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6일 목요일

우리에겐 젤렌스키보다 위대한 대통령 이승만이 있었다

 [김순덕 칼럼]

우크라 대통령부인 “6·25 후 성장 배울 터”

이승만 대통령이 한미동맹 쟁취했기에

강한 안보 있어 경제성장도 가능했다

좌파가 폄훼한 대통령 이제는 재평가해야

이승만 전 대통령.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제공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침략당한 지 24일이면 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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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도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러시아 독일 폴란드 같은 주변 강대국에 시달린 나라가 우크라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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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간신히 독립했는데 파시즘 철학자 이반 일린에 심취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는 없다”며 침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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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대국, 우리는 소국”이라던 전임 대통령을 둔 우리로선 남의 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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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대선 TV토론에서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 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던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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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볍게 봤던 코미디언 출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2년 미국 타임지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로부터 ‘올해의 인물’로 뽑혀 세계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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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의 동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들고나온 명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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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950년 6월 25일 우리나라로 쳐들어오면서 남한이 침략했다고 주장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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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의 핵심은 러시아라는 제국주의적 강대국이 가만있는 주권국가를 선전포고도 없이 쳐들어간 침략 행위다(정재원 국민대 교수 2022년 논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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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의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6·25전쟁 후 한국이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룬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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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에게는 젤렌스키보다 위대한 대통령 이승만이 있어 한미동맹을 맺었고, 그래서 휴전 후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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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의 위대한 점은 공산주의의 실상을 누구보다 먼저 꿰뚫어 봤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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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하원은 2일 수백만 명이 기근 테러로 굶어 죽은 우크라이나, 수천만 명이 아사(餓死)한 중국 대약진운동, 소련 볼셰비키 혁명, 350만 명이 굶주린 북한의 참상을 전하며 ‘사회주의 공포’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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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은 미 하원이 이제야 알아챈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본질을 진작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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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은 북조선에 1946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라는 단독 정부를 세웠고 따라서 1946년 6월 남한만이라도 민주주의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정읍 발언’을 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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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소모전으로 맴돌면서 한국식 휴전으로 끝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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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휴전 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칠지 모른다. 6·25 당시 이승만 대통령도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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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월 말 워싱턴포스트가 전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전략에 따르면 미국은 어느 한쪽의 완승이란 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한국식 휴전을 고려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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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이란 원치 않아도 강대국 의사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슬픈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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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힘을 길러야 하고, 힘이 없으면 강한 동맹이라도 붙들어 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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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014년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가 군사적으로 되찾는 것은 핵전쟁 위험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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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미국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까 봐 미군의 북진을 반대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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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되찾는 것을 목표로 하되, 지금으로선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은 나토 아닌 유럽연합 가입에서 멈추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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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이면 우리의 이승만 대통령은 결코 휴전을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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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은 북한군을 38선 이북으로 격퇴시키고 ‘제한전쟁’을 끝내는 것이 중요했지만 우리로선 미군이 철수할 경우 어떻게 살아남느냐에 필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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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유럽의 나토 같은 방위조약을 한국과 맺어주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롭다는 것을 이승만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휴전에 결사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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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의 방위조약 없이 남겨진다면 한국의 공산화는 시간문제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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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3월 21일 이승만이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만일 미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주지 않으면 한국인들은 싸우다 죽을 것”이라고 쓴 편지는 눈물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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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953년 10월 1일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쟁취한 뒤 이승만은 담화를 발표했다.

​“이제 우리 후손들이 앞으로 누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갖가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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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이 안보를 튼튼히 해줌으로써 우리는 경제 발전에 매진해 오늘의 번영을 누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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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일성부터 김정은까지 미군 철수를 주장했던 것도, 전임 문재인 정권이 기를 쓰고 종전선언을 추진했던 것도 미군 철수를 노려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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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가 작정하고 폄훼했던 위대한 이승만 대통령을 이제 재평가할 때가 됐다. 올해가 한미 상호방위조약 7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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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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