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9일 금요일

머물다 가는 순간




누구의 인생에나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오래도록 믿지 않았다. 신이란 교회의 종소리나 기도의 끝에, 혹은 아주 큰 기적 속에나 계신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온 날이 쌓일수록 신은 오히려 가장 평범한 자리에 다녀가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이른 아침, 아직 아무도 깨지 않은 부엌에서 물을 끓이던 시간이었을 수 있다. 창밖이 푸르스름하게 밝아 오고 주전자 소리가 낮게 올라올 때, 이유 없이 마음이 고요해지던 그 몇 분. 그때는 그저 "좋은 아침이네" 하고 지나쳤지만, 돌아보면 그 고요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또 어떤 순간은 병실 복도에 있었다. 누군가의 곁을 지키며 밤을 새우던 사람은 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데, 그저 손을 잡고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상하게 견뎌지던 시간이 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우리는 능력이 아니라 존재로 서로에게 닿는다. 신은 아마 그런 곳에 가장 오래 머무시는 듯하다.

낯선 땅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이런 순간이 더 선명하다. 말이 서툴고 모든 것이 처음이던 시절, 누군가 건네준 따뜻한 밥 한 끼, 이름도 모르는 이웃의 짧은 인사, 고단한 하루 끝에 가족이 모여 앉은 저녁상. 그때는 살아남는 일이 전부여서 의미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그 장면들을 하나씩 꺼내 보면, 하나같이 누군가의 은총이 스치고 간 자리였다.

신이 머물다 간다는 말에는 쓸쓸함도 있다. 머문다는 것은 떠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아이가 품에서 자라 떠나가고, 부모님은 기억 속으로 물러나고, 젊은 날의 힘도 조금씩 빠져나간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 다녀간 이는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그가 머문 자리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남는다. 누군가를 용서하게 된 마음, 감사할 줄 아는 눈, 더 이상 두렵지 않은 저녁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삶의 의미는 큰 업적을 남기는 데 있지 않고, 신이 다녀가셨을 때 그것을 알아보는 데 있다고. 알아본 사람은 그 순간을 두 번 산다. 한 번은 그때, 또 한 번은 지금 이렇게 기억하며.

오늘도 어딘가에서 신은 누군가의 식탁 곁에, 누군가의 산책길 위에 잠시 머물다 가실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거창하지 않다. 바쁜 손을 잠시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이 그런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조용히 알아차리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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