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하루에 두 번,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죽지 않고 살아 눈을 뜸에 감사하고, 하루를 행복하게 잘 살겠다는 서원의 기도를 올려야 한다. 잠들기 전에도 하루의 일을 반성하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기도로 하루를 마감해야 한다. 하루 중 어느 때든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것은 매우 좋은 습관이다. 자존감이 떨어질 때마다, 자신을 자책할 것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인 자신을 위로하고 사랑하는 기도를 올려야 한다. 실수나 실패를 하여 자괴감이 들 때에도 그것이 성장의 밑거름이 됨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것이 좋다. 성공하여 기쁠 때에도 우쭐해질 것이 아니라, 공을 돌리는 겸손과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마땅하다.
기도의 시작은 신에게 복을 비는 것이었지만, 진정한 기도는 참회나 감사나 서원의 기도이다. 복을 비는 기도는 얌체 같은 짓으로 효험이 있을 수 없고, 신이나 자연을 따르지 못함을 참회하고, 그의 은덕에 감사하고, 그를 따르겠다는 서원의 기도만이 효험이 있고, 인간을 행복의 주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간디의 명언에 따르면 ‘기도는 하루를 여는 열쇠이고, 하루를 닫는 빗장이다’라고 한다. 이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행복하게 잘 살겠다는 서원의 기도를 하고, 잠들기 전에 하루의 일을 참회하고 감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길임이 명백하다.
이러한 기도는 자주할수록 좋다. 그래서 이슬람의 하루에 몇 번씩 하는 기도는 매우 바람직하게 생각되고, 사막이라는 악조건에 맞는 종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감사의 기도는 자주 행하는 것이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밝게 사는 데 중요하다. 또한 감사의 기도는 자존감을 올리는 길이고, 지족상락(知足常樂)하는 행복의 길이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긴장이 해소되고, 행복해지는 것처럼, 감사의 기도를 자주 올리면 마음이 밝아지게 된다. 또한 내가 어떠한 존재가 되겠다는 서원의 기도를 자주 올리면 시나브로 그러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이 어지럽거나 자존감이 떨어질 때 때마다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기독교의 기도는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다. 기복이 아닌, 참회와 감사와 서원의 기도를 하는 것이다. 성경의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은 감사의 기도를 자주 올리면 항상 기쁠 수 있다는 복음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니 감사의 기도는 밥 먹을 때만 올릴 것이 아니라 틈나는 대로 올려야 행복할 수 있다. 참회나 서원의 기도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원죄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 못한 죄로 내세가 아닌 현생에서 불행으로 철저히 단죄되기 때문이다.
유가(儒家)의 기도는 조상에 대한 감사와 나눔의 기도이다.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먹을 것이 풍족하고 이웃들 과의 관계가 소원해져서, 제사 음식을 나누는 것이 어려워진 지금에는 제사 음식을 제사를 치른 친지들이 먹고 나눌 음식으로 실용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한다. 또한 제사는 친지들의 화목을 다지는 자리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한다.
불가(佛家)에서의 기도는 다양한 양식으로 행해진다. 합장, 절, 염불, 참선, 만트라와 독경 등의 기도가 있다. 특히 절을 반복하는 것은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몸을 단련시키는 훌륭한 기도가 된다. 그리고 불경을 읽으며 진리를 깨닫고, 서원이나 감사의 만트라를 자주 되뇌는 것은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기도이다.
불가에서의 기도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신 또는 신격화된 대상과 소통을 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내면의 나와 소통하려는 것이다. 밖이 아닌 안으로 눈을 돌려 내 안의 불성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자꾸 밖으로 향하게 하는 욕심의 허망함을 알아차리고 비워 내면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이다.
명상은 불가의 참선과 유사하다. 명상은 마음을 비우는 수행이고, 마음을 비우면 현재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현재와 하나되면 스트레스, 실수나 사고가 사라지며, 현재의 진리를 깨닫고, 달인이 되고 도인이 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이 밝아지니 세상을 밝힐 수 있는 최고의 보시인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욕심을 비우는 것이지, 소원까지 비우는 것이 아니다. 욕심은 결과에 연연하여 불행을 자초하지만, 소원은 과정을 즐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행복을 부르고 성공을 가져오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결과는 하늘에 달린 것이니 인간이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을 즐기고 지속하여 하늘을 감동시키는 것이 소원이기 때문이다.
명상할 때 경험하는 마음의 평화는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현대 과학에 의해 밝혀졌다. 마음이 평화로워지면 혈관이 넓어져 원활한 영양과 산소가 모든 세포에 공급되어 세포가 튼튼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특히 시각이 좋아지고 두뇌가 발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명상이나 참선하는 사람들이 집중적이고 명철한 사고를 통해 진리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도가(道家)의 기도는 자연과 하나되는 것이다. 자연과 하나된다는 것은 자연처럼 자타, 선악, 귀천 등의 분별을 여의어 만물을 아끼고 사랑하며 늘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만물은 모두가 특별한 존재로 존중 받아야한다. 만물을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크나 큰 비극이다. 자연을 파괴하여 그 과보를 받는 어리석은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기도가 도가의 기도인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도움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그러니 나를 살게 해주는 자연에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 하고, 그 은덕을 갚겠다는 서원의 기도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은덕을 갚는 길은 만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삶이 명상적인 삶이고, 행복의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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