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 월요일

이민 생활 55년, 웃음의 의미를 배우다

 

저는 올해 여든다섯입니다. 이민 와서 살아온 세월만 55년이니, 그동안 보내야 했던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부모님을 보내고, 오랫동안 정을 나누던 벗들도 하나둘 곁을 떠났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민 생활은 웃을 일이 그리 많은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부지런히 일해야 했고, 말과 문화가 다른 사회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속으로는 걱정이 많아도 내색하지 못했고, 힘들어도 가족을 위해 견뎌야 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 자체가 책임이었고, 마음 놓고 웃는 일은 뒤로 밀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의 해맑은 웃음이 때로는 참 뜻깊게 다가옵니다. 우리와는 다른 문화와 정서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자연스럽게 웃고, 낯선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미소를 건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란 특별한 일이 생겨야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저마다의 걱정과 아픔이 있을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웃음만으로 그들의 삶이 우리보다 더 편안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오랫동안 긴장하며 살아온 이민자의 눈에는 그 자연스러운 웃음이 유난히 밝고 귀하게 느껴집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웃음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젊을 때는 살아가는 일이 먼저였고, 기쁨은 그 일을 마친 뒤에야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그 과정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부모님도 떠나셨고, 함께 늙어갈 줄 알았던 벗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별을 겪을 때마다 슬픔은 남지만, 그렇다고 남은 날까지 슬픔에 내어줄 수는 없습니다. 떠난 사람을 기억하며 웃을 수 있고, 지나온 고생을 돌아보며 쓴웃음이라도 지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세월이 가르쳐 준 지혜일 것입니다.

여든다섯에 돌아보니, 이민 생활에서 이루어 낸 것만큼이나 아쉬운 것도 있습니다. 조금 덜 걱정하고, 조금 더 웃으며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애쓰느라 정작 살아가는 순간의 기쁨을 뒤로 미루곤 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웃음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 누리는 보상이 아닙니다. 해결되지 않은 걱정이 있어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어도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게 해 주는 작은 힘입니다.

55년의 이민 생활 끝에 제가 배우는 것은 더 많이 이루는 법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법입니다. 지나간 세월은 돌아오지 않고, 떠난 사람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남아 있는 오늘만큼은 걱정과 의무에 모두 내어주지 않고 싶습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돌아볼 때, 얼마나 애쓰며 살았는가만큼이나 그 긴 세월 속에서 얼마나 웃을 수 있었는가도 중요한 삶의 결산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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