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제일 무서운 폭력은 바로 언어(言語)라고 한다. 백 번 좋은 일과 말을 하고도 한마디 말 실수로 그간 따 놓은 좋은 인상과 점수를 홀랑 날리기 십상이다.
둑이 터진 제방에 물을 담을 수 없듯이, 이미 바닥에 쏟아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듯이 돌이킬 수 없는 게 말 실수다. 사과를 하고 또 사과를 해도 상대의 마음에 가라앉은 앙금까지 거두기는 힘들다. 오죽하면 “말한 입은 삼일 가고, 듣는 귀는 천 년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 말의 고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절제하며 조리 있게 말하되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른바 말의 고수는 말을 않는 것이 아니고 하여야 할 말만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일까, 아니면 너무 적은 편일까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말이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경구가 적용되는 곳이 말이다.
수많은 처세가, 인생을 달관한 사람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것이 말을 앞세우지 말고, 품위 있는 말을 하고, 말수를 줄이고, 절제하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말을 잘하는 것’ 보다 ‘잘 말하는 것’이 중요하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보다 ‘상대가 싫어하는 말’을 안 하는 것이 상수라고 한다.
언어 구사 능력은 그 사람의 품격 (品格)을 좌우한다. 품격은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을 뜻한다. 품(品)은 입구(口)가 세개 모여 있는 문자이다. 세상 만사 말을 어떻게 구사하는 지에 달려 있다.
요즘 대화 중에 막말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심지어 폭행과 살인으로 이어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상대방이 듣기 좋고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너그럽고 부드러운 말은 사라지고 있다.
귀하게 자라서 부엌일을 거의 안 해본 며느리가 결혼해서 처음으로 시아버지 밥상을 차리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든 반찬은 그런 대로 먹을 만했는데 문제는 밥이었다.
“식사준비가 다 되었느냐?”는 시아버지의 말씀에 할 수 없이 밥 같지 않은 밥을 올리면서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며느리가 말했다.
“아버님, 용서해 주세요!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것을 해왔습니다. 다음부터는 잘 하도록 하겠습니다.” 혹독한 꾸지람을 각오를 하고 있는 며느리에게 시아버지는 뜻밖에도 기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아가야, 참 잘됐다! 실은 내가 몸살기가 있어서 죽도 먹기 싫고 밥도 먹기 싫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것을 해왔다니 정말 고맙구나!”
“그동안 친정에서 뭘 배웠느냐, 대학은 폼으로 나왔느냐” 하고 꾸지람을 할 법한데 오히려 무안해 하는 며느리에게 따뜻한 말씀을 하는 시아버지는 정말 지혜로운 분이 아닐까? 그 지혜로운 인격과 성품으로 그 시아버지는 평생 며느리의 극진한 섬김을 받았다고 한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상처 주는 말 한마디로 평생 원수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날마다 인간의 마음을 파괴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말의 폭력’이다.
인간관계는 유리그릇과 같아서 조금만 잘못해도 깨지고,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원수가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우정을 쌓는데는 수십년 걸리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는 단 1분이면 족하다.
귀와 입을 더럽히면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다. 한 번 마음이 더러워진 뒤에는 얼룩지고 때가 끼어도 잘 알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이 오염되기 전에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서로서로 따뜻하고 정다운 말 한마디로 상대를 배려하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삶으로 우리함께 살아가면 참 좋겠습니다.. (좋은 글에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