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일 목요일

고독와 관계의 균형

 



고독은 길들이고, 함께함엔 균형 잡기

황혼이라는 말을 가만히 불러 봅니다. 해가 기우는 시간이면서, 하루 중 하늘이 가장 깊은 빛을 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저는 그 두 가지가 한 풍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살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곁에 있던 것들은 하나둘 조용히 자리를 옮깁니다. 일터의 분주함은 먼 옛일이 되었고, 자식들은 저마다의 삶을 꾸리느라 바쁩니다. 함께 늙어 가던 벗들의 이름은 어느새 안부가 아니라 기억 속에서 불리게 되었습니다. 젊은 날에는 바쁨이 고독을 가려 주었으나, 이제는 고요가 먼저 문을 두드립니다. 이 고요를 쓸쓸함이라 부르며 내칠 것인가, 오랜 이웃처럼 맞이할 것인가. 황혼의 평안은 거기서 갈린다고 믿습니다.

고독을 길들인다는 것은 체념이 아닙니다. 아침에 차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 창으로 드는 햇빛이 방 안을 옮겨 가는 것을 지켜보고, 지나온 날들을 하나씩 꺼내어 어루만지는 일입니다. 어린 왕자의 여우는 길들인다는 것이 시간을 들여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일이라 했습니다. 고독도 그러합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서늘하지만, 날마다 마주 앉다 보면 어느새 가장 정직한 말벗이 됩니다. 바삐 살 때는 듣지 못했던 내 마음의 소리, 미처 갚지 못한 고마움과 풀지 못한 미안함이 그 고요 속에서 비로소 말을 걸어 옵니다.

그렇다고 사람 없이 홀로 충분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은 끝내 사람 곁에서 온기를 얻는 존재입니다. 다만 황혼의 함께함에는 젊은 날과 다른 지혜가 필요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기대가 커지고, 기대가 커지면 서운함도 따라 자랍니다. 자식의 전화가 뜸하다고 섭섭해하고, 곁의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야속해하는 것은, 알게 모르게 상대에게 내 외로움을 채워 달라고 맡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받으려 하기보다 건네는 데서 기쁨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서로에게 너무 많이 바라지 않는 것, 그것이 균형의 첫걸음입니다.

균형이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아는 것입니다. 나란히 걸으며 보폭을 맞추고, 같은 밥상에 앉아서도 서로의 침묵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오래 함께한 부부가 말없이 앉아 있어도 편안한 것은, 말이 없어도 마음이 닿아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대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조언은 줄이고 마음은 열어 두며, 먼저 찾아오지 않아도 믿고 기다리는 것. 사랑은 이제 붙들어 두는 일이 아니라 놓아 주고 지켜보는 일이 됩니다.

고독과 함께함은 서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받쳐 주는 두 기둥입니다. 혼자 있는 법을 아는 사람은 함께 있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함께한 시간이 따뜻했던 사람은 홀로 있어도 쓸쓸하지 않습니다. 자기 안에 쉴 자리가 있으니 남에게 무겁게 기대지 않고, 그래서 곁에 있는 이도 편안해집니다.

젊은 날에는 무엇을 이루느냐를 물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머무느냐를 묻게 됩니다. 황혼은 더 얻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받은 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저녁노을이 하루의 끝에서 가장 고운 빛을 내듯, 고독을 벗 삼고 사람 사이의 거리를 어질게 지키는 삶은 저물어 가면서도 환합니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고, 함께여도 얽매이지 않는 마음으로 남은 날들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이 나이에 바랄 수 있는 가장 넉넉한 평안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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