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2일 토요일

[좋은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무료하고 심심하니까
그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 친구를 찾는다면
그건 `우정`일 수 없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찾는 친구는 좋은 친구가 아니다.

시간을 살리기 위해 만나는 친구야말로
믿을 수 있는 좋은 친구 사이다.

친구 사이의 만남에는
서로 영혼의 메아리를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너무 자주 만나게 되면
상호간에 그 무게를 축적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마음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좋은 친구일 것이다.

만남에는 그리움이 따라야한다.

그리움이 따르지 않는 만남은
이내 시들해지게 마련이다.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開眼)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때의 마주침이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가꾸고 다스려야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행복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절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서 지나친 것은 행복을 침식한다.
사람끼리 만나는 일에도 이런 전제가 있어야한다.

그러니 따뜻한 마음이 고였을 때,
그리움이 가득 넘치려고 할 때,
영혼의 향기가 배어 있을 때 친구도 만나야한다.

습관적으로 만나면 우정도 행복도 쌓이지 않는다.

혹시 이런 경험은 없는가.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 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말이다.

혹은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레임을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 있어 좋은 친구일 것이다.

좋은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법정 스님 ‘오두막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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