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늙고 병에 걸리는가 - 노화를 설명하는 세 가지 이론
평균 수명 80 세의 시대를 맞아 누구나 질병 없는 편안한 여생을 꿈꿉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15 년 가까이 온갖 병에 시달리고 약에 파묻혀 힘들게 살다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100 세 건강장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은 70 년이 채 안 되는 셈이지요.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노화와 질병은 왜 생길까요. 노화와 질병을 설명하는 가설들이 수없이 제기되었으나 아직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다양한 이론과 가설 중에 다음 세 가지가 가장 자주 거론됩니다.
프로그램 이론은 인간의 형질을 결정짓는 노화와 질병에 관한 모든 정보가 유전자 속에 미리 입력되어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태생적으로 비만이 되기 쉽고, 혈압이 높아져 심장질환이 생길 가능성이 크며, 남들보다 빨리 늙거나 혹은 나이가 들어도 동안을 자랑할 운명이 유전자 속에 이미 설계되어 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조로증은 프로그램 이론을 설명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질환입니다 조로증은 수백만 명 중 한 명에게 나타나는 희귀 유전질환으로 정상인의 8 년이 조로증 환자의 1 년에 해당됩니다. 조로증 환자가 10 살이 되면 몸은 80 살 노인인 것이지요.
부모가 모두 당뇨라면 자식이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50 퍼센트가 넘고 부모 중 한 사람만 알레르기 질환이 있어도 자식에게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유전의 영향은 분명히 커 보입니다. 수백, 수천 개의 용종이 한꺼번에 자라나서 대장암으로 반드시 진행되는 가족성 용종증,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조로증 같은 병들은 프로그램 이론으로 완벽한 설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적절한 운동, 생활습관 개선, 스트레스 조절, 절제된 식습관, 좋은 건강식품 복용 등을 통해 상당 부분 나쁜 유전자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게 하거나 늦출 수 있어서 최근에는 많이 인용되지 않습니다.
텔로미어란 막대 모양의 염색체 양쪽 끝에 있는 DNA를 가리키는데,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고 마침내 다 닳아지면 수명이 끝나게 된다는 것이 텔로미어 이론입니다. 90 노인이라도 텔로미어의 길이가 충분히 길다면, 길이가 짧은 30 세 젊은이보다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텔로미어가 더 이상 짧아지지 않게 하거나 심지어 늘어날 수 있게 하는 효소를 발견한 생물학자들이 노벨의학상을 받은 후 텔로미어의 길이 조작을 통해 영생의 꿈을 달성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효소는 텔로미어의 길이를 지속적으로 복원시켜 영원히 죽지 않는 암세포 같은 특이한 인체조직에서만 발견이 되고 있습니다. 텔로미어 길이를 늘리는 효소를 발견했을 때는 무병장수의 시대가 눈 앞에 다가왔다며 한 때 많은 관심을 한 몸에 받았으나 텔로미어의 길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하자 정상 세포가 영원히 죽지 않는 암 세포로 변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인기가 시들해졌습니다.노화와 질병을 포괄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인 이론인 듯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신문이나 TV에서 활성산소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해산소라고도 불리는 활성산소는 음식을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기도 하고, 스트레스, 과도한 운동, 오염물질 등으로 인해 몸 안에서 발생하여 노화를 촉진시키고 각종 병을 일으킵니다. 활성산소는 거의 모든 암이나 만성 난치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의대는 치매, 당뇨병, 암, 심근경색증, 고혈압, 동맥경화, 결막염, 신장결석, 아토피성 피부염 같은 만성 난치질환의 90 퍼센트가 활성산소 때문에 발병한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지요.
우리 몸은 활성산소를 없애는 자체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몸이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활성산소가 만들어지면 세포 깊숙이 침투하여 지방 성분을 산패시키고 단백질을 변성시키며 DNA를 손상시켜 암과 만성질환을 유발하게 됩니다. 활성산소는 텔로미어의 길이를 짧게 하여 노화와 질환을 유발함은 물론 나쁜 유전자의 발현을 촉진시키기도 합니다.
활성산소 이론은 프로그램 설이나 텔로미어 설을 모두 아우르고 있고, 활성산소는 거의 모든 난치 병과 노화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어서 노화와 각종 질환의 발병 원인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가장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활성산소가 병과 노화를 일으킨다는 데 대해 거의 이론이 없어 보입니다. 활성산소 이론을 통해 인간의 질병과 노화에 대한 비밀이 밝혀질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합니다.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대표적 질환
설 연휴에 65세 이상 부모님을 뵈었다면 고령층에서 위험한 질환을 살펴보자. 코로나19로 부모님을 직접 못 뵈었다면 요즘에는 영상통화 등으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소통이 가능한 세상이 됐다. 아쉬운 대로 문명의 이기를 빌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부모님들이 조심해야 할 건강 체크리스트에 대해 알아본다.
◇고혈압, 국내 고혈압 인구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
고혈압은 직접적으로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비록 생명의 위협은 없더라도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킨다. 전체 뇌혈관질환의 50%가 고혈압으로 발생하고, 협심증과 심근경색 등 심장병의 30~35%, 신부전의 10~15% 역시 고혈압이 원인이다. 동맥이 딱딱해지는 ‘동맥경화증’도 마찬가지다.
특히 고혈압은 찬바람이 불고 일교차가 심한, 요즘 같은 겨울철에 더 주의해야 한다. 기온이 떨어지면 열 손실을 막기 위해 혈관이 수축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도 기온이 1℃씩 떨어질 때마다 혈압이 0.2~0.3㎜Hg 올라간다. 노인이나 마른 체형에서 특히 주의를 요한다. 노인 혈압 조절 목표는 수축기혈압 140~150mmHg, 이완기혈압 90mmHg를 추천한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심장혈관내과 이동재 교수는 “국내 고혈압 인구의 절반 이상을 65세 이상 고령층이 차지할 정도로 노인 비중이 높다”면서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고혈압의 경우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만큼 평상시 주기적으로 혈압을 확인하고 위험요인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당뇨병, 65세 이상 인구서 환자비율 2배 높아져
당뇨병은 국내에서 6번째로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다. 당뇨병이 무서운 이유는 그 자체보다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 때문이다. 족부괴사, 망막병증, 당뇨병성 신증, 뇌혈관질환, 관상동맥질환 등 당뇨 합병증은 전신에 나타날 수 있고, 또 한 번 발생하면 돌이키기 힘들고 심지어 죽음까지 이를 수 있다.
당뇨병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지는 않지만 유전적인 요인과 비만, 연령, 식생활, 운동부족, 호르몬 분비, 스트레스, 약물 복용 등의 환경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65세 이상 인구에서 당뇨병 환자 비율이 2배 정도 높아진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김은숙 교수는 “우리가 안경을 쓰는 것을 치료라고 말하지 않듯 당뇨병 역시 평생 관리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부모님의 체중이 갑자기 빠진다거나 갈증을 심하고 소변을 참지 못한다면 이미 어느 정도 당뇨병이 진행된 상태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골다공증, 기침 등 작은 충격에도 골절로 이어져
골다공증은 ‘소리 없는 뼈도둑’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 골절 등 합병증이 동반되지 않는 한 쉽게 알아채기 힘들다.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척추 압박골절로 키가 줄어든다거나, 허리가 점점 휘고, 허리통증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심할 경우 기침 등 작은 충격에도 골절로 이어지기 쉽다. 여성에서 더 빨리, 많이 나타난다.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골밀도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또 균형 잡힌 식단을 통해 우유나 단백질을 적절히 섭취하고 술, 담배는 멀리한다. 운동도 중요하다. 체중 부하가 실리는 운동과 관절에 과도한 무리가 가지 않는 걷기 운동이 좋다.
부모님들은 골다공증으로 뼈가 약해지고 허리가 굽는 것을 노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골다공증으로 인한 골절은 회복이 불가능한 사례도 있는 만큼 적극적인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척추관협착증, 하지 통증으로 보행 시 앉았다 일어섰다 반복
나이가 들면 얼굴에 주름이 늘듯 척추와 추간판(디스크)도 퇴행성 변화를 겪게 된다. 척추나 그 주변의 인대가 심한 퇴행성 변화를 겪게 되면 척추신경이 지나는 척추관이 좁아지면서 척추관협착증이 발생한다.
증상은 보행 시 심해지는 다리 통증이다. 협착증 부위에 눌린 신경이 지나가는 엉덩이 아래 하지 통증과 저림, 근력 약화로 보행이 힘들어진다. 이때 허리를 구부리거나 앉으면 통증이 완화되기 때문에 일명 ‘꼬부랑 할머니병’으로 부르기도 한다.
척추관협착증의 증상은 서서히 나타나는데 자연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거나, ‘곧 치유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병이 상당히 진행된 후에야 병원을 찾는다. 부모님의 허리가 굽고 걸음걸이가 이상하다면 질환 초기 병원을 찾아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무릎 통증․붓기 지속하면 퇴행성관절염 의심
무릎 관절은 평지를 걸을 때 체중의 3~4배, 내리막길에선 체중의 5~6배의 무게를 지탱한다. 노화는 무릎 관절 자체를 약하게 만든다. 무릎 관절을 지탱해 주는 근육과 인대의 탄력성이 줄어들고, 관절연골과 반월연골판의 충격 흡수 기능도 떨어진다. 또 관절액의 윤활 작용도 약화된다.
퇴행성관절염은 주로 다리가 맞닿는 내측 무릎에 통증을 유발한다. 처음에는 걷기, 계단 오르내리기, 양반다리 같은 자세에서 통증이 생기지만 병이 진행되면 자세와 상관없이 지속적인 통증이 발생한다. 휴식이나 수면 시 통증이 심해지고, 아주 심할 경우 일상적인 보행에도 지장이 생길 수 있다.
부모님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갑자기 심한 통증을 느끼거나,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으로 무릎 주위가 붓거나 아프다고 호소한다면 퇴행성관절염을 의심하고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샅 부위 뻗치는 통증 1~2주 지속하면 고관절질환 의심
고관절(엉덩이관절)은 넓적다리뼈와 골반뼈가 만나는 곳으로 척추와 더불어 체중을 지탱하는 몸의 기둥 역할을 한다. 항상 체중의 1.5~3배에 해당하는 강한 힘을 견뎌야 한다. 걷기만 해도 4배, 조깅은 5배, 계단 오르내리기는 8배의 하중이 가해진다.
고관절 질환은 반복적인 사용과 노화로 발생하는 일차성 고관절 골관절염이 대표적이다. 골관절염이 생기면 넓적다리뼈와 비구가 모두 망가지고, 어떤 치료를 받더라도 진행을 막을 순 없다.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샅이 시큰거리고, 심하면 가만히 있어도 극심한 통증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고 거동까지 불가능해진다.
인천성모병원 정형외과 전상현 교수는 “샅(사타구니, 두 다리의 사이) 부위나 엉덩이, 허벅지 쪽으로 뻗치는 통증이 1~2주 이상 지속한다면 고관절 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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