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걱정도 스트레스도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호화로운 은퇴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오히려 건강을 잃어 갔고, 결국 활기 넘치던 옛 동네로 돌아갔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사례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사실이라기보다 삶을 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우화로 받아들인다.
다만 그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사람은 먹고사는 걱정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일은 나이가 들어서도 삶의 활력을 지켜 준다.
돌아보면 나의 지난 55년 미국 생활도 그랬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해 시카고와 뉴저지, 뉴욕을 거쳐 펜실베이니아에 이르기까지, 정착하는 곳마다 낯선 환경과 새로운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도 한 장에 의지해 길을 찾고, 주말마다 강의를 녹음해 반복해서 들으며 공부하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고단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만큼 삶에 대한 의욕이 강했던 시절도 없었다.
세월이 흘러 은퇴한 지금은 그때보다 생활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나 편안함이 곧 삶의 만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할 일이 없어 하루가 길어지고, 만날 사람이 줄어들고,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마저 사라진다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늙어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은퇴 후에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를 배웠고, 지금도 서툴지만 공부를 이어 간다. 타자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두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글을 쓴다. 생각은 앞서가는데 손가락이 따라오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다. 그래도 그 과정이 싫지만은 않다. 아직 모르는 것이 있고, 조금씩이라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내 하루에 작은 목표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골프장을 걷고, 가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일도 소중하다. 대단한 성취는 아니지만, 몸을 움직이고 사람과 관계를 이어 가는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이가 들면 무조건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젊을 때처럼 모든 일을 해내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이제는 몸의 한계를 인정하고, 쉴 때는 쉬어야 한다. 다만 쉬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걷고, 읽고, 배우고, 사람을 만나는 작은 수고는 여전히 필요하다.
황의 문턱에 서서 생각해 보니, 내가 바라는 노후는 모든 걱정이 사라진 삶이 아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만큼 움직일 수 있고, 아직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며, 안부를 나눌 사람이 곁에 있는 삶이다. 가진 것이 조금 부족해도 하루를 스스로 꾸려 갈 힘이 남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낙원은 아무 걱정 없이 가만히 누워 있는 곳이 아닐지 모른다.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 움직이고, 무언가를 배우고, 누군가와 정을 나누며 오늘 하루를 살아 내는 곳, 어쩌면 그곳이 우리가 찾아야 할 낙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낙원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삶 속에서 낙원을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내 곁의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며, 편안하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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