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0일 목요일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노인은 행복하다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노인은 행복하다"는 말은 깊은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은 크고 작은 변화와 도전을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신체적 노화, 사회적 역할의 변화, 때로는 주변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상실감까지, 젊은 시절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노인들은 더 큰 행복과 만족감을 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갑잔치, 칠순잔치를 떡 벌어지게 했으니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입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말이 맞다면 무사히 정년퇴임을 해서 당장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데 대해서 하늘에 깊이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설마 내가 이 정도의 복을 받을 만큼 착하게 살았을까? 그런 나를 노년까지 살게 해 주었고, 쌓인 죄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대로 가족을 먹여 살렸고, 사회에서 그럭저럭 구실을 하게 해 주었으며, 연금을 받아서 먹고 살 걱정 없게 해 준 것은 하늘이 베풀어준 은총이 아니면 어려웠을 일들입니다. 이렇게 큰 은총이야 하늘의 보살핌이었겠지만 자잘한 행운은 사회와 가족 친지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모든 것이 하느님, 부처님의 은총, 자비였다면 노년에 할 일은 죽을 때까지 절이나 교회에 가서 감사의 기도를 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천국에는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용납한 사회나 가족 친지에 대해서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서 염치없는 일일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노년까지 살아왔으니 하늘에 감사기도도 해야 하지만 사회와 이웃에 대한 고마움을 모른다면 하느님도 서운해할 것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원시수렵사회에서는 힘없고 병든 늙은이는 퇴물을 면치 못했습니다. 경로효친 사상이 인류사회에 자리잡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인위적인 도덕윤리 덕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일 수 있었던 것이지만 윤리도덕을 상실한다면 짐승 같던 시대로 다시 돌아갈 것입니다. 경로효친도 인간의 평균수명이 짧아 늙은이들이 희소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금같이 늙은이들이 좀처럼 죽지 않고, 백 년을 살아남아 아이들보다 늙은이가 더 많다면 경로효친은 유지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늙은이의 희소가치가 있었을 때에 성립되었던 경로효친이 늙은이가 거추장스러운 현대에도 여전히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이 당연한 일인가, 아니면 고마운 일인가? 앞으로 50년 후에는 인구의 절반이 늙은이라는데 이런 사회문화가 지속될 수 있을까, 아니면 머지않아 사라져 버릴까? 사정이 이렇건만 말세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여전히 경로효친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든지, 이 사회에 고마워할 줄 모른다면 낯이 두꺼운 노인입니다. 말세라는 말은 낯 두꺼운 노인들이 젊은이에게 탄식할 말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반성의 탄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것이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였고, 받은 혜택보다는 사회에 대한 기여가 훨씬 컸고, 그래서 이제는 당당하게 사회와 이웃에게 보상받을 권리만 남았다고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대개 착각이거나 낯두꺼운 생각입니다.


내가 잘나서 머리가 좋았고, 건강했고, 시험에 합격하고, 사업에 성공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 가정이 평화로웠던 것이라고 장담할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태어나서 노년까지의 모든 성과나 보람이 하늘의 은총이나 사회의 도움과 가족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해야 염치를 아는 노인일 것입니다. 하늘이 도우셨다, 운이 틔었다, 천행이었다, 재수가 좋았다, 팔자가 좋다, 기적 같은 일이다- 라는 말이 다 그런 것이 아닐까? 설마 사회에서 나보다 잘 나간 사람은 반드시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고, 나보다 못했던 사람은 나보다 능력이 그렇게 떨어졌던 사람이었던가? 그러므로 노년에 이를 때까지 감사하는 마음과 보답하는 행위가 없다면 배은망덕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유복한 노인도 많지만 요양원과 양로원에는 병에 쓰러진 노인들이 쌓여있고, 거기에도 못 가는 빈곤노인과 독거노인은 더 많습니다. 새벽길을 걷다 보면 노인도 되기 전에 중풍에 걸려 걸음마를 새로 하는 사람도 있고, 걸음도 떼기 어려워 벤치에 앉아있는 노인은 더 많은데 새벽부터 노구를 이끌고 일을 해야 하는 농부도 있습니다. 그들은 건강하고 팔자가 괜찮은 나를 얼마나 부러워할까? 먹고 살 걱정 없이 멀쩡하게 활보할 수 있는 행운이 어찌 내 능력의, 노력의 결과이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몸서리치게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억울하고 서운했던 일보다는 부끄럽고 분에 넘치게 고마운 일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마음껏 오늘을 즐기고, 오래 살 궁리나 하기보다는 하늘과 사회와 이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보답하는 것이 노년의 도리일 것입니다. 그러면 젊은이도 노인에 대하여 고마워할 것이고, 나는 고마운 노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처럼 순수하고 평안한 건 없을 것입니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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