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9일 월요일

인생에는 살 몫이 있다.

 


인간에게는 다 살 몫이 있다. 그것을 목숨이라고 한다. 병원 응급실에 가보라. 이 말이 얼마나 절실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몇 년 동안 백혈병으로 고생하던 한 소녀가 세상을 떠났다. 병실을 정리하던 간호사가 그 소녀가 기록한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 속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로 가득차 있었다. ‘오늘도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 엄마, 건강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햇살이 환했어요. 감사합니다. 간호사 언니가 활짝 웃었네요. 뭔가 좋은 일이 있나봅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니 놀랄만한 일이에요.’

내가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은 살 몫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나에게 할 일이 있다는 증거이다. 할 일이 없으면 벌써 하나님이 데려 갔을 것이다. 때때로 우리가 ‘큰 일 날뻔 했다’라고 말할 때는 목숨과 연관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인이다. 왜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이 자기보다 젊은데도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느냐? 우리는 오늘도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의 인생이 자기에게만 속한 줄로 착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자기의 삶의 순간순간에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게 영향을 주고 자기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심지어는 자기가 속한 단체의 사업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그보다 더 큰 일은 자기 인생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면서 살아가야 한다. 자기가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라고 몫을 남겨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바울은 자기의 곤경 속에 주님의 계획이 들어 있었음을 늦게 서야 깨달았다. 하나님은 바울을 쓰시기 위해서 당시에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로마법정에까지 가도록 준비하셨다. 이 일은 바울이 주님께로부터 계시 받은 그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어디에 가서도 주를 위해 살겠다는 그 믿음이 하나님을 감동시켰다.

미국 뉴욕 9.11 비행기 테러 사건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추>라는 홍콩 출신의 40대 변호사가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15년간 거주하며 맨해튼 5번가에서 법률회사를 운영해 왔다. 그러던 중 지난 9.11 테러 당시 비행기 충돌로 무너져 내린 세계무역센터의 한 건물 20층에서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동행하기로 한 부인이 친구에게 때마침 전화를 받는 바람에 출발이 늦어졌다. 그래서 사건이 일어난 뒤에 현장에 도착했다. 운 좋게 참사를 피한 추는 정신적 충격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홍콩으로 귀향했다. 이후 교육 사업에 뛰어든 추는 지난 해 3월 15일 사업차 베이징 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비행기에 사스환자가 탑승했다. 72세의 사스환자가 탑승한 이 비행기에서 추를 포함한 18명의 승객이 사스에 감염된 것이다. 그로부터 4일후 사스가 발병한 <추>는 한 달 후 지난 4월16일 홍콩의 한 병원에서 죽고 말았다.

인간이 죽음을 피하는 것이냐? 죽음이 인간을 피하는 것이냐? 인생의 일이 다 되었다고 하면 터지고, 이제는 어려움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또 다른 일이 생기는 것이 세상사요, 인간사이다. 인간이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야 올바로 사는 것이냐? 성경은 이렇게 대답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살라.’ 이것이다.

때로 자살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 얼마나 견디지 못해서 자살했겠느냐는 동정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이 될 수 없고 더욱이 귀신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세상에 던져진 몫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손댈 자격도 없고 권한도 없는 것이다. 결코 자기 것이 아니다. 왜 부모가 있고 자녀가 있느냐? 그것은 그러한 연관관계로 엮어진 인생을 살라고 주어진 살 몫이다.

자녀가 자기 삶이 어렵다고 부모에게 왜 나를 낳았느냐고 묻는 질문은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가 인위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식물인간이라도 함부로 생명을 끊을 수 없다고 야단이냐? 목숨은 인간이 끊을 수 없는 성스러운 울타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울증 환자들의 자살사건이 빈번히 일어난다. 사람들은 그것이 병이기 때문에 용서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우울증은 병이기는 하지만 자기를 죽이려는 능력이 있는 것은 우울증을 이길 수 있는 능력도 있다는 뜻이다. 우울증을 이기는 일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산다는 것이 하나의 몫임을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 자살은 그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다. 자살은 그를 낳아주신 부모에게 항의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씻지 못할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다.

자기를 포기하고 살 의욕을 잃었다고 느껴지면 차라리 신체의 일부를 응급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환자에게 떼어주라. 그러면 새로운 생명이 새롭게 탄생할 것이다. 산다는 것은 나의 몫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 다음에 어떤 연극이 펼쳐질지 모른다. 인생에는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 내용은 자기만 갖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부모와 형제와 친지와 주위 사람들이 공유할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인간은 그 자체가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 그 관계란 살아있을 때의 일이다. 죽은 다음에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결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유나 권한이 아니다. 인간이 출생할 때 엄마의 탯줄같이 영원히 보이지 않는 탯줄로 연관되어 있다. 그것이 살 몫이다. (신동작의 인생은 과정이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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