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무위원회가 5년 만에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삼성그룹 외에는 법안의 효력이 미치지 않아 ‘삼성해체법’ 또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바로 그 문제의 법안이다. 보험사가 보유한 주식·채권의 가치평가 기준을 ‘취득 원가’에서 ‘시가’로 바꾸는 규제 신설이 골자다. 개정안 통과 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 가운데 약 25조원어치를 처분해야 한다. 대주주 발행주식 보유액을 ‘총자산의 3% 이내’로 제한하는 기존 보험법 규정을 준수해야 해서다.

이것이 현실화하면 삼성전자는 KT나 포스코처럼 ‘주인 없는 회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이 1.63%에 불과해 국민연금이 7.7%(9월 기준)로 대주주에 오른다. 정부 개입이 통하는 국민연금의 대주주 등극은 누가 봐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외국 투자자들의 부당한 경영권 위협과 개입도 빈번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그대로 한국 경제의 리스크가 될 것이다.

‘시세 평가’는 듣기에 그럴싸해 보이지만 정당성 면에서도 취약하기 짝이 없다. 개정안 발의자인 더불어민주당 박용진·이용우 의원은 다른 업권과의 형평성, 경영 건전성, 회계 투명성 차원에서 시가평가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금융권에서 보험사만 자산을 취득가액으로 평가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카카오뱅크 주가가 불과 1년 새 반의 반토막 난 데서 보듯 시장가치가 언제나 ‘공정’이고 ‘선’은 아니다.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최우선인 보험사가 수시로 변하는 주가로 자산을 평가하는 데 따른 위험도 상존한다. 삼성생명법 이슈가 처음 불거진 2015년 당시 금융위원장(임종룡)이 “장기투자해야 하는 보험업의 특성상 현행대로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맞다”며 반대한 이유다.

시가평가를 해야 경영 건전성이 보장된다는 주장도 단견이다. 보험사의 경영 건전성은 은행권의 자기자본비율(BIS) 격인 지급여력(RBC)비율 제도를 통해 이미 자산 시가평가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다. 내년에 도입하는 보험권 새 국제회계기준인 IFRS17에서도 자산 시가평가가 의무화돼 보험법 개정안의 목적은 이미 달성됐다. 계열사 주식 보유 시 불공정 이슈가 생길 것이란 주장도 있다. 완전히 틀린 견해는 아니지만 문제 되는 삼성보험사들의 계열사 투자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진행된 적법한 투자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무조건 매각’ 강제는 입법권 남용이자 ‘소급입법 금지’라는 법치주의의 기본원칙에 명백히 배치된다.

민주당은 2014년 처음 발의한 삼성생명법을 잊을 만하면 들고나오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집권한 문재인 정부 시절에 한 번도 국회 논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대기업 때리기’를 통한 득표용이라는 의구심이 커진다. 총성 없는 글로벌 경제안보 전쟁에서 잘 뛸 수 있도록 밀어줘도 모자랄 판에 지배구조 문제에 헛심을 쓰게 하는 건 자해에 다름 아니다. 삼성전자의 성공이 없었다면 아마 민주당의 보험법 개정 주장도 없었을 것이다. 초일류 기업 탄생 신화를 써온 기존 경영진에게서 강제로 경영권을 빼앗아 소위 ‘국민기업’을 만들자는 법, 과연 바람직한가. 성공을 단죄하는 소급입법은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