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로스앤젤레스 땅을 밟았을 때, 나는 이 나라에서 어디까지 가게 될지 알지 못했다. 서툰 운전으로 시카고를 지나 뉴저지에 이르러서야 짐을 풀었다. 지도를 펴 들고 낯선 길을 달리던 그 긴장이 지금도 손끝에 남아 있는 듯하다.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다시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도시로 일자리를 따라 옮겼고, 마침내 필라델피아에 자리를 잡았다. 이사를 할 때마다 짐은 줄었다 늘었다 했지만, 정작 오래 남은 것은 짐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옮겨 다닐 때마다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처음 보는 나에게 길을 일러 준 사람, 일자리를 소개해 준 사람, 타국에서 같은 말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을 열어 준 사람. 그때는 누구든 손을 내밀면 고마웠다. 외로움은 배고픔과 같아서, 무엇으로 채우는지 가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살아 보니 배고픔은 음식으로 채워도 아무 음식이나 먹는다고 건강해지지 않듯, 외로움도 아무나 만난다고 채워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더 중요했다. 이사를 거듭하는 동안 많은 인연이 스쳐 갔다. 서운하게 멀어진 사람도 있고, 거리가 멀어지니 자연스레 소식이 끊긴 사람도 있다. 이제는 그 모든 이들이 그 시절 나를 버티게 해 준 고마운 얼굴로 떠오른다. 스쳐 간 인연도 인연이었다.
그 길을 지나 지금 필라델피아에서 곁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오랜 세월을 건너와 아직도 안부를 묻고, 마주 앉으면 긴 설명 없이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다. 많지는 않다. 하지만 이민 반세기를 돌아보니, 그런 사람이 몇 명이라도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겠다. 여러 도시를 떠돌며 얻은 가장 값진 것은 집도 직장도 아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좋은 인연은 받기만 해서는 완성되지 않는다. 낯선 땅에서 도움받던 시절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내가 먼저 전화를 걸고 끝까지 들어주고 안부를 기억해 줄 차례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기를 바란다.
길은 멀리 돌아왔지만 마음이 닿은 곳은 결국 사람이었다. 스쳐 간 인연에게는 감사를, 지금 곁에 있는 인연에게는 따뜻한 밥 한 끼를. 남은 날들을 그렇게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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