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5일 월요일

포퓰리즘이 고속열차를 스치면 /직행이 완행/으로

 

시속 300㎞? 한국 KTX 평균속도는 168㎞에 불과하다 [르포 대한민국]

중국 고속철은 시속 350㎞, 일본은 시속 500㎞ 공사 중
‘디지털 삶의 지수’는 2021년엔 2위, 올해는 20위로 추락
시간당 노동생산성 꼴찌 수준… 우린 뒤처지는 나라 되는 중

일러스트=김현국
일러스트=김현국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고 기술에 대한 긍정적 수용 자세가 갖춰진 나라이다.

인프라는 잘 갖춰져 있고, 균형 잡힌 산업구조를 토대로 창의성과 탁월한 문화적 감각에 기반한 새로운 콘텐츠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나라이다.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은 스스로를 부지런하다고 생각한다. 근면 성실함으로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했고, 선진국이 되었다고 뿌듯해한다.

미국이나 유럽을 방문하면 느린 서비스에 답답해한다.

가난하지만 낙천적인 남유럽이나 남미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 ‘더 부지런하면 잘살 텐데’라고 안타까워한다.

정치에 대해 불만도 많지만 여기까지 변화해 온 대한민국과 이런 과정을 만들어 온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그런데 정작 현실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언제부터인가 여러 분야에서 뒤처지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최고 속도 300km인 고속철도가 개통된 지 20년이 되어가지만 정작 평균 속도는 168km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중국의 고속철도는 평균 시속 350km로 영업 운전을 하고 있으며, 일본은 시속 500km로 달리는 자기부상열차인 주오 신간센으로 도쿄-나고야-오사카를 1시간에 연결하기 위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10조원을 들여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는 달빛 철도를 예비 타당성 검토 없이 진행하려고 한다.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효율적인 행정이 이루어진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우리의 주민등록증은 아무 정보도 포함하지 않는 플라스틱 조각에 불과하다.

우리에 비해 개인 정보에 훨씬 민감하고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유럽의 독일, 네덜란드 등은 다양한 정보를 포함하면서도 보안 기능을 갖춘 전자 신분증을 도입하고 있다.

구글맵, 애플페이, 우버 같은 세계의 표준적인 서비스 상당수는 우리나라에서 작동되지 않는다.

우리가 갈라파고스라고 비웃곤 하는 일본보다도 못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 스스로는 모르고 있다.

네덜란드 보안 기업인 서프샤크(Surfshark)가 매년 110국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디지털 삶의 지수(DQL)’에서 대한민국은 2021년 2위에서 2022년 10위, 2023년에는 20위로 추락하였다.

아시아에서도 싱가포르는 물론 일본에도 뒤처지는 것이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던 인터넷 품질은 일본이 25위를 기록하지만 우리는 64위로 나타났다.

그나마 전자 정부 분야에서 세계 4위를 기록하며 체면치레를 하고 있지만 최근 계속적인 마비와 지연을 겪고 있어 이마저도 전망은 어둡다.

미래는 인공지능의 시대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이를 위해 필요한 데이터의 품질은 조악하고 파편화되어 있다.

과거의 성취와 영광에 취해있는 사이에 착실하게 기반을 다지면서 변화를 지속한 국가들이 우리를 점점 추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많은 이는 우리가 선진국인데 왜 국민들은 행복하지 않고 삶의 질은 열악한지 궁금해한다.

어느 나라가 잘사는지를 평가하는 척도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달러로 환산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사용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집계에 따르면, 202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3만2255달러이고 이는 조사 대상 34국 가운데 일본(3만3815달러)에 이어 세계 21위에 해당한다.

국가별로 주택, 외식 등 국제적으로 거래되지 않는 상품과 서비스 비용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반영한 1인당 구매력 평가 기준(PPP)으로 환산하여 비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순위는 28위에 머무른 일본을 제치고 19위까지 올라간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프랑스(15위)와 영국(16위)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노동시간당 1인당 구매력 평가 지수로 다시 계산해 보면 우리나라는 시간당 49달러로 조사 대상 34국 가운데 33위까지 내려간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가장 극적으로 순위가 추락한다.

대한민국은 효과적으로 일을 하는지 잘 모르고, 그냥 열심히, 오래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국가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 개개인에게 삶의 여유는 없고 불행함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바쁘고 성실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무의미한 노동으로 가득 차 있다.

핵심에 집중해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보다는 무미건조하게 반복하거나, 보여주기식 일이 훨씬 많은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생산 현장에서는 체계적인 시스템보다는 감이 우선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고, 사무실에서는 쓸데없지만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에 투덜거려본 경험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반 구축과 자료 축적에 소홀하다 보니 많은 일은 장시간 노동을 통한 시행착오로 진행되고 있다.

경험들은 축적되지 못하고 일회성으로 사라지면서 똑같은 일을 무수히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37국 평균(64.7달러)의 7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보다 낮은 생산성을 기록하고 있는 국가는 그리스와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 등 네 나라에 불과하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우리는 자원은 없지만 풍부하고 우수한 양질의 노동력을 대량으로 투입해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인적 자원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다.

과거 방식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열심히 해서는 현재의 위치조차 지킬 수 없는 한계 상황이 닥쳐왔지만 여전히 과거의 “하면 된다”라는 인식에 매몰되어 현재 필요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질적 변화는 지체되고 있다.

‘무식하면 몸이 고생해’라는 격언이 2023년 대한민국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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