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가재정의 한 모퉁이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도저히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펜을 들었다. 물가는 악마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물가는 악마적 속성을 지닌다는 말이다. 그 하나는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의 고통이 부자들이 아니라 팍팍한 살림의 서민들을 곧바로 향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물가는 덩달아 오르고, 또 한 번 오르기 시작하면 계속 오른다는 점이다.
지금 세계는 이 악마의 속성을 지닌 물가와 전쟁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와 코로나 팬데믹 극복을 위해 풀어놓은 막대한 돈 때문이다. 미국은 고금리를 지속하고, 일본은 십수 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에서 플러스 금리로 돌아섰다.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에 더해 지난 문재인 정부는 409조원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쌓아놓았다. 얼마나 어마어마한 돈인지 실감이 나지 않아서 계산해 보았다. 5만원권 지폐 한 장의 무게는 0.97g, 10톤 트럭에 가득 실으면 5000억원을 실을 수 있다. 409조원을 실으려면 10t 트럭 818대가 필요하다. 이 차를 15m 간격으로 세우면 12㎞, 서울 시청에서 한강대로를 따라 노량진을 지나 영등포역까지 이른다.
이렇게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막대한 돈을 풀어놓고 한두 해 물가가 오르고 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철부지 생각일 뿐이다. 더구나 물가는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계속 오르는 악마다.
설상가상,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웃지 못할 정책으로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여 물가 상승을 부추겼고, 각종 공공요금을 동결하여 물가 상승의 압박을 다음 정부에 떠넘겼다. 물가 상승이라는 악마가 이를 그냥 지나칠 리 만무하다. 지금도 악마 본연의 속성을 여지없이 발휘하여 서민 가계를 타격하고 있다. 물가는 어제오늘 할 것 없이 계속 오르고,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덩달아 오르고 있다.
이 악마를 깨운 것은, 반론의 여지조차 없이, 문재인 정부다. 윤석열 정부는 이 악마를 잠재우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이 악마를 잠재우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고금리이고, 다른 하나는 긴축재정이다. 이것 때문에 국가 경제는 휘청거리고, 정부는 허리가 휘고,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이것은 화폐금융론이나 거시, 미시경제학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경제원론이면 충분하다. 아니,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경제 상식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요즈음 이 물가라는 악마를 깨워놓은 장본인인 문재인 정부의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이 물가를 놓고 현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식단에 오르는 파의 묶음을 흔들며 정부 심판을 외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은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와 그때의 여당인 민주당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그 민주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간과하기 힘든 해괴망측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15조원이 넘는 돈을 풀어 전 국민에게 1인당 30만원씩 소비자쿠폰이라는 이름의 현금성 지원을 하자고 한다. 1~2주 만에 소비지출로 연결될 이 현금 지원은 물가라는 악마를 자극하는 불쏘시개가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치솟는 물가에 고통받는 서민들을 위한다면서 오히려 물가를 자극하는 정책을 펴겠다고 한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이를 두고 한물간 서생이 최대의석 야당 대표의 주장에 대하여 감히 "해괴망측" 운운하는 것은 겁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다. 서민대중을 위한다는 그가 왜 겨우 꺼져가는 물가에 기름을 부어 악마의 불씨를 되살리겠다는 것인지, 그 고통은 부자가 아니라 그가 그토록 걱정하는 서민들의 몫임을 모르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해괴망측"하다는 그 말밖에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정도의 경제학 상식조차 없을 만큼 무식한 것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혹세무민하여 표를 얻어 보겠다는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포퓰리즘의 소산인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된다. 이제 경제학자들은 엄중히 따져 물어야 하고, 언론은 엄중히 비판해야 할 것이며, 유권자는 엄중히 심판해야 한다. 그래야만 남미식 좌파 포퓰리즘을 막을 수 있다.
한상율 전 국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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