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나를 돌아보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서늘해지고, 나무마다 단풍이 물드는 모습을 보니 새삼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나도 어느덧 황혼의 문턱에 서 있다. 반세기가 넘는 미국 이민 생활을 돌아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낯선 땅에서 자리 잡기 위해 애썼고, 가족을 위해 일했으며,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만들려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때는 늘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도 모아야 했고, 가족도 돌봐야 했으며, 남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오는 동안 계절이 바뀌는 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날도 많았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인생은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인 동시에, 그 과정에서 지나쳐 버린 소중한 것들을 뒤늦게 깨닫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것도 많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일도 줄었다.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도 건강 이야기와 병원 이야기, 누가 먼저 떠났다는 소식이 많아졌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무조건 오래 사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번 가을에는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려 한다. 지나간 선택을 후회한다고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살아왔고, 때로는 잘못된 판단도 했으며, 누군가에게 서운함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것까지 포함해서 내 인생이라고 받아들이려 한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천천히 걸어보고, 식사 한 끼도 고맙게 여기고, 곁에 있는 사람과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기보다 지금 가진 것을 지키고, 남의 삶을 부러워하기보다 내 형편에 맞게 살며, 사소한 일로 마음을 소모하지 않는 것.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소박한 생활이 무엇보다 귀하다.
가을 나무가 때가 되면 잎을 내려놓듯, 나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지나친 욕심과 고집, 남의 평가에 대한 미련,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것들을 조금씩 내려놓는다고 해서 인생이 초라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남은 삶을 더 가볍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을, 나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고 싶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내 발로 걸으며, 밥을 먹고, 저녁에 무사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젊은 날에는 평범하게 여겼던 일들이 이제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이 가을에 내가 바라는 것은, 지나온 인생을 원망하지 않고, 지금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남은 날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월은 붙잡을 수 없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은 아직 내 몫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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