젠가는 잠재되어 있던 사나운 모습을 드러낸다. 어느 시기가 되면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군' 하며 끌끌 혀를 차게 하는 경험을 하였다.
토끼상, 호랑이상, 고양이상 등 동물을 닮은 관상을 말하기도 한다. 덧붙이면 얌체같이 생긴 상, 쥐같이 생긴 상, 도둑같이 생긴 상 등등 여러 종류의 상 을 재미있게 표현한다.



‘불혹이 지나면 자기 얼굴에 책임 지라는 말'이 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얼굴 모습이 선하기도 하고 매우 사납고 상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마음 먹기에 달려있는 심상(心想)이 있다. 심상은 마음의 본체로서 심성(心性)과 같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굴 모습이 변하고 마음가짐이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늘 찡그린 얼굴, 성낸 얼굴, 울상이 되는 얼굴은 복이 들어 왔다가도 십 리 밖으로 도망간다.
성경 말씀에도 쓰여 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선한 일을 하고 선한 생각을 하면 자연히 심상도 좋아진다.

‘좋은 심상은 복 있는 길로 가는 길이요, 악한 마음을 품는다면 좋지 않은 길로 가는 지름길'이라 말할 수 있다. 생긴 대로 살아간다는 말처럼 사람의 본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성의 법칙' 이 있다. 관성(慣性)은 물체에 작용하는 힘의 총합이 0일 때 운동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다. 다시 쉽게 말하면 원래 상태로 있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어떤 새로운 것을 하기 싫어하고 관심도 두지 않는다. 똑같은 행동만을 반복한다.
심성에 따라서 어느 정도는 얼굴 관상이 변한다고 한다. 관상과 심상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의 첫 인상이 3초안에 각인된다' 는 말처럼 관상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는 말로 들린다.



관상학의 바이블인 `마의상법'은 “骨相不如觀相(골상불여관상) 觀相不如察色(관상불여찰색) 察色不如心相(찰색불여심상)”, 즉 골상은 관상만 못하고, 관상은 찰색만 못하고, 찰색은 심상만 못하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골상이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DNA에 따른 숙명이라면, 관상은 자신이 태어난 이후 추구해온 삶의 결과물이다. 현재의 얼굴에 드러나는 빛과 기운인 찰색은 최근에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을 했느냐에 따라 정해지고, 심상(心相)은 지금 이 순간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어머니이자 이래의 찰색과 관상의 씨앗에 다름 아니다.


결국 어떤 심상으로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지속 하느냐에 따라 찰색이 형성되고, 일정한 찰색이 반복되면 관상으로 굳어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심상을 바꾸면 찰색이 바뀌고, 찰색이 좋게 바뀌면 관상도 좋게 바뀌면서 삶 또한 좋게 바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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