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5일 토요일

時間(시간)

 

時間(시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시간이다.

세월처럼 무서운 건 없다.
어느 두메산골에
젊은 사냥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냥을 나간 그는 어느 날 산속을 헤매다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독수리를 발견하고
화살을 겨누고 있었지만,

​그 독수리는 자신이 죽을 줄도 모르고 어딘가를
계속해서 노려 보고 있었습니다.
​이상해서 자세히 봤더니 독수리는 뱀을 잡아
먹으려고  그 뱀을 노려 보느라

사냥꾼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뱀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독수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개구리도 마찬가지로 무당벌레를 잡아먹으려고
미동도 하지 않고 노려 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무당벌레도 꿈쩍 않고 있었습니다.
무당벌레는 진딧물에 정신이 팔려
개구리를 의식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이러한 먹이 사슬을 보다가 슬그머니 활을
내려놓고 갑자기 자신의 뒤를 돌아다 보았답니다.
혹시 누군가가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뒤에서 노려보는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면서...

​사냥꾼은 볼 수 없었지만 이때 그를 뚫어지게
노려 보고 있는 적 아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모래시계였습니다.

사람의 천적은 시간이고 세월입니다.
세월이 여러분을 노려 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시간이다.
시간은 오늘도 우리들을  데리고 어디로 떠난다.
어느 누가 시간의 흐름을 멈추게 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다시 한번 음미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아직 지구 역사에는 시간의 물결을 타고 떠난 자가
돌아온 적이 없다.
히틀러도 나폴레옹도 레닌도 모택동도 그리고 모든 독재자들도
이제는 모두 시간 속에서 갇혀 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시간이다.
시간 속에서는 잘난 자도 못난 자도 없다.
영웅호걸도 없고 절세가인도 없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르신들을 뵐 때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분명 저분들도 우리처럼 젊었을 때가 있었을 텐데'.
예전에 몇몇 어르신들이 하셨던 말씀들이 생각납니다.

' 권력 재물에 연연하지 마라.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젊은데 무엇이 걱정이냐.
건강이 우선이다. 즐겁게 살아라'

앞서 가셨던 어르신들이 아무리 말해줘도
우리 스스로 정말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작 중요한 게 어떤 것인지 깨우치기 힘들 것입니다.
또한 알면서도 현실과의 타협이라는 큰 장벽 앞에
그 마음들이 자주 무너지곤 합니다.

세월의 흐름이 무서운 이유는,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세월이란 살수도 팔수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인간답고 가치 있는 삶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세요.

(퍼온 글)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일까?**

우리가 '가치 있는 삶'을 말할 때
사람들은 주로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
또는
'얼마나 많이 성취했는가?'
주목한다.

한 평생 살며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밑에 직원은 몇 명이나 두고 있는지,
권력을 얼마나 누렸는지 같은
잣대로 가치를 따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흔 살까지는10억을 벌고
쉰 살까지는 20억을 모을 거야'
라는 식으로 목표를 정하기도 하는데,

마치 보험사에서 보험료를
환산하듯이 돈과 권력으로
삶의 가치를 따질 수 있는 것일까?

수백 억대의 재산가가 될 지라도
죽은 후 애도해 줄 사람도 없는
외롭고 슬픈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소크라테스는 이 어려운 질문에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그는 말한다.
"성찰하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
그럼,
성찰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차를 타고 낯선 길을
여행하다가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속도를 줄이고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현재 내 위치를 아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 삶에서도 내가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려면 먼저 자신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위치가 파악된 후에야
향을 잡을 수 있을 테니까.

방향이 보이고 나면
그제야 서서히 속도를 낼 수 있다.

어제 한 일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속도만 낸다면 성찰이 없는 삶이다.

성찰한다는 것은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스스로에게 화두를 던지며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
성찰의 시작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가치 있는 삶은
성찰하는 삶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성찰하는 사람은
객관적인 잣대나  산출된 숫자로
자신과 타인의 인생을
비교하지 않는다.

성찰하는 사람은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가늠해
속도를 조절할 줄 안다.

현재 자신의 위치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현 시점에서 하던 일을
다 그만두었을 때
내 손에 무엇이 남는 지
질문해 보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직함이 없어지면,
무엇이 남아 있을까?
현장에서 한발 비켜서면
내가 누구인지
더 잘 보이게 되는 법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분주한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라.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질문을 던져보아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당장
해답이 보이지 않는 다고 해서
좌절하지 마라.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성찰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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