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일 금요일

거울 속의 아버지, 그리고 지금의 나

 

거울 속에 아버지가 있다


이발관 거울 앞에 앉으면 가끔 낯선 사람이 아니라 낯익은 사람을 만난다. 반백의 머리, 굵게 팬 이마의 주름, 안으로 들어간 눈. 내가 왼팔을 들면 거울 속 사람은 오른팔을 든다. 그 순간 나는 영락없이 아버지를 본다. 아버지가 떠나신 지 서른 해가 넘었는데, 이제는 거울 속에서 내가 아버지의 나이를 지나고 있다.

올해 여든다섯이다. 미국에서 산 세월만 오십오 년이 넘는다. 낯선 땅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말도 음식도 사람도 다 달랐지만 어떻게든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쌓다 보니 어느새 이 땅이 내 삶의 대부분이 되었다. 돌아보면 잘 살았다고 자랑할 일도, 크게 후회할 일도 많지 않다. 다만 열심히 살았다는 것만은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다.

한때는 세월을 속여 보려고 머리를 검게 물들이기도 했다. 거울 속 얼굴이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면 마음도 그만큼 젊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염색한 머리의 사람은 어쩐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흰머리는 세월이 내게 준 훈장이고, 아버지께서 내게 물려주신 모습이기도 했다. 속이려 할수록 오히려 나다운 것을 잃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지금의 나는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이기고 지는 일, 앞서고 뒤처지는 일이 이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대신 아침에 눈을 뜨고, 가족이 무탈하고, 오래 함께한 사람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새삼 느낀다. 젊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이가 드니 하나둘 보인다.

그래도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남은 날이 많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날들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여전히 내 몫이다. 건강을 살피고, 마음을 곱게 쓰고, 만나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 거창하지 않아도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다.

다음에 이발관 거울 앞에 앉을 때는 아버지께 드릴 소식 한 가지를 마음에 담고 가려 한다. "아버지, 저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남은 날들도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거울 속 아버지가 빙그레 웃으시는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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