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꽃 하면 가장 생각나는 꽃. 코스모스가 아닐까요?
하늘하늘 춤추듯이 흔들거리는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꽃길을 걸으면 가을의 낭만이 느껴집니다. 코스모스는 홀로 피는 것보다 무리 지어 피어있을 때 더 예쁩니다.
가을 길목에 코스모스가 피었습니다. 장미처럼 향기가 진하지도 않고 국화처럼 기품을 뽐내지도 않습니다. 가는 줄기에 얇은 꽃잎 여덟 장을 달고 바람에 흔들릴 뿐인데, 그 모습에 자꾸 걸음이 멈춥니다.
미국 땅에 발을 디딘 지 어느덧 55년이 되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말도 낯설고 길도 낯설었습니다. 고국의 가을 길가에 흐드러지던 코스모스가 문득문득 그리웠지만, 그리움을 오래 붙들고 있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자리를 잡아야 했고, 가족을 지켜야 했고, 맡은 일을 해내야 했습니다. 약을 다루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쌓아 온 세월이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길가의 꽃을 볼 겨를이 없었지요.
그런데 그 시절이 지나고 돌아보니, 나는 낯선 땅에서 내내 코스모스처럼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옥하지 않은 땅에 떨어져도 환경을 탓하지 않고 뿌리를 내리는 꽃입니다. 이민 생활은 크고 작은 바람의 연속이었습니다. 버티려 애쓸 때보다 힘을 빼고 몸을 맡겼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게 되는 일이 아니라, 흔들려도 괜찮은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코스모스는 한 송이만 보면 소박하지만 들판에 무리 지어 피면 가을 풍경 전체가 됩니다. 제 삶도 그랬습니다. 혼자 이룬 것은 없었습니다. 곁에서 함께 흔들려 준 아내가 있었고,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도 제 몫의 꽃을 피웠고, 손주들까지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그보다 더 큰 자랑이 없습니다. 요즘은 아내와 나란히 골프장을 걸으며 지나온 이야기를 나눕니다. 같은 세월을 같은 자리에서 건너온 사람과 함께 걷는 아침만큼 귀한 시간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꽃이 지면 코스모스는 미련 없이 씨앗을 떨굽니다. 붙들고 있으려 하지 않고 다음 계절에 맡깁니다. 우리가 남길 것도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재물이나 이름보다, 우리가 살아온 모습 그대로가 자식과 손주들의 마음에 떨어져 이듬해 작은 꽃으로 피어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가을 하늘 아래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바라봅니다. 봄꽃처럼 서두르지 않고 늦게 피었지만, 늦었기에 더 맑고 고요합니다. 저도 이 가을의 자리에서 아내와 함께 조용히 흔들리며, 감사한 마음으로 남은 계절을 피워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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