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언무환(寡言無患)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은
대개 침묵 속에 자리하고 있다."
말을 하는 것에도 때로는 쉼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그럴싸한 말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게 대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때에 말을 거두고 진심을 나눌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말을 줄이는 것은 결국 삶에서 불필요한 문제나 후회를 줄이고, 진정한 내실을 다지는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침묵
때로는 말도 쉼이 필요하다
위대한 것 앞에서 침묵해야 한다. 침묵의 내면에서 말을 키워라. 말로만 하는 토론은 왜곡만을 가져다줄 것이다.
침묵은 말실수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말은 생각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걸 아무 생각 없이 대화라는 식탁 위에 올려놓다 보면 꼭 사달이 일어난다.
2. 간결
말의 분량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인간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 일부 언어학자는 성인의 최대 집중력이 18분이라고 주장한다. 18분 넘게 일방적으로 대화가 전개되면 아무리 좋은 얘기일지라도 참을성 있게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3. 긍정
말은 종종 현실과 공명한다
인간의 입술은 그가 마지막으로 발음한 단어의 형태를 보존한다는 말이 있다. 내 입술에 내 말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무섭고 서늘한 얘기다.
말의 생성과 소멸의 본질이 그러한지 모른다. 폐에서 올라온 공기는 목구멍과 혀끝을 따라 걷다가 입술이 오므라 들고 닫히는 사이를 틈타 밖으로 새어 나온다. 내가 빨아들인 공기와 내 안에서 생긴 묘한 파동과 공명이 곧 내 음성으로 태어나는 셈이다.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 말과 글과 숨결이 지나간 흔적을, 그리고 솔직함과 무례함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사는 건 아닌지를, 말이라는 악기를 아름답게 연주하지 않고 오로지 뾰족한 무기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를...
4. 둔감
천천히 반응해야 속도를 따라잡는다
둔감하다는 말은, 곰처럼 둔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인이 어떤 일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지를 자각하고 적절히 둔감하게 대처하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둔감력은 무신경이 아닌 복원력에 가깝습니다.
무협영화를 보면, 고수는 소리 없이 강하지만 하수는 소란스럽다. 무릇 칼은 칼집에 있을 때 위엄이 있다. 무작정 꺼내 들면 칼의 위력은 줄어든다. 칼의 크기와 날카로움이 뻔히 드러나는 탓이다.
아마 말도 그러할 것이다. 적절한 둔감력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휘두를 때 말의 품격은 더해지며 言力은 배가된다.
5. 시선
관점의 중심을 기울이는 일
역지사지를 실천하려면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잠시 벗어나 상대방이 처한 공간과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 조금 다른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기존의 관점을 내던져 관점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6. 뒷말
내 말은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되돌아온다.
요즘 SNS 상에서 악플로 인한 폐해가 크다. 도대체 양심과 영혼이 제대로 된 사람인지 아연실색할 때가 많다. 상대의 단점만을 찾아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 내면이 가난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뱉어낸 말은 누군가의 입에서 입을 통해 돌고 돌다가 결국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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