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6일 월요일

착각에 빠질줄 알아야 행복하다

 


이민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현실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이민 왔을 때는 몇 년만 고생하면 자리를 잡을 줄 알았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집도 사고, 노후도 준비하고, 가족들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인생은 계산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집값은 오르고, 물가는 더 빨리 오릅니다. 몸은 예전 같지 않은데 병원비는 부담스럽고, 자녀들은 자기 삶에 바쁩니다. 한국에 있는 형제자매들과의 거리도, 세월도 쉽게 좁혀지지 않습니다.

그런 현실을 마주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무엇을 믿고 여기까지 걸어왔을까?"

아마도 작은 착각들이었을 것입니다.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착각. 아이들이 잘될 것이라는 착각. 은퇴 후에는 여유로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 고향에 가면 예전 사람들과 예전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돌이켜 보면 그중 상당수는 현실과 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착각들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모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았다면, 낯선 땅에서 그 많은 외로움과 불안을 감당하며 살아올 수 있었을까요.

나이가 들수록 희망은 사실보다 중요해집니다. 현실은 통장 잔고와 건강검진 결과를 보여주지만, 희망은 내일도 살아갈 이유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사람은 완벽한 진실만으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물론 현실을 외면하는 착각은 위험합니다. 준비해야 할 노후를 미루고, 건강관리를 외면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그러나 삶을 견디게 하는 희망마저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이민자의 삶은 늘 현실과 희망 사이를 오가는 여정인지도 모릅니다. 현실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말하고, 희망은 "그래도 살아볼 만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두 목소리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어쩌면 행복은 모든 것을 가진 상태가 아니라, 현실을 충분히 알면서도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작은 착각 하나를 끝까지 놓지 않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면, 그 착각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오늘까지 살아오게 한 가장 따뜻한 힘일지도 모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