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의 가치를 알아보고 싶거든 나가서 남에게 돈을 꾸어 달라고 요청해 보라. 적에게 돈을 꿔주면 그를 이기게 되고, 친구에게 꿔주면 그를 잃게 된다. -벤자민 프랭클린-
벤자민 프랭클린이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Poor Richard's Almanack)』에서 남긴 격언으로 알려진 말씀이지요. 짧은 글 안에 돈이 사람 사이에 미치는 힘이 잘 담겨 있습니다.
돈을 꿔주기 전에,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
빌려주는 돈, 지키는 사람
벤자민 프랭클린은 돈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남에게 돈을 꿔 달라고 해 보라고 했습니다. 250년도 더 된 말이지만, 지금 우리 곁의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요즘 세상에서 돈을 빌리는 일은 훨씬 쉬워졌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몇 번만 누르면 대출이 나오고, 카드는 오늘 쓰고 내일 갚으라고 속삭입니다. 그런데 빌리기가 쉬워진 만큼 빚의 무게는 가벼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프랭클린이 말한 "아쉬운 소리를 하는 부끄러움"이 사라지니, 돈의 값을 몸으로 느낄 기회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숫자로만 오가는 돈은 아무리 큰돈이어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빚이 불어나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됩니다.
반대로 빌려주는 쪽의 고민은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오히려 더 깊어졌습니다. 사업하는 친구의 급한 사정, 집을 마련하는 자녀의 부탁, 보증 한 번만 서 달라는 지인의 청이 그렇습니다. 거절하면 야박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들어주면 마음 한쪽이 내내 불안합니다. 프랭클린이 말한 대로, 친구에게 꿔준 돈은 돌아오지 않는 순간 돈만이 아니라 친구까지 데려갑니다. 갚지 못하는 사람은 미안해서 연락을 끊고, 받지 못한 사람은 서운해서 마음을 닫습니다. 수십 년 쌓은 정이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 앞에서 무너지는 일을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 자주 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세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줄 수 있는 만큼만 꿔주십시오. 돌려받지 못해도 내 삶이 흔들리지 않을 금액이라면 빌려주어도 좋습니다. 그 정도라면 처음부터 빌려준 것이 아니라 도와준 것이라고 마음먹는 편이 낫습니다. 받으면 고마운 일이고, 못 받아도 사람은 남습니다.
둘째, 가까울수록 분명하게 하십시오. 금액과 기한을 서로 확인하고 글로 남기는 일은 불신이 아니라 배려입니다. 흐릿한 약속이 오해를 낳고, 오해가 사람을 갈라놓기 때문입니다. 특히 보증만큼은 내 집과 내 노후를 걸어야 하는 일이니, 어떤 관계에서든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합니다.
셋째, 빌려야 할 때는 빌리는 마음의 무게를 기억하십시오. 남의 돈을 쓴다는 것은 남의 시간과 신뢰를 함께 쓰는 일입니다. 약속한 날 한 푼이라도 먼저 챙겨 갚으려는 마음, 갚지 못할 사정이면 먼저 찾아가 말하는 용기가 사람을 지켜 줍니다.
돈은 쓰면 사라지지만 사람은 한번 잃으면 다시 얻기 어렵습니다. 프랭클린의 격언이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가르침은 결국 하나입니다. 돈 앞에서도 사람이 먼저라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을 지키려면 때로는 거절하는 지혜도, 기꺼이 내어 주는 너그러움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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