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1일 수요일

고마움은 오래, 원망은 가볍게

 


살다 보면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남이 내게 섭섭하게 한 일은 몇 해가 지나도 어제 일처럼 또렷한데, 남이 내게 베풀어 준 고마운 일은 어느새 흐릿해져 있습니다. 반대로 제가 남에게 해 준 일은 오래 기억하면서, 제가 남에게 입힌 상처는 쉽게 잊곤 합니다. 기억이 공평하지 않고, 늘 제 편에 서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 기억의 습관이 삶의 무게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섭섭했던 일을 마음에 쌓아 두면 그 짐은 상대가 아니라 제가 집니다. 상대는 잊고 지내는데 저 혼자 그 일을 몇 번이고 꺼내 보며 마음을 상하게 하는 셈입니다. 원망은 품고 있을수록 나를 묶는 끈이 됩니다. 그 끈을 놓아야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반대로 고마움은 놓치기 쉬운 재산입니다. 돌아보면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수많은 도움이 있었습니다. 어려울 때 말없이 손을 내밀어 준 사람, 낯선 곳에서 길을 알려 준 이웃, 별 뜻 없이 건넨 따뜻한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당연하게 여기고 지나쳤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것들이 저를 지탱해 준 힘이었습니다. 고마운 일은 기억할수록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 따뜻함이 다시 누군가에게 베푸는 힘이 됩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원망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제가 남에게 준 상처까지 잊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남의 잘못은 가볍게 흘려보내고, 나의 잘못은 한 번 더 돌아보는 것이 마음의 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다짐합니다. 섭섭함은 오래 담아 두지 않고, 고마움은 잊기 전에 표현하자고요.

고마움은 마음에만 두면 시간이 지나 사라집니다. 오늘 전화 한 통, 짧은 인사 한마디로 전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때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 한마디를 미루다가 전할 길이 없어지는 일이 우리 나이에는 드물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원망하며 보내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고마운 일을 더 많이 기억하고, 그 마음을 더 자주 전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삶이 훨씬 자유롭고 따뜻해질 것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