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15일 화요일

FTX의 샘 뱅크먼-프리드 VS. 성냥 왕 이바르 크뤼게르

 인생의 모든 것은 신뢰가 바탕이다. – 이바르 크뤼게르



1929년 10월 28일, 스웨덴의 사업가 이바르 크뤼게르가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당시 그는 부유하고, 강력했으며, 신비스러웠기 때문에 미국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던 인물 중 하나였다. 크뤼게르는 35개 국가에 200개 이상의 성냥 공장을 운영하면서, 세계 성냥 생산 및 판매량의 4분의 3을 지배하고 있었다.

(전기가 보편화되기 전까지 성냥은 다양한 곳, 예를 들어 등유 램프, 가스히터, 촛불, 페치카, 풍로,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이는 데 사용되었다. 1920년대 미국의 담배 생산량은 두 배로 증가했고, 따라서 성냥의 수요도 그만큼 많아졌다.)

크뤼게르는 성냥 왕이라고 불렸고, 북해에 개인 섬과 세계 곳곳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와 친구였고,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조언자였다. 크뤼게르는 노벨상 시상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세계 지도자들과 사업상의 거래를 했다.

한 마디로 전 세계에서 유명 인사였다.

심지어 아메리칸드림을 그린 장편 영화에서 그의 이야기를 사용할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대공황으로 그의 사기 제국이 무너지자 그는 곧 총으로 자살했고,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너지기 전까지,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업 제국 중 하나를 만들었다.

크뤼게르의 일절 타협 없는 사업 방식은 그의 성냥 회사 IMC(International Match Corporation)가 업계를 독점할 수 있게 만들었다.

많은 국가가 제1차 세계대전 부채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세계 성냥 산업을 지배하려는 야심을 가졌던 크뤼게르는 돈이 필요한 국가에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해주고, 그 대가로 자국 내 성냥 회사와 공장을 사들였다.

문제는 IMC가 대출 이자로 6~8%를 받고 있었던 반면, 크뤼게르의 금융 지주 회가는 투자자들에게 두 자릿수의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15~30%에 이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크뤼게르는 다양한 지주 회사를 통해 재정 상태를 조작하는 속임수의 달인이었다.

IMC와 여러 금융 지주 회사의 실제 손익계산서가 어떤지 아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실제, 크뤼게르는 돈을 이리저리 옮기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숨기기 위해 약 400개의 회사를 만들어 두었다.

그는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숨기는 데 너무 능숙해서 이사회와 투자자들은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 그들은 이 성냥 왕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그의 정치적 연줄이 어마어마 했기 때문이다.

회사 이사 중 한 명이 존 록펠러의 조카 퍼시 록펠러였다. 록펠러는 다른 이사들에게 "그는 유럽 각국 정부의 수장들과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바르 크뤼게르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행운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크뤼게르가 자신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수상 및 대통령과 거짓으로 통화하고 있었음을 록펠러는 알지 못했다.

몇 명과는 알고 있는 사이였지만, 이사회가 생각했던 것만큼 많지는 않았다.

전기가 보편화되면서 크뤼게르의 성냥 사업은 점점 더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 추세였지만, 번영의 20년대 동안 주식시장이 호황을 이루면서 온갖 새롭고 흥미로운 금융 상품이 생겨나고 있었다.

크뤼게르는 자신이 세계 엘리트들과 한 몸임을 증명하고 싶었고, 진정한 부의 제국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조금만 더 버티면 자신의 모든 거짓말과 사기 행각이 언젠가는 반전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리고 그는 거의 그렇게 할 뻔했다. 만일 세상에서 가장 큰 붕괴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대공황 때만큼 큰 썰물은 없었고, 바닷물이 빠져나가자 수영복을 입지 않고 수영하고 있던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음이 밝혀졌다.

1929년 초가 되자, 그의 금융 지주 회사 크뤼게르 & 톨의 증권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분포된 유가증권이었다. 투자자 수요가 너무 높아서 액면가 대비 730%의 프리미엄으로 팔리고 있었다.

번영의 20년대가 예고 없이 굉음을 내면서 멈춰 섰던 1929년 가을, 주식시장이 소용돌이 휩싸이기 전까지는 효과가 있었다.

타임지는 곧바로 크뤼게르를 표지에 실었던 결정을 후회했다. 그러면서 빠르게 태도를 바꿔 그의 계획과 회사가 그렇게 높은 배당금을 계속 지불할 수 있는지 의구심을 던지는 후속 기사를 실었다.

아직까지 투자자들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곧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투자자들이 탈출할 것이 우려된 크뤼게르는 배당 수익률을 30%까지 끌어올렸고, 약세장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1931년 6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그의 증권 가치는 80%나 떨어졌다.

사상 최악의 경기 침체 동안 사업이 둔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크뤼게르는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수준까지 돈을 끌어왔고, 종종 가짜 담보를 내세우기도 했다.

1932년 3월 12일, 카드로 만든 집이 무너지자 크뤼게르는 총으로 자살했다.

그 사실이 있은 후 감사 결과 그의 회사들은 파산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재산에 대한 청구 금액은 10억 달러 이상이었다.

크뤼게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그가 저지른 사기 행각의 규모와 범위를 깨달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했고, 가장 부자였으며, 가장 존경받는 사업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많은 사기는 합법적인 사업이나 아이디어로 시작된다. 여기에 탐욕, 도덕적 해이, 그리고 과신 등이 더해지면서 점점 더 정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일단 일이 시작되고 나면,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어느 정도의 힘을 얻으면 열차를 멈추기가 어려워진다.

돈과 권력이 무한정 지속되게 하고 싶은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1920년대는 금융 사기와 부정행위의 온상이었지만, 크뤼게르는 전통적 의미의 폰지 사기는 벌이지 않았다.

그의 사기 규모는 샤를 폰지보다 훨씬 크고 오래 지속되었다. 크뤼게르는 폰지보다 50배의 돈을 모았고, 그의 사업은 10배나 오래 지속되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합법적인 사업을 하고 있었다. 사업이 지속되지 않자 미쳐버린 것이다.

문제는 그가 자본을 잘 배분하지 못했고, 기업들 각각이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성냥 왕은 보유 회사의 자금을 완전히 통제했고, 그 돈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했다.

크뤼게르는 방대한 사업의 장부를 보관했지만, 투자자 또는 임직원들과 그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업이 좋은 해든 나쁜 해든 장부를 조작했다. 그는 수익을 계속 늘리면 빚을 갚고 높은 배당금을 계속 지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경비 지출 속도가 매출을 거의 5 대 1로 초과할 경우, 결국 파산하게 된다.

회계 감사관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는 정부와의 거래가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공개할 수 없다고 간단히 말하고 넘겼다.

의회가 그를 "역사상 가장 엄청난 사기꾼"이라고 부른 지 1년 후, SEC가 만들어졌다. 그 때문에 투자자를 더 잘 보호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분명 역할을 했다.

인간으로서 하기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미쳐 보일 때 지혜를 잃지 않는 것이다.

특히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 사기를 벌이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당시 한 유명 영국 작가는 크뤼게르를 "지금까지 역사상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았던 사기꾼"이라고 불렀다.

그의 가장 가까운 동료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바르에게는 기묘한 탁월함이 풍겼습니다. 저는 그가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빠졌고, 사람들은 그의 독특한 매력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샘 뱅크먼-프리드(SBF)에게로 가보자.



그 역시 극적인 방식으로 파산하기 전까지 빛나는 커버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암호화폐 시장의 신동이었던 그는 역사상 가장 빠르게 엄청난 자산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암호화폐 거래소 FTX를 설립한 그는 하루 만에 160억 달러의 자산을 0달러(아마도 0달러 미만)로 만들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FTX는 160억 달러의 고객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중 절반 이상을 암호화폐 거래 자회사 알라메다에 빌려줬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려고 여전히 애쓰고 있지만, 그는 헤지펀드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고객 자산을 사용했으며, 그밖에 여러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성냥 왕과 마찬가지로, SBF 역시 FTX의 장부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FTX는 전 세계에 130개 이상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FTX는 분명히 내부 통제가 부족했다.

FTX는 합법적인 암호화폐 거래소로 출발했다. 트레이딩 자회사에 손실이 쌓이기 시작하지만, 잘못된 자본 배분이 터무니없는 속도로 진행되었다.

너무 많은 돈을 너무 빨리 탕진한 전형적인 사례다.

너무 돈이 많았다. 너무 통제력이 컸다. 너무 레버리지가 많았다. 너무 관심이 많았다. 너무 권력이 컸다. 모든 것이 너무 많았다.

사기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제1형 사기꾼은 일종의 선지자다. 다소 성실하지만, 추종자들에게 자기 생각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거나 그들의 행동이 가져온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을 망친다.

이들 사기꾼은 너무 열정적이어서 피해자들은 어떤 단점도 보지 못한다. 지성, 열정, 그리고 돈이나 권력을 쫓는 사람들이 결합할 때, 잠재적인 위험에 눈을 감기 쉽다.

일단 제1형 사기꾼이 성공을 맛보게 되면, 일이 잘못되었을 때 중단하기가 어렵다.

제2형 사기꾼은 철저한 사기꾼이다.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사람들을 최대한의 이용해 먹기로 한다.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버는 데만 관심이 있고, 그 과정에서 누가 다치든 상관하지 않는다.

이들 사기꾼은 거짓말로 다른 사람들의 돈을 가져간다. 그들은 사람들을 어떻게 속여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사기를 간파하기 어렵다. 그들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정확히 말해준다.

크뤼게르와 뱅크먼-프리드의 이상한 점은 처음에는 제1형 사기꾼으로 시작했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면서 제2형 사기꾼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20세기 전반기처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때 사람들은 과거에 베팅하기 보다 미래에 베팅 하기를 더 선호한다.

암호화폐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 모습이다.

크뤼게르에게 과거는 성냥을 파는 것이었고, 미래는 유가증권을 파는 것이었다. 아무도 그 이유를 정말로 알지 못하지만, 무엇인가가 그의 사업 전략을 처음에는 탐욕에서 나중에는 1920년대의 통화로 옮겨 놓았다.

샘 뱅크먼-프리드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 것 같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많다.

수수께끼 같은 사기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자료 출처: A Wealth of Common Sense, "Sam Bankman-Fried vs. The Match King"(번역 ;Pi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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