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믿을수 없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은 적이 되고
어제의 원수가 오늘은 한 편이 되는 세상이다,
이런 세파를 무사히 건너려면 자신이 손해보는
"바보 철학"이 필요하다
남에게 양보해서 눈에 보이는 이익은 줄어들겠지만
적어도 남의 눈총은 받지 않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원수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
疑人莫用하고 用人勿疑니라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말고,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
諷諫云 水底魚天邊雁은 高可射兮低可釣어니와 惟有人心咫尺間에 咫尺人心不可料니라
<풍간에 이르기를 ‘물 속 깊이 있는 물고기와 하늘 높이 떠다니는 기러기는 아무리 높아도 활로 쏘고, 아무리 깊어도 낚시로 낚을 수 있다. 그러나 오직 사람의 마음은 바로 곁에 있더라도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고 하였다.>
畵虎畵皮難畵骨이요 知人知面不知心이니라 (省心篇 上)
<호랑이를 그리되 가죽(겉모양)은 그려도 뼈(속)를 그리기는 어렵고, 사람을 알되 얼굴은 알아도 마음은 알지 못하니라.>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측량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과 사람은 믿음을 바탕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거짓 없는 마음만 가졌다면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겠지만 인간의 삶 속에는 그렇지 못한 마음도 허다하니 어쩌겠는가?
하긴 나도 내 마음이 어디로 행하는지 알지 못하고 마음이 가는 데로 끌려 다니고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회, 믿음으로써 근본을 삼는 이신위본(以信爲本)의 사회가 형성된다면 정말 평안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명심보감은 그 믿음의 사회를 가기 위해서는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말라(疑人莫用)”
고 하고,
“일단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고 끝까지 믿으라(用人勿疑)”
고 말하고 있다.
선비 사상이 세상을 다스리는 덕목의 바탕이 되었던 시절, 사람을 선택하는데 대략적인 틀을 규정하는 말이 `신언서판(身言書判)`이었다. 이는 인물을 고르는데 건강(身), 말씨(言), 글(書), 판단력(判) 등의 관점에서 모든 면이 두루 반듯하고 모자람이 없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만남을 통하여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 대하여 어찌 이 모든 조건을 정확히 파악할 재간이 있단 말인가?
그래서 풍간(諷諫)에는 물고기는 물속 깊이 있어도 낚시로 잡을 수 있고, 기러기는 하늘 높이 있어도 활로 쏘아 잡을 수 있으나, 높지도 않고 깊지도 않은 사람 마음은 어찌 헤아릴 수 없다고 읊고 있다.
풍간(諷諫)은 한나라 때 위맹(韋孟)이 초나라의 왕무(王茂)가 음탕하므로 이 시를 지어 풍간(풍자하여 간언)했다는 풍간시(諷諫詩)를 말한다.
흔히 회자(膾炙)되는
“호랑이를 그리되 겉가죽은 그려도 뼈를 그리기는 어렵고, 사람을 알되 얼굴은 알아도 마음은 알지 못하니라.(畵虎畵皮難畵骨 知人知面不知心)”
는 친근한 말이 더욱 부지인심(不知人心)임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부지심(不知心)이기에 때로는 형제가 낯설기도 하고, 몇 십 년 지기(知己)에게도 진한 낭패감을 느끼기도 하니
“단지 사람의 두 가지 마음을 두려워하라.(只恐人情兩樣心)”
고 명심보감(明心寶鑑) 언어편(言語篇)에서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자기 스스로 잡으려 해도 잡지 못하는 것이 마음인데, 남의 마음을 어찌 알고 잡으려 한단 말인가?
서로 믿기도 하고, 서로 속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더 재미있는 생활인지는 모르나, 이 글은 나부터 남이 믿을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라는 경구(警句)의 말씀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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